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분재] 남쪽 바다의 초밥 1
[소설분재] 남쪽 바다의 초밥 1
  • 김쿠만(소설가)
  • 승인 2022.08.02 0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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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쪽 바다의 초밥

김쿠만(소설가)

 

식당 『寿司수사』는 1972년에 문을 열었고, 2022년에 문을 닫은 전통 초밥집이다. 오래 영업한 노포답게 『寿司』의 간판은 수백 년 묵은 편백으로 만들어졌다. 숫돌 가루로 잔뜩 눈먹임을 한 나뭇결 위로 『寿司』라는 붓글씨를 새겨준 이는 다름 아닌 총사령관이었다. 간판의 일화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寿司』가 세간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건 이 나라에 네 번째 군사 정부가 들어섰을 무렵이었다. 국군 역사상 최초로 가슴에 별을 다섯 개 단 군인이었던 총사령관은 바닷가 출신이었고, 바닷가 사람답게 생선 반찬이 없으면 밥을 한 술도 뜨질 못하는 사람이었다. 그 식성 탓에 그가 생도 시절 어떤 고난을 겪었는지는 국민 모두가 짐작할 수 있었다. 나라의 모든 걸 엎어버린 혁명이 일어난 후, 총사령관은 북쪽 지역에서 일으킨 사건 때문에 내란죄로 고발당했다. 시민 재판에서 사형을 언도받은 그는 교도소에 갇힌 지 10년째 되던 해 사면됐다. 교수대의 올가미에서 간신히 벗어난 그가 출소 후 제일 먼저 찾아간 곳은 자택이 아니라 『寿司』였다. 총사령관은 10년 동안 초밥을 그리워했다고 말하며 주방장의 왼팔을 두 손으로 꼭 잡았는데, 총사령관이 수감되어 있던 10년 동안 종종 교도관이 『寿司』에 들러 초밥을 포장하던 모습이 몇몇 기자에게 포착되곤 했다. 그 중 한 기자가 교도관에게 질문했다.

―그 초밥은 누가 먹는 겁니까?
―우리가 먹을 건데요.
―당신 주급을 전부 줘도 여기 초밥 다섯 피스도 못 먹는 건 모르나요?

주방장의 초밥은 그 정도였다.

두 번째 전쟁이 한창이던 1941년, 『寿司』의 주방장은 다른 나라에서 태어났다. 그곳에서 그의 부모님은 쿨-리라고 불렸다. 아버지는 출장소의 사환이었고, 어머니는 초밥집의 잡일꾼이었는데, 덕분에 주방장은 아침저녁으로 생선국을 먹을 수 있었다. 비록 손질하고 남은 서더리로 끓인 국이었지만, 그마저도 감지덕지하는 시절이었다. 생선 찌꺼기로 우린 국물을 먹고 무럭무럭 자라난 주방장은 쿨-리의 아이답게 학교를 때려치우고 어머니와 같은 식당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그의 첫 번째 직장 생활은 길진 않았다. 세 번째 전쟁이 일어나는 바람에 식당이 폭격으로 폭삭 무너져버렸기 때문이다. 폭격이 날려버린 건 식당뿐만이 아니었다. 2011년에 개봉했던 다큐멘터리 영화 『匠色장색』에서 그는 천천히 타들어가던 레드애플 담배를 왼손으로 간신히 움켜쥔 채 덤덤히 말했다.

―정신을 차려 보니 부모님과 오른팔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더라고요.

개업 당시, 그의 장애를 불편해하는 몇몇 손님들―앞서 말한 총사령관도 몇몇 손님들에 포함됐다―때문에 주방장이 기다란 장막 뒤에서 초밥을 쥐였다는 일화는 한때 특별한 이야기였었다. 그때는 그런 시절이었고, 그런 시절을 살았던 옛날 사람이 지금보다 많았으니까.

