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수미와 ‘함께 보는 미술’] 카메라 나투라: 강홍구의 신안 바다
[강수미와 ‘함께 보는 미술’] 카메라 나투라: 강홍구의 신안 바다
  • 강수미(미학. 미술비평. 동덕여자대학교 교수)
  • 승인 2022.09.01 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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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안 바다 - 뻘, 모래, 바람》 전시 전경, 2022원앤제이갤러리 제공, 촬영 이의록
《신안 바다 - 뻘, 모래, 바람》 전시 전경, 2022원앤제이갤러리 제공, 촬영 이의록

강홍구의 개인전 《신안 바다-뻘, 모래, 바람》을 보러 북촌의 원앤제이 갤러리에 들어서자마자 마주하게 되는 작품이 있다. 당구대에 그린 〈신안 전도〉다. 속칭 ‘당구다이’ 두 쪽을 맞댄 표면에 전라남도 신안군 일대를 그린 것이다. 갤러리 초입에 걸린 위치만큼이나 내용 면에서도 전시 도입부 역할을 한다. 당구대라는 것이 사실, 제 주위로 사람들을 끌어당기고 한번쯤은 모서리에 걸터앉아 폼 잡게 하는 매력이 있지 않은가. 그것처럼 〈신안 전도〉는 관객을 유인하고 이내 전시장 안쪽에서 본론으로 보게 될 ‘신안 바다’에 대해 한편으론 제각각 아는 체를 하며, 다른 한편으론 작가가 포착한 자연을 상상하며 한참을 서 있게 한다. 강홍구 작가는 큐대를 쥔 손들이 들고나고 빨강·노랑·흰색 공들이 굴러다녔을 당구대의 짙은 푸른색 깔개천이 마치 진짜 바다색이기라도 한 양 그 혼방직물 위에 신안의 섬들을 물감으로 그려놓았다. 흑산도나 홍도, 비금도처럼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유서 깊은 섬부터 만재도나 가거도처럼 최근 몇 년 방송을 통해 친근해진 섬까지 말이다. 72곳 유인도부터 953곳 무인도까지, 합쳐서 1,000곳이 넘는 다도해, 그 신안군도群島의 일부를 어선, 참돔, 새우, 문어, 돌고래 등과 함께 일러스트 한 것이다.

강홍구, 〈뻘밭, 어의도〉, 2022. 캔버스에 디지털 프린트와 드로잉 콜라주, 138 x 276 cm, 원앤제이갤러리 제공
강홍구, 〈뻘밭, 어의도〉, 2022. 캔버스에 디지털 프린트와 드로잉 콜라주, 138 x 276 cm, 원앤제이갤러리 제공

그 점에서 〈신안 전도〉는 사실fact이 아니다. 제목은 ‘전도全圖’지만 부분만 그렸고, 지리학이나 해양생태학의 데이터와는 거리가 먼 그림형상이기 때문이다. 애초 자연 다큐멘터리 같은 것도 아니다. 〈신안 전도〉는 작가가 태어나고 자라서 선생 직까지 했던 변방, 만학으로 홍대 미대 회화과에 진학하며 떠난 고향, 지난 17년 간 꾸준히 다시 찾아 사진 찍으면서 자신 안에 잔존한 과거와 현재 간의 “틈”을 절감한 지역으로서 신안을 주관적으로 그린 그림이기 때문이다. 작가는 그 “틈”을 “익숙한 낯설음 혹은 기시감을 지난 미시감”(작가노트)으로 정의했다. 그리고 2005년부터 지속적으로 작업한 결과 방대한 양이 쌓인 신안 사진들에서 고르고 고른 천여 장과 그와 병행한 회화, 드로잉 작품을 다시 선별해 1부와 2부로 나눠 선보인다. 올해 《신안 바다-뻘, 모래, 바람》이 1부인 셈이다. 짧은 문장 속에 욱여넣었지만, 이로부터 강홍구 작가의 개인사적 배경과 작업 이력을 눈치 챌 수 있을 것이다. 또 1990년대 초부터 현재까지 그가 지속해온 창작의 주 매체가 사진이라는 점과 예술 형식으로서 회화가 사진과 공조하고 있다는 점도 알 수 있을 것이다. 요컨대 강홍구의 작업은 사적인 차원의 경험적 구체성과 객관적 차원에서 주어진 대상의 사물성이 함께 작용하는 속성을 띤다. 그러기에 〈신안 전도〉는 전시의 대표작은 아닐지라도 상징적이고 흥미롭다.

