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회 쿨투라 신인상] 당선작 및 심사평
[제6회 쿨투라 신인상] 당선작 및 심사평
  • 쿨투라 cultura
  • 승인 2013.03.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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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회 신인상 당선작 발표

문 화 평 론 부 문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이라는 시뮬라크르 박홍근

소 설 부 문
하스타 조미녀

심 사 위 원
전찬일(영화평론가), 홍용희(문학평론가), 이재복(문학평론가), 강태규(대중문화평론가)

 

심사평

문화평론 부문 최종심사에 올라온 응모작 박홍근 씨의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이라는 시뮬라크르 - 당연하게 여겨지는 경쟁에 대하여」와 조재성 씨의 「208만 3477대 1과 208만 3477가지 쾌」 2편은 최근 사회적 열풍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에 대한 원고였다.

두 응모작 모두 대중음악에 대한 원론적인 성찰과 대중음악산업에 대한 인식은 다소 부족했지만, 오디션 프로그램에 대한 사회적 기능, 문화적 인식에 대한 심도 있는 인식은 우열을 가리기 힘들만큼 팽팽했다. 고심 끝에 박홍근씨의 응모작을 신인상으로 결정했다.

박홍근 씨의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이라는 시뮬라크르 - 당연하게 여겨지는 경쟁에 대하여」는 그간 오디션 프로그램이 우리시대의 뮤지션들에게 얼마나 불온한 기준으로 평가되었는지와 그것이 우리 시대의 음악수용자들과 대중에게 어떠한 영향을 끼쳤는가를 밀도 있게 파헤쳐냈다. 나아가 우리 사회의 일그러진 경쟁구도에 대한 허상을 면밀하게 드러냈다. 박홍근의 글을 당선작으로 뽑은 까닭은 안정되고 적확한 팩트- ‘기준은 노래를 가장 잘하는 사람일 수밖에 없지만, 음색·분위기·톤·가창력·리듬감 등 상이한 재능을 가진 천차만별의 목소리를 어떻게 공정성 안에 놓고 심사할 것인가’-를 던지고 내밀하게 풀어내는 치열함이 돋보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최초로 문학 분야인 소설 부문 신인을 세상에 내보낸다. 그동안 쿨투라는 문화평론 분야인 영화평론가 두 명(임정식, 엄준석)과 연극평론(정갑준, 성유경)가 두 명을 배출해왔다. 문화평론 부문의 투고작과 비교해서 문학창작분야(시, 소설, 동화)는 투고작도 적었으며, 작품 수준 또한 떨어져서, 아쉽지만 그동안 신인을 뽑지 못했다. 이번에 투고된 문학창작분야 응모작 중에는 시와 소설이 꽤 많은 비중을 차지했으며, 이기현 씨(시)와 박인하(단편소설) 씨, 조미녀(단편소설) 씨 등 몇 작품은 오랜 습작의 힘이 묻어났다. 그 중에서 우리는 조미녀의 단편소설 「하스타」를 신인으로 내보내기로 결정했다. 문장에서 갈고닦은 오랜 습작의 힘보다는 우리가 잃어버린 보편적 삶의 진정성을 담으려고 애쓰는 신인을 쿨투라 제6회 신인으로 선택한 것이다.

한때 손 모델을 했지만 이제 늙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배우지망생 엄마를 괄시하고 내팽개치기보다는 그 쓸쓸한 존재를 소중하게 여기며 부양하고 끌어안는 속 깊은 딸, “나는 슬프지 않다. … 투박하고, 거칠고 따뜻했던 할머니 손도 있었지만, 내가 기억하는 엄마 손에서 느껴졌던 향기로운 감촉은 나를 살게 한, 나를 이루게 한, 또 하나의 의미이고 존재였다.”고 고백하는 ‘하스타’ 연희의 심성이 바로 소설이며, 우리가 잃어버린 문학의 힘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두 신인의 탄생을 축하하며, 오랜 습작의 공력이 헛되지 않게 앞으로의 정진을 부탁한다.     

