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월평] 장르들로 이루어진 소설: 에르베 르 텔리에, 이세진 옮김, 『아노말리』(민음사)
[문학 월평] 장르들로 이루어진 소설: 에르베 르 텔리에, 이세진 옮김, 『아노말리』(민음사)
  • 허희(문학평론가)
  • 승인 2022.08.02 0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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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문학이 대세인 시대이다. 장르문학이라는 용어 자체가 낯선 사람도 물론 있을 테다. 고려대한국어대사전은 장르문학을 다음과 같이 풀이한다. “추리, 무협, 판타지, 에스에프 등 특정한 경향과 유형에 입각한 문학. 대중의 흥미와 기호를 중시한다는 점에서, 순수문학이나 본격문학과 상대되는 대중문학으로 분류된다.” 좀 더 설명을 덧붙이자. 가령 추리 소설은 미심쩍은 살인이 일어나고, 그 사건의 범인을 잡으려는 탐정이 등장해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는다. 셜록 홈즈 시리즈가 대표적이다. 살인은 중차대한 일이다. 하지만 독자는 희생자가 겪었을 공포에 감정 이입하기보다는, 탐정을 따라 사건의 단서를 추적하는 과정에 관심을 기울인다. 이것이 장르문학이 가진 “특정한 경향과 유형”의 한 가지 사례이다. “대중의 흥미와 기호”보다는, 예술적 성취를 중시 여기는 순수문학(본격문학)이라면 당연히 전자에 초점을 맞췄으리라.

그렇구나, 고개를 끄덕일 수 있겠지만 이러한 관점에는 문제가 있다. 과거에는 장르문학(대중문학)과 순수문학(본격문학) 간의 경계가 뚜렷했을지 몰라도, 오늘날에는 양자의 구분선이 희미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김초엽(『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지구 끝의 온실』), 김영하(『살인자의 기억법』, 『작별인사』), 가즈오 이시구로(『나를 보내지 마』, 『클라라와 태양』)의 작품이 그러하다. 이 소설들은 사전적 의미의 장르문학(대중문학)과 순수문학(본격문학)의 틀 가운데 어느 한쪽에만 속하기를 거부한다. 장르적 요소와 기법을 순수문학(본격문학)이 차용한 지 오래이며, 순수문학(본격문학)이 추구하는 예술적 성취도 장르소설(대중문학)과 별개가 아니다. 문학을 규정하는 이분법적 태도를 지양하지 않으면 요즘 각광받는 작품을 이해하기 어렵다.

올해 5월 말에 번역 출간된 『아노말리』라는 장편소설도 마찬가지이다. 이 소설은 청부살인업자의 행적을 다룬 스릴러 장르, 둘 사이의 밀고 당기는 연애를 그린 로맨스 장르, 인간의 실존을 고민하는 철학 장르 등의 색채가 다채롭게 섞여 있다. 이를 뭐라고 불러야 좋을까. 이 작품을 쓴 작가 ‘에르베 르 텔리에’ 스스로는 이렇게 말한다. “장르소설이 아닌 ‘장르들로 이루어진 소설’을 쓴 것”이라고. ‘장르들로 이루어진 소설’이라면 각 재료의 고유한 맛을 잃어버린 잡탕이지 않겠느냐고 우려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아니다. 『아노말리』는 “SF와 형이상학적 미스터리가 우아하게 혼합되었다.”(워싱턴포스트)라거나, “하이콘셉트 플롯으로 풀어낸 자유 의지, 운명, 현실, 그리고 존재 이유에 관한 감동적인 실험. 수준 높은 오락과 진지한 문학의 교집합과도 같다.”(뉴욕타임스)라는 외신의 찬사를 받았다.

언론의 공치사는 믿을 수 없다고 여기는 날카로운독자도 적지 않겠지. 그럼 이 정보를 공개하면 어떨까. 『아노말리』는 프랑스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공쿠르상 2020년 수상작이고, 프랑스에서만 110만 부가 판매되었으며, 그 인기에 힘입어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 45개국에 출판되었다는 사실 말이다. 그동안 공쿠르상은 문학적 완성도가 뛰어난 대신 사변적 성격이 강한 작품들이 주로 받아 독자가 읽기에 녹록지 않았다. 한마디로 흥미진진한 독서는 아니었다는 뜻이다. 그런데 프랑스를 비롯하여 독일과 미국 등에서 베스트셀러에 올랐다니, 그것은 “수준 높은 오락과 진지한 문학의 교집합”이라는 찬사가 과장이 아님을 방증한다. 작품내적으로는 어떠한가. 우선 제목부터 보면, 아노말리L’anomalie는 “이상, 변칙, 모순”로 옮길 수 있는 단어이다. 이 소설에는 정말로 이상하고, 변칙적이며, 모순적인 사건이 발생한다.