 

수 세기 전부터 전해져 내려온 전통적인 방식에 의하면 주방장은 초밥을 만들어선 안 되는 인간이었다. 실제로 주방장이 장인 심사를 받을 때마다 오오토리 세이고로 같은 보수적인 초밥 장인들은 세상에 어느 초밥이 그따위로 만들어지냐고 노발대발하며 반대했다. 주방장은 로봇 팔이 초밥을 쥐는 시대가 오고 나서야 장인 호칭을 간신히 얻어냈는데, 로봇만 아니라면 누구나 장인이 될 수 있었던 시기였던지라 큰 의미는 없었다.

직접 해보면 누구나 느낄 수 있겠지만, 한 손만으로 초밥을 쥐는 일은 무척 골치 아픈 일이다. 단순 계산으로만 따져 봐도 주방장은 다른 요리사들보다 두 배는 더 노력해야 했다. 다른 이들과 달리 밥과 회, 그리고 고추냉이를 움켜쥘 수 있는 손이 하나뿐이었으니. 풋내기 시절 그는 다음과 같이 고민했다. 회를 쥔 채 밥을 집어야 할지, 아니면 밥을 쥔 채 회를 집어야 할지. 전자의 방식대로 하자니 광어 초밥에 참치 냄새가 배길 것 같았고, 후자의 방식대로 하자니 초밥이 제대로 뭉치질 않았다. 그나저나 고추냉이와 간장은 언제 바르지? 어쩌면 『寿司』의 특색은 그런 어려움 때문에 생긴 것일지도 모른다. 일본의 초밥 전문 잡지 《すしの雑誌스시노잡지》는 『寿司』의 초밥을 다음과 같이 간략하게 소개했다.

―한 손으로 움켜쥐는 거대한 남쪽 바다.

어째선지 주방장은 남쪽 바다에서 잡힌 물고기만 쓰는 걸 고집했다. 인근 수산 시장에서 남쪽의 물고기가 한 마리도 나오지 않으면 그는 망설이지 않고 『寿司』의 문을 굳게 닫았다. 그렇게나 남쪽 바다를 좋아해서인지 주방장은 종종 꿈에서 남쪽 바다를 엿봤고, 자신이 꿨던 꿈 이야기를 손님들에게 말해주곤 했다. 남쪽 바다와 접해 있는 도시, 남도에서 온 손님들은 주방장에게 꿈에서 본 바다는 어땠냐고 물었다. 그럴 때마다 주방장은 잠깐 눈을 감고 미소를 지은 채 이렇게 답했다.

―무척 포근했습니다.

그 답을 듣고 남쪽 손님들은 피식, 하고 코웃음을 쳤다. 예로부터 남쪽 바다는 따뜻한 지역의 대명사로 통하긴 했지만, 요즘의 남쪽 바다는 남쪽에서 치고 올라오는 열대 기후 때문에 일 년 내내 후덥지근하고 축축한 곳이 되고 말았다. 남쪽 바다에서 참치를 잡는다는 이야기는 이제 역사가 되고 말았다. 수천 년 전 선조들은 뗏목을 타고 근해에만 나가도 참치를 낚을 수 있었지만, 근대의 남쪽 어부들은 북쪽 바다까지 올라가야 참치의 꼬리를 겨우 구경할 수 있었고, 현대의 어부들은 로봇이 조종하는 무인 어선에 밀려서 참치의 뼈조차 낚을 수 없었다. 아름다우면서 동시에 실용적이라는 평을 받았던 남도의 전통 수상가옥들은 이제 높아진 해수면 아래로 잠기고 말았지만 손님들은 그런 냉혹한 현실을 주방장에게 알려주진 않았다. 어찌 보면 기만이라고도 볼 수 있었지만, 다르게 보면 남쪽 바다를 경험하지 못한 주방장을 위한 남쪽 사람들의 우려 섞인 배려였다. 혹시나 그의 환상이 깨진다면 초밥의 맛이 변할지도 모르니까. 그러나 환상을 지켜준 쪽은 오히려 주방장 쪽이었다. 주방장은 남쪽 바다의 사정을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었다.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그는 남쪽 바다를 방문한 적이 딱 한 번 있었다. 무척이나 오래전에. 놀랍게도 그가 초밥을 처음 만든 곳 또한 남쪽 바다였다. 물고기를 낚은 선장은 어린 주방장에게 아무 물고기 요리를 부탁했고, 첫 번째 직장에서 요리사가 초밥을 만드는 걸 등 너머로 지켜봤던 주방장은 선장에게 초밥을 만들어주겠다고 말했다. 주방장이 만든 초밥을 먹고 선장은 헛구역질을 하고 말았다.

