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llery] 김봉준 초대전: “고달파도 꽃길” 걸어요 - 김봉준 작가를 만나다
[Gallery] 김봉준 초대전: “고달파도 꽃길” 걸어요 - 김봉준 작가를 만나다
  • 손희(본지 에디터)
  • 승인 2022.09.01 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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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고달파도 꽃길〉(2019), 유화 10호
〈소-고달파도 꽃길〉(2019), 유화 10호

인사동 무우수 갤러리에서 판화가이자 조각가인 김봉준 작가의 《고달파도 꽃길》전이 8월 3일부터 15일까지 열렸다. 이 전시는 우리 전통미술을 알리기 위해 꾸준히 ‘k-art’ 시리즈 기획전을 선보이고 있는 무우수갤러리에서 마련한 세 번째 전시였다.

전시가 열리는 첫날 8월 3일에 갤러리를 찾았다. 공식 오프닝은 8월 6일로 잡혀 있어서 한산하리라 생각했지만 백낙청 선생님, 이태호 미술평론가, 이승철 시인 등 오랜 지인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전시장으로 들어서자 신화 속으로 날아간 느낌이 들었다. 한때 민중문화운동과 생명사상을 통해 민중과 소통하려던 작가는 이제 신화의 세계를 통해 삶의 본질을 만나고 있었다. 우리의 삶은 고달파도 꽃길을 걷고, 외면할 수 없는 현실이 꽃길이길 바라는 소망이 담겨있었다. 고단한 삶 속에서도 변하지 않고 DNA처럼 전해져 오는 민중들의 삶의 근원에 대한 천착이 작가를 신화의 세계로 이끌었는지도 모른다. 고달픈 삶의 실존을 직관한 3층 전시관의 ‘간절한 살림’과 나라의 정체성이란 무엇이고 어떻게 지향하는 것이 좋은지를 궁리한 4층 전시관의 ‘간절한 나라’가 어우러져 《고달파도 꽃길》전이라는 통쾌한 역설을 만들었다. 전시 제목과도 너무나 잘 어울리는 전시였다. 작품을 관람하다보면 삶은 울고 있지만 예술 창작은 슬픈 우리 시대를 볼 수 있다. 작가의 예술세계가 전시제목처럼 간절하게 느껴진다. 김봉준 작가는 이번 전시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나는 예술가 이전에 장인입니다. 조선의 장인정신부터 배우고 익숙하게 내 몸 속에 모시고 싶었죠. 조선의 붓이 고구려벽화로부터 왔음도, 조선화의 주류가 민화 불화 풍속화 진경산수화 초상화란 것임도, 나의 흙조각을 서구 모더니즘조각보다 조선조각 전통의 계승에서 두고 있음도 증명하고자 했습니다. 그 증거가 오늘의 전시입니다. 무엇을 그릴 것인가는 그 다음문제이죠. 어떻게 그리고 만들 것인가가 먼저였습니다. 예술형식이 목숨처럼 소중한 것은 창작 예술인의 숙명입니다. 말의 개념보다 어투이며, 소통의 방식을 먼저 공부하고자 했습니다. 숲으로 간 한 예인은 근본부터 공부하기를 시작하며 겨우 세 고개를 넘었습니다. 목판화 고개, 붓그림 고개, 질조각 고개입니다. 오늘은 질조각 고개 마루에서 나를 돌아봅니다.

그동안 살, 흙, 숨과 같은 원형이미지를 찾아 고구려 벽화 속의 겨레 붓그림과 다른 한편으로는 조선 도공의 질항아리와 이어지는 질조각 공부에 매진해와서일까? 작품 〈고구려여신〉과 〈도깨비〉가 낯설지 않고 오랫동안 소통하던 우리의 이웃처럼 다가온다.

작품 〈해월海月〉 속의 동학의 교주였던 최시형의 질그릇 두상이나 작품 〈위안부〉 속에서는 아직도 민중을 이야기하고 민중과 소통하려는 작가의 민중적 삶의 자세와 역사적 인식이 변치 않았음을 느낄 수 있다. 〈해월海月〉이나 〈위안부〉는 결국 해원解寃을 통해 우리의 역사를 고달프지만 꽃길로 해석하고 싶은 작가의 소망이 담겨 있다.

