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Theme] 김지하의 생명사상
[7월 Theme] 김지하의 생명사상
  • 주요섭((사)밝은밝은_생명사상연구소 대표)
  • 승인 2022.07.01 09: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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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하 시인 발인 날 원주 흥업면 대지리 선영의 만장.

 김지하의 ‘생명사상’은 ‘생명철학’이 아니다. 그의 생명 사상은 형이상학적 질문과 탐구의 결과물이 아니다. 체험적이다. 신체적이다. 김지하의 생명사상은 극한의 고통의 산물이었다. 김지하는 스스로 ‘개벽통開闢痛’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6년여 길고 긴 독방의 감옥생활에서 살아남은 것 자체가 하나의 기적이었다. 감옥에 날아든 민들레 꽃씨와 감옥의 창틀에서 돋아난 개가 죽나무 싹을 통해 얻은 빛나는 깨달음은 그 효과였을 뿐이다. 그런데, 그 기적은 어떻게 일어났을까?

  그 소리는 대체 무엇인가?

  1986년 발행된, 한국전쟁 당시 죽임당한 원혼들의 해원을 노래한 시집 『검은 산 하얀 방』 서문에서 김지하는 스스로 묻는다. “그 소리, 속으로부터 울려나오던 그 소리는 도대체 무엇인가? 도대체 그 무엇이 다가오고 있음을 알리는 조짐인가? 이런 일은 무슨 힘에 의해 일어나는 것인가?” 그리고, 김지하는 스스로 답한다.

  “이 물음에 대답할 자는 오직 하나─ 모든 것을 아우르며 모든 것을 놓아주며 모든 것을 살아 뜀뛰게 하는 활동하는 무無, 신명─ 지금 여기 죽임당하는 매일매일의 삶 속에서 솟구쳐 출렁거리며 모든 존재를 죽임에서부터 살려내고 인간의 사회적 삶과 내적인 삶, 인간만이 아니라 모든 생물, 무생물, 물질과 기계까지도 거룩하게 드높이고 서로 친교하고 공생하고 해방하고 통일하여 ‘한울’로 살게 하는 가없는 저 화엄의 바다, 그 약동하는 생명의 물결뿐이리라.”

  그렇다. 기적은 생명으로부터 온다. 아니다. 생명, ‘살아있음’이 기적이다. 기적은 이성과 이념이 아니라, 신명神明인 생명으로부터 온다. 우리의 삶은 ‘활동하는 무’로 살아있다. 풀 한 포기조차도 신명으로 살아있다.

  신명, 활동하는 무

  김지하의 생명사상은 신체적이면서도 에너지적이다. 그에게 생명의 본성은 저항이며, 생명의 반대말은 약동하는 생명을 격자 안에 잘라 맞춘 ‘이념’이었다. 생명세계는 카오스모스의 ‘혼돈적 질서’의 생성이지만, 그것만으로 부족하다. 그 이상이다.

“카오스모스만으로는 절대로 아름다운 문화와 아름다운 미에 도달하지 못합니다. 새로운 질서를 창조하지 못합니다.”(김지하전집 제1권, 천지공심)

  혼돈적 질서의 역설’에 대한 통찰만으로는 새로운 세계를 태동시킬 수 없다. 김지하의 생명사상은 혼돈의 가장자리에서 태동하는 생명의 자기조직화, 그 배후를 묻는다. 아름다움의 근원을 탐색한다. 감옥에서, 혹은 수련 중에, 혹은 일상생활에서 아마도 그는 어떤 알 수 없는 힘을 체험했을 것이다. “내 마음은 네 마음”, 오심즉여심吾心卽汝心의 감응感應을 경험했을 것이다. 김지하는 단언한다. 보이지 않는 질서의 안에 움직이는 ‘신령한 생성’이 있어야 한다. ‘신명’이다. ‘영성’이라고 불러도 좋다. 어쩌면 정동affect이론의 그것일 수도 있다.

  요컨대, 김지하의 생명사상은 인식론적이지 않다. 에너지적이다. 세포 하나하나에도 신명이 있다. 무기물 안에도 신명이 있다. 그의 생명사상에는 신령한 힘, 신명의 힘에 대한 체험적 확신이 있다. 동학의 개념을 빌려 혼원지일기渾元之一氣를 말하기도 하고, 천부경을 빌려 ‘묘연妙衍’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최근 사상계의 유행으로 말하자면, 신유물론의 ‘생동하는 물질’에 대한 체험적 통찰일 수도 있다.

  종말이 시작이다

  전환의 시대엔 전환의 사상의 출현한다. 인류세가 운위되는 대멸종의 생명위기 시대, 김지하의 생명사상은 대전환시대의 사상이다. “절망은 새날의 시작이다.” 그의 통절한 깨달음이다. “종말이 개벽이다.” 이제 생명사상은 희망의 사상이 된다.

“나는 긴 감옥의 추운 독방에서 바로 이것, 종말이 다름 아닌 개벽이며 그 개벽은 곧 달이 천 개의 강물에 모두 다 제 나름의 모습으로 달리 비치는 만물해방의 날이 열림이고 세계가 세계 스스로를 인식하는 대화엄의 날이 열림임을 알았다.”(『아우라지 미학』)

  김지하의 생명사상의 역설의 생명사상이다. 죽음 속에서 새 생명의 태동을 예감하는 부활의 생명사상이다. “풀 끝 흰 이슬에서만 아니라, 시드는 춘란 잎새에서도”, “파릇파릇한 상치싹에서만 아닌 흩어진 겹동백 저 지저분한 죽음에서도”(「애린45」) 새 생명은 태동한다. 아니다. 오히려 ‘시드는 잎새’에서만, ‘지저분한 죽음’ 속에서만 생명은 ‘다시 개벽’ 할 수 있다. 생명의 역설이다.

2022년 6월 25일 오후 3시 서울 천도교 대교당에서 열린 김지하 시인 49재 추모문화제.
2022년 6월 25일 오후 3시 서울 천도교 대교당에서 열린 김지하 시인 49재 추모문화제.
2022년 6월 25일 오후 3시 서울 천도교 대교당에서 열린 김지하 시인 49재 추모문화제 뒤풀이.
2022년 6월 25일 오후 3시 서울 천도교 대교당에서 열린 김지하 시인 49재 추모문화제 뒤풀이.

  2022년 오늘 우리는 “변하지 않고서는 도리 없는 땅끝”에서 살고 있다. 팬데믹과 기후재난과 인공지능 시대, 무엇보다 삶의 의미, 인간과 사회의 존재 이유, 그리고 진선미의 토대를 다시 묻지 않으면 안 되는 시대를 살고 있다.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가야 할 시대를 살고 있다. 세상과 변화와 함께, ‘나’의 눈동자도, 심장도, 손발도, 신체에 부착된 기계들도 공진화하고 있다. 새로운 이야기가 만들어지고 있다. 새로운 세계가 태동하고 있다. 돌이킬 수 없는 새 세상이 도래하고 있다.

  “땅 끝에 서야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 김지하의 생명사상과 함께 “더는 갈 곳 없는 땅끝”에서 새로운 시간이 시작되고 있다.

 

 


주요섭
1990년대 중반 생명민회를 시작으로 생명과 전환을 화두로 정읍과 서울을 오가며 생명운동을 펼쳐왔다. 한살림연수원, 모심과살림연구소 등에서 일했고, 현재는 (사)밝은마을_생명사상연구소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전환 이야기’(2015) 등이 있다.

 

* 《쿨투라》 2022년 7월호(통권 97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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