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Theme] K-콘텐츠를 둘러싼 사유들
[8월 Theme] K-콘텐츠를 둘러싼 사유들
  • 이광호(문학평론가)
  • 승인 2022.08.01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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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콘텐츠라는 명명

K-콘텐츠에 대한 열광에도 불구하고, K-콘텐츠라는 명명은 형용모순의 측면을 포함하고 있다. 콘텐츠 앞에 ‘K’라는 국적을 부여하는 것은 디지털 시대의 콘텐츠의 무국적적인 유동성을 제한하는 것이기도 하다. 문화적 텍스트에 국가의 이름을 덧붙이는 것은 그다지 ‘문화적’인 것은 아니다. 이를테면 문학과 예술이 국가를 대표한다고 주장하는 만큼 예술적인 것과 거리가 먼 이념도 흔치 않다. 이를테면 노벨 문학상을 둘러싼 과도한 민족주의적 열망은 ‘문학적인 것’과 아무 상관이 없다. 예술은 한 국가의 명예와 권위에 봉사하기위해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K-콘텐츠라는 명명이 발생했다면, 그것은 이 시대의 문화 상황을 반영하는 ‘징후적’인 것으로 보아야 한다. 그것에대한 근본적인 성찰이 K-콘텐츠라는 이름을 덜 빈곤하게 만들 것이다.

K-콘텐츠에서 대문자 ‘K’가 실제로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 우선 물어볼 필요가 있다. 콘텐츠의 국적을 말할 때 우선 언어의 문제를 말할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K-콘텐츠는 한국어로 된 콘텐츠이다. 하지만 BTS의 〈Butter〉와 같은 노래는 영어로 되어 있고, 박찬욱 감독의 〈스토커〉처럼 어떤 한국인 감독의 영화는 영어로 되어 있다. 그렇다면 다시 한국인이 만든 콘텐츠라고 생각해볼 수 있다. 이 경우에도 예외는 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브로커〉는 한국영화로 명명되며, 칸에서 송강호가 남우주연상을 수상했을 때 한국인들은 열광했다. 그럼 결국 자본의 문제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어느 나라의 자본으로 만들어진 콘텐츠인가 하는 문제는 가장 현실적인 문제이다. 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가 스태프와 배우, 그리고 기술력에서 할리우드의 자원에 힘입었다 하더라도, 이 영화의 제작사는 한국회사이고 배급에는 CJ라는 거대 자본이 참여한 한국영화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만약 〈오징어 게임〉이 넷플릭스의 시리즈라고 한다면, 이것은 한국콘텐츠라고 할 수 있을까? 이런 관점에서라면 K-콘텐츠의 ‘K’는 그 실체를 분명하게 한정할 수 없다는 딜레마에 빠진다. 대자본이 투여되는 콘텐츠의 창작과 제작과 유통에서는 이미 세계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그 콘텐츠에 정확한 국적으로 부여한다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K-콘텐츠라는 명명이 발생했다면 그것은 세계문화의 무대를 향해 움직이는 어떤 열망의 반영이라고 볼 수 있다. K-콘텐츠를 규정하기 어렵다는 것은 K-콘텐츠의 한계가 아니라, 역설적으로 K-콘텐츠의 미지의 잠재성이다.

K-콘텐츠의 역사

K-콘텐츠를 둘러싼 열망에는 이제 역사가 만들어졌다. 세계시장으로의 진출이라는 열망을 만들어낸 것은 한국콘텐츠 시장의 빈약한 규모 때문이다. 한국콘텐츠 시장의 규모는 ‘너무나’ 작다. 대략적으로 미국시장은 한국의 13배이고 중국은 5배이며 일본은 2배 정도라고 알려져 있다. 할리우드 스타 크리스 에반스가 〈설국열차〉를 찍을 무렵 한 토크쇼에 나와서 ‘컬트영화’를 찍고 있다고 했을 때, 미국시장과 한국시장의 영화에 대한 태도는 이상한 방식으로 노출되었다. 2010년대의 한국영화의 평균 제작비가 30억 원 정도였다는 것을 감안하면, 570억 원이 들어간 〈설국열차〉는 한국영화 역사상 최대 규모의 제작비가 들어간 ‘블록버스터’에 해당하지만, 미국시장에서 이 영화는 소수집단의 열광적 숭배를 받는 ‘컬트영화’로 보였던 것이다. 이 이상한 착시는 ‘블록버스터’라는 용어가 2차 대전 당시 독일의 유서 깊은 도시인 ‘드레스덴’에 대한 연합군의 무차별적인 폭격에서 유래되었다는 사실 만큼 아이러니하다.

