[6월 Theme] 2022년 칸, 한국영화가 ‘구원’하다!: 올해의 칸영화제 경쟁작들
[6월 Theme] 2022년 칸, 한국영화가 ‘구원’하다!: 올해의 칸영화제 경쟁작들
  • 전찬일(영화평론가)
  • 승인 2022.06.04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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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자 단체 ⓒValery Hache / AFP
수상자 단체 ⓒValery Hache / AFP

단도직입적으로 질문을 던져보자. 총 21편의 경쟁작을 중심으로 평가하면, 75회를 치른 올 칸은 과연 어떤 영화제로 기억될까? 영화 보기 50여 년에 영화 스터디 40년, 평론 포함 영화 글쓰기 삼십 수년의 이력履歷에다 1999년을 제외하고 1997년부터 2017년까지 20회에, 5년 만에 다시 찾은 올해까지 총 21차례 칸영화제를 겪은 주·객관적 경험치로 총평하면, 고만고만한 평작·범작의 향연쯤으로 요약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필자의 주관적 판단만 그런 건 아니다. 영화제 기간 중 발행되는 일련의 데일리 가운데 현지에서 가장 널리 참고·인용되는 《스크린인터내셔널》(이하 《스크린》) 10인-올해는 한 명이 늘어 11명 참여했는데, 어떤 이유에서인지 후반부에 접어들어 우크라이나 《코리도르》 지의 평자가 빠졌다-평가단의 평점부터가 그 사실을 증거한다.

경쟁작 전체의 《스크린》 종합 평균은 ‘평작average’과 ‘수작good’의 사이인 2.4점이다. 24편이 경쟁 부문에서 자웅을 겨뤘던 2021년의 2.2점에 비해 다소 올랐으며, 〈기생충〉(봉준호)의 해였던 2019년의 2.5점에 비하면 내려갔다. 관건은 3점을 넘은 수·걸작들이 2021년 3편, 2019년 4편이었고 최고점도 〈드라이브 마이 카〉(하마구치 류스케)와 〈기생충〉이 3.5점이었던 데 반해, 올해는 〈헤어질 결심〉 딱 한 편으로 3.2점이었다는 것이다. 〈헤어질 결심〉은 세 명에게 4점 만점(걸작excellent)을, 여섯 명에게 3점을, 한 명에게 2점을 받았다. 그렇기에 5월 23일(현지 시간) 오후 공식 선보인 후 막판까지 유력 황금종려상 후보로 부상·회자된 것은, 소위 ‘국뽕’적 호들갑이 아니라 당연한 귀결이었다. 감독상이 귀한 성취인 것은 명백하다. 하나 못내 아쉬운 반응이 나온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장편 극영화기준 총 11편의 박찬욱 필모그래피 중 최고작으로 간주되기 손색없는 그 걸작에 4점 만점을 부여한 그 세명이 누군지 아는가. 한 편은 《스크린》 기자며, 다른 두명은 영국(《가디언》)과 프랑스(《포지티프》)를 대표하는 막강 영향력의 비평가 피터 브래드쇼와 미셸 시망이었다.

〈브로커〉의 《스크린》 평점은 1.9점이었다. 2점(평작) 이하를 득한 세 편 중 하나였다. 다른 두 편은 루카스 돈트의 〈클로즈〉(2.4점)와 심사위원대상을 공동 수상한 클레르 드니의 〈정오의 별들〉(1.9점)과, 프랑스의 중견 여성 배우이자 감독인 발레리아 브뤼니 테데스키의 〈포에버 영〉(1.8점)이었다. 이 세 편이 최하위권을 형성한 것은 맞으나, 예년에 비해 그 격차가 크지 않아 문제 될 게 없었다. 2점 아래 영화가 올해처럼 적은 적도 기억건대 없다. 참고로 2019년에는 2점 이하 영화가 7개의 본상을 받지 못했으나, 지난해 황금종려상 수상작 〈티탄〉(쥘리아 뒤쿠르노)의 평점은 1.6점이었다.

그럼에도 〈브로커〉가 마치 수상권에서 멀어진 것처럼 국내 보도가 적잖이 나왔던 주된 이유는, 〈헤어질 결심〉을 극찬했던 피터 브래드쇼가 1점을 주며 퍼부었던 혹평 때문이었(으리라는 게 내 해석이)다. 친한파로 널리 알려진 미셸 시망도 2점을 부여했다. 하지만 다른 데일리에서 얻은 〈브로커〉 평점은 상위권에 속했다. 가령 15인의 프랑스 평자들로만 구성되는 《르필름프랑세》에서는 〈헤어질 결심〉의 2.43점보다 높은 2.69점을, 《스크린》처럼 다양한 국적의 평자 12인으로 짜인 《갈라크롸제트》(이하 《갈라》)에서도 〈헤어질 결심〉의 2.66점보다 다소 높은 2.73점을 득했다.

