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Theme] 올 칸을 빛낸 또 다른 문제작들: 〈다음 소희〉, 〈리턴 투 서울〉
[6월 Theme] 올 칸을 빛낸 또 다른 문제작들: 〈다음 소희〉, 〈리턴 투 서울〉
  • 전찬일(영화평론가)
  • 승인 2022.06.04 00: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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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소희〉 스틸컷
〈다음 소희〉 스틸컷

올 칸을 빛낸 한국영화는 〈헤어질 결심〉(박찬욱 감독)과 〈브로커〉(고레에다 히로카즈), 이정재 정우성 주연의 이정재 첫 연출작 〈헌트〉만이 아니었다. 감독주간과 더불어 두 병행 섹션 중 하나인 비평가주간에서, 한국영화 사상 처음으로 폐막작에 선정돼 선보인 정주리 감독의 〈다음 소희〉도 그중 한 편이었다. 그리고 영화진흥위원회(위원장 박기용) 등이 제작 지원을 하고 프랑스·독일·벨기에 등 유럽 자본을 끌어들여 캄보디아계 프랑스 감독 데비 슈가 연출한 프랑스 영화인지라 범주상으로는 한국영화가 아니나 출연진도 그렇고 정서상으로는 영락없이 한국영화의 연장선에 자리하는 〈리턴 투 서울〉도 그 멋진cool 주인공이었다.

제목이 가리키듯 〈다음 소희〉는 지난 2014년 칸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 공식 초청됐던 “타인과 한번도 제대로 교감해본 적이 없는 지독히 외로운 두 사람” 도희(김새론 분)와 영남(배두나 분) 이야기인 ‘〈도희야〉 그 이후’다. 제법 규모가 큰 콜센터로 현장실습을 나가게 된 고3 인턴 소희(김시은 분)가 마주하게 되는 크고 작은 사건·사연들과, 그에 의문을 품고 상관의 반대·제지에도 아랑곳없이 그 안으로 파고 들어가 조금이나마 상황을 개선하려고 무던히도 애를 쓰는 열혈 형사 유진(배두나) 두 여자의 이야기를 극화했다.

〈다음 소희〉는 전주 LG유플러스 고객센터에서 상담사로 일하던 18세 특성화고 현장실습생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던 2017년의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삼았다.기사(경향신문 5월 30일 자)에 의하면, 감독은 올해로 서른 살을 넘은 SBS 시사고발 프로그램 〈그것이 알고싶다〉를 통해 사건을 처음 접했다. “‘왜 콜센터를 고등학생이 가지’하고 의아했다. 어떻게 된 일인지 알아봤다. 알수록 기가 막혔다. 당시의 상황은 취재를 바탕으로 사실적인 것들로 채우려고 했다. 내가 어떻게 이렇게 모르고 있었나 싶을 정도로 찾아보면 자료가 너무나 많았다. 업체 측의 실시간 실적 압박과 감시, 소희가 항상 차고 있는 이름표, 특성화고의 열악한 상황 등 모두 실제 요소들이다.”

〈다음 소희〉 무대인사 ⓒ트윈플러스파트너스(주) 제공
〈다음 소희〉 무대인사 ⓒ트윈플러스파트너스(주) 제공

영화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건조’하며, 더러 설명조로 전개되기도 하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그 실화성을 확보하기 위한 기본적 선택이다. 연기의 톤 앤 매너와 등장인물들의 성격화characterization는 말할 것 없고, 엔딩 크레디트까지 고작해야 네다섯 차례 정도밖에, 그것도 짧게 쓰인 미니멀리즘적 음악 효과 또한 영화의 건조함에 기여한다. 여느 영화 같으면 치명적 약점으로 작용할 수 있는 건조함이 으뜸 미덕으로 비상한다. 자칫 스며들기 십상인 신파적 감상성을 훼방·차단 결정적 장치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그 덕에 영화를 보는 내내 일정한 거리가 유지된다. 그 거리는 우리의 여주인공이 마주하게 되는 크고 작은 사회적 부정의를 성찰하게 하는 지점으로까지 관객을 고양시키는 기능을 한다.

