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산책] 오페라의 두 거장, 베르디와 바그너
[클래식 산책] 오페라의 두 거장, 베르디와 바그너
  • 한정원(클래식 칼럼니스트)
  • 승인 2022.07.04 1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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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베르디, 바그너

  완전히 새로운 전환점을 맞은 클래식

  바흐 이후의 클래식 음악은 그 시대의 사상과 철학을 반영하면서 그리고 사회 변화의 흐름을 끊임없이 받아들이면서 진보해왔다. 18세기 후반부터 획기적으로 이루어진 과학기술의 발달과 혁신은 농업과 가내수공업 위주의 산업 형태를 완전히 바꾸어버렸고 사회 전체를 대량 생산 체제로 변모해가기 시작했다. 과학기술 혁명은 음악 분야에도 커다란 영향을 주었는데, 전기 동력을 이용한 대량생산 체제는 악보 인쇄에 엄청난 발전을 가져왔고 그로 인해 많은 새로운 창작물들이 쏟아져 나오게 되었다. 또한 악기 제작이나 녹음 기술이 큰 발전을 이루어 음악을 창작하고 향유하는 패러다임을 바꾸어놓기도 했다. 이런 변화는 좋은 음악을 보급하기 위한 더 많은 연주자들을 필요로 했고 그에 따라 음악 인구도 급격히 늘어나게 되었다. 누군가의 발견을 기다리던 작품들이 대거 발굴하기 시작하면서 그 작품들을 위한 연주 환경이 요청되기도 하였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예술은 전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게 되는데 그 정점의 시기가 바로 1890년에서 1910년까지이다. 이 기간은 후기 낭만주의 시대로 불리면서 음악사적으로는 현대음악의 형태를 갖추기 위한 일대 변신기로 기록되고 있다.

  이 당시 예술의 흐름은 전반적으로 어둡고 염세적인 세기말적 철학사상에 물들어 있었다. 음악은 더욱 개성과 주관성을 중요시하게 되었고 전통이라는 틀에 구속받지 않는 새로움을 추구하게 되었는데, 형식에서도 새로운 발상이 다양하게 생성되었고 화성법에도 많은 변화가 잇따랐다. 살롱에서의 소수 특정인을 위한 독주악기 연주보다는 교향곡이나 오페라 같은 대형 무대가 주류로 등장하게 되었고, 넉넉해진 수급으로 인해 생겨난 금관악기의 폭 넓은 활용은 관현악곡의 대거 출현을 가능하게 했다. 오케스트라의 규모가 커짐에 따라 웅장하고 장엄한 교향곡이 보편화되었고, 악기들이 견고해짐에 따라 연주 시간도 점점 늘어났고, 고른 음향에 적합한 클래식 전문 콘서트홀의 필요성도 대두하게 되었다. 이런 배경과 함께 개성과 주관성을 추구하는 대규모 악곡 형식의 작곡가들이 탄생하게 되었고 클래식 음악은 이제 완전히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하게 되었다.

Bayreuther Festspiele - Bayreuth Festival

  오페라의 발전과 베르디의 등장

  낭만주의 시대 이탈리아 오페라는 로시니와 도니체티를 거치면서 발전기를 맞았다. 작곡가들은 그들만의 전통적 어법으로 시민들의 마음에 쉽게 스며들 수 있는 친근한 음악의 오페라를 만들었다. 이탈리아 작곡가 로시니는 〈세비야의 이발사〉 등으로 코믹 오페라 분야에서 탁월한 능력을 인정받았다. 이후 그는 유럽의 이름 있는 음악가들이 몰려들어 새로운 그랑 오페라의 중심지가 된 파리로 자리를 옮겼고, 대표작 〈윌리엄텔〉을 성공시키며 유명세를 확인해주었다. 로시니의 영향을 많이 받은 오페라 작곡가로는 〈사랑의 묘약〉의 도니체티, 〈노르마〉의 벨리니를 꼽을 수 있다. 이들이 바로 이탈리아 오페라의 부흥기를 이끌었다. 당시 이탈리아인들은 오페라를 자신들의 영혼과도 같이 소중히 여겼다. 쉽게 흥얼거릴 수 있는 오페라가 19세기 전반을 지배했지만 그들의 마음을 온전하게 사로잡은 작곡가는 오페라 〈나부코〉의 주세페 베르디였다.

  이즈음 독일에는 오페라 작곡가로서 베버가 유명했다. 어떤 무도회장에서나 있을 법한 춤을 청하는 젊은남녀 모습을 그린 〈무도회의 권유〉와 최초의 독일 오페라라고 불리는 〈마탄의 사수〉는 대중적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그의 즉흥성은 아리아, 이중창으로 시작되는 앙상블과 합창에서 적절하게 사용되었고, 음악뿐만 아니라 화려한 무대 장치의 표현으로 이제까지와는 전혀 다른 낭만주의의 특징을 선보였다. 그러다가 19세기 후반으로 들어오면서 오페라 시장이 더욱 커지자 오페라는 다른 장르에도 많은 변화를 가져올 정도로 그 영향력이 커졌다. 풍부한 감정 표현과 현란하고 다양한 음향을 지지하는 세력과 고전적이며 절제미를 지지하는 세력 사이의 상호 견제 속에서도 적극적 불협화음과 화려한 음향, 참신한 기교 등 이전 시대와는 완연히 다른 음악 어법이 창출되기 시작한 것이다. 베르디가 그 정점에 있었다. 〈라 트라비아타〉의 아리아 ‘축배의 노래’를 작곡한 그는 후기 낭만주의 오페라의 최고 수준을 보여준 작곡가이다. 그는 이탈리아 오페라를 최고 위치에 올려놓았으며 그에 대한 이탈리아인들의 자부심은 지금도 여전하다. 그의 출세작 오페라 〈나부코〉는 초연을 올린 다음 시즌에 무려 66회의 재공연으로 큰 성공을 거두었으며 〈라 트라비아타〉, 〈일 트로바토레〉, 〈아이다〉 등 28편에 이르는 역작은 대중과 함께 하는 이탈리아 오페라 전통을 확고하게 수립하였다고 할 수 있다.