한국의 문화산업 자본들의 대규모 투자는 해외시장을 염두에 둔 것이어야만 했고, 콘텐츠의 해외 진출을 적극적으로 모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른바 1차 ‘한류’는 90년대 중반에서 2000년대까지 아시아에서 시작되었다. 중화권에 드라마와 가요를 수출하고 〈겨울연가〉(2002)와 〈대장금〉(2003) 등의 성공 등이 이 시기의 한류콘텐츠를 대표한다. 2차 한류는 2010년대 이후 이른바 K-팝의 세계적인 진출에 힘입어 확산되었다. 〈강남스타일〉(2012)의 대성공과 K-팝 아이돌 그룹의 진출이 이루어져서 미주와 유럽에서 K-팝 열풍이 일어나기 시작했고, 한류의 서구지역에서의 본격적인 확산이 일어났다. 3차 한류는 BTS가 빌보드 차트에서 처음으로 1위를 기록한 2018년 이후, 〈기생충〉(2019)의 아카데미 수상과 〈오징어 게임〉(2021)의 세계적인 성공의 시기이다. 김혜순 시인의 그리핀 시문학상과 시카다상 수상, 『채식주의자』의 맨부커상 수상과 같은 순수 예술로서의 K-콘텐츠의 세계적인 인정이 있었다. 이 시기에는 대중문화 뿐만 아니라 제도권 순수 예술 역시 그 세계적인 수준이 입증된 시기이며, K-콘텐츠의 세계적인 안착이 일어난 시기이다. 이는 이른바 K-컬쳐라고 불리울 수 있는 영역, 출판, 방송, 게임, 캐릭터, 만화, 뷰티, 음식, 관광, 의료 등의 분야에서도 한국콘텐츠와 스타일의 매력이 증가된 시기라고 볼 수 있다.

K-콘텐츠의 성공 이유

이러한 성공의 역사에는 이유가 있었다. 거대 문화 자본의 과감한 투자와 스토리텔링 능력과 정보기술력의 결합은 성공의 요인이기도 했다. 장르적으로 본다면 K-팝은 잘 기획되고 훈련된 아이들 그룹의 양성, BTS의 노래에서 볼 수 있는 ‘나 자신을 사랑하라’와 같은 긍정적이고 보편적인 메시지의 전달과 관리 등을 들 수 있다. 한국영화의 경우는 〈기생충〉과 〈오징어 게임〉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지극히 한국적인 현실의 세부를 보여주면서도 보편적인 계급 갈등과 양극화의 문제를 다루는 것이 공감을 이끄는 요인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성공들을 통해 한국의 소프트 파워와 문화적 매력지수는 상승했으며, 2020년의 영국 잡지 《모노클》은 한국을 세계 2위의 매력 국가로 선정하기도 했다. 이런 상황은 한국적인 문화의 요소들을 세계에 알린다는 단순한 시도의 결과는 아니다.

한국영화의 경우 2010년대 이전의 한국영화는 임권택 감독의 〈씨받이〉, 〈취화선〉처럼 전통적인 소재를 다룬 것이 많았고 이는 어떤 측면에서 ‘오리엔탈리즘’이라는 서구적 관점에서의 흥미를 유발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최근의 세계시장에서 주목한 K-콘텐츠들은 한국적인 미적 요소 안에만 머물지 않는다. 이를테면 넷플릭스 시리즈 〈킹덤〉은 조선 시대라는 설정을 갖고 있지만, 좀비물이라는 장르적인 요소의 보편적인 쾌감을 극대화하고 있다. 거기에서 역사는 휘발되고 한국적인 것은 일종의 새로운 스타일로 드러난다. 이런 흐름은 한국적인 것의 문화적 개별성을 보편적인 맥락 속에 재위치시키는 시도이다. 봉준호 감독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아카데미도 로컬 영화상’에 불과하다고 한 것은 할리우드를 세계의 유일한 중심으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도발적인 선언에 가깝다.

