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월평] 이별을 대하는 자세: 〈유미의 세포들2〉
[드라마 월평] 이별을 대하는 자세: 〈유미의 세포들2〉
  • 김민정(드라마평론가, 중앙대 교수)
  • 승인 2022.08.03 0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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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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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수능을 준비하던 10대 학창 시절, 만해 한용운이 독립투사라는 것 때문에 눈에 힘을 잔뜩 주고 엄숙하게 읽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꼬북칩을 먹으며 소파에 기대어 다시 읽은 『님의 침묵』은 전혀 다른 느낌이다. 해방, 독립, 광복과 같은 크고 무거운 짐을 벗겨내고 보니 이건 누가 뭐래도 완벽한 사랑시다. 그것도 열렬히 불타오르던 사랑이 끝나고 나서 찾아온 지독한 이별의 대서사시.

‘사랑도 사람의 일이라, 만날 때에 미리 떠날 것을 염려하고 경계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 이별은 뜻밖의 일이 되고, 놀란 가슴은 새로운 슬픔에 터집니다.’

떠나간 님의 그림자에 대고 구구절절 하소연하는 저기 저 솔직하고 우매한 사랑을 보라. 괜스레 내 가슴까지 덩달아 먹먹해진다. 떠난 님을 향해 ‘죽어도 눈물 흘리지 않겠다’며 끝까지 자존심을 지킨 시인 김소월의 ‘진달래꽃’식 역설 화법과는 너무나 비교된다.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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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동시대 이별법

2022년 ‘지금 여기’의 이별은 과연 어떤 얼굴일까. 무척 궁금하지만 그렇다고 거울에 비친 나의 얼굴과 마주할 자신은 없다. 이럴 땐 압도적 이별 경험담을 자랑하는 ‘친애하는 드라마’ 씨에게 물어볼 수밖에.

2022년 대한민국의 봄은 만남과 이별의 화려한 파노라마였다. 배우 최우식, 김다미의 〈그해 우리는〉으로 시작해 배우 김태리, 남주혁의 〈스물다섯 스물하나〉를 거쳐 배우 손석구, 김지원의 〈나의 해방일지〉까지. 바야흐로 연애의 계절이었다.

세 편의 로맨스 드라마는 독특하게도 만남이 아닌 이별에 방점을 찍는다. 로맨스는 로맨스인데, 제각각 다른 이별론으로 대변되는 연인들의 이야기랄까. 〈그해 우리는〉은 이별 후 십 년만에 다시 만난 두 남녀의 감정변화에 초점을 맞춘다. 일방적으로 대차게 차였던 최웅은 다시 만난 전 여친 국연수에게 소금을 마구 뿌린다. ‘김치 싸대기’ 이후 새롭게 등장한 K-분노 표출법! 모두 예상했겠지만 그 소금은 극 후반 인생의 ‘빛과 소금’으로 신분 상승하여 단짠단짠 신혼부부 시너지를 만들어낸다.

〈스물다섯 스물하나〉은 두 남녀 주인공이 세계 최강의 케미를 선보이며 막강 팬덤을 구축한 올해 최고의 인기작이다. 하지만 두 사람은 마지막 회에 이별을 감행함으로써 시청자들을 집단 멘붕에 빠트렸다. 그럼에도 둘은 꿋꿋하게 자기 길을 갔는데… 백이진은 다른 남자의 아내가 된 나희도에게 다정한 안부를 건네고, 그녀는 그에게 응원의 마음을 전하는, 세계 최강의 ‘쿨한 ex-관계’를 보여주었다. 아, 그들이 사는 세상. 여기는 할리우드인가. 결국, 드라마와 시청자들 역시 결별하는, 드라마 안과 밖이 유기적으로 결합하는 완벽한 이별 서사가 완성되었다.