Waterhousem_Tristan and Isolde

  바그너가 명명한 ‘음악극’의 탄생

  이탈리아와 독일의 민족주의자였던 베르디와 바그너는 1813년 같은 해에 태어났다. 그리고 1842년 같은 해에 베르디는 〈나부코〉로, 바그너는 〈리엔치〉로 운명적인 첫 성공을 거두었다. 그 후 베르디는 〈리골레토〉로, 바그너는 〈로엔그린〉을 통해 작품 세계를 인정받았다. 이러한 흐름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사건은 바그너가 창안한 〈음악극Musikdrama〉의 탄생이다. 바그너는 일찍이 음악과 연극에 관심이 많았다. 특히 셰익스피어 작품을 좋아했다. 그는 ‘음악이란 음악 외적인 것을 담는 그릇이어야 한다.’라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는데, 음악과 극은 호혜적으로 공존해야 하며 가사, 무대 디자인, 배우의 연기와 춤까지도 한 데로 녹아들어야 완성된 작품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문학, 연극, 무용, 미술이 총망라된 〈종합예술작품Gesamtkunstwerk〉을 염두에 두었다. 마침내 그는 각각의 장르들이 서로를 손상시키지 않으며 하나로 융합되는 예술 형식을 세상에 내놓았다. 그리고는 자신의 작품이 예술의 종합체임을 강조하기 위해 기존의 ‘오페라’라는 용어를 쓰지 않고 ‘음악극’이라고 명명했던 것이다.

  그의 최고 걸작인 〈트리스탄과 이졸데〉는 〈로엔그린〉 발표 후 6년의 공백 기간 끝에 나온 작품이다. 이 작품은 그전까지 이어온 오페라 기법을 지양하고 ‘무대를 위한 교향곡’을 쓰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큰 의의를 가진다. 이 곡은 ‘트리스탄 화음’이라고도 알려진 반음계적 음악 어법을 사용하여 후기 낭만주의 시대뿐만 아니라 현대 작곡가들에게까지 많은 영향을 주었다. 이는 20세기 화성의 새로운 길을 열었다고 평가되며 실제로 후대에 무조음악을 실현한 쇤베르크와 베베른 등이 이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 바그너의 기념비적 4부작 오페라 〈니벨룽의 반지〉도 빼놓을 수 없다. 그는 이 곡을 완성하기까지 26년이란 세월을 보냈다. 서양음악사상 가장 대단한 프로젝트였다. 그는 음악과 시나리오를 직접 쓰고 독일 바이로이트 시에 이 오페라 공연을 위한 전용극장을 지었으며, 효과적 음향을 위해 극장 구조에도 세세하게 관여했다.

  바그너가 음악을 제외한 다른 예술 분야에 끼친 영향력은 가히 상상을 넘어설 정도로 엄청나다. 바그너가 살아 있는 동안 그에 관해 쓰인 책과 논문이 만 권이 넘었으며, 영국 소설가 D. H. 로렌스는 지그프리트 이야기에 감명 받아 소설 〈침입자〉를 썼다. 화가 르느와르는 이탈리아 반도 남부 팔레르모에 머물며 〈파르지팔〉을 작곡하던 그를 만나 겨우 35분간 초상화를 스케치하기 위해 유럽을 횡단하였고, 피카소는 〈파르지팔〉 공연을 본 후 드로잉을 남겼는데 이는 유명한 대작 〈게르니카〉를 예감케 한 작품이었다. 그 밖에도 오스카 와일드, 제임스 조이스, T. S. 엘리엇 등 그에게 존경을 표한 작가, 시인, 철학자 등은 수도 없이 많다.

  바그너가 창안한 독일 바이로이트 축제Bayreuth Festival는 1876년 8월 〈니벨룽의 반지〉의 초연으로 처음 개최된 이래 지금까지 매년 열리고 있다. 레퍼토리는 바그너가 지정한 10편의 음악극만으로 구성하였다. 2021년에는 축제 개막작 〈방황하는 네덜란드인〉의 공연에서 우크라이나 출신 여성 지휘자 옥사나 리니브가 오케스트라 지휘를 맡으며 축제 이래 145년 만에 첫 여성 지휘자가 된 영광을 안았다. 오는 7월 25일, 바그너의 〈트리스탄과 이졸데〉를 개막작으로 여는 ‘2022 바이로이트 축제’는 올해도 변함없이 계속된다. 음악은 그렇게 지금도 우리의 영혼을 적시면서 흘러가고 있다.

 

 


한정원 피아니스트. 연세대학교를 졸업하고 독일 프라이부르크 음악대학, 네덜란드 마스트리히트 대학교에서 독주와 실내악을 전공하고, 최고연주자과정(Konzertexamen)을 마쳤다. 이태리 디노치아니 국제콩쿨 특별대상을 받았고, 유럽을 중심으로 연주활동을 하던 중 귀국하여 십여 년간 대학에서 학생들을 지도하고 있다. 일송출판사에서 악보해설집 출간하였으며, 현재 국내외로 많은 연주 활동 중이다.

 

 

 

* 《쿨투라》 2022년 7월호(통권 97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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