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테마 고양이] 우리는 왜 집사가 되는가
[3월 테마 고양이] 우리는 왜 집사가 되는가
  • 조은주(콘텐츠 기획자)
  • 승인 2019.03.25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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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와 인간의 관계형성
도젠외프너(캔따개), 서번트, 오세와가카리(하인), 집사…. 고양이를 반려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다. 공통적으로 어떤 대상을 떠받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 가운데 한국에서 많이 쓰이는 말은 집사인데, 고양이 집사라고 하면 ‘고양이를 떠받드는 사람’이라는 뜻이 된다.

일반적인 동물과 인간의 관계에서는 인간이 주主가 되고 동물이 종從이 된다. 인간의 손에 의해 길러지는 거의 모든 동물은 인간과 이 같은 주종관계를 형성한다. 그런데 고양이와 인간의 관계에서는 이 관계가 뒤바뀐다. 즉, 고양이가 주가 되고 집사가 종이 된다.

왜 고양이만 다른 걸까? 그 이유를 고양이를 좋아하는 사람의 특징을 통해 유추해볼까 한다.

 

고양이를 좋아하는 사람의 두 가지 공통점
많은 사람이 개를 좋아한다. 외모는 차치해두고 인기의 요인을 내부에서 찾자면, 일단 개는 사람을 잘 따른다. 개와 친해지는 방법은 비교적 수월해 보인다. 맛있는 밥을 자주 주고 스킨십을 많이 해주면 된다. 개의 충성심은 사람이 개에게 쏟는 애정에 비례한다. 개는 자신의 욕구에 앞서 사람의 심기를 먼저 살피고 그가 원하는 대로 반응할 줄 안다. 또한 개의 행동 중 사람의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은 훈련을 통해서 교정될 수도 있다.

인간은 개와 더불어 더 행복한 삶을 누리기 위해 개의 습성이나 행동 패턴을 자신에게 맞추어 나간다. 개는 기꺼이 이에 동참하며 점점 인간화되어 간다. 이런 인간친구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개에 비하면 고양이는 사람을 잘 따르는 편은 아니다. 친해지기까지도 시간이 꽤 걸린다, 아니 평생 친해지지 못할 수도 있다. 내가 1년 넘게 밥을 챙겨주고 있는 우리 동네 길고양이는 아직도 캔을 따주는 내 손을 할퀸다. 우리 집고양이는 5년째 이빨을 닦일 때마다 내 손가락을 문다.

사실 고양이는 사람이 안거나 만지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간혹 고양이가 자신의 얼굴을 사람의 얼굴이나 팔다리에 부비기도 하는데, 이는 나를 만져도 좋다는 허락의 표현이다. 이처럼 고양이는 자신이 원할 때 관심을 가져주는 인간을 좋아한다.

이렇게만 놓고 보면 반려동물로서 개가 고양이보다 훨씬 나아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려묘 인구가 100만 명을 넘는 현상은 무엇 때문일까.

 

개인주의적 성향
조심스레 피력해보자면 이 100만여 명에게는 공통적인 기질이 있는 듯한데, 첫 번째는 바로 개인주의적 성향이다. 고양이는 무리가 아닌 독립생활을 하는 동물이다. 무리생활을 하는 동물들이 한 공간에서 살아가는 방식은 무리 내의 서열과 질서를 따르는 것이다. 반면 독립생활을 하는 고양이는 서로가 허용한 일정 범위 내로는 침범하지 않는 방식으로 평화를 유지한다. 이처럼 집단의 개념이 없고 독립적인 고양이의 습성이 외부의 영향력에 의해 통제 받기를 싫어하는 애묘인들의 개인주의적 성향과 잘 맞아떨어진 것은 아닐는지.

 

마조히즘적 성향
두 번째는 마조히즘적 성향이다. 마음을 준 대가를 그대로 돌려받을 수 있는 대상보다는, 할퀴어지고 물리면서도 쉽게 곁을 내주지 않는 도도한 족속들에게 나도 모르게 끌리는 것이다. 고양이가 기분이 좋을 때 하는 꾹꾹이만 봐도 알 수 있다. 꾹꾹이란 사람의 배나 엉덩이에 대고 앞발로 꾹꾹 누르는 행위를 말하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 사랑스러워서 날카로운 발톱이 살갗을 찌르는 아픔 따위는 기꺼이 감내하는 것이다.

 

고양이에게서 배우는 무관심
이 글의 서두에서 나는 집사의 의미를, 고양이를 떠받드는 사람이라고 풀이했다. 떠받든다는 단어에는 섬긴다는 뜻도 있지만 소중하게 다룬다는 뜻도 있다. 소중히 여긴다는 것을 고양이식의 언어로 치환하면 적당한 거리를 유지한다는 뜻일 것이다. 거리를 둔다는 것은 타인에 대해 방어벽을 친다는 뜻이 아니다. 여기엔 distance라는 공간적 의미와 pace라는 시간적 의미가 동시에 내포되어 있다.

인간은 사적 영역을 보장받고 싶어 하는 보편적인 특성을 가지고 있지만 각자가 가지고 있는 공간과 시간은 개별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적 영역에 외부인의 침입을 허용하는 거리가 개인마다 다른 것이며, 서로 다른 나의 온도와 상대방의 온도가 적정한 선에서 만날 때까지는 기다림이 필요한 것이다.
적당한 거리두기란 곧 적당한 무관심과도 같다. 여기서 말하는 무관심이란 개인이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상태를 말한다. 이러한 무관심은 상대방에 대한 예의이며, 고통 받는 3자에 대해서는 관심을 가지는 것이 ‘적당한’ 무관심을 견지하는 것이다.

고양이야말로 적당한 거리두기를 가장 잘하는 동물이고, 이 점이 바로 애묘인들이 기꺼이 집사를 자청하는 이유가 아닐까.

 

 

* 《쿨투라》 2019년 3월호(통권 57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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