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Theme] 역사의 ‘황톳길’에서 생명의 ‘흰 그늘’로
[7월 Theme] 역사의 ‘황톳길’에서 생명의 ‘흰 그늘’로
  • 유성호(문학평론가)
  • 승인 2022.07.01 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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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년 5월 8일 김지하 선생이 별세했다. 어버이날이자 부처님 오신 날이었다. 1941년 신사辛巳 생이니 향년 81세다. 재작년쯤부터 몸이 편찮으시다고 들었지만 생전에 결국 뵙지 못했다. 누군가 세상을 등지면 한 시대가 저물었다는 표현을 하는데, 선생만큼 이러한 은유에 걸맞은 이도 드물 것이다. 목포와 원주, 『황토』와 『오적』과 『타는 목마름으로』, ‘꽃 한 송이’ 본명 영일英一과 ‘언더그라운드’ 필명 ‘지하芝河’ 등이 연쇄적으로 떠오르는 선생의 자취는 그렇게 실꾸리처럼 한없이 풀려나와 우리의 기억 속 파상을 거대하고 섬세하게 이루어낸다.

  투옥과 고문과 사형선고, 저항의 궤적

  선생의 가계에서부터 이미 암시된다. 증조부는 동학군이었고 조부는 노름으로 가산을 모두 탕진하였고 빨치산이었던 아버지는 죽음을 맞을 뻔했지만 전기 기술을 가지고 있어 천행으로 살았다. 몰락과 저항과 소외 과정에서 선생은 실제적 죽음도 여럿 보았는데, 전쟁 때 뒷산에 수북하게 쌓인 흰 옷 입은 시체들도 보았고 이념이 할퀴고 간 마을 사람들의 참화도 뚜렷이 목격했다. 선생이 말년에 펼친 생명사상은 어쩌면 이때의 경험에 대한 반작용이었을지도 모른다. 선생의 내면에서 생명과 죽음은 그렇게 호혜적 반사체가 되어주었을 것이다.

  생명과 죽음이 서로 껴안은 첫 줄기는 1960년 4월혁명이었을 것이다. 1961년 5월초 서울대 민족통일연맹이 남북학생회담을 북에 제안했을 때 선생은 남쪽 대표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며칠 후 박정희 소장이 이끄는 군부 정변이 있었고 그네들이 추진했던 통일운동은 지하로 숨어들었다. 이때로부터 선생은 수배와 도피와 체포의 시간을 이어갔다. 선생은 1964년 6·3항쟁에 참가하여 첫 옥고를 치른다. 이때로부터는 투옥과 고문과 사형선고와 석방을 반복하는 날을 보냈다. 이미 선생은 국내외의 수많은 탄원과 강력한 구명운동으로 세계적인 저항시인의 상像을 구축한 상태였다. 유신독재에 저항한 민주화운동의 표상이자 민족문학의 상징으로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자신만의 위상을 거느리게 된 것이다.

  나아가 선생은 1975년 「아시아·아프리카작가회의」 로터스상, 1981년 국제시인회의의 ‘위대한 시인상’, 브루노 크라이스키상 등 쟁쟁한 국제문학상을 수상하면서 세계적인 인지도와 파급력을 갖추기도 했다. 비록 음각이었지만 ‘시인 김지하’의 한 절정이 새겨졌던 시기였다.

<아시아아프리카작가회의AALA>가 1975년도에 수여한 ‘로터스 특별상’ 시상식이 1981년 12월 12일 원주성당에서 개최되었다. 그해 김지하는 세계시인회의가 수여하는 ‘위대한 시인상’을 수상했다.

  서정적 비극성의 최전선

  1970년대 언더그라운드에서 서정적 비극성의 최전선으로 피어난 시집이 바로 『황토』(1970)다. “간다/울지 마라 간다/흰 고개 검은 고개 목마른 고개 넘어/팍팍한 서울길/몸 팔러 간다”(「서울길」). 이런 음색이 담긴 첫 시집에서 선생은 선연한 흙빛을 따라 역사의 길을 당당하게 걸어갔다. 「오적」은 당대의 모순과 부조리를 풍자라는 미학적 장치를 통해 비판한 출중한 성취였고, 『타는 목마름으로』는 새로운 세상을 개진해간 뜨거운 노래의 성채였다. 이러한 성취는 저항문학의 극점이기도 했지만, 이때부터 선생은 이미 생명사상의 맹아를 틔우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선생은 감옥에 있을 때 운동을 하고 돌아와 누군가 감방 철창 쇠받침과 시멘트 틈에서 돋아난 풀에 물을 주는 것을 보게 된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것은 풀이 아니라 개가죽나무였다. 바람이 불어 흙먼지와 함께 날아든 씨앗이 시멘트 틈에 뿌리를 내리고 자란 것이다. 선생은 거기서 진짜 생명을 보았다. 한낱 미물도 저렇게 스스로 몸을 피워 올리는데 과연 나는 무엇인가 하는 자기 연민과 다짐이 동시에 북받쳐 오른 것이다.

  선생이 감옥에 있을 때 이채로운 책이 일본에서 출간되었다. 1975년 12월, ‘김지하전집간행위원회’ 편으로 일본의 한양사에서 출간된 한글판 『김지하전집』과 중앙공론사에서 일본판 작품집 『불귀』, 그리고 옥중투쟁기 『김지하는 누구인가』였다. 이 책들에는 당시 국내에서 읽을 수 없던 시편들과 1975년 5월 서울구치소에서 쓴 ‘양심선언’ 등이 담겼다. 일부 글은 한일대역으로 실렸다. 옥중투쟁기에는 선생의 옥중 메모 친필과 각종 법정 자료들이 실렸다. 이미 선생은 한반도 바깥의 시인이었다.

