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월평] 기획 의도는 알겠으나. - 〈안나라수마나라〉, 〈결혼백서〉
[드라마 월평] 기획 의도는 알겠으나. - 〈안나라수마나라〉, 〈결혼백서〉
  • 주찬옥(드라마 작가, 중앙대 교수)
  • 승인 2022.07.04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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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제공

  영화 제작 중인 지인이 있는데 작년부터 배급사를 알아보고 있지만 “코로나로 개봉을 미룬 영화가 창고에 산같이 쌓여있고 제작 단계에서 멈춘 영화도 장난 아니게 밀려 있다”고 푸념했다. 그러면 OTT를 알아보라는 조언을 하자 “거기도. 다들 몰려가는 바람에 OTT도 병목현상”이라고 한다. 기획 단계였던 영화들은 아예 8부작 내지는 10부작 드라마로 뼈대를 바꾸고 있다니 이것 참 큰일났다. 드라마 제작사도 OTT로, 영화사도 OTT로. 이런 경쟁력이라면 K-드라마의 미래는 핵폭발하려나? 배우들도 OTT라면 캐스팅이 쉽댄다. 그렇겠지. 글로벌 OTT 한 편 성공하면 당장 세계적인 스타가 되니까.

  다행인 것은 〈범죄도시2〉가 개봉 한 달 만에 천만 관객을 넘길 정도로 영화 정체가 풀리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이제 영화관에는 팝콘을 든 도시남녀가 가득하다. 영화관에도 맛집 식당에도, 고속도로도, 관광지에도 사람들이 넘쳐난다. 다들 참 잘 참았다. 그동안 어떻게 참았나 싶다. 다시 돌아온 열기와 에너지로 사회 곳곳의 막혔던 혈관들이 빨리 뚫렸으면 좋겠다.

  이번 달은 그렇게 경쟁이 치열하다는 OTT의 대표주자 넷플릭스에 올라온 드라마 두 편을 얘기해보겠다. 먼저 언급하고 싶은 드라마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안나라수마나라〉.

  2020년 하반기부터 흥행했던 넷플릭스 오리지널 작품들을 돌이켜보면 〈스위트 홈〉 〈D.P〉 〈오징어게임〉 〈지옥〉 〈지금 우리 학교는〉 등인데 크리처, 군대 부조리, 데스 게임, 사이비 종교, 좀비물로 지상파 방송엔 절대 편성 불가능한 장르들이 넷플릭스로 가서 포텐을 터트린 셈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안나라수마나라〉도 공통점이 있다고 해야 하나? 뮤지컬 드라마가 지상파 방송에서 성공한 예가 없으니 이 기획을 들고 지상파부터 돌았으면 몇 년 걸려도 답이 없었지 싶다.

넷플릭스 제공
안나라수마나라 스틸컷_넷플릭스 제공

  6부작이라 부담도 없었지만 한달음에 전편을 다 보고야 말았다. 가난해서 벼랑으로 내몰린 윤아이(최성은 분). 부모의 강요로 공부만 하던 나일등(황인엽 분). 학교물에서 흔히 보던 셋팅이긴 한데 똑 떨어지는 대사와 화려한 영상, 무엇보다 마술사라는 캐릭터 덕분에 진부하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마술사라니!

  “당신은 마술을 믿습니까?” 사실 이 대사 정말 어렵다. 한국인에겐 유난히 안 어울리는 연미복에 실크햇까지 쓰고 “당신은 마술을 믿습니까?”라는, 민망하고 오글거리는 대사를 지창욱은 해맑게 웃으면서 정말 잘 소화했다. 그 큰 눈이 선량하게 빛나다가도 악당을 만나면 날카롭게 번뜩인다. 좋은 배우다. 판타지답게 화려한 영상도 보는 내내 즐거웠다.

  흠을 잡자면, 결론은 편의점 주인, 모든 미스테리가 편의점 주인이라는 악당으로 다 풀린다는 점이 작품의 사이즈를 작게 만든다 싶지만 덕분에 동화같은 분위기를 완성한 지점도 있다. 그러나 뮤지컬. 이건 정말 치명적이다.

카카오TV 제공
결혼백서 스틸컷_카카오TV 제공

  이건 나의 상상인데 판타지 뮤직 드라마 아이디어는 작가나 감독에게서 나온 거 같진 않다. 기획 단계에서 누군가, 아마 꽤 영향력이 있는 사람이겠지만 뮤지컬 드라마로 만드는 건 어떠냐고 아이디어를 냈을 거 같다. 왜냐면 작가나 감독이 뮤지컬을 좋아하고 오랫동안 뮤지컬 드라마를 만들고 싶어한 분들은 아닌 거 같기 때문이다.