백낙청 선생 말씀대로 우리에게 모더니즘은 ‘감당하면서 극복하기’입니다. 역사는 무턱대고 건너뛰기는 불가하지요. 적응하면서 극복하는 이중 과제를 나의 예술에서도 겪어내야만 했습니다. 이 경로를 현실로 감당하게 한 것이 문화운동이었습니다. 민과의 소통인 민중문화운동으로 감당하며 생명사상과 문화로 극복하기였죠. 모더니즘에서 휴머니즘의 미를 배우면서도 인간중 심주의 미학은 경계했습니다. 신산고초를 겪으면서 삶에서부터 신명의 미를 찾아 나섰습니다. 김지하 선생 말씀처럼 ‘생명에너지의 확대된 자아’로 신명의 미를 준거 삼았습니다. 생명에는 다 마음이 있고 영혼이 있다는 아시아 범신론, 동학의 물아동포物我同胞 사상과 인내천 일원론에서 나의 미술은 탈모더니즘의 이식론적 근거를 찾습니다.

작품 〈신화상징공부〉와 〈우리토템들〉 등을 통해서는 해학의 호랑이부터 아즈텍의 태양신까지 다양한 신화 속 삶의 본질을 찾아가는 작가의 작품 세계를 엿볼 수 있다. 우리 한민족은 오랫동안 곰이나 호랑이 등의 토템사상을 통해 우리들의 삶의 방식과 생각을 표현하였다. 작가는 이러한 토템사상을 우리 민족의 근원에서 아메리카 대륙 원주민의 토템까지 사고의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신화의 내용에 맞추어 창세, 마을, 건국, 토템, 여신, 동이 문명신화 등으로 전시장은 채워졌다. 유화나 채색화의 신화 그리기는 고구려의 고분벽화에 나타난 춤이나 해신과 달신 등의 도상을 응용하기도 하고, 신상에는 복식 차용과 함께 무속화의 정면상을 따른 퀭한 눈 표정의 인물화법이 눈에 띈다. 공동체민주주의의 방역 성공신화를 상징화한 〈K방역신화〉, 한국민주화의 실존인 인권에서 한류의 원천을 배우는 〈인권신화〉(설치미술, 2020)도 새롭다. “고달픈 생명들의 간절한 실존을 직관”하고 “나라의 정체성을 동이문명 르네상스”로 묻는 작가의 간절한 예술혼이 깃든 작품들이다.

〈인권신화〉(2020), 설치미술
〈인권신화〉(2020), 설치미술

고대 〈빌렌도르프 비너스〉와 〈각시탈〉로부터 다산을 기원하던 여러 조각 작품과 〈소〉나 〈호랑이〉 등의 모습에서 문명의 원형을 탐구하는 무궁한 작가의 작품 세계를 만날 수 있다. 남미의 태양신 조각과 각시탈의 모습, 귀면鬼面이 시대와 공간을 초월하여 자연스럽게 하나가 되는 모습 속에서 삶의 본질적 가치가 보편적 가치로 통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어쩌면 〈모자母子상〉 속의 젖을 문 아이의 평화로움이 결국 작가가 꿈꾸는 궁극적 세상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결국 어머니는 평화와 안식의 상징이다. 질그릇 〈코로나 랩소디〉 속의 기도를 다시 한 번 돌아보게 한다.

단군과 관련한 고조선 신화를 비롯해 고구려나 신라의 건국신화, 대지의 어머니 아버지 신화, 도깨비 신화, 저승길 신화 등 열 개 주제에 맞추어 조각상을 배열해 구성해 놓았다. 수묵이나 유채의 붓그림과 더불어 테라코타로 제작한 조각상은 신상임에도 위엄이나 숭고함보다 김봉준의 기존 판화나 붓그림과 다름없는 어눌함과 친근한 해학이 물씬 넘친다. 인류의 출현을 알라는 남자 여자상, 누이나 어머니로 표상되는 여성 신상은 물론이려니와, 토템 신앙과 관련된 곰과 호랑이, 소, 말, 개, 염소, 닭, 새, 나비, 물고기 등이 그러하다. 이런 동물조각이나 부조의 형상미는 기존 판화나 붓그림의 서정과도 상통해 있다. 특히 흙을 판처럼 늘여 타래미를 만들어 타렴질하는 전통적인 옹기 방식을 활용한 점도 김봉준답다.”고 말한다.
- 이태호 교수, 「김봉준의 40년 예술 여정, ‘붓 굿’」 중에서

전시회장을 찾은 백낙청 선생께 작품을 설명하는 작가
전시회장을 찾은 백낙청 선생께 작품을 설명하는 작가

김봉준 작가는 “이 땅에서 새로 창조되어 온 예술들을 있는 그대로 봐 주었으면 좋겠다.”라며 전시의 소회를 밝혔다. 또한 “아시아 전통을 모시면서도 창작으로 거역하는 ‘이중모순의 진리’가 한류에는 있어 보인다. 세계의 젊은이들은 한국이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성취하며 풍기는 한류의 매력을 알아차렸고, 아시아 동쪽의 작은 나라인 한국 문화의 힘을 주목하기 시작”했고 이에 질세라 중국의 동북공정 문화공정이 드세고 일본의 질투심이 유치한 복수로 반격하지만 “한류의 기초예술이 중심 잡고 더 잘해야 한다.”고 말한다. 자꾸만 아름다운 고구려 벽화 그림에 눈길을 주자 작가는 2022년 7월에 새로 작업한 작품 〈대륙의 영혼〉이라며 꼼꼼히 설명해주었다.

