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하 추모시] 김사인 시인의 「지하 형님 還元 49일에: 海月神師께 한 줄 祝을 올립니다」
[김지하 추모시] 김사인 시인의 「지하 형님 還元 49일에: 海月神師께 한 줄 祝을 올립니다」
  • 김사인 (시인)
  • 승인 2022.07.04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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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하 형님 還元 49일에 
  - 海月神師께 한 줄 祝을 올립니다 

 

  김사인

 

  2022 임인년 양력 5월 9일
  사람 하나 건너갔습니다.
  흰 그늘의 길 따라
  검은 산 흰 방 모퉁이 돌아
  아수라 80년
  기가 다하여
  더는 못 견뎌 몸을 놓았습니다.

  이쁘기만 했겠습니까.
  심술궂고 미운 데도 적지 않은 사람입니다.
  제 잘난 것 감당 못해 삼동네가 떠나가도록 주리틀다 간 사람입니다.
  그릇이 크니 소리도 컸겠지요.

  나라 잃고 나라 갈리고 겨레끼리 죽이고 죽는
  한반도 백오십년의 기우는 운수를
  제 몸 갈아넣어 받치고자 했습니다.
  예수이고자 했습니다. 예레미아이고자 했습니다. 황야의 隱修者이고자 했습니다. 김개남 손화중이고자 했습니다. 마오이고자 했습니다. 게바라이고자 했습니다.
  그리고 그 안 깊은 곳에서
  착한 아낙과 어린 두 아이 함께 어둑한 저녁 밥상에 이마를 맞대는 서툰 가장의 겸손한 평화를
  간절히 열망했던 사람입니다.
  최선을 다한 사람입니다.
  미주알이 내려앉도록 천령개 백회혈 자리가 터지도록
  용을 써 버틴 사람입니다.
  버그러지는 세상 온몸으로 받치려고
  등짝은 벗겨지고 종아리 허벅지 힘줄들 다 터졌습니다.
  그 노릇이도록 운명에 떠밀린 사람입니다.
  스스로의 선택이자
  한반도의 기구한 팔자가 점찍은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소신공양으로 우리는 한 시대를 건넜습니다.

  무섭기도 했겠지요. 이 잔을 제발 거두어달라고 몸서리쳐 울부짖기도 했던 사람입니다. 컴컴한 ‘탑골’에서 ‘운당여관’에서 해남에서 쪼그리고 앉아, 깡소주에 자신을 절이지 않고는 못 견디던 이입니다. 동맥을 긋기도 했던 사람입니다.
  모실 侍자 侍天主를 마음에 품고, 事人如天 사람을 하늘로 섬기라고 늘 외던 이인데
  그만큼 낮아지지 못하는 자신이 야속하던 사람입니다.
  我相을 끝내 벗지못한 사람, 그러나 그런 자기를 몹시도 괴로워했던 사람입니다.
  오기는 다락같이 높고 말은 때로 짖궂고 드셌지만
  속은 섬세하고 여려 많은 벗과 아우들 사랑하고 따랐습니다.

  사람 대함을 마치 어린이가 하듯 하라고,
  마치 꽃이 피듯 모습을 가지라고 하신 가르침에* 기대어,
  저희들의 형님 이 사람을 선생께 부탁드립니다.
  온갖 독에 시달려 심신 모두 제 모습을 잃은 채 갔습니다.
  돌보아 주소서.
  그곳대로 또 할 일 끝없겠지만,
  먼저 간 그의 아내와 함께 잠시나마 쉴 수 있게 해주소서.
  가위눌리지 않는 순한 잠을
  단 몇 날이라도 그 곁에서 잘 수 있게 해주소서.
  더도 말고 목포 변두리 초등학교 반장노릇에도 덜덜 떨던,
  그 숫기없고 맑고 돛단배 잘 그리던 소년을 부디 찾아주소서.
  외람된 부탁 송구합니다.

  상향.

 


* 待人之時 如少兒樣 常如花開之形. 동학 2대 교주 해월신사 최시형(1827-1898)선생이 1872년 1월 영월에서 베푼 설법<待人接物> 중의 한 대목.

김사인 시인
1956년 충북 보은에서 태어나 서울대 국문과에서 공부. 1981년 《시와경제》 동인에 참여하면서 시를 발표하기 시작했으며, 1982년 무크 『한국문학의 현단계』를 통해 평론을 쓰기 시작했다. 시집으로 『밤에 쓰는 편지』 『가만히 좋아하는』 『어린 당나귀 곁에서』, 편저서로 『박상륭 깊이 읽기』 『시를 어루만지다』 등이 있으며, 팟캐스트 ‘김사인의 시시詩詩한 다방’을 진행했다. 현대문학상, 대산문학상, 임화문학예술상, 지훈상 등을 수상했다. 동덕여대 문예창작과에서 학생들을 오래 가르쳤으며, 한국문학번역원장을 역임했다.

 

 

* 《쿨투라》 2022년 7월호(통권 97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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