〈나의 해방일지〉는 가슴 아픈 이별을 경험한 두 남녀가 만들어가는 애틋한 사랑 이야기이다. 그런데 그들의 만남은 사랑인 것도 같고 아닌 듯도 하여 참으로 복잡미묘하다. 영화 〈라스베가스를 떠나며〉를 떠올리게하는 그들의 사랑은 너무나 비극적이어서 함께 있어도 서로를 그리워하는 듯 가슴이 아파진다. 이보다 애절하고 애틋한 사랑은 세상에 없는 것처럼 그들은 서로를 아낌없이 ‘추앙’한다. 그리고, 매일 이별하는 독특한 사랑법으로 시청자의 ‘추앙’ 또한 가득 받아낸다. 그리하여 드라마는 끝났지만 시청자들은 ‘추앙커플’에서 헤어나오질 못하고, 그렇게 종영인 듯 종영 아닌 듯한 상태로 시청자들은 슬픈 해피엔딩을 맞이하고야 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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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애하는 드라마 씨에게

이 글을 읽고 있는 그대는 어떤 이별에 마음이 더 오래 머물까. 궁금하다. 하지만 사실 어떤 선택을 하든 그것은 그저 취향일 뿐이다. 누가 옳고 누가 틀리다고 판단할 수 없고 판단해서도 안 된다. 사람마다 사랑의 얼굴도 다 다르고 이별의 표정도 다 다르다. 그렇게 자기만의 사랑론을 가지고 우리는 이별과 마주한다.

물론, 드라마를 읽는 시선도 다 다르다. 드라마를 보는 백 명의 사람이 있다면 드라마를 읽는 백 개의 시선이 존재한다. 사람은 그 자체로 하나의 시선이고, 세상을 이해하는 관점이다.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시선 중에서 나는 ‘이별’이라는 지극히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눈을 가져와 나만의 드라마를 재창조해낸 것이다. (〈그해 우리는〉에서 ‘소금’에 집착하는 이가 몇이나 되겠는가. 나 말고.)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이 마음 한구석에 깊이 넣어둔 자기만의 이별을 떠올려볼 지금, 나는 야심에 차게 또 하나의 드라마를 가져와 많은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시즌제 드라마라서 너무나 고마운, 나의 최애 드라마. 〈유미의 세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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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미의 세포들

드라마 〈유미의 세포들〉은 메가 히트작인 동명의 웹툰을 원작으로 한다. 하지만 나는 그 웹툰을 보지 않았고, 그래서 드라마를 보는 내내 마음 졸이며 주인공들의 로맨스에 더욱더 몰입할 수 있었다. 유미가 남자친구‘들’과 헤어질 때마다 내 연애가 끝난 것처럼 절망하고 깊은 상실감을 느꼈다. 말랑말랑한 심장, 이것이 바로 드라마평론가의 최고 덕목이다. 음.

시즌1과 시즌2를 거치는 동안 드라마에는 두 번의 이별이 나온다. 주인공 유미는 시즌1에서 구웅과 만났다가 헤어지는데, 이때 이별의 원인은 ‘자존심’이다. 구웅은 가난한 처지를 들키기 싫어 이별을 통보하고, 유미는 여전히 그를 사랑하는 마음을 들킬까 두려워 이별에 동의한다. 시즌2에서 유미는 같은 회사에 다니는 유바비와 연애를 또 한다. 사랑의 상처는 새로운 사랑으로 잊는다는 로맨스의 공식처럼. 예전부터 회사 동료로 알고 지내던 유바비 역시 얼마 전 여친과 헤어진 상태다.

새롭게 시작한 두 연인이 맞이한 이별의 원인은 무엇일까. 아이러니하게도 ‘새로움’이다. 환승연애를 했던 두 사람 앞에 나타난 또 하나의 인연. 유바비가 대학생 인턴에게 마음이 흔들렸다는 걸 알게 된 유미는 이별을 결심한다. 자신과 대학생 인턴 사이에 존재하는 강력한 ‘기시감’. 아, 이게 무슨 운명의 장난이란 말인가.