―형편없군.
―죄송해요. 처음이라 그래요.
―처음 만든 초밥을 나한테 먹였다고? 당돌한 녀석.

당돌한 주방장은 한동안 고요한 바다를 향해 열심히 구역질했다. 멀미 때문인지, 아니면 엉망으로 뒤섞인 뼛가루들 때문에 구토하는 건지 주방장 본인도 알 수 없었다. 선장은 주방장의 등을 두들기며 이럴 땐 이런 걸 마시는 게 좋다면서 술을 한 병 내밀었다.

―전 아직 미성년자인데요.
―남쪽 바다는 그딴 걸 신경 안 쓰지.

주방장은 조심스럽게 술을 한 모금 들이켰다. 독한 술은 그의 내장을 꾹꾹 누르며 아래로 내려갔다. 금세 취해 비틀대는 주방장을 바라보며 선장이 말했다.

―나는 아들한테 바다에 뿌리지 말고 매장해달라고 할 거야.
―좋은 생각인 것 같네요.

둘은 고요한 바다 위에서 맛없는 식사를 하며, 술을 마시며 그렇게 계속 얘기를 나눴다. 대화의 주제는 대체로 지나간 것들이었다. 지난주에 열린 야구 결승전이라든지. 한 달 전 동경에서 열린 역도산과 기무라의 실전 시합이라든지. 배는 주방장이 초밥의 역사에 대해 줄줄이 읊기 시작할 무렵 해변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술에 취한 주방장은 구토하듯이 울분을 토해냈는데, 다행스럽게도 훗날의 그는 자신의 주사를 기억하지 못했다. 만약 그 추한 기억을 간직했다면 그는 지금처럼 초밥을 움켜쥐지 못했을 것이다. 대신 그는 다른 걸 기억했다. 자신의 손을 힘껏 움켜쥐어주던 선장의 두꺼운 손과 싸구려 럼에 취한 그가 남긴 충고를.

―남쪽 바다를 너무 그리워하지 마.

임종 때 주방장의 귓가에 들렸던 최후의 소리도 수십 년 전의 그 작별 인사였다. 남쪽 바다를 너무 그리워하지 마.

 

주방장에게는 자식이 없었지만, 다행히도 자식 같은 제자는 한 명 있었다. 장례식의 상주는 그가 맡게 됐고, 그것에 이의를 제기하는 조문객은 아무도 없었다. 총사령관이 찾아온 건 발인 전날이었다. 포토샵으로 주름이 지워진 주방장의 얼굴을 향해 짧게 묵념을 한 총사령관은 제자와 맞절을 했다. 그들은 서로를 바라보지 않은 채, 딱딱한 나무 장판을 내려다보며 대화를 이어갔다.

―어디다 모실 건가?
―남쪽 바다에 뿌려달라고 하셨습니다.

총사령관은 고개를 끄덕이며 제자의 답에 수긍했다. 그러나 모두가 제자의 답에 수긍한 건 아니었다. 만취한 골상학자가 갑자기 둘 사이에 끼어들더니 제자의 멱살을 잡고 이렇게 소리쳤다.

―장인의 뼈를 물고기 밥으로 만들 셈인가!

제자는 새빨갛게 달아올랐던 골상학자의 손을 뿌리치며 답했다.

