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작가 감독’ 배창호의 다섯 개의 길
[INTERVIEW] ‘작가 감독’ 배창호의 다섯 개의 길
  • 양경미(영화평론가, 연세대 겸임교수)
  • 승인 2022.09.01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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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어 양경미(영화평론가, 연세대 겸임교수)
사진 설재원(본지 에디터)

올해는 배창호 감독이 데뷔한지 40주년이 되는 해다. 배 감독은 1982년 〈꼬방동네 사람들〉을 통해 빈민촌에 살고 있는 서민들의 삶과 그늘진 사랑을 해학적으로 그려 대종상 신인 감독상을 수상하며 주목받기 시작했다. 1980년대 그는 최고의 전성기를 누렸고 영화작가film auteur(영화의 미학적 관점에서 자신만의 스타일을 이룬 감독을 의미)’로서의 지위를 부여받았다. 올해 데뷔 40주년을 맞아,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의 영화 체험과 작품을 만들며 고민했던 생각과 느낌을 대담으로 정리한 책 『배창호의 영화의 길』을 완성했다. 출간을 앞두고 있는 그를 북아현동의 출판사에서 만났다.

배창호 감독의 영화인생 40년

“영화에서 말하는 점프 컷을 한 것 같아요. 1982년 첫 영화를 찍었던 게 바로 엊그제 같은데 벌써 40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네요. 사실 실감이 나질 않아요.(웃음) 1982년 〈꼬방동네 사람들〉로 데뷔할 당시는 이중검열의 시대였어요. 영화를 개봉하기 전에 시나리오에 대한 사전 심의가 있었죠. 제 영화가 당시 정부당국에서 좋아하는 소재가 아니어서 몇 번이나 반려됐고 우여곡절 끝에 2월 부산에서 첫 촬영을 시작했죠. 그해 7월 서대문에 ‘푸른극장’이 있었는데 재개봉관이 급하게 개봉관으로 바뀌면서 그 기념으로 제 영화를 상영하게 됐어요. 관객들이 꾸준히 들면서 입소문이 나기 시작했고 흥행까지 이어졌는데… 그때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네요.(웃음)”

배창호 감독은 영화를 좋아했던 어머니의 영향으로 영화인의 꿈을 키웠지만 은행원이었던 아버지의 권유로 연세대 경영학과에 진학했다. 대학 연극반에 들어간 그는 대학가에서 꽤 알려진 연극배우로 활동했는데 배우로서 그의 모습은 이명세 감독의 영화 〈개그맨〉에서 발견할 수 있다.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에 다니면서도 영화를 해야겠다는 생각은 놓지 않았어요. 그런데 막상 영화를 하겠다고 하자, 어머니는 불투명한 직업과 미래 때문에 반대를 하셨고 아버지는 제 선택에 지지를 해주셨죠.” 배 감독은 1980년 이장호 감독의 영화 〈바람 불어 좋은 날〉의 조감독으로 충무로의 첫발을 내디딘 이후 1982년 〈꼬방동네 사람들〉로 감독에 데뷔한다.

“내가 첫 작품을 만들어 보고 내 능력이 검증되지 않으면 영화를 그만둬야겠다는 생각으로 최선을 다해 〈꼬방동네 사람들〉을 촬영했어요. 왜냐하면 당시 한국 영화제작 환경이 힘들었고 감독으로서 경제적으로도 여유로운 생활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재능을 인정받지 못하는 곳에 시간을 투자할 수 없다고 생각했죠. 그런데 영화가 공개가 되자, 흥행과 비평에서 좋은 평가를 받아서 계속 영화를 만들 수 있었고 여기까지 왔네요.(웃음)”

이어 〈적도의 꽃〉, 〈고래사냥〉, 〈깊고 푸른 밤〉, 〈기쁜 우리 젊은 날〉, 〈황진이〉 등 1980년대를 대표할 만한 영화를 다수 연출했다. 만드는 작품마다 최고의 평가를 받으며 흥행에도 성공한다. 특히 〈고래사냥〉은 작품성과 흥행성에서 최고의 평가를 받으며 그해 한국영화 흥행 1순위를 기록했다. 이 시기 그의 영화들은 청춘의 상징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영화를 많이 보고 자랐어요. 존 포드와 윌리엄 와일러, 프랭크 카프라, 장 르누아르,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스탠리 큐브릭, 미조구치 겐지 등은 특히 좋아하는 감독입니다. 감독은 자신이 받은 직접, 간접적인 영향들이 작품으로 반영되기 마련인데 그 시절봤던 영화들에 알게 모르게 영향을 받았을 거고 제 작품 속에 어떤 형태로든(스타일적인 면이나 영화를 대하는 태도 등) 다 반영됐을 겁니다.”