일찍이 괴테는 범세계적 보편적 인간상을 추구하는 ‘세계문학’의 이념을 제시한 바 있다. 이런 이념은 이상적인 것이지만, 현실적으로는 ‘세계문학 공간은 불평등하며 계급 차이가 있는 영토’라고 분석한 파스칼 카자노바의 분석이 더 실감에 가깝다. 세계의 콘텐츠 시장은 유력한 콘텐츠를 생산하려는 경쟁으로 인해 한편으로는 분열되어 있고, 궁극적으로는 그 경쟁이 촉진하는 국가와 언어의 횡단 운동으로 일체화되어 있기도 하다. K-콘텐츠의 가장 큰 약점은 아마도 한국어 콘텐츠 시장의 협소함 그 자체일 것이다. K-콘텐츠는 언어를 포함하여 자신의 문화적 번역 능력을 키워야만 할 것이다.

K-콘텐츠의 세계화

K-콘텐츠의 약진은 세계시장을 움직이는 것 못지않게 자신의 문화의 내부를 세계적인 맥락에서 변화시킨다는 것을 의미한다. K-콘텐츠는 한국문화의 개별성을 세계적인 것들과 관계 맺게 하는 것이며, 자신의 특이성을 세계문화의 재구성을 위한 또 다른 창조성으로 만들어낼 수 있어야 한다. K-콘텐츠의 세계화란 한국문화의 특수성을 세계적인 공간 안에서 ‘재지역화’하고 ‘재맥락화’하는 것이다. 창작에 있어서의 내용과 형식의 순혈주의를 넘어서야 하고 콘텐츠에 담아내는 ‘현실’의 폭을 넓혀야 하고 장르의 개념과 형태도 열려 있어야 한다. 한국에서는 제도권 문학을 대표하는 편혜영의 『홀』이 미국에서는 ‘셜리 잭슨상’이라는 유력한 장르 문학상을 수상했다. 최근의 정보라의 『저주토끼』를 비롯한 장르 영역에서의 한국문학 콘텐츠의 약진은, 세계문학의 장에서는 ‘장르/ 본격’ 예술, ‘대중/ 순수’ 예술의 경계가 무너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또 하나 중요한 질문은 거대 문화산업 자본에 의해서 주도되는 K-콘텐츠가 과연 한국문화의 창조적 다양성에 얼마나 기여하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문화산업의 기획에 의해 만들어지는 K-콘텐츠가 성공의 사례들을 모방 재생산하고 비슷한 콘텐츠들을 쏟아낸다면 K-콘텐츠는 획일화되고 그 매력은 약화될 것이다. 거대 문화 자본에 의해 기획된 K-콘텐츠가 아니라, 아래로부터 분출되는 독립적인 예술들의 창의적인 에너지가 한국문화를 변화시키고 세계문화의 위계에 균열을 가할 잠재성은 남아있다. 거대 자본이 투여되지 않는 K-콘텐츠가 세계시장을 움직일 현실적 가능성은 크지 않지만, 한국문화의 장 안에서 그런 도발적인 작은 움직임들이 없다면 K-콘텐츠의 창조성은 고갈될 것이다. 거대 자본에 의해 만들어진 하나의 콘텐츠가 세계를 제패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다양하고 자유로운 복수의 예술적 실험이 허용되는 문화의 역동성을 만드는 일이다. 작은 예술 운동들의 잠재성이 K-콘텐츠를 규정할 수도 제한할 수도 없는 운동 에너지로 만들 수 있을까? K-콘텐츠는 국적을 넘어서는 미지의 영역일 수 있을까?


 


이광호 1988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당선. 서울예술대학교 교수를 거쳐, 현재 문학과지성사 대표. 저서로 『익명의 사랑』 『시선의 문학사』 『너는 우연한 고양이』 등이 있음.

 

 

* 《쿨투라》 2022년 8월호(통권 98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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