  저항에서 생명으로, ‘흰 그늘’의 미학

  1980년대가 되어 선생은 감옥을 나와 동학과 생명사상을 창의적으로 접목하여 『애린』, 『이 가문 날에 비구름』, 『별밭을 우러르며』 등을 썼다. 선생이 주창했던 ‘흰 그늘’의 미학은 생명사상의 정점에서 피어난 고갱이였을 것이다. 선생은 그에 대해 이렇게 썼다. “4·19 직후 서울농대에서 겪은 스무 살 때의 아득한 흰 밤길의 한 환상, 민청학련 무렵인 서른세 살 때의 우주에의 흰 길의 한 환상, 재구속되어 옥중에서 백일참선에 돌입했던 서른여덟 살 때의 흰빛과 검은 그늘의 교차 투시, 해남에서 두 계열의 연작시 ‘검은 산, 하얀 방’의 분열 구술, 목동 시절의 컴컴하고 침침한 ‘쉰’의 그늘과 일산 이사 직후의 그 눈이 멀 듯한 ‘일산시첩’의 흰빛들의 서로 넘나들 수 없는 날카로운 모순 대립. ‘흰 그늘’은 나의 미학과 시학의 총괄 테마가 되었다.”(『흰 그늘의 길 1』, 2003) 그렇게 선생의 생애는 역사의 ‘황톳길’에서 생명의 ‘흰 그늘’로 나아갔다.

  1990년대부터 타계할 때까지 선생이 간헐적으로 보여준 정치적 선택과 발언은 언제나 세상을 뜨겁게 달구면서 비판과 논란을 이어갔다. 1991년 강경대 사건 때 ‘젊은 벗들! 역사에서 무엇을 배우는가’라는 제목의 칼럼에 쓴 “죽음의 굿판 당장 걷어치워라.”는 표현은 두고두고 선생을 따라다니는 전향문 같은 역할을 했다. 죽음의 흐름을 막아보고자 하는 충심도 있었지만 강대강 대치상황에서 그러한 속성은 속절없이 묻혀갔다. 이러한 굴곡을 한없이 애석하게 생각하지만 그럼에도 ‘김지하’는 척박한 한국문학사의 돌올한 유산이자 그때그때의 맥락 속으로 귀환할 흐릿한 등불이 되어 건재할 것이다. 숱한 투옥과 고문의 형극 속에서, 불온을 넘어 저항으로, 폐허를 건너 생명으로, “황톳길에 선연한/핏자국”(「황톳길」)을 넘어 지금-이곳까지 영욕의 세월을 건너온 선생의 죽음을 깊은 마음으로 애도한다.

2001년 5월 4일 ‘민족문학작가회의(현, 한국작가회의) 자유실천위원회의 주관으로
서울시청 앞에서 열린 ‘박정희 기념관 반대 1위 시위’에 참여한 김지하 시인.

  ‘시인 김지하’로 영원히 남아 – 네 이름을 남몰래 쓴다

  우리는 선생이 남긴 아름다운 서정시 「황톳길」, 「녹두꽃」, 「빈 산」, 「애린」을 깊은 감동으로 읽을 것이다. 학생 시절 목청껏 불렀던 「새」, 「금관의 예수」, 「타는 목마름으로」를 때가 되면 줄탁동시의 기운으로 소환하게 될 것이다. “왜 날 울리나 눈부신 햇살 새하얀 저 구름/죽어 너 되는 날의 아득한 아아 묶인 이 가슴”, “얼어붙은 저 하늘 얼어붙은 저 벌판 태양도 빛을 잃어 아 캄캄한 저 가난의 거리”, “네 이름을 남몰래 쓴다. 타는 목마름으로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여 만세” 그 누가 한 시대를 이렇게 어둑하고도 아름답게 돌파해 갔겠는가.

  자연인으로는 가늠할 수 없는 고통의 인생을 살았지만 ‘시인 김지하’의 언어는 한 시대의 전범이자 한국문학의 역사로 우뚝할 것이다. 이제 “좁고 추운 네 가슴에 얼어붙은 피가 터져/따스하게 이제 막 흐르기 시작하던/그 시간/다시 쳐온 눈보라”(「1974년 1월」)를 맞는 시대에, 우리는 선생의 언어에 기대어 ‘저항’과 ‘생명’이라는 차원을 사유해갈 것이다. 선생에 대한 여러 해석과 평가가 따르겠지만, 첨예한 쟁점으로 김지하 담론이 펼쳐지겠지만, 지금 이 순간만은 한 시대의 거인을 추모하며 선생의 평안을 빌 따름이다


유성호 1964년 경기 여주에서 태어나 연세대학교 국문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서울신문》 신춘문예 문학평론 부문으로 등단하여 한국 문단의 주요한 비평가로 활동해왔다. 저서로 『상징의 숲을 가로질러』 『침묵의 파문』 『정격과 역진의 정형 미학』 등이 있다. 대중서사학회 회장을 지냈다.
현재 본지 주간으로 한양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이다.

 

* 《쿨투라》 2022년 7월호(통권 97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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