  나는 이 기획 아이디어는 훌륭하다고 본다. 폐 유원지, 놀이공원이 배경이고 게다가 마술이니까. 뮤지컬이 잘 입혀지면 판타지를 구현하는 신의 한 수가 될 수 있다. 문제는 작가 감독이 뮤지컬을 소화할 수 있냐는 건데, 아쉽게도.

  뮤지컬에서 음악은 감정을 전달하기도 하지만 스토리를 끌고 가기도 한다. 음악과 춤에 실어 한 시퀀스를 담아내기도 한다. 그러나 〈안나라수마나라〉의 음악은 스토리의 진행을 끊고 느닷없이 삽입된다. 늘 그 시점, 인물의 감정에 대해서만 노래한다. 그러니 음악이 구성에 녹아들지 않고 번번이 겉도는 느낌을 줄 수밖에.

  그렇게 이물감을 주는 이 음악들은 게다가 한결같이 단조롭고 비슷비슷한 느낌이고 미스테리가 진행되는 회차에는 그조차 사라진다. 음악이 긴장과 몰입을 방해한다는 걸 작가도 감독도 안다는 것이지.

  계속 상상해본다. 제작진들은 얼마나 고생했을까. 감 잡기 위해 수많은 뮤지컬 드라마나 영화를 봤을테고 배우들은 노래, 춤 연습 오지게 했을테고 촬영도 배나 공을 들였을텐데. 제작비는 또 얼마나 더 들어갔을까. 안쓰럽지만 뭐, 공부했으니까. 그 공은 나중에 다른 작품에서 어떤 형태로든 보상받지 않겠어?

결혼백서 포스터_카카오TV 제공
결혼백서 포스터_카카오TV 제공

  기획의도는 좋았지만 비슷하게 글쎄?라는 느낌을 주는 다른 넷플릭스 드라마 〈결혼백서〉를 소개하겠다. 〈결혼백서〉는 넷플릭스 오리지널은 아니고 카카오TV 오리지널 작품이다. 카카오TV 공개 후 넷플릭스에 업로드하는 방식을 택했는데 카카오TV 드라마가 넷플릭스로 방영되는 것은 〈도시남녀의 사랑법〉 〈이 구역의 미친X〉 이후 세 번째라고 한다.

  몇 년 전부터 웹드라마라는 용어보다 숏폼, 미드폼 드라마라는 용어를 더 많이 쓰기 시작하는데 숏폼은 단연 유튜브겠고 미드폼의 경우 카카오가 공을 많이 들이는 걸로 보인다.

결혼백서 스틸컷_카카오TV 제공
결혼백서 스틸컷_카카오TV 제공

  결혼 과정이 지난하다는 것은 다 안다. 결혼을 해본 사람들도 안 해본 사람들도. 그래서 기획한 듯 하다. 서준형(이진욱 분)과 김나은(이연희 분)의 프로포즈, 상견례, 경제공유 등등 결혼 과정을 세밀하게 쪼갠 다음 거기서 발생하는 디테일과 감정들을 드라마로 엮어 공감대와 감동을 주겠다고.

  나는 여기서 또 상상해본다. 혹시 기획자는 동 카카오TV에서 호평받으며 화제가 됐던 〈며느라기〉를 벤치마킹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그러면 두 작품의 차이는 무엇일까. 나는 캐릭터 구축에 있다고 본다.

  〈며느라기〉는 지극히 평범한 직장인 민사린(박하선 분)이 결혼한 뒤 겪는 시월드 얘긴데 그야말로 격공을 불러일으켰다. 그렇다고 얼척없는 남편, 막장 시부모가 아니다. 그들 역시 지극히 평범하고 현실적인, 주위에 얼마든지 있는 캐릭터를 대표한다. 

  대표성을 띄면서도 인물들은 살아있다.

  그런데 〈결혼백서〉의 인물들은 캐릭터가 없다. 그저 결혼 과정에 일어날 수 있는 온갖 에피소드와 감정들을 모아놓은 뒤 남자주인공, 여자주인공에게 분배했을 뿐이다. 그리고 이들 커플이 선택하고 남은 단발적인 각종 사례나 명언들도 알뜰하게 모아서 조연들에게 나눠준다. 여자 쪽 대사들은 나은의 회사 동료들에게, 남자 쪽 대사들은 준형의 친구들에게. 그렇기 때문에 두 작품의 간격이 벌어지는 것이다. 드라마는 백서가 될 수 없다.

 

 

 


주찬옥 드라마 작가. 1988년 MBC 베스트셀러극장 〈매혹〉으로 데뷔했으며, 〈사랑〉(MBC, 1998년) 〈수줍은 연인〉(MBC, 1998) 〈외출〉(SBS, 2001) 〈남자를 믿었네〉(MBC, 2011) 〈운명처럼 널 사랑해〉(KBS, 2014) 등을 썼다. 현재 중앙대학교 교수로 재직중이다.

 

 

 

* 《쿨투라》 2022년 7월호(통권 97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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