한국의 스필버그라 불렸던 배창호 감독은 1990년대 이후 흥행감독으로만 안주하지 않고 예술영화 및 독립영화 형식에 대한 실험으로 새로운 미학을 추구하는가 하면 제작방식에서도 1인 독립영화제작 시스템을 구축하기도 했다. 특히 〈황진이〉는 열정이 아닌 의미로서 영화를 만들었고 〈러브스토리〉와 〈정〉은 영화에 대한 애정으로 영화를 찍었다. 〈황진이〉와 〈정〉, 〈길〉 등의 영화를 통해 배창호 감독은 상업주의 감독에서 작가주의 감독으로서 자리매김했다.

문학과의 만남, 영화작가로서 배창호 감독

“1980년대까지 한국영화계는 화제가 되거나 좋은 평가를 받은 문학작품들을 영화화하는 경향이 많았어요. 특히 베스트셀러의 경우는 흥행에 대한 안정성을 보장받는 것은 물론 관객들의 취향과 맞닿아 있기 때문에 영화화하는 것을 선호했죠. 그때는 관객들도 잘 받아들인 것 같아요. 저는 첫 작품부터 원작이 있는 작품을 했어요. 소설가 최인호 작가의 작품을 많이 했는데, 그분의 작품이 문학적이기도 하지만 영화적인 서사가 잘 갖춰져 있어 영화화하기 좋았죠. 최인호 작가는 다른 감독들과도 많은 작업을 했지만 특히 80년대에는 저와 호흡이 잘 맞아서 많은 작품을 함께 했어요.”

배창호 감독은 대학 선배였던 최인호 작가의 소개로 이장호 감독을 만나면서 충무로에 들어왔고 데뷔작 〈꼬방동네 사람들〉을 시작으로 18편의 작품을 만들었다. 9편이 각색영화인데 이중 6편이 최인호 작가의 원작이다. 그런데 배 감독은 원작소설의 인기에 편승해 흥행작을 만들기 보다는 작품을 보고 영화를 만들었다. 〈적도의 꽃〉, 〈고래사냥〉, 〈깊고 푸른 밤〉 같은 작품들은 영화를 기획할 당시만 해도 베스트셀러가 아니었다. 당시 외화 수입 쿼터를 목적으로 문예영화를 찍던 것과는 달리 오히려 시나리오 작가가 건네준 시나리오 그대로 작업하지 않고 자신의 재각색 과정을 거쳐 영화를 완성했다. “소설에는 영화적으로 구성이 잘 배치된 원작도 있지만 줄거리, 스토리로만 쓸 수 있는 원작도 있어요. 또한 모티브만 제공하는 원작이 있을 수 있죠. 예를 들어 〈적도의 꽃〉은 영화적 구성이 잘 배치가 돼 있는데 미스터 M이라는 주인공의 성격에 완전히 동의할 수 없었죠. 원작에서는 좀 더 특수한 인간심리를 나타내고 있는데 제 영화에서는 보편적인 인물로 변형시켜야 관객들의 공감을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결말에 대한 해석도 마찬가지였고… 박완서 작가의 〈그해 겨울은 따뜻했네〉는 한국전쟁을 그린 작품인데 소설은 아주 훌륭하지만 한 가지 사건에서 제가 공감할 수 없었죠. 소설에서는 언니가 동생을 질투해서 동생을 버리는데, 보편성을 확보하기 위해 언니가 동생을 버릴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6·25라는 환경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버리게 된 시대의 아픔으로 바꾸었어요. 〈황진이〉의 경우는 최인호 작가의 작품인데 그 원작의 경우는 제목과 인물만 가져오고 다 바꿔버린 경우죠.”

원작을 소재로 한 각색영화는 사회문화적 환경과 경제적 논리에 맞도록 내러티브가 변형되며 감독(작가)의 해석에 따라 원작이 재창조된다. 각색하는 과정 하나에서부터 열까지 감독의 선택을 거치며 영화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시대와 배경, 디테일한 부분들을 바꾸는 작업은 물론 작품성과 흥행성을 적절히 배합하는 문제 역시 모두 감독(작가)의 손에 달려 있다. 배창호 감독은 원작을 재해석 및 변형하고 작가의식을 구현해 낸 영화작가였다.

