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호의 나마스테!] 내가 사모하는 일에 무슨 끝이 있나요 - 시인 문태준
[조용호의 나마스테!] 내가 사모하는 일에 무슨 끝이 있나요 - 시인 문태준
  • 조용호(소설가)
  • 승인 2019.03.25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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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모라는 말은 사랑과는 다릅니다. 사모라는 말은 누군가를 가슴속에 모시는 의미지요. 남녀의 애정을 넘어선 좀 더 우주적인 표현입니다. 어두워지는 순간에 나는 돌이고 꽉꽉 우는 까마귀이고 나무이고 풀벌레라는, 이 우주속 아주 작은 생명일 뿐이라는, 내 존재가 너의 존재와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이번 시집에 조금 있는 것 같습니다.”

 

 

 사모한다는 말에는 깊은 곳에서 길어 올린 따스하고 질긴 정감이 배어 있다. 사랑이라는 말보다 더 헌신적 이고 지극한 느낌이다. 『내가 사모하는 일에 무슨 끝이 있나요』(문학동네)는 나라는 존재가 얼마든지 돌과 꽃 과 새와 나무로 바뀔 수 있는 이 우주에서 다른 대상을 사모하는 일에 무슨 끝이 있을 수 있는지 묻는, 문태준(48)의 일곱 번째 시집이다.

그는 “내가 들어서는 여기는/ 옛 석굴의 내부 같아요// 나는 희미해져요/ 나는 사라져요// 나는 풀벌레 무리 속에/ 나는 모래알, 잎새/ 나는 이제 구름, 애가哀歌, 빗방울”이라고 ‘저녁이 올 때’썼다. 누군가를 사모할 때 목소리는 그래야 하는 것처럼 광화문에서 만난 문태준은 작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가 하는 말은 또렷하게 들렸다.

 

 

 “자연에 대한 생각이 조금 바뀐 것 같습니다. 공유하는 자연 같은 거죠. 예를 들어 수로에 흐르는 물이나 저수지의 물을 여러 생명들이 공유하는 그런 느낌, 외할머니가 시 외는 소리를 듣는 게 나뿐 아니라 생명이 있는거나 없는 거나 여러 존재들이 동시에 경험하고 동참한다는 느낌이 좀 더 강화된 것 같습니다. 자연은 평면적이고 평온한 대상이 아니라 실제로 알고 보면 내적인 동력을 가진 세계지요. 자연의 서정을 입체적으로도 표현해보고 싶었어요.”

 

 

 이전 시집들과 차별화되는 지점에 대해 물었을 때 문태준은 ‘공유하는 자연’과 ‘입체적인 서정’에 대해 언급했다. 서정시의 맥을 이어온 문태준이 한 발짝 더 밀고 나아간 단아한 ‘신서정’이 이번 시집에 촘촘하다. 고요하고 정적인 연못 풍경이 아니라 ‘달이 연못을 밟는’, ‘야생의 흰 코끼리가 연못을 밟는’, 그리하여 ‘온순하고 낙천적인 투명 유리를 깨트리는’, 평면적인 서정을 입체적으로 바꾸는 ‘단순한 구조’가 그렇다. ‘어릴 적 어느 날 들었던 외할머니의 시 외는 소리’를, ‘해마다 봄이면 외할머니의 밭에 자라 오르던 보리순 같은 노래’를, ‘몰래 들은 어머니와 누나와 석류꽃과 뻐꾸기와 햇빛과 내가 외할머니의 치마에 그만 함께 폭’ 싸였다는 고백 또한 그러하다.

 

 

 문태준의 외할머니, ‘이제 모서리가 닳고, 울분도 모르는/ 어깨도 없이 마냥 안쪽으로 안쪽으로 웅크린 돌’ 같았던 ‘장봉순 할머니’는 그를 많이 아꼈던 정이 많은 할머니였다. 경북 김천 외곽 황악산 자락 가난한 산골 동네에서 태어나고 자랐는데, 아버지 어머니가 남의 집 일하러 떠나기 위해 아침 일찍 직접 가꾸는 작은 채마밭에 들르면 이웃마을 외할머니가 우렁각시처럼 메고 간 흔적이 느꺼웠다.

 

 

 문태준은 고등학교 때까지 문학에는 뜻을 두지 않았으나 기자가 되기 위해 고려대 국문과에 들어갔다가 문학동아리에서 접한 신경림, 김용택 등의 시집들을 끼고 여름방학 때 고향 마을에 돌아와 자두와 포도농사를 도우며 시의 움을 틔우기 시작했다. 1994년 《문예중앙》 신인문학상으로 등단한 뒤 불교방송 피디로 입사해 일하면서 조금 늦게 2000년 첫 시집 『수런거리는 뒤란』을 펴냈다.