―선생님께서 원하던 바였습니다.

골상학자는 이해할 수 없다고 중얼거리며, 구석자리로 돌아가 소주를 실컷 들이켰다. 제자는 주방으로 들어가 얼음 상자에 있던 참치 뱃살을 한 조각 집어서 그것을 썰기 시작했다. 균일한 두께로 썰린 회는 골상학자 앞에 놓였다. 제자는 골상학자의 날개뼈를 두들겨 줬고, 골상학자는 엉엉 울며 그 회를 먹었는데, 그 장면을 이해할 수 있는 조문객은 아무도 없었다. 독실한 신자였던 총사령관은 묘한 불쾌감을 느꼈는지 따끈한 육개장을 한 술도 뜨지 않고 장례식장을 바로 떠났다. 그가 장례식장에서 알게 된 사실이라곤 오십여 년 동안 남쪽 바다를 꼭 움켜쥐었던 그 손이 활활 타올라 남쪽 바다에 뿌려질 예정이라는 것뿐이었다. 안타깝고, 아까운 일이라고, 총사령관은 푹신한 뒷좌석에서 홀로 중얼거렸다. 며칠 뒤 자신이 그를 따라 남쪽 바다에 흩뿌려질 거란 사실을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 채.

 

주방장은 미신과도 같은 유사 과학을 믿고 있어서 스마트폰을 소유하지 않았는데, 그건 제자 또한 마찬가지였다. 때문에 그는 지난 세기에 태어났던 늙은 사람들처럼 매표소 앞에 줄을 서는 수밖에 없었다. 창구 너머 역무원은 시큰둥한 표정을 지으며 제자에게 물었다.

―어디로 가시나요?

제자도 시큰둥한 표정을 지으며 역무원에게 답했다.

―남도. 한 장요.

제자의 답을 듣고 역무원은 키보드를 두들기기 시작했다. 표는 금세 인쇄됐다. 제자에게 표를 내밀며 역무원이 말했다.

―12분 후 출발입니다. 그런데 들고 계신 건 뭐죠?
―유골함입니다.

역무원은 미심쩍은 표정을 잠깐 지었지만, 이내 다음 손님을 호명했다. 제자는 표를 주머니에 구겨넣고 플랫폼을 향해 걸어갔다. 12분 후에 출발한다는 남도행 열차는 이미 플랫폼에 들어온 상태였다. 고속 열차가 아니라 남도까지 꽤 시간이 걸릴 예정이었지만, 제자는 상관없었다. 어차피 『寿司』의 문은 굳게 닫혔으니까. 스승이 제자에게 남긴 유언은 단 세 문장이었다.

―내가 죽으면 『寿司』의 문을 닫아라.
―내 유골은 남쪽 바다 한가운데에다 뿌려라.
―가능하다면 남쪽 바다로 나갈 때 『역도산』이라는 배를 타거라.

제자는 스승의 세 가지 요구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충실히 이행할 작정이었다. 벌써부터 스승이 그리워진 제자는 옆에 놓인 유골함을 한 번 쓰다듬었다. 금속으로 이뤄진 유골함이 제자에게 전해주는 것이라곤 정전기의 따가움와 금속의 차가움뿐이었다.

 

봄이 가까운 늦겨울이라 그런지 해변의 간이역에는 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남도역에 도착했을 때 객차에서 내린 사람은 제자뿐이었다. 승객들은 차창 너머에서 멀뚱히 제자를 바라봤다. 그들은 해저 터널을 지나 멀리 해외로 나갈 외국인, 혹은 해외로 도피할 도망자들이었다. 승객 중 머리카락이 노란 꼬마가 제자를 향해 손을 흔들었지만, 제자는 그것을 가만히 바라보기만 했다. 꼬마는 꼬마답지 않게 무안한 표정을 지으며 떠나갔다. 제자는 발걸음을 출구 쪽으로 옮겼다. 간만에 보는 승객인지 우산을 쓰고 있던 역장은 제자를 신기하게 바라봤다. 제자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그에게 말을 걸었다.