〈슬픔의 삼각형〉 스틸컷
〈슬픔의 삼각형〉 스틸컷

황금종려상 수상작 〈슬픔의 삼각형〉(루벤 외스틀룬드)은 상기 세 매체의 평단으로부터 어떤 평가를 받았을까? 놀라지 마시라. 《르필름프랑세》로부터는 하위권인 1.66점을, 《갈라》로부터는 1.91점을 받았다. 《스크린》에서는 5위권인 2.5점을 득했다. 필자에게도 흥미롭긴 했으나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평작으로 다가섰다. 그렇다고 그 영화가 칸 최고 영예를 차지할 자격이 없다는 것은 물론 아니다. 하지만 그 영화와 〈헤어질 결심〉 간의 영화적 수준차는, 권투로 치자면 헤비급과 미들급 사이의 차이라는 것이 내 결론이다.

〈슬픔의 삼각형〉은, 봉준호의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옥자〉가 입성했던 2017년 칸에서 거의 모든 이들의 예상을 깨고 황금종려상을 받은 전작 〈더 스퀘어〉보다 조금은 더 재미도 있고, 한층 더 튀긴 한다. 세계적인 거부와 SNS 인플루언서를 조롱하면서 신자유주의로 대변되는 자본주의 모순을 비판하는 영화의 주제의식이 인상적이긴 하다. 그 점에서 영화는 〈기생충〉가 연결되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영화 예술·미학적 수준에서의 비교는, 〈기생충〉에 대한 결례다. 다층적인 〈헤어질 결심〉과는 달리, 보이는 게 거의 다인 범작에 지나지 않는다. 크게 “거칠고, 새로울 것 없고, 진정한 웃음이 놀랄 정도로 결핍된 유럽식 풍자”(피터 브래드쇼)와 “사악할 정도로 재밌는 새로운 사회 풍자”로 “가장 눈길을 끄는 작품”(《LA타임스》의 저스틴 창)으로 평가가 양분됐는데, 필자는 전자 쪽이다. 하긴 개인적으로 칸 역사상 최악의 황금종려상 수상작으로 기억되고 있는 〈더 스퀘어〉도 범작이긴 도긴개긴이다. 오죽하면 심사위원대상작인 〈120 BPM〉(로뱅 캉피요)에 황금종려상이 안겨져야 한다며 기자 회견장에서 피켓 시위까지 일어났고, 그 하드코어적 걸작에 대해 말하면서 심사위원장인 페드로 알모도바르가 울먹거렸겠는가.

〈에오〉 스틸컷
〈에오〉 스틸컷
〈에오〉 스틸컷

문제적이긴 해도 평작이긴 두 심사위원상 수상작도 별반 다르지 않다. 폴란드의 노거장 예르지 스콜리모프스키의 〈에오EO〉와, 벨기에의 샤를로트 반더메르쉬 & 펠릭스 반 그뢰닝엔의 이탈리아-벨기에-프랑스-영국의 합작물 〈여덟 개의 산〉. 자연과 동물을 향한 감독의 각별한 사랑을 극화했다는 〈에오〉(《스크린》 평점 2.7점)는, 당나귀 ‘에오’의 눈으로 타락 일로를 달리고 있는 세상을 향해 던지는 애정 어린 비판이다. 당나귀를 주인공으로 전면에 내세워 인간 본성의 모순과 부조리를 고발하고 진정한 인간의 조건이 무엇인가를 탐구한 로베르 브레송의 걸작 〈당나귀 발타자르〉(1966)에 바치는 오마주이기도 하다. 〈여덟 개의 산〉(2점)은 이탈리아 북서부 아오스타 밸리의 산악지대를 무대로 펼쳐지는 두 친구의 30년에 걸친 우정담이다. 그 우정이 그렇게 감명스러웠을까, 에오와 마찬가지로 완만한 호흡으로 전개되는 영화는 《갈라》에서 11명 중 피터 브래드쇼 등 6명으로부터 4점 만점을 받는 기염을 토했다.

