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리뷰] 감정과 음률을 시와 사진으로 기록한 수채화: 이상록, 『지금 달에는 비가 내리고』
[북리뷰] 감정과 음률을 시와 사진으로 기록한 수채화: 이상록, 『지금 달에는 비가 내리고』
  • 양진호(본지 에디터)
  • 승인 2022.07.04 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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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아니스트 겸 작곡가 이상록의 첫 시집 『지금 달에는 비가 내리고』가 출간되었다. 전남 지역 첫 공립 예술고등학교인 ‘한국창의예술학교’에서 아이들에게 음악을 가르치기도 하는 이상록은 음악을 매개로 십대들에게 감성을 가르쳐 왔다. 달에서 피아노를 치는 꿈을 꾸고 있는 사람으로 자신을 소개하는 이상록은 이번 시집에서 동시대를 살아가는 한 사람의 솔리튜드한 감성을 언어(시)와 이미지(사진)로 담아 한 권의 책으로 펴냈다.

  이상록은 언어로 다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을 그는 ‘느낌’ 그 자체로 보존하기 위해 고민해왔다. 이번에 펴낸 시집 『지금 달에는 비가 내리고』에는 시인이 남몰래 기록해둔 그 ‘느낌’의 여정이 담겨 있다.

  꽃들이 온 힘을 끌어올려 마지막 한 잎을 펼칠때/그 미세한 변화에 선율을 넣는 사람./피아노로 삶을 위로해 주는 사람

  추천사에서 동료 교사는 이상록을 이렇게 표현한다. 사람을 다독이고, 사람을 춤추게 하는 언어와 이미지로 가득한 이상록의 시집은 ‘지구별 사람들’에게 여태껏 놓쳐왔던 감성과 고독의 순간들을 전해줄 것이다.

  먼저 1부 ‘카시오페이아’에는 우리의 일상이 ‘카시오페이아’ 별의 풍경으로 바뀌는 신비로운 순간들을 담고 있다. 그는 지금까지 자신의 눈을 지배하고 있던 ‘지구인’의 시각이 지워지는 경험을 통해 신비로운 풍경 속으로 다가간다.

  “어느 날//나의 과거//온전치 않은//다가올 미래까지//송두리째//delete 된다면//나는//무중력의 현재에//소리로//환생하고 싶다”고 고백하는 시 「melancholia」를 시작으로, 시인은 “바람의 농담으로 인해 첨예하게 대치하고 있는 상반된 감정들”(「바람의 加害」), “단 한 그루의 나무-하나의 아픔으로도 과분한 인생”(「아픈 책」), “하나는 그림자가 자라기 시작하는 시간에, 다른 하나는/그림자가 너무 길어져 몸으로부터 힘겹게 잘려 나가는 시간”(「19’ 55”」)과 같은 것들과 마주하게 된다.

  모든 풍경들은 아픔을 갖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빗속에 울리는 고요한 선율처럼 상처를 다독이는 다정함을 갖고 있기도 하다. 시인은 ‘지구인’의 방식으로 그 풍경들에게 다가가지 않는다. 길고양이를 대하듯, 길 잃은 아이를 대하듯, 그는 말이 아니라 ‘느낌’으로 그들을 쓰다듬고 미소를 전한다. 그렇게 1부의 풍경들은 혼자 있으면서도 누군가와 함께 있는 듯한 신비로운 순간들을 재현한다.

  2부 ‘고해성사’에는 자기고백적인 시와 사진들이 담겨 있다. 그는 세상 속에서 자신이 잃어버린 것들, 놓친 사람들과 시간들, 감정들에 대해 고백한다. 하지만 그 고백은 자기도 모르게 ‘나’라는 한 사람에 대한 사색의 범위를 넘어선다.

  “나는길위에서항상아팠다나는또다시길위에마음을눕힌다”고 고백하는 시인은 “바람이불더니빗님이오셨다아주조금은호흡하기가편하다”며 자기 자신을 향하는 어떤 시선을 소환(「나는 또…,」)하고, “어미보다 먼저 태어나 서러운 아이, 배고픈 아이는 소리로 허기를 채우고, 그 소리로 호흡을 자르고 망연히 누워 꿈을 꾼다”는 고백 뒤에는 “버혀지고 헐거워 더 이상 덮을 것이 없을 때, 비로소 소리가 내게 왔다”(「꿈을 버린 아이」)는 초월적 감각에 대한 인식의 말이 뒤따른다.

  이상록의 자신에 대한 고백은 단지 열등감 혹은 안타까움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나’를 넘어서는 무언가에 대한 느낌을 향하고 있다는 것을 모든 작품에서 분명하게 보여준다. ‘나’를 바라보고 또 감싸고 있는 이 세상은 무색무취가 아니라, 색이나 음률이나 온기를 가지고 있다. 그것들은 ‘나’와 ‘바깥’이라는 경계로 인해 우리의 고통이 시작되었으며, 내가 그 경계를 지울 수 있는 용기를 가졌을 때 비로소 자기 내면의 본래의 감각들로 전해질 수 있다. 그의 시와 사진 속에 담긴 감각들이 바로 그것이며, 그 때문에 2부를 구성하는 작품들은 시인의 자기고백이면서도 그것을 넘어서는 미감의 표현이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이다.

  『지금 달에는 비가 내리고』는 ‘소리’에 대한 시와 사진들이다. 그리고 그것은 “나와 같이 어리고 여린 순筍들을 만나/비로소/소리는 빛이고 바람이며 자신인 것을 (알게 되었다)”고 고백하는 시인의 말처럼, 삶이 시작되던 순간부터 우리 마음속에 존재했지만 여태껏 우리가 느끼지 못했던, 한없이 낯설면서도 너무나도 익숙한 소리이다. 팬데믹이 끝을 향해 가고 있지만, 많은 이들의 감정은 여전히 자가격리되어 있다. 이상록의 시와 사진들은 그런 ‘나’들에게 손을 내민다. 그리고 여린 마음들 하나하나가 스스로 일어날 수 있을 때까지 아름다운 ‘소리’와 같은 풍경들로 따스하게 감싼다. 다시 시작을 꿈꾸는 많은 독자들에게, 『지금달에는 비가 내리고』는 마음속 깊이 전해지는 친밀한 감정을 섬세하게 전해줄 것이다.

 

 

 


 

 

* 《쿨투라》 2022년 7월호(통권 97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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