심사위원을 대표해, 강태규

 


당선소감

문화평론 부문 - 박홍근

생각보다 담담하게 당선 연락을 받았다. 투고를 하고나서 한동안 모르는 곳에서 전화가 오기만 하면,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황급히 도서관 밖으로 달려 나가 받았던 일을 생각해보면 참 기이한 감정이었다. 그리고 곧 그것이 어떤 위안의 감정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최근 학위논문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생각만큼 진전이 없어 굉장히 실망스러운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갑자기 날아온 당선 연락은 격려와도 같은 것이었다. 힘든 사람의 등을 토닥여주는데 펄쩍펄쩍 뛰면서 기뻐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대신 조용히, 내 안으로부터 새로운 힘이 북돋아 옴을 느끼면서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이었다. 그것이 담담함의 실체였다.

볼 때마다 부족한 글이라고, 쓰면서도 그리고 보내고 나서도 항상 그 생각뿐이었다. 다소 거친 표현도 있고, 논리를 더 다듬어야 할 부분도 있다. 하지만 누구도 보고 있지 않은 너머로 시선을 던졌다는 자신감은 있었다. 텔레비전을 켜면 홍수처럼 쏟아지는 오디션 프로그램들에 대한 기존의 비판적인 비평들이 사실은 오디션 프로그램을 옹호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중요한 것은 프로그램이 어떤 형태가 되어야 하는가가 아니라 그 형태가 전제하는 조건이다. 언제 어디에서나 경쟁이 있다는 사실은 하나의 단단한 세계가 아니라 스스로 단단한 세계라고 주장하는 자기준거적 논리 위에 서 있다. 바로 그 앙상한 조건을 들여다보고 싶었다.   

이런 사고방식이 다른 사람들에게도 받아들여 질 수 있는 것인가 하고 의문을 수차례 던져보았다. 이런 생각의 모험을 쿨투라는 받아주었다. 아마도 글이 보여주고 있는 것보다 그 글에서 미처 다 끌어내지 못한 부분이 더 있을 거라는 기대를 해 주신 것이리라. 더 열심히 읽고 쓰고 고민할 것이다.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다시 대학원에 들어간다고 했을 때, 또 그 분야가 돈 벌이와 무관한 사회학이라고 했을 때도 가족과 친구들은 그러한 생각을 묵묵히 그리고 속 깊게 헤아려 주었다. 나보다 나를 더 잘 이해해준 그들이 있었기에 지금 이렇게 감사의 인사를 쓰고 있다. 이런 자리를 마련해준 쿨투라에게도 다시 한 번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담담함 속의 격려의 무게를 잘 알기에, 그만큼 더 힘차게 나아갈 것이다.

 

소설 부문 - 조미녀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고단한 노동 뒤에, 과도한 음주 중에, 또 자식들이 성장하고 일가를 이룬 뒤에도 늘 고독하다고 하셨지요. 고독의 숨은 의미 같은 거 잘 표현하지 못했지만 언제나 고독하다고 하셨습니다. 나의 아버지가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아버지가 소설이구나!’ 했습니다. 그래서 소설쓰기가 아버지 때문이기도 했지만, 현실에서, 소설 속에서 고독한 이들과 함께 아파하고 공감하고 소통하고 싶었습니다.

언제나 멀리 있지 않았던 그들을 찾아 문학의 연정을 품은 지 십여 년! 삶의 정적을 쫓는 일에 더 많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소설과 함께 하면서도 온전히 전념하지 못했고, 그렇다고 직장인으로 살아남지도 못한, 그래서 나에게, 소설에, 문학에 빚이 많고 부끄러움만 남았습니다. 더없이 부끄러운 건 그들에게 글쓰기로 기쁨을 전해주지 못한 것입니다.

몇몇 작품들에 잠자고 있는 그들을 깨워야겠습니다. 깨어나 현실에서 이름 내걸 수 있도록 『쿨투라』안에서 다시 시작해 보겠습니다. 부족한 작품을 뽑아주신 심사위원 선생님께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소설이란 둥지를 틀고 집을 짓겠다, 했을 때 진실한 것만이 세상을 움직일 수 있다는 진리를 가슴에 새겨주신 숭의여대 교수님들, 동국대 문화예술대학원의 홍신선, 장영우 교수님의 가르침에 이 자리를 빌려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오래도록 소설이라는 길을 걷고 있는 토요회 선후배들, 언제나 함께 하겠습니다. 이십 대 열렬히 사랑했던, 그리고 앞으로도 사랑할 그 한 사람, 한 사람을 가슴에 새기고 기억하겠습니다.

 

 


 

* 《쿨투라》 2013년 봄호(통권 29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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