이후 그는 2~3년 간격으로 성실하게 『맨발』, 『가재미』, 『그늘의 발달』, 『먼 곳』, 『우리들의 마지막 얼굴』들을 꾸준히 상재했고 굵직한 문학상을 줄줄이 받으면서 신서정의 기수로 각광받았다. 평론가 신형철은 그를 두고 ‘다정증多情症’ 환자라고 규정하면서 그것은 소중한 환후患候인데 그가 낫지 말아야 우리가 산다고 쓴 적 있다.

 

 

 “청소년기에 큰 병을 앓아 내 앞에 캄캄한 죽음이 있다는 걸 느꼈던 충격이 계속 남아 있습니다. 열 살 무렵 새싹처럼 가슴에 움텄던 첫사랑도 아직까지 남아 있는 게 신기합니다. 사람들에 대한 애석하고 애틋한 생각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마음의 여지, 유연함에 대한 가치가 제 시에 남아 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활동하는 내면을 스스로 보게 한다든지, 그런 것을 환기시킨다면 제 서정의 역할로 족하다고 생각합니다. 서정은 구태요 낡은 것이라는 이야기는 수긍하기 어렵습니다. 서정 아닌 것들도 사람과 세계를 움직이게 하지만, 어떤 사람의 생각이나 사회 시스템을 부드럽게 다른 자리로 옮겨놓는 게 서정의 힘입니다.”

 

 

 문태준은 열다섯 살 무렵 고열과 환청에 시달리는 큰 병을 앓았다. 멀리 떨어진 읍에서 무당을 모셔다가 밤새도록 굿을 벌였고 마당에 그를 내다놓고 멍석에 말아 악귀를 쫓는 의식까지 행했다. 동네 사람들도 집에 들러 마을에서 귀염받던 그가 살아 있는지 안부를 묻고 갈 정도로 심각한 국면에서 살아났다.

간단히 병을 앓고 난 정도가 아니라 이처럼 큰 의식을 치렀으니 그의 무의식에 죽음이 어느 정도 각인됐을지 짐작할 만하다. 이성복 시인은 문태준을 두고 “늙은 아이 같고 아이 늙은이 같은 장수하늘소 한 마리”라고 썼는데, 그것은 자신의 성장기 죽음 체험과 무관하지 않은 것 같다고 했다. 늙은 아이, 그 동심은 이번 시집에 동시로도 담겼다.

 

 

 “엄마는 나한테 가랑잎 같은 잔소리를 해요/ 그래도 나는 엄마에게 쪼그만 가랑잎이 되어요/ 엄마 무릎 아래/ 잠이 올 때까지 가랑잎처럼 뒹굴어요”(「가을」) 이 엄마, “그릇과 수저처럼 닳은 어머니/ 나의 밤에 초승달 같은 어머니”가 지난 몇 년 동안 항암투병을 했다. “고서古書같이/ 어두컴컴한/ 어머니// 샘가에 가요/ 푸른 모과 같은/ 물이 있는/ 샘가에 가요// 작은 나뭇잎으로/ 물을 떠요// 다시/ 나를 업어요/ 당신에게/ 차오르도록”(「샘가에서-어머니에게」)

 

 

 그가 올해 불교방송 입사 22년차다. 불교적 세계와 호응하는 그에게는 결과적으로 시쓰기에 도움이 되는 직장이 아니냐고 물었더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곳에서도 잠시 시련이 있어 춘천으로 옮겨간 적이 있었는데 그 기간 그는 물을 접하면서 호수 연작을 쓰기도 했다.

절망도 자산인 시인의 특권이 부럽긴 하지만 오후에 출근해서 밤늦게 퇴근하는 라디오 피디라는 직업, 일상에서 시를 가두고 살기에는 벅찬 직업이다. 그는 편성과 제작을 책임지는 중책을 거쳐 지금은 밤 아홉시 자용스님이 진행하는 <최고의 하루>를 맡고 있다. 문태준은 “나의 등 뒤에는/ 수평선이/ 한결같이 따라온다”면서 “아아 이 숙명을 …나는 어쩔 수 없다”던 박목월의 제주시편을 언급하면서 ‘시의 불’에 대해 말했다.

 

 

 “생업의 일들을 해야 하니까 시가 마음속에 살아있도록 하는 게 쉽지는 않아요. 내 가슴속에 시의 불이 꺼지지 않도록 하는 게 중요하죠. 그러면 시는 언제 어디서든 쓸 수 있으니까요. 시라는 것이 늘 수평선처럼 등 뒤에 따라다녔으면 좋겠어요.” 

 

 

* 《쿨투라》 2019년 3월호(통권 57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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