―혹시 『역도산』이라는 배를 알고 계십니까?

역장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답했다.

―제가 아는 거라곤 여길 지나가는 기차뿐이죠.

제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실례했다고 말한 후,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역장은 깊게 내리는 비를 맞으며 멀어져가는 제자의 뒷모습을 오랫동안 바라보다 이내 다시 빗질을 시작했다. 그가 빗질을 멈춘건 북쪽 국경에서 출발한 관광열차가 간이역을 느리게 지나가고 있을 때였다. 역장은 해변 철도를 따라 움직이는 증기 기관차를 감탄 어린 시선으로 좇았는데, 기다란 빗방울들도 끈질기게 열차를 쫓아갔다. 열차는 오랫동안 비를 맞을 예정이었다.

 

제자가 항구 식당에 들어선 건 그로부터 한 시간 후였다. 투덜대며 늦은 점심을 먹고 있던 뱃사람들은 온몸이 홀딱 젖은 제자를 의아하게 쳐다봤고, 그가 품에 꼭 안고 있던 유골함을 더더욱 의아하게 쳐다봤다. 식당의 주인장은 레드애플 담배를 꼬나물며 제자에게 말했다.

―식사하러 오신 건가?

제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벽면에 위태롭게 걸려 있던 메뉴판을 쳐다봤다. 그는 짧게 고민한 후 메뉴를 골랐다. 주인장은 주방을 향해 제자가 고른 메뉴를 소리쳤다. 제자는 적당한 자리를 골라 앉은 다음, 테이블 구석에다 유골함을 올려뒀다. 얼마 후, 잘게 썰린 고등어회와 밥이 한 그릇이 테이블 위로 올라왔다. 여전히 담배를 물고 있던 주인장은 테이블 구석에 있던 재떨이에다 담뱃재를 털며 말했다.

―그거. 바다에 뿌리러 온 거요?

밥을 한술 뜨고 있던 제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네.
―타고 나갈 배는? 요즘엔 로봇이 조종하는 무인선만 나가고 있는데, 무인선엔 사람이 탈 수 없소.
―『역도산』이라는 배를 찾고 있습니다.

역도산이라는 단어를 듣자마자 주인은 식당 반대편에서 식사를 하고 있던 남자에게 시선을 돌리며 소리쳤다.

―이봐! 자네 손님인데?

제자는 고개를 테이블 옆으로 빼며 주인장 너머에 있는 늙은 선장을 바라봤다. 선장의 앞에는 연어포 한 접시와 소주 한 병이 놓여있었고, 선장의 입에는 주인장처럼 레드애플 담배가 한 개비 꽂혀 있었다. 선장은 연기를 내뿜으며 제자와 그의 옆에 있던 유골함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그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제자는 그만 시선을 돌리고 말았다. 선장은 피식 웃더니 연어포를 한 점 집어 라이터로 익히더니, 순식간에 그을린 연어포를 한 입 뜯은 후 소주를 얼음이 가득 담긴 맥주잔에다 부었다. 소주는 얼음을 헤집으며 잔 아래로 성급히 가라앉았다.

 

『역도산』의 선장이 제자에게 제일 먼저 한 질문은 이것이었다.

―프로레슬링 좋아하나?
―종합격투기 좋아합니다.
―그래. 그렇겠지.

선장은 씁쓸하게 중얼거리더니 라이터로 익힌 연어포를 제자에게 내밀었다. 제자의 손끝에 연어포의 재가 묻어났다. 선장은 묻은 재를 핥는 제자를 바라보며 소주를 잔에다 따랐다. 반쯤 녹은 얼음들은 유령처럼 잔 위로 둥둥 떠올랐다. 소주를 한 모금 들이켠 선장은 신음을 짧게 내뱉은 후, 유골함을 바라보며 말했다.