빛, 생명의 씨앗, 번성, 고구려 고리국이 예맥으로 이어지는 영성 〈대륙의 영혼〉
빛, 생명의 씨앗, 번성, 고구려 고리국이 예맥으로 이어지는 영성 〈대륙의 영혼〉

이 그림의 춤은 쭉쭉 뿌리면서 가는 춤인데 대륙을 향해서 뻗어나가는 그런 인간의 어떤 실존과 국가의 정체성 이런 것들을 문화적으로 읽을 수 있는 힘찬 고구려 춤입니다. 이게 나중에는 북방 계열의 봉산탈춤이나 강령탈춤에서 볼 수 있는 뿌리는 춤의 원조로 나아갔다고 봐요. 그리고 이 작품 속에 상징에 많이 들어와 있는데 이게 불과 물이에요. 그 당시에 불과 물은 가장 원형적이고 신화적인 요소죠. 그리고 번창하는 생명 풀잎, 이 풀뿌리는 우리의 번성을 의미하고, 고구려 벽화에는 없는 저 버드나무는 이쪽 북방 동이족들에서는 거의 당산나무처럼 숭배하는 나무입니다. 왜냐하면 가까이 물을 찾게 해주는 그런 상징이 숨어있기 때문이죠.

〈K방역신화〉(2020), 160x120cm 질부조
〈K방역신화〉(2020), 160x120cm 질부조

빛, 생명의 씨앗, 번성, 고구려 고리국이 예맥으로 이어지는 영성, 그래서 이 작품은 〈대륙의 영혼〉이라며 작가가 직접 들려주는 작품 속 신화에 대한 해박한 해석은 감상의 수준과 즐거움을 드높여주었다.

이번 전시회를 기획한 무우수갤러리 양효주 학예실장은 “우리 선조들은 모든 생명의 영성을 믿었으며 성스러운 가치를 추구하고 교신交信을 소망하였다. 어쩌면 현대사회가 겪는 여러 분쟁과 갈등과 상처는 이러한 생명사상과 생태문화를 잃어버렸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생명의 본질과 모성성을 추구하는 김봉준의 예술세계는 우리로 하여금 그동안 외면해왔던 근원성을 상시키며 생명의 품으로 회귀할 것을 촉구한다. 우리는 다시 찾은 이 원시의 힘으로부터 상처를 치유받고 미래를 위한 무한한 상상력을 키울 수 있게 된다.” 고 말한다.

《고달파도 꽃길》의 작가 김봉준은 홍익대학교 미대 조소과 졸업하고 재학시절부터 민속문화연구회를 이끌며 탈춤에도 심취했다. 1982년 ‘두렁’을 창립해 목판화, 벽화, 걸개그림, 붓그림과 한글 쓰기 등 민중의 삶에 살아있는 ‘산 그림’ 작업을 추구했음은 초기 민중미술 운동의 선도였다. 1980년대 후반 미국에 한인마을 풍물교사로 갔을 때 아메리카 대륙의 원주민 문화의 만남에서 시작해, 2002년부터 본격적으로 신화 여행을 떠났다. 그는 2005년 시베리아대륙을 자동차로 일주하는 ‘유라시아 빛’ 랠리 단장도 한 적이 있다. 답사를 거듭하고 글을 쓰는 가운데, 신화 세계에 새로이 눈떴다. 동시에 이들이 현재 인류가 처한 여러 모순을 해결할 대안으로 ‘오랜 미래’임을 수긍하게 되었다. 〈토템신화상징과 대지신화상징〉(2000)에서 테라코타 작품을 제작하기 시작하였으며, 〈동북아여신신화와 상징 비교연구〉 프로젝트(2007), 〈다문화공생 지역문화만들기〉 프로젝트(2009) 등을 주관하기도 하였다. 〈굿과 동학〉(2021)에서 해월사상과 삶을 주제로 전시회를 하는 등 공동체와 역사적 삶 속의 민중을 표현하는 작업을 충실하게 수행해 오고 있다. 저서 『숲에서 찾은 오래된 미래』(2000), 『신화순례』(2012) 등을 출간하였다.

 


 

 

* 《쿨투라》 2022년 9월호(통권 99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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