강홍구, 〈신안 전도〉, 2022. 천 위에 아크릴, 260 x 280 cm, 원앤제이갤러리 제공
강홍구, 〈신안 전도〉, 2022. 천 위에 아크릴, 260 x 280 cm, 원앤제이갤러리 제공

사진-회화; 타블로

강홍구는 30년 전, 한국사회의 속물적 풍경이나 할리우드 영화 스틸에 자신의 얼굴을 조합한 디지털 이미지 합성 《나는 누구인가?》 연작을 통해 주목받기 시작했다. 당시 작품의 이미지는 의도적으로 조악했고 작품에 담긴 메시지는 냉소와 비판을 버무린 것이었다. 그리고 2022년 현재 《신안 바다》는 제목이 명시하듯 수많은 섬들을 품고 있는 서해안 ‘자연’이 주제다. 1부 전시를 설명한 작가의 말로는 “신안의 풍경이 중심이며, 해양생물들의 삶과 죽음도 포함”된다는 것이다. 덕분에 전시작들은 신안 일대를 스펙터클하게, 장엄하게, 정겹게, 신비하게, 희한하게, 두렵게, 동화같이 등등으로 보여준다. 또 계절에 따라, 날씨에 따라, 풍량과 습도와 온도에 따라, 나아가 대상(사방으로 펼쳐진 뻘밭, 섬을 향해 안개 속으로 사라지는 배와 건설 중인 다리…)에 매혹당한 작가의 시선에 따라 유일무이해진 그때 그곳의 존재(있음)를 미학적으로 제시한다. 가령 기점도, 화도, 어의도의 갯벌 사진 위에 작가 자신이 유년기에 그리 놀았던 기억을 되살려 벌거벗은 아이와 바다 생물들을 덧그린 〈뻘밭〉 삼부작(2022)은 자연스럽지만 허구적이다. 또 해양화 형식을 따라 가로로 길게 편집, 인화한 〈만재도 1〉(2018)은 미역으로 빽빽이 덮인 만재도의 바위들을 마치 영화 〈반지의 제왕〉 속 중세 풍경처럼 신화적으로 그로테스크하게 묘사한다. 요컨대 《신안 바다-뻘, 모래, 바람》전시작들 각각은 카메라에 담긴 그곳의 객체적 자연과 강홍구 작가만의 후반작업 표현법(디지털 합성, 사진 위에 회화)에 힘입어 사진-회화 타블로로서의 미학을 맘껏 패러프레이즈 한다. 하지만 작가, 작업의 정체를 어느 쪽으로 나눌까?

강홍구, 〈홍도 1〉, 2019. 피그먼트 프린트, 130 x 140 cm, Edition of 5, 원앤제이갤러리 제공
강홍구, 〈홍도 1〉, 2019. 피그먼트 프린트, 130 x 140 cm, Edition of 5, 원앤제이갤러리 제공

