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 탐방] 세련된 순수와 단순의 미학: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 & 화가 장욱진
[미술관 탐방] 세련된 순수와 단순의 미학: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 & 화가 장욱진
  • 김명해(화가, 본지 객원기자)
  • 승인 2022.09.01 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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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그란 나무속에 까치가 있다. 산언덕 오솔길로 사람이랑 동물이 보이고, 초가나 기와집 안에는 가족들이 오순도순 모여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다. 넓은 마당에는 아이들이 뛰어다니고, 집에서 키우는 가축들도 아이들과 한 식구마냥 어울려 지내는 평화롭고 행복해 보이는 그림. 바로 장욱진張旭鎭 화가(1917-1990)의 작품 속 풍경이다.

이번 ‘미술관 탐방’은 경기 북부에 위치한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이다. 좀 더 일찍 가고 싶었던 곳인데 거리가 멀다보니 엄두가 나질 않았다. 특히 서울 위쪽은 생전에 갈 일이 없던 곳이라 낯설면서도 감회가 남다르다. 대구를 출발하여 경부·중부고속도로를 달려 의정부JC에서 수도권 제1순환고속도로 송추IC로 진출하면 장흥관광지 내에 미술관이 바로 보인다. 비가 오락가락하는 날씨와 장거리 운전이 힘들긴 했지만 장욱진 화가의 작품을 관람한다는 설렘에 피곤을 잃었다.

서두에서 약간 언급했다시피, 화가 장욱진은 사람이나 동물, 나무, 아이, 새 등 시골마을의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소재들을 단순하면서도 동화적으로 그린 화가이자 김환기, 박수근, 이중섭과 함께 한국의 근현대미술을 대표하는 2세대 서양화가이다.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은 순수한 이상적 내면세계를 추구한 장욱진의 업적과 정신을 기리고 한국현대미술의 발전에 이바지하는 미술작품과 자료를 전시, 연구, 수집을 목적으로 2014년 4월에 경기도 양주시 장흥관광지내에 개관한 미술관이다.

장욱진, 달과 새 The moon and a Bird, Oil on canvas, 41x30cm
장욱진, 달과 새 The moon and a Bird, Oil on canvas, 41x30cm

돔 형태의 천정에 모자이크로 처리된 독특한 미술관안내소를 통과하면 소나무 숲속에 야외 조각공원이 넓게 펼쳐져 있어, ‘미술관이 어디에 있지?’ 하며 두리번거리게 된다. 야외조각 공원에는 양주태생 민복진 조각가의 작품뿐만 아니라 문신·신상호 작가의 작품과 여러 조형물들이 설치되어있고 분수대 및 어린이 놀이터도 있다. 계곡물이 미술관 터를 가로지르며 흐르고 있어 그곳에서 물놀이를 하는 가족은 장욱진 화가의 작품 속 한 장면을 보는 듯하다. 미술관본관은 계곡 넘어 구름다리를 지나야 닿을 수 있는 곳에 위치해 있어 마치 현실공간에서 가상의 세계로 들어서는 기분이 들었다. 특히 미술관은 멀리서 보면 초록 대지 위에 흰 천막집처럼 보이고, 가까이 가서 보면 지그재그모양의 불규칙함과 단순함, 외벽 전체가 하얀색이라 어디가 벽이고 지붕인지 구분이 없는 독특함 그 자체여서 식물원의 온실이나 연구기지 같은 착각도 들었다.

장욱진미술관은 화가 장욱진의 호랑이 그림 〈호작도〉와 집의 개념을 모티브로 최-페레이라(최성희, 로랑 페레이라) 건축에서 설계하여 2013년에 준공한 건물로, 설계자가 단순한 형태로 이상향을 내포하는 화가의 작품을 깊이 있게 이해하고 헤아린 마음에서 탄생한 건축 작품이라고 한다. 건물은 지하 1층(강의실), 지상 1층(기획전시실, 아트숍, 안내, 카페), 지상 2층(상설전시실, 영상실, 사무실) 등의 복합적인 시설들로 구성되어 있고, 미술관 입구는 온실을 연상케 하듯 편안하고 소박하다. 길고 짧은 십자구도의 내부 전시실은 칸칸이 따로 분리되어 있지 않고 규칙적인 관람 동선도 생략되어, 마음이 끌리는 방향으로 자유롭게 작품을 관람할 수 있다.

