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 마지막 산문집 '우주생명학'
[오마이뉴스] 마지막 산문집 '우주생명학'
  • 쿨투라 cultura
  • 승인 2022.08.22 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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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삼웅의 인물열전 / 시인 김지하 평전 73] 76세이던 2017년 초 절필을 밝히면서 그동안에 남긴 원고를 출판사에 넘겼다
▲  시인 김지하
ⓒ 이종찬

70대 후반이면 건강한 사람도 기력이 크게 쇠약해진다.

긴 옥살이와 고문을 겪고 정신적 고뇌, 여기에 시대와 불화 그리고 거듭된 필화ㆍ언화로 입은 마음의 상처는 쉬이 씻기지 않고 쇠약해진 영육을 갉아먹다. 

76세이던 2017년 초 절필을 밝히면서 그동안에 남긴 원고를 출판사에 넘겼다. 하나는 앞에 소개한 마지막 시집 〈흰 그늘〉이고 나머지가 신작 산문집으로 정리한 〈우주생명학〉의 원고였다. 마지막 저서 두 권을 펴낸 손정순(시인ㆍ〈쿨트라〉 발행인)의 증언이다.

2017년 1월 지하 선생님께서는 나를 원주로 부르셨다. 홍용희 교수와 함께 원주 댁에서 선생님을 모시고 시내 카페로 갔다. 선생께서는 2014년 갑오(甲午) 12월 15일부터 2016년 12월 31일까지 2년에 걸쳐서 쓴 원고뭉치를 내밀었다. 1권의 시집 노트와 우주생명학에 대해 당신의 생각을 매일 쓴 노트 4권이었다. 선생께서는 매체에 한 번도 발표하지 않은 미발표 신작 시집 〈흰 그늘〉과 신작 산문집 〈우주생명학〉을 내게 맡기며, 생전에 펴내는 '마지막 저서'라고 선언하셨다.

출판계약서에 사인하시는 선생님께 글을 안 쓰시면 많이 외로우실 텐데 앞으로 어떻게 지내실지 여쭈었다. 그러자 선생님은 이제 그림만 그리시겠다고 하셨다. '마지막'이라는 말에 눈물이 핑 돌았다. 하지만 믿지 않았다. (주석 12)
김지하 회고록 〈흰 그늘의 길〉

▲ 김지하 회고록 〈흰 그늘의 길〉 김지하 회고록 〈흰 그늘의 길〉
ⓒ 학고재    

〈우주생명학〉은 1부 〈궁궁弓弓 유리 화엄 대개벽〉, 2부 〈우주생명학(1)〉, 2부 〈우주생명학(2)〉, 3부 〈우주생명학(3)〉으로 구성되었다. 서문이다.

나는 최근 누군가를 나도 모르게 더듬어 찾고 있었다.
누굴까?
잃어버린 선생 수운(水雲)이시다.
그런데 겨울 어느 날 선생님이 오셨다.
그래서 이 책이 시작된다.
모른다.
나는 이 책이 이제부터의 이 나라와
세계의 길이라는 것, 그것뿐!
그리고 짧은 '시김새'와 함께
나는 이제 어릴 적의 한(恨)〈그림〉으로.
그리고 저 산으로 돌아가는 것
그것뿐! (주석 13)

마지막 저서 〈우주생명학〉은 240쪽에 불과한 산문집이지만 그의 사유와 사상ㆍ철학이 오롯이 담긴 역저이다. 주제에 따라서는 섹트와 픽션이 섞이고 실제와 상상력이 부딪치는 등 논리성은 부족하지만, 그만이 갖고 있는 사유의 세계를 여전히 식지 않은 입담과 필력으로 종횡무진한다. 다음 대목을 보자. 

미국 노암 촘스키가 인정했듯이 한국은 지난 60여 년 동안에 어렵게도 그 엄혹한 분단 속에서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달성하였다. 

이제 새로운 국가목표가 제시되고, 근본적인 요구인 '남녀ㆍ음양ㆍ빈부'등의 본질적 해방과 평등이 성취되는 '통일'과 '동서사상 화합'과 세계 인류의 새 길을 이끌어 갈 '참 메시지 민족의 길'을 창조해야 하고 우주와 생명의 큰 변화 속에서 참다운 '선후천융합대개벽(先後天融合大開闢)'을 이루어야만 한다.
그것이 '궁궁弓弓 유리 화엄 대개벽'이다.

이미 다 공언되어 있듯이 '궁궁(弓弓)'은 동학의 진정한 세계상이요, '유리'는 정역(正易)의 앞으로 올 춘분ㆍ추분 중심의 4천년 유리세계와 '세계 여권운동'의 상징적 목표인 '유리천정'의 그 '유리'다. 그리고 당나라 여자 임금 측천무후가 창안한 상업시장인 '유리창'의 표현이다. (주석 14)

김지하가 말년에 쓴 원고를 정리하여 마지막 책으로 엮은 손정순의 견해이다. 

김지하 시인 스스로가 2여 년의 시간을 통과하며 그의 시학과 미학사상을 정리하며 펴낸 시집 〈흰그늘〉과 산문집 〈우주생명학〉은 한 개인의 문학사적 위치와 작품의 성과를 묻기에 앞서, 온갖 모순과 혼돈으로 점철된 21세기 속에서 우리의 동질성과 주체성을 어떻게 세워갈 것인가 하는 새 길, 새 문명에 대한 질문과도 맞닿아 있기에 더욱 의미 있는 작업이라 믿는다. (주석 15)

 

주석
12〉 손정순, 〈김지하의 시학과 미학사상을 정리한 마지막 저서〉, 〈쿨투라〉, 2022년 7월호.
13〉 〈우주생명학〉, 〈작가의 말〉, 작가, 2018.
14〉 앞의 책, 12쪽.
15〉 손정순, 앞의 책, 81쪽.

 

원본 링크: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8575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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