결국, 유미는 자신을 얽어매고 있는 뫼비우스의 띠에서 벗어나기 위해 인생 최대의 결단을 내린다. NO LOVE. 만남과 이별, 행복과 불행, 상처와 회복이 반복되는, 연애의 전형적 서사 패턴에서 벗어나는 길은 오직 하나, 사랑이 없는 삶을 지향하는 것이다. 두 번의 이별로 타의적 솔로가 되었던 유미는 이제 자발적으로 싱글의 삶을 선택하여 작가로서 소설 쓰기에 매진한다. 연인과 주고받은 사랑의 흔적은 쓸모없는 쓰레기가 되었지만, 밤낮으로 열심히 쓴 글은 두둑한 통장 잔고가 되어 삶의 여유로움을 남긴다는 걸 깨닫는다. 음냐, 이 드라마는 내가 쓴 것이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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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포들의 유미

〈유미의 세포들〉을 시즌2까지 보면, 딱 이런 생각이 든다. 지금 누군가를 사랑하는 자, 지금 연애하는 자, 모두 모두 똥 멍청이. 한 마디로, 사랑과 연애를 하지 말라는 얘기로 오해하기 딱 좋다. 자, 다시 이 글의 시작으로 돌아가 보자. ‘사랑도 사람의 일이라, 만날 때에 미리 떠날 것을 염려하고 경계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 이별은 뜻밖의 일이 되고, 놀란 가슴은 새로운 슬픔에 터집니다.’ 한용운의 『님의 침묵』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것은 ‘사랑’도 ‘이별’도 아니다. 바로 ‘아니지만’이다. ‘그러나, 그럼에도’로 이어지는 감정의 아이러니. 우리 안의 다중인격, 나의 달콤살벌한 다중이.

극 중 유미의 세포들은 하나의 인격화된 존재로 유미 안에 있는 복잡미묘한 감정의 결을 생동감 있게 표현해준다. 슬픔이 그냥 슬픔이 아니고 이별이 그냥 이별이 아니다. 여느 로맨스 드라마가 감정을 주고받는 누군가의 ‘여보 당신 그대’에 주목한다면, 〈유미의 세포들〉은 감정의 근원이 되는, 내 안의 또 다른 ‘나’ 그리고 다양한 ‘나’의 존재론적 관계성에 주목한다. 내 안에 내가 너무나도 많아. 덕분에 이미 다 알고 있는 만남과 이별의 과정임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 것이 굉장히 낯설고 새롭게 다가온다. 아, 로맨스의 진정한 고수가 나타났다. 늘 처음처럼. 첫사랑만 N번째인 그런 느낌적 느낌.

혹시 지하철에서 커다란 혀를 닮은 여자가 두 눈을 감고 있으면 조용히 지나가 주시길. 자는 게 아니라 마음 안 세포들의 목소리를 듣는 중이니까. 음. 나의 원픽은 ‘혀세포’. 음, 사랑의 트위스트. 음음. 그 뻔한 사랑 이야기를 왜 또 보냐는 따가운 눈총은 저 멀리 안드로메다로 날려버리고, 오늘도 난 〈유미의 세포들〉 시즌3을 애틋하게 기다린다. 쉘 위 댄스?

 

 


김민정
‘한 사람이 한 권의 책’이라는 생각으로 문학과 문화를 분주히 오가며 나만의 장르를 만들기 위해 열심히 글을 쓰고 있다. 지은 책으로 드라마 인문교양서 『당신의 삶은 어떤 드라마인가요』 『당신의 밤을 위한 드라마 사용법』 에세이 『언니가 있다는 건 좀 부러운 걸』 소설집 『홍보용 소설』 이 사람 시리즈 『한현민의 블랙 스웨그』 등이 있다. 세상에 있는 모든 사람 이야기에 관심이 있다.

 

 

* 《쿨투라》 2022년 8월호(통권 98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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