핵심만 말하자면, 강홍구는 지금까지 수십 년의 긴 작가 경력 동안 사진을 주 매체이자 표현 기제로 쓰되 ‘사진예술’보다는 더 복합적인 의미에서 ‘현대미술’을 하고 있는 작가다. 전자가 피사체, 사진 내재적 조건들, 사진의 역사, 장치와 기법, 렌즈를 통한 이미지에 토대를 두는 예술이라면, 후자에서는 매체 내적 규범 대신 작가가 주제의 구현이나 지향하는 미학에 따라 사진 영상의 언어를 취한다. 강홍구가 비단 회화를 전공했기 때문에 자동적으로 그의 사진이 현대미술작품들로 분류되는 것은 아니다. 작가가 말하고자/표현하고자 해온 시각적 내용이 사진, 회화, 드로잉, 이미지 콜라주 등 여러 형식을 매개로 변주돼 왔다는 점이 중요하다. 그리고 그런 강홍구에게 사진은 변주의 기본 툴 중 하나이고 유연한 장치로서 제몫을 해왔다는 점이 근거다. 여태 그의 작품들은 디지털 사진 합성, 사진 위에 채색하거나 형상을 겹쳐 그리기, 회화적 구성으로 사진이미지 변질시키기 등을 통해 만들어졌다. 이를테면 그것이 강홍구만의 ‘현대미술로서 사진이미지’를 위한 포스트프로덕션 법이다. 단지 기교나 표현방식이 아니라 주제를 시각이미지로 변신시키는 스위치 역할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잠깐, 서두에 소개한 〈신안 전도〉는 온전히 그림이다. 드론촬영, 항공사진, 인공위성이미지 등 맘만 먹으며 쉽게 찍거나 구할 신안 해도海圖를 바탕에 까는 대신 당구대 천에, 강홍구는 자신의 손과 마음(기억, 상상력, 정서)을 포개 그 지도 아닌 지도를 그렸다. 이 작품 외에 개인전에 나온 모든 작품이 작가가 찍은 신안 사진을 바탕으로 한 것과는 달리 말이다. 자연 다큐 사진의 객관적 기록을 비껴나고, 또한 수십 년 동안 자신의 인장 같았던 ‘현대미술로서 사진이미지의 구성’에서 스스로 벗어나서 말이다.

이제 문제는 타블로다. 프랑스어로 ‘타블로tableau’는 영어로 ‘picture’이고, 미술 분야 우리말 번역은 통칭 ‘그림’으로 통한다. 그런데 이렇게 서로 다른 세 언어가 원어의 맥락이나 지역과 상관없이 회화와 사진에 혼재되어 쓰이고 있다. 게다가 지금처럼 ‘사진’이 동시대 미술의 전면으로 부각된 데는 독일 뒤셀도르프학파를 필두로 사진이 현대회화처럼 대형화, 스펙터클화, 정교화, 조형화한 힘이 크다. 앞서 본 연재에서 다룬 ‘안드레아스 거스키’의 사진이 대표적이다. 강홍구의 신안 바다 사진들도 그에 못지않다. 비교하는 말이 아니다. 실제 현대미술경향을 축으로 볼 때 둘의 사진 작업은 같은 미학적 속성에 있다는 의미다. 여기서 중요한 맥락은 사진을 광학(디지털)기술에 의한 이미지 혹은 카메라라는 인공장치의 결과로 한정하는 대신, 그럼으로써 자꾸 사진의 중립성과 객관성에 대한 논쟁으로 힘을 빼는 대신, 예술로서 사진이 어떤 힘을 가져야 하는가이다.

강홍구, 〈만재도 1〉, 022 240 x 100 cm, 2018, 피그먼트 프린트, 작가 제공
강홍구, 〈만재도 1〉, 022 240 x 100 cm, 2018, 피그먼트 프린트, 작가 제공

카메라 나투라

강홍구의 신안 사진들에 대해 어떤 비평 언어를 부여해야 할지 고심하다가 ‘카메라 나투라Camera Natura’를 생각해냈다. 라틴어로 ‘camera’가 ‘[사진의] 방’을 뜻한다는 사실은 롤랑 바르트의 명작 『카레라 루시다Camera Lucida』를 통해 익숙할 것이다. 이에 출생, 자연, 본래, 천성, 본질 등을 뜻하는 ‘natura’를 더하면 좀 넓은 의미로 강홍구의 신안에 부합할 것 같다. 이를테면 태어난 곳, 육지와 먼 자연, 그리고 작가가 타블로를 통해 기억하고 싶고 새롭게 포착하고자 하는 본질적 공간으로서 ‘자연 사진의 방’ 말이다. 혹시 ‘카메라 나투라’를 나보다 먼저 쓴 경우는 없는지 구글링을 하니 동명의 스웨덴 잡지(www.cameranatura.se)가 검색된다. 자연사진 전문 잡지로서 북유럽의 소규모 출판사가 일 년에 네 번 발간하는데, 주로 “장엄한 산 파노라마, 황량한 사막, 북유럽의 여름정원, 고대의 신비를 담은 숲” 등이 실린단다. 그러나 다행히도 내가 강홍구의 신안에서 주목한 ‘카메라 나투라’는 그런 범凡 자연적인 피사체가 아니다. 자신의 뿌리였으나 이제는 상실한 곳, 그로부터 생각과 말과 행위와 취향이 자라나온 자연의 공간이기 때문이다.