호작도, 22 x 27.5cm, 캔버스에 유채, 1984, 개인소장
호작도, 22 x 27.5cm, 캔버스에 유채, 1984, 개인소장

현재는 《비정형의 자유, 정형의 순수》라는 주제로 미술관 1층 기획전시실에서 전시 중이다. 《비정형의 자유, 정형의 순수》전은 장욱진의 예술세계를 관통하는 ‘심플SIMPLE’ 정신을 계승하고 현대 작가의 작업과 함께 새로운 시각으로 재해석하기 위한 연례기획전이다. 전시실에 들어서면 장욱진 화가가 백자나 분청사기에 드로잉 한 작품 7점과 새, 물고기, 거북이, 나무, 화초, 선인장, 대나무, 마을 등 한지에 그린 먹그림이 김혜련 작가의 작품과 마주하고 있다. 동양사상에서 찾을 수 있는 무위자연無爲自然과 무욕無慾의 정신이 담긴 장욱진의 필선이 고대 유물에서 비롯된 예술정신을 재해석하여 현대로 재탄생시킨 김 작가의 작품과 닮아있다. 특히 먹색에서 우러나는 중후한 색감과 자유분방한 선면의 표현은 비정형적인 형상을 드러내며 ‘동양화적 무위자연’이라는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그런가하면, 전시실 다른 방향에 전시되어 있는 장욱진 화가의 작품과 이수인작가의 작품도 닮아있다. 최소한의 표현으로 사물의 정수만을 보여주는 장욱진의 〈사람〉(1962), 〈아이〉(1972), 〈눈〉(1964), 〈네 사람〉(1973), 〈집과 식구〉(1967), 〈천막〉(1973) 등의 유화작품과 다양한 매체(회화, 조각, 설치, 자수)를 오가며 지속적인 작업과 불필요한 형태를 제거하고 최소한의 선으로 작업을 하는 이 작가의 작품이 그러하다. 단순한 선과 비정형의 평면으로 보이는 작품들은 많은 고민과 사유, 노동이 축적된 표현과정에 의해 완성된 것이라는 점에서 서로 닮아있고 연결되어 보인다.

명륜동시절 장욱진 ⓒ강운구
명륜동시절 장욱진 ⓒ강운구

2층 2전시실은 《장욱진 에피소드Ⅱ》라는 전시주제로 새롭게 수집한 장욱진 작품을 소개하고 다양한 아카이브 자료들과 함께 전시되어있다. 신소장품으로는, 파울 클레1의 형식과 유사하다는 평가를 받은 대표작 〈집과 아이〉(1959), 기존의 가족그림과는 달리 인물의 형태가 자세히 그려져 있는 작품 〈가족〉(1976), 둥근 얼굴에 새빨간 입술을 한 여인이 비장한 표정으로 갓난아이를 품고 있는 작품 〈생명〉(1984) 및 먹그림Ink Painting, 매직 드로잉Magic Drawin과 화가의 목판화 14점이 실린 성우스님의 시화첩 〈금가락지〉(1980) 등이 전시되어 있다.

전시실은 〈하우스 스토리House Story〉로, 집과 가족의 따스함을 그렸던 화가 장욱진, 생명의 잉태로 시작하여 아이의 탄생과 성장, 가족애로 이어지는 스토리를 세 가지 장면으로 구성하여 화가의 작품 속 이야기를 따뜻한 애니메이션으로 감상하는 공간이다. 가로 7-8m의 긴 화면에 등장하는 기와집, 나무, 황소, 닭과 병아리, 하늘을 나는 새, 가족들은 소박하고 평화롭고 서정적인 분위기의 애니메이션으로 이상향을 꿈꾸며 내적세계를 표현한 장욱진 화가의 작품이 그대로 전달되어 한편의 동화를 보는 듯 따뜻하게 느껴진다.

2022SIMPLE_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_장욱진
2022SIMPLE_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_장욱진

인공지능과 스마트시대인 오늘날, 도시에서 태어나 도시에서 자란 사람들에게 장욱진 화가의 작품 속 풍경은 생소함으로 다가오겠지만 70-80년대 시골에서 성장하며 생활한 필자는 작품 속 장면들이 정겹고 그립다. 아담한 시골집에 열댓 명 정도의 대식구가 모여 살면서 소, 돼지, 강아지, 닭과 병아리, 토끼를 키우고, 벼·사과 농사철에는 온 식구가 다 들에 나가 일을 하고, 사계절의 아름다운 풍경을 배경으로 봄에는 나물 뜯고, 여름에는 친구들과 물놀이 하고, 가을에는 추수 돕느라 바쁘고, 겨울엔 눈 맞으며 뒹굴고 했던 추억이 회상된다.

여름의 강가에서 부서진 햇빛의 파편들이 보석처럼 반짝인다. 수면 위에 떠도는 아지랑이를 타고 동화(童話)가 들려올 것 같다. 물장구를 치고 나체로 뛰노는 아이들의 모습에서 적나라한 자연을 본다. 그리고 천진했던 어린 시절에의 향수가 감미롭고 서글프게 전신을 휘감는 것을 느낀다. 태양과 강과 태고의 열기를 뿜는 자갈밭, 대기를 스치는 여름 강바람, 이런 것들이 나 역시 손색없는 자연의 아들로 만들어 주는 것 같다. 자연의 침묵이 풍요한 내적 대화를 가능케 한다.
- 장욱진 그림산문집 『강가의 아틀리에』 중에서

2022SIMPLE_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_장욱진, 이수인
2022SIMPLE_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_장욱진, 이수인

자연 속에 생활하면서 ‘자연의 아들’ 이고자 했던 장욱진의 그림은 같은 시기에 활동했던 박수근·이중섭 화가의 작품과 비교해 보면, 표현기법과 방법은 완전히 다르지만 당시의 소박한 주변생활모습과 이상향이 작품에 반영되어, 추구하고 전달하고자하는 미적관점이 비슷함을 느낄 수 있다.

