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만난 별 Ⅱ 방송인 송해] 후반에 청춘을 뒀던 사나이
[시로 만난 별 Ⅱ 방송인 송해] 후반에 청춘을 뒀던 사나이
  • 장재선(시인)
  • 승인 2022.07.04 11: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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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놀자〉 유튜브 캡쳐

  후반에 청춘을 뒀던 사나이
  - 방송인 송해

 

  장재선

 

  세상 곳곳에 노래를 퍼트리는
  삐에로를 자처했으나
  그는 떠나온 곳에 대한 그리움을 누르느라
  매일 면벽한 수도승이었는지 모른다
  어느 날 도가 통해
  조물주와의 타협에 성공한 듯
  청춘을 생애 뒷부분에 두는 능력이
  그에게는 있었다

  주름진 얼굴의 세월을
  경쾌한 웃음으로 바꾸고
  늦가을과 겨울의 무거운 공기를 메쳤는데
  여름날의 푸른빛만 사랑한 것은 아니어서
  모든 색을 다 껴안고
  취흥에 겨워서 흔들거리는 척
  세상의 시름을 보듬어 달래다가
  툭,
  사라졌으나

  지금도 누구 눈에는
  가끔 보인다
  노래하고 춤추며 웃는 청춘의
  그 마음들 곁에서.

 


  시작노트
  송해 선생이 지난 6월 95세로 타계했을 때 나라 전체에 추모 물결이 일었다. 지역과 정파를 떠나 애도하는 모습이었다. 선생이 세상을 떠나며 사람들의 마음을 하나로 이어준 셈이다.

  그는 TV프로그램 〈전국 노래 자랑〉을 33년간 진행했다. 90대에 현역으로 방송 활동을 하다가 세상을 떠나는 이례적 기록을 남겼다. 최고령 방송 진행자로 세계 기네스북에 올라 있기도 하다.

  그가 그 프로그램을 60대 넘어서 맡았다는 사실이 사후 새삼 되새겨졌다. 다른 이들은 인생의 늦가을로 접어들 때, 그는 새로운 프로그램을 맡아 전국을 돌아다니며 웃음과 노래를 전달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가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진행을 하는 것은, 사전에 철저히 준비하기 때문이란 게 주변 사람들의 증언이다.

  연전에 그와 통화할 일이 있어 전화를 했더니 목소리에 취기가 있었다. 일을 마치면 술을 한 잔하는 것이 자신의 건강비결이라며 그는 웃었다.

  코로나 기간 그의 건강이 나빠졌다는 소식이 들렸다. 그의 주치의인 윤호주 한양대병원장에게 전화했더니 “연로하셔서 힘든 순간이 있었으나 회복 중”이라고 전했다. 선생을 친아버지처럼 여기는 가수 현숙 씨는 “워낙 쾌활하신 분이라서 코로나를 잘 이겨내실 것”이라고 했다. 선생이 1세기 가까이 사셨음에도 가까운 이들은 그와 더 오래 함께 하고 싶었던 것이다.

  나의 직장 동료는 “지난봄에 송 선생을 만났을 때도 코로나 기간에 멈춘 〈전국노래자랑〉 공연을 재개할 꿈에 부풀어 계셨다”며 “타계하실 줄을 몰랐다”며 안타까워했다.

  선생은 방송에서 늘 웃는 모습을 보이려 했으나, 가족사에 아픔이 많았다고 한다. 황해도 출신으로 월남을 하며 어머니와 헤어졌는데, 그 이후로 한 번도 만나지 못했다니…. 그의 웃음 뒤에 있었던 슬픔과 그리움에 한없이 고개를 숙인다

 

 

 


장재선
문화일보 선임기자. 시집 『기울지 않는 길』, 시-산문집 『시로 만난 별들』, 산문집 『영화로 보는 세상』 등 출간. 서정주문학상, 한국가톨릭문학상 등 수상

 

 

 

* 《쿨투라》 2022년 7월호(통권 97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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