〈여덟 개의 산〉 스틸컷
〈여덟 개의 산〉 스틸컷

심사위원상처럼 두 영화에 수여된 심사위원 대상에 대해서는 개인적 ‘불만’을 토하지 않을 길이 없을 것 같다. 〈클로즈〉야 《갈라》로부터 무려 7명에게 만점을 받으면서 〈헤어질 결심〉과 함께 유력 황금종려상 후보로 점쳐지기도 했으니, 그러려니 치자. 2018년 주목할 만한 시선에서 선보인 장편 데뷔작 〈걸〉로 황금카메라상(신인감독상)을 거머쥔 바 있는 30대 초반 신성 루카스 돈트의 두 번째 장편 영화다. 13살 두 소년의 드라마틱한 삶과 죽음을 말 그대로 무난하면서도 안정감 있게 극화했다. 〈정오의 별들〉은 그러나, 실망스럽다 못해 화가 치밀었던 졸작이다. 1984년 니카라과 산드니스타 혁명을 배경으로, 니콰라과를 탈출하면서 영국의 비즈니스맨과 미국의 저널리스트 사이에 펼쳐지는 러브스토리다. 영화는 나름 육감적 감흥을 전하려고 기를 쓰나 처절하게 실패했다. 얼마나 실망스러웠으면, 자국 평자들로만 구성되는 《르필름프랑세》 14인으로부터 평균 0.82점을 받는 ‘망신’을 당했겠는가. 7명에게 0점을 받았다. 내게도 영화는 〈하이 라이프〉(2018), 〈렛 더 선샤인〉(2017) 등의 명장 클레르 드니의 명성을 치명적으로 훼손시킨 최악의 영화로 다가섰다. 70대 중반의 노장에다, 프랑스를 대변하는 여성 감독에 대한 배려라 이해하더라도 실망을 상쇄시킬 정도는 아니다. 올 칸의 최대 패착 중 하나가 프랑스 영화도 그렇고 여성 감독들 영화들의 수준이 ‘바닥’이었다는 사실인바, 〈정오의 별들〉은 해도 해도 너무했다. 걸작 〈퍼스트 카우〉(2019)의 명장 켈리 라이카트의 〈쇼잉 업〉도 《스크린》에서는 2.7점으로 호평을 받았느나, 내게 실망스럽긴 매한가지였다.

2022년 칸에서 가장 아까운 문제작은, 이란계 덴마크 감독 알리 아바시(〈경계선, 2018〉)가 바친 이란 여성을 위한 찬가 〈성스러운 거미〉다. 열혈 저널리스트 역을 열연해 ‘칸의 여왕’에 등극한 이란 출신 자르 아미르-에브라히미에게는, 송강호에게 그랬듯, 큰 축하를 보내야 마땅하나, 영화는 내게 〈헤어질 결심〉과 더불어 올 칸의 최고작이었다. 심사위원 대상작은 〈정오의 별들〉이 아니라 이 걸작이어야 했다. 종교적 광신에 사로잡혀 ‘거리의 여자들’을 16명이나 연쇄 살인하고 잡히고 재판받고 급기야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는 남자와 일련의 피해 여성들, 그리고 17번째 피해자가 될 수도 있는 위험을 무릎 쓰고, 창녀로 가장해 그 남자가 체포되는 데 결정적 기여를 하는 여기자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수준급 사회성 범죄 드라마.

75주년이 뭔 대수라고 역시 범작에 지나지 않는 〈토리와 로키타〉에 특별상을 수여했나 싶긴 해도, 〈로제타〉와 〈더 차일드〉로 1999년과 2005년에 이미 칸 최고 영예를 두 차례나 차지한 형제 감독 장-피에르 & 뤽 다르덴에 보내는 경의려니 치자. 지금 이 순간 올 칸이 심히 유감스러운 점은, 지난해에도 심사위원대상(아쉬가르 파라디의 〈어 히어로〉와 유호 쿠오스마넨의 〈컴파트먼트 넘버 6〉)과 심사위원상(아피찻퐁 위라세타쿤의 〈메모리아〉와 나다브 라피드의 〈아헤드의 무릎〉)을 공동 시상하더니, 올해도 똑같이 재연했다는 것이다. 세계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영화제라면서, 영 모양새가 아니다. 2023년도 그럴 것인가.

〈탑건: 매버릭〉 스틸컷
〈탑건: 매버릭〉 스틸컷

지면 관계상 수상작 이외의 경쟁작들에 대한 논의는 다른 기회를 노리련다. 올 칸의 문을 연 〈파이널 컷〉(미셸 아자나비시우스)과 올 칸의 최대 센세이션이었던 톰 크루즈 주연의 〈탑건: 매버릭〉(조셉 코신스키), 세계 대중음악의 기념비적 별들이었던 엘비스 프레슬리와 데이비드 보위의 삶과 음악을 그린 극영화 〈엘비스〉(바즈 루어만)와 다큐멘터리 〈문에이지 데이드림〉(브렛 모겐) 등 비경쟁작들이나, ‘심야 상영’ 부문에서 월드 프리미어되며 〈탑건: 매버릭〉 못잖은 화제를 불러일으켰던 〈오징어 게임〉의 월드 톱스타 이정재 감독·주연의 〈헌트〉 등도 그렇다.

  평작들의 향연에도 불구하고 “한국영화가 거둔 역사적 성취라는 점에서 올 칸은 그 어느 해보다 기분 좋고 신나는 영화제로 기억·기록될 것이다. 결국 올 칸은 한국영화가 살리고 ‘구원’한 셈이다.”

 

*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전찬일 영화평론가, 중앙대학교 글로벌예술학부 겸임교수. 비평 활동 외에도 글로컬 컬처 플래너&커넥터 및 퍼블릭 오지라퍼를 표방하며 다양한 문화 기획, 연결을 추진해오고 있다. 그 일환으로 부천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 조직위원을 맡고 있다. 저서로 『봉준호 장르가 된 감독』(2020) 등이 있다.

 

* 《쿨투라》 2022년 6월호(통권 96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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