4전시실인 〈장욱진 라이브러리Library of Chang Ucchin〉는 키오스크kiosk를 이용하여 장욱진의 예술세계와 생애 전반에 걸친 활동 내용을 살펴보며 시기별 그림들과 음성해설을 한 자리에서 감상할 수 있는 공간으로, 작품의 시대별 흐름과 변화과정을 알 수 있다.

화가 장욱진은 일본에서 미술공부를 마치고, 1947년 김환기, 유영국 등과 한국모던아트의 선구를 이루었던 〈신사실파〉 를 결성하였다. ‘사실을 새롭게 보자’라는 신사실파의 철학대로 장욱진은 형상을 완전히 사라지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내면의 정서를 표현하기 위해 형태를 간결하고 단순하게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작품을 시작했다.

[벽화] 장욱진,동물가족, 회벽에 유채, 209x130cm, 1964,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 소장
[벽화] 장욱진,동물가족, 회벽에 유채, 209x130cm, 1964,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 소장

나는 고요와 고독 속에서 그림을 그린다. 자기를 한 곳에 세워놓고 감각을 다스려 정신을 집중해야한다…(중략)… 번잡한 생활의 소음에 섞여 나도 함께 부유浮遊하다가 돌아오는 곳, 그것은 무섭도록 하얀 나의 캔버스 앞이다. 그 앞에서 나는 홀로 되어 미美를 창조한다. 나의 그림은 빛깔을 통한 내적 고백이며, 내 속에서 변형된 미와 자연의 찬미이다. 하나의 작품이 완성될 때까지의 고통과 희열은 하나하나의 붓 자국에 담겨 그림 속에 스며든다.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미의 승리를 확신하고 캔버스를 향해 감행하는 영혼의 도전이 아닐까. 그래서 나는 내 그림들을 아낀다. 애정으로써 바라본다. 거기에는 나의 진실 된 얘기들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 장욱진 그림산문집 『강가의 아틀리에』 중에서

그의 작품은 마치 아이의 그림처럼 천진하고 꾸밈없지만 구성적 엄밀함과 균형을 갖추고 있어 세련된 순수함과 더불어 서정적으로 다가온다. 평생을 자연 속에서의 소탈한 생활과 삶에 대한 낙천적인 성향을 그림을 통해 동화적이고 이상적인 내면세계를 표현하고자 했던 화가의 삶이 그대로 작품에 스며있기 때문이다.

[벽화] 장욱진, 식탁, 회벽에 유채, 56x148cm, 1963,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 소장.
[벽화] 장욱진, 식탁, 회벽에 유채, 56x148cm, 1963,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 소장.

“나는 심플하다.” 즉 “나는 깨끗이 살려고 고집하고 있노라.”

이 말은 외모를 말하는 것이 아니고, 내 일에 충실하고 그러면 스스로 떳떳한 생활이라고 자부하고 싶다…(중략)…겸손보다는 교만이 좋고, 격식보다는 소탈이 좋다. 적어도 교만은 겸손보다는 덜 위험하며, 죄를 만들 수 있는 소지가 없기 때문이고, 소탈은 쓸데없는 예의나 격식이 없어서 좋은 것이기 때문이다.
- 장욱진 그림산문집 『강가의 아틀리에』 중에서

“나는 심플하다”라고 늘 말했던 화가 장욱진은 새벽시간의 고요와 고독을 좋아하고, 소소한 일상에서 감사함을 느끼고, 절대적으로 작은 화면에 자신의 고백을 가식 없는 손놀림으로 그림을 통해 표현하였다. 그의 그림은 속세를 초탈한 삶을 꾸려가는 은자의 삶에서 나온 자연스런 풍경이자 화가 자신의 진실한 마음의 독백이다.

장욱진, 가족도(A family Portrait), 캔버스에 유채, 7.5x14.8cm, 1972,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 소장
장욱진, 가족도(A family Portrait), 캔버스에 유채, 7.5x14.8cm, 1972,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 소장

 


1 파울 클레(Paul Klee 1879-1940): 스위스의 화가, 판화가. 초기에는 선화나 동판화를 중심으로 사회 풍자를 내용으로 한 캐리커처를 그렸고, 말기에는 아동화 같은 단순한 기호에 의한 작품을 선보였다. [네이버 지식백과] (미술대사전(인명편), 1998 한국사전연구사 편집부)

 

* 《쿨투라》 2022년 9월호(통권 99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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