강홍구, 〈암태도 1〉, 004 240 x 90 cm, 2015, 피그먼트 프린트, 작가 제공
강홍구, 〈암태도 1〉, 004 240 x 90 cm, 2015, 피그먼트 프린트, 작가 제공

강홍구의 초기작 《나는 누구인가?》 와 《신안 바다-뻘, 모래, 바람》만 놓고 보면, 그 시각적 수준이나 미적 경험의 질 면에서 둘은 대극對極 같다. 그 사이에 강홍구 작가가 비판적 주제를 버리고 심미적 사진에 몰두했던 것일까? 한 때 스스로를 “B급 작가”로 긍정했던 작가가 이제는 거장인 체하는 것일까? 이상한 답처럼 들리겠지만, 강홍구는 사진의 비/객관성을 전제로 그것을 주 매체로 써온 작가다. 또 회화의 시각질서를 자신의 창작 DNA로 습득했지만 그 순수미술의 경전을 자기 식으로 약화시켜온 미술가다. 여기에 결정적인 사실을 더하자면 지난 세월 동안 강홍구는 《그린벨트》, 《드라마 세트》, 《오쇠리 풍경》, 《은평 뉴타운에 대한 어떤 기록》, 《사람의 집-프로세믹스 부산》연작들을 통해서 한국의 리얼리티를 비판적으로 얇게 저미듯 주제화해왔다. 1960년대 군부정권시절의 개발논리부터 21세기 글로벌 자본주의의 공간학proxemics까지, 드라마 제작을 위해 조성된 현실 장소부터 픽션보다 더 가상적인 재개발 폐허까지 말이다. 때문에 내가 보기에 강홍구는 사실상 사진과 회화의 타블로를 분리해 생각한 적이 없으며, 역으로 그저 단순한 눈요기로서 타블로를 제작한 적이 없다. 또 그는 주어진 피사체 없이 사진을 가공한 적이 없는 만큼이나 생각 없이 그림을 그려온 것 같지 않다.

옆에서 보면 큰 힘을 들이지 않고도 의미 있는 작품을 해내는 미술가가 있다. 그런 이의 작업은 언뜻 성글게 짠 그물에서 많은 것들이 빠져나가듯이, 의도든 아니든 핵심에서 슬며시 비껴난 것들이 이미지의 수면 위로 떠오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기에는 어떤 호소력이 있다. 그래서 좀 더 오래, 깊이 들여다보면 그 미술가에게는 원하는 표적만 포획하고 나머지는 애초 자기 것이 아니라는 듯 권위를 털어내는 초연함과 자족성이 작용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그 초연함과 자족성이 곧 자연스럽다. 감상자 입장에서는 그로 인해 느슨한 끌림과 멜랑콜리한 자극을 느끼고, 스펙터클에 박힌 어떤 갈고리를 찾아 해독하고 싶어지게 한다. 강홍구 작가와 그의 사진, 회화 작업이 그렇다.

 


강수미 미학. 미술평론. 동덕여자대학교 예술대학 회화과 부교수. 『다공예술』, 『아이스테시스: 발터 벤야민과 사유하는 미학』 등 다수의 저서와 논문 발표. 주요 연구 분야는 동시대 문화예술 분석, 현대미술 비평, 예술과 인공지능(Art+AI) 이론, 공공예술 프로젝트 기획 및 비평. 현재 한국연구재단 전문위원, 국립현대미술관 운영심의위원, 《한국미학예술학회》 편집위원, 《쿨투라》 편집위원.

 

* 《쿨투라》 2022년 9월호(통권 99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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