―거기 안에 들어 있는 사람은 누구지.
―초밥을 만들던 사람입니다. 외팔이였지만, 장인이었죠.

선장은 누군지 알 것 같다고 중얼거리더니 유골함을 두들기며 안녕하쇼, 하며 인사를 건넸다. 제자가 그를 미친놈처럼 쳐다보자, 선장은 정말 미친놈처럼 웃으며 남은 소주를 마저 들이켰다. 그는 병에 조금 남아 있던 소주를 제자의 잔에다 몽땅 들이부으며 오늘은 바다에 나가기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다.

―술을 드셔서 그런가요?

제자의 질문을 듣고 선장은 웃음을 터뜨리더니 식당 바깥을 가리키며 말했다.

―세상에 술을 무서워하는 뱃사람은 한 놈도 없어. 우리가 무서워하는 건 파도야.

항구로 밀려드는 파도들은 대단한 성질을 가진 사람들처럼 매우 거셌다. 항구에 묶인 배들은 잠깐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가 이내 다시 바깥으로 튀어나왔다. 선장은 자리에 일어나며 말했다.

―이런 날은 로봇들도 쉴 거야. 다행히 기상 캐스터가 내일은 파도가 잠잠하다고 말해줬어. 배는

항구 제일 오른쪽 끝에 묶여 있으니, 내일 새벽 여섯 시까지 거기로 와.

―내일도 파도가 저렇게 험상궂을 수도 있지 않나요?
―그럼 모레 나가면 되지. 조급하게 굴지 말라고. 남쪽 바다는 언제나 저기 있으니까.

말을 끝마친 선장은 주인장에게 외상이라고 말한 후, 레드애플 담배를 꺼내며 바깥으로 나갔다. 그는 잠시 식당 바깥에서 비 맞는 파도를 바라보며 담배 연기를 내뿜었는데, 제자는 그런 선장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주방장을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마지막 주문을 해치운 후, 주방장은 언제나 가게 바깥에 나가서 떠나가는 손님을 바라보며 담배를 태웠다. 제자는 구식 드라마에나 나올 법한 그런 뒷모습에 감동을 받곤 했는데, 그런 사람이었기에 『寿司』에서 그렇게 오래 일할 수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제자는 『寿司』에서 수십 년을 버틴 유일한 직원이었다.

 

제자가 『寿司』의 문을 처음 두들긴 것은 세기가 바뀌고 열흘 정도 지난날의 일이었다. 대단한 불황기였지만, 불황기에도 비싼 초밥을 사 먹는 이들은 있었다. 가게에서 주방장이 한 손으로 간신히 만들어낸 초밥을 음미하고 있던 손님들은 몸을 집어삼킬 정도로 커다란 점퍼를 입고 『寿司』로 들어오는 제자를 의아하게 쳐다봤다. 제자는 그런 시선을 애써 무시하며 제일 구석진 자리로 들어갔다. 한 손으로 참치와 밥, 그리고 고추냉이를 주무르고 있던 주방장이 그에게 물었다.

―뭘 드릴까요?
―초밥 하나요. 딱 하나. 그 정도 돈은 있어요.

꼬마의 주문에 몇몇 손님들이 코웃음을 쳤다.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꾀죄죄한 녀석이 참치 초밥을 먹겠다고 설치는 모습이 우스웠던 모양이다. 그러나 주방장은 전형 웃음기 없는 얼굴로 기꺼이 그를위한 참치 초밥을 하나 만들었다. 간장을 찍을 필요는 없었다. 주방장이 이미 가운뎃손가락으로 회에다 세심하게 발라뒀으니까. 제자는 젓가락을 쓰지 않고 손으로 참치 초밥을 집었다. 수전증이 없었지만 그의 손은 무서운 기세로 벌벌 떨고 있었는데, 그건 무서움에서 비롯된 게 아니라 감격에서 시작된 떨림이었다.

방향키를 쥔 채 술을 열심히 들이켜고 있던 선장은 시시하다고 말했다.

