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일보] ‘사물어 사전’ 출간…사물들이 숨어 있던 표정·무늬에 귀 기울여
[경북일보] ‘사물어 사전’ 출간…사물들이 숨어 있던 표정·무늬에 귀 기울여
  • 곽성일 기자
  • 승인 2022.08.09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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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어사전
사물어사전

1992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한 후 꾸준한 작품 활동으로 개성적인 시세계를 구축해 온 홍일표 시인이 산문집 ‘사물어 사전’을 도서출판 작가에서 출간했다.

‘2022년 우수출판콘텐츠 제작 지원’ 사업 선정 도서인 이번 산문집은 저자인 홍일표 시인이 사물들의 이면에 숨어 있던 표정과 무늬들을 만나 소통하며 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인 총 128편의 산문이다. 일상의 다양한 사물들을 읽어내는 감각적 시선과 존재론적 성찰이 짧은 형식의 글을 통해 빛을 발한다.

시인은 “‘모자’를 보고 ‘보아뱀 속의 코끼리’를 발견한 사람들이 비누를 호명하면 그는 곱고 유려한 목련의 어조로 답을 할 것이다”고 상상하고, ‘무명화가의 짧은 생애가 남긴 마지막 유품’인 ‘말라 비틀어진 붓 하나’ 속에서 “겨우내 눈 감고 있던 숭어가 어디선가 조용히 눈 뜨고 있을 것 같았다”고 고백한다.

또한 서랍궁(宮)에 유폐되어 ‘철저한 고독 속’에 살아가는 호치키스를 불러내며 “그에게는 아직 여러 척의 철선이 남아 있기 때문에 어느 날 서랍궁의 문이 활짝 열려서 철컥철컥 그의 노동이 다시 계속되는 것을 보았으면 좋겠다”고 얘기한다. “미시령 옛길은 본래 ‘뿌리’가 낳은 수려한 작품이며, 괴산 소수면에 가서 따온 옥수수에는 지난날 백면서생(白面書生)의 여물지 않은 언어를 좌판에 함부로 내놓은 죄가 잘 보인다”고 말한다.

이처럼 저자는 사물들이 발언하는 내용에 귀 기울이면서 규범도 전형도 없는 ‘낯선 다름’을 독자에게 이야기한다. 너무 익숙하여 미처 알아보지 못한 사물들의 이면에 숨어 있던 표정과 무늬들을 삶의 여러 양태와 연결지어 새로운 사유의 영역으로 독자를 이끈다. ‘인간의 일방적 시선에 의해 해석된 사물의 어록’이 아니라 시인의 시선과 미적 상상력이 직조한 어록이다. 산문집 ‘사물어 사전’의 행간 속에 함축된 홍일표 시인의 은유와 철학이 깊고도 아름답다.

 

본문 링크: http://www.kyongbu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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