시작은 2021년 3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파리에서 출발해 뉴욕으로 향하는 비행기가 난기류에 휘말려 위기를 겪는다. 다행히 추락 사고는 일어나지 않았다. 착륙에 무사히 성공한 것이다. 진짜 ‘아노말리’한 사건은 그로부터 세 달 뒤에 일어난다. 그때와 똑같은 비행기가 동일 지점에서 난기류를 만나 착륙해서다. 놀라운 점은 비행기 기종만 같은 게 아니라, 안에 타고 있던 사람들마저 똑같았는 데 있다. “동일한 승객들을 태운 동일한 비행기가 두 번 착륙”한 불가사의한 일이었다. 어리둥절한 미국 정부는 6월에 출현한 비행기를 억류하고 국가비상사태에 대비한 ‘프로토콜 42’를 실행한다. 뭔가 그럴듯해 보이지만 프로토콜 42를 따른다고 뾰족한 수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 3개월을 전후로 한 세상에 두 명의 ‘자신’이 존재하게 된 상황이 공권력의 개입으로 명쾌하게 해결될 수 있는 성질의 사안은 아닌 탓이다.

이 작품을 쓴 작가 ‘에르베 르 텔리에’ 스스로는 이렇게 말한다. “장르소설이 아닌 ‘장르들로 이루어진 소설’을 쓴 것”이라고.

“SF와 형이상학적 미스터리가 우아하게 혼합되었다.”(워싱턴포스트)

“하이콘셉트 플롯으로 풀어낸 자유 의지, 운명, 현실, 그리고 존재 이유에 관한 감동적인 실험. 수준 높은 오락과 진지한 문학의 교집합과도 같다.”(뉴욕타임스)


이미 ‘내’가 살고 있는 곳으로 돌아가 ‘나’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가 관건이다. 각자의 처지에 따라 결말은 때로는 희극적으로, 때로는 비극적으로 맺어진다. 누군가는 형제나 친구에 비할 수 없는 친밀성을 가진 또 다른 ‘나’를 만났다고 기뻐하고, 누군가는 본인의 비밀을 공유할 수 없다는 이유로 또 다른 ‘나’를 없애버리려고 한다. 한편으로는 그러한 다중 우주—분신을 인정하지 않는 테러리스트까지 활개치는 등 다양한 결과값이 나타난다. 이상의 여러 가지 양상을 구현하는 방식이 정밀하다는 점도 인상적이다. 이는 에르베 르 텔리에가 소설가인 동시에 수학자라는 사실과 연관된다. 그는 “잠재적 문학의 작업실”이라고 불리는 울리포OuLiPo의 회장이기도 한데, 이들은 실험적 글쓰기를 통하여 문학의 외연을 넓히는 창작을 시도한다. 문자로 형상을 만드는 캘리그램calligram을 예로 들 수 있다. 이 소설의 마지막도 그러하다.

이 작품을 한국어로 옮긴 번역가 이세진은 후술한다. “작가는 원래의 텍스트를 비밀에 부친 채 번역가가 알아서 텍스트를 창조하고 모래시계에서 모래가 떨어지는 모양으로 문자를 지우고 해체한 후 ‘fin(end, 끝)’만 남겨줄 것을 주문했다. 그래서 원서에 없는 문장을 완전히 새로 만드는, 번역가로서는 난생처음의 경험을” 하게 만든 소설. 그러니까 독자로서도 왕성한 호기심이 생길 수밖에 없다. 도대체 어떠한 서사가 펼쳐지기에 이와 같이 종결되는가? 오랜만에 궁금증을 불러 일으키면서, 알맹이가 충실한 소설을 읽었다. 장르문학이 대세라고 썼지만, 정확하게는 “장르소설이 아닌 ‘장르들로 이루어진 소설’”이 대세가 아닌가 싶다. 김초엽, 김영하, 가즈오 이시구로, 그리고 에르베 르 텔리에가 빼어난 작품으로 예증하듯이.

 

 


허희
대학과 대학원에서 문학을 공부했다. 2012년 문학평론가로 활동을 시작해 글 쓰고 이와 관련한 말을 하며 살고 있다. 2019년 비평집 『시차의 영도』를 냈다

 

 

 

* 《쿨투라》 2022년 8월호(통권 98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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