영화는 소희의 상황에 적극 공감하고 지지를 표한다. 그렇다고 소희가 일방적 피해자고 그와 관계되는 인물들이나 그가 속해 있는 사회가 가해자라는 도식성으로 내달리진 않는다. 슬기롭게도. 감독도 강변하듯, “인물들 모두 나름의 처지와 곤궁함이 있”는 것이다. 유진도 그 현실을 잊지 않는다. “학생이 죽었는데 누구 하나 책임지는 사람이 없는 상황에 대해 형사 유진은 울분을 터뜨”리고, “학교, 회사, 교육청에 찾아가 주먹을 날리고, 소리를 지”르며, 윗선의 압박을 받으면서도 타살 정황이 전혀 없는 사건을 정말 열심히 수사한다. “그런 인물이 존재하는 게 작은 희망일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앞으로도 비슷한 일들이 계속 벌어지겠지만 그런 인물이 어딘가에 있다는 희망이 있어야 괜찮은 게 아닌가”, 싶어서다. 그 점에서 유진은 〈헤어질 결심〉의 ‘품위’ 있는 형사 해준(박해일)의 여성 버전이다. 소희는 그 품위를 지켜주기 위해 남자와 ‘헤어질 결심’을 하는 서래(탕웨이)의 소녀 버전이고…. 흥미롭게도 소희와 서래의 최종 선택은 상통한다.

〈리턴 투 서울〉 스틸컷
〈리턴 투 서울〉 스틸컷

감독의 건조한 선택은 적중했다. 비평가주간 집행위원장 아바 카에가, “충격적이면서도 눈을 뗄 수 없게 하는 작품. 능수능란한 각본과 연출력으로 만들어진 이 놀라운 작품은 배우들의 매력적인 진실함을 보여준다”고 상찬한 것하며, 《할리우드 리포터》가 “칸의 숨은 보석”으로 소개한 것 등이 그 증거다. ‘2022 칸의 발견’은 〈리턴 투 서울〉에도 해당된다. 〈헤어질 결심〉과 〈다음 소희〉의 통함은 이 발견의 영화으로도 이어진다. 입양 모티브를 통해 〈브로커〉와, 음악 연출을 통해 〈헤어질 결심〉과 이어지는 것.

〈리턴 투 서울〉은 어릴 적,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친부모에 의해 버려지고 입양된 25세 프랑스 여성 프레디가 자신이 태어난 조국을 방문했다가, 의도치 않게 친부모를 찾으려고 하면서 성장·성숙해가는 과정을 그린다. 오광록과 김선영, 허진 등 관록의 배우들이 아버지와 고모, 할머니로 분해 이 저예산 독립 영화에 보고 듣는 재미를 보장한다. 허진의 실감 연기는 말할 것 없고 지역적 정감 가득한 오광록의 사투리 연기, 흔히 ‘콩글리쉬’를 일컬어지는 김선영의 브로큰 잉글리쉬 연기는 그야말로 일품이다. 박지민의 연기는 또 어떤가. 직접 만나 들어보니, 연기 경험이 전무할 뿐 아니라 연기 실습을 해본 적이 전혀 없는 설치 미술가라는데, 그 프로페셔널리티는 압권이다. 연기 초짜라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는다. 특히 2년과 5년, 1년 세 단계의 영화 속 시기들을 ‘표정의 변화’로 보여주는데 압권이다. ‘얼굴의 풍경화’라는 필자의 진단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게다가 영화에는 아마추어 연기자들이 대거 출연하는데, 그 아마추어성이 영화의 진정성을 배가시켜주는 역할을 한다.

트윈플러스파트너스(주) 제공
트윈플러스파트너스(주) 제공

그뿐이 아니다. 영화를 관통하는 정서가 어찌나 ‘한국적’인지 감탄하지 않을 수 길 없다. 어지간한 한국 감독보다 더 한국적이다. 특히 〈꽃잎〉부터 〈아름다운 강산〉, 〈봄비〉 등 신중현의 인기 대중가요들의 저작권을 획득해 활용한 음악 효과는 〈헤어질 결심〉에서 정훈희(와 송창식)가 부르는 이봉조 작곡의 주제곡 〈안개〉와 직결된다. 마치 상의한 것 아닐까, 싶은 착각마저 일으킨다. 박찬욱과 데비 슈 사이에는 20년 가량의 나이 차가나거만 어떻게 그런 동세대성이 발생할 수 있을까? 그는 “2011년 한국에 처음 갔을 때 홍대앞 음악바bar에서 이 놀라운 음악들을 듣고 좋아하게 됐다. ”며, “한국 올드송은 내 영혼을 건드린다.”고 말한다.

데비 슈는 첫 장편 다큐 〈달콤한 잠〉을 2011년 제제16회 부산영화제에서 세계최초로 공개했고, 이듬해 베를린영화제 포럼에 초청됐다. 두 번째 장편 〈다이아몬드 아일랜드〉는 2016년 부산영화제 아시아영화의 창에서 선보였다. 그때는 ‘데이비 추’로 소개됐다.

 

*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 《쿨투라》 2022년 6월호(통권 96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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