―차라리 삼류 로맨스 영화가 더 재밌겠어.
―원래 인생은 재미없죠.

제자가 조용히 읊조리자, 선장은 흥, 하고 코를 풀었다. 그들은 지금 『역도산』에 올라탄 채, 바다 한 가운데로 나아가고 있었다. 『역도산』은 엄청나게 낡은 배였다. 곳곳에 녹이 슨 배를 처음 봤을 때 제자는 정말 이 배 갑판 위로 발을 올려도 될지 의문이 들었다. 선장의 말에 따르면 『역도산』은 두 번째 전쟁이 한창일 때 건조됐다고 했는데, 그 정도면 뼛가루로 남은 주방장과 연배가 비슷한 수준이었다.

―해군 정찰선으로 사용될 예정이었지. 아마 전쟁이 조금만 더 늦게 끝났으면 어뢰에 맞고 침몰했을 거야.
―지금은 어뢰에 안 맞아도 침몰할 거 같은데요.
―그게 바로 모든 배들이 겪는 일이지.

마침 커다란 파도가 『역도산』을 덮쳤다. 제자는 얼굴로 짠맛을 격하게 느끼며 선장에게 물었다.

―얼마나 더 가야 하죠?
―40해리는 더 가야 해. 얼굴에 파도를 다섯 번 정도 맞으면 도착할 거라고.

선장의 말대로 『역도산』은 제자가 파도를 다섯 번 정도 맞은 후에야 목적지에 도착했다. 소란스럽게 희끄무레한 하늘과 달리 바다는 고요하기 그지없었다. 이따금 정신없이 튀어 오르는 물고기만 보이지 않았더라면 제자는 자신이 색깔이 특이한 풀들이 무성하게 자라난 초원에 있는 것 같다고 착각했을지도 모른다. 선장은 주머니를 뒤져 레드애플 담뱃갑을 꺼내며 멍하게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제자에게 피울 거냐고 물었다. 제자는 사양하지 않았다. 멈춰 있는 바다 위로 연기 두 줄이 나란히 피어올랐다. 선장이 다 태운 담배를 망가진 어망에다 집어 던지며 말했다.

―뿌리는 법은 알지?
―알죠.

제자는 담배를 문 채 유골함의 뚜껑을 열었다. 막막하게 쌓여있는 뼛가루를 잠깐 바라본 그는 한숨을 내쉬듯 담배 연기를 내뱉으며 선장에게 되물었다.

―사실 뿌려본 적이 없어서 잘 몰라요. 어떻게 뿌리면 좋나요?
―한 움큼씩 쥐고 천천히 뿌려. 느리면 느릴수록 고인에게 좋아. 시간은 많으니까 천천히 뿌리라고.

제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유골함에 오른손을 집어넣었다. 주방장은 그렇게 천천히 세상 바깥으로 가라앉았다.

 

(다음 호에 계속)

 


작가노트
언젠가 초밥에 관한 소설을 쓰려고 했는데, 이 소설이 정말로 그때 내가 쓰려고 했던 초밥에 관한 소설인지는 잘 모르겠다. 초밥에 관한 소설을 쓰기로 마음먹은 건 집 근처에 새로 초밥 가게가 생겼을 때다. ‘로봇 초밥’이라는 이름의 가게인데, 들어가 봐서 자세한 사항은 모르겠지만 정말로 로봇(이라고 해봤자 기계 팔이겠지만)이 초밥을 만드는 모양이다. 원고료가 들어오면 그 로봇 초밥을 한 번 시켜 먹어볼 작정인데, 계속 시켜 먹을지는 잘 모르겠다.

 


김쿠만
2020년 웹진 《던전》에 입장. 2021년 문예지 《에픽》에 입장. 2022년 제16회 《쿨투라》 신인상, 제5회 한국과학문학상 가작 수상. 2022년 소설집 『레트로마니아』 출간.

 

* 《쿨투라》 2022년 8월호(통권 98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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