배창호 감독의 새 책, 『배창호의 영화의 길』

“책을 쓴 동기가 제 영화인생에 대해 말하는 것도 있지만 오류를 바로 잡기 위함도 있어요.(웃음) 다른 사람이 나에 대해 말한 왜곡된 이야기, 그동안 수많은 인터뷰를 하면서 와전된 이야기, 지금은 사실이 돼버린 것들을 바로 잡고 싶었죠. 예를 들어 감독이 되기 위해 라디오 극본 공모 1등을 한 시나리오를 들고 영화사를 찾아간 적이 있어요. 그런데 선배 최인호 작가가 《스크린》이란 영화잡지에 화천공사 사장님에게 무릎을 꿇고 “형님, 기획실장 시켜주면 몇 십만 명이 드는 영화를 만들 자신이 있습니다”라고 말했다고 표현했어요. 이건 최인호 선배가 나의 저돌적인 행동을 강조하기 위해 과장되게 묘사한 건데 많은 사람들이 정설로 알고 있더라고요.(웃음) 〈고래사냥2〉가 상영되는 날 극장 앞에서 영화를 본 여중생이 제게 “감독님 공부를 더 해야겠어요”라고 말한 적이 있었죠. 기사를 보면 그 여중생이 맹랑하고 버릇없다고 느껴지겠지만 실제로는 수줍게 다가와 했던 말이거든요.(웃음) 후배 감독인 안재석 감독이 박사논문으로 제 작품을 연구했는데 그때 대담을 했고 저는 그 자료를 책으로 정리했으면 했지요. 제 책을 읽는 독자 그리고 영화에 관심이 있는 분들이 배창호라는 감독이 영화를 만들 때 어떤 고민과 마음가짐을 가졌는지를 함께 공유했으면 좋겠어요.”

『배창호의 영화의 길』은 총 5장으로 나뉜다. 제1장 「시작의 길」에서는 유년시절부터 조감독 시절까지 영화감독이 되기 전의 일화를 소개한다. 제2장 「성공의 길」에서는 데뷔작부터 〈고래사냥2〉를 찍으며 한국의 스필버그라는 칭호를 듣던 시절을 말한다. 제3장과 제4장, 「가지 않은 길」과 「새로운 길」에서는 한국영화계가 산업으로 전환되던 시기 새로운 미학을 추구하며 영화를 제작했던 과정을 소개한다. 제5장 「아직도 가야할 길」에서는 저예산 독립영화를 제작하는 과정을 담았다.

아직도 가야할 길

“몇 해 전쯤 부산영화제에 간 적이 있었어요, 아내와 함께 해변을 걷고 있었는데 멀리서 한 중년여성이 다가와 “감독님의 영화들이 내 마음에 보석같이 남아 있다”라고 했는데 뿌듯하고 행복했어요.(웃음) 그리고 제가 가야할 길은 영화를 만드는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앞으로 영화를 만든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를 다룬 3부작 영화를 만들고 싶어요. 성서를 배경으로 그 시대를 담고 싶은데 이 주제는 오래전부터 생각했던 겁니다. 당장 찍겠다는 것은 아니지만 기회가 되면 찍고 싶어요. 때를 기다리는 거죠. 꼭 이 영화가 아니더라도 내게 맞고 여건이 되는 작품이 있다면 다시 작업을 하고 싶어요. 지금 구체적으로 얘기할 건 안 돼요.”

배창호 감독은 배우, 감독, 제작자, 교수, 영화제 집행위원장으로 다양한 업무를 해왔다. 편안하고 안정된 직업이 주어졌지만 결국에 선택한 것은 매번 감독의 길이었다. 가장 즐겁게 잘 해낼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그는 최근 4년 동안 맡아온 영화제 집행위원장을 내려놓았는데 이유를 묻자 “4년이라는 시간이면 자신에게는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다른 영화인에게도 그 자리에 설 기회를 줘야할 것 같다”라고 말했다.

“한국영화는 산업화로 진입하면서 너무 획일화된 영화만 나오는 것 같아요. 세상에는 다양한 이야기가 존재하는데 다양한 영화들이 부족해요. 어두운 시대에도 밝은 이야기가 있기 마련인데… 균형감을 잃지 않고 다양한 소재와 주제의 영화가 제작되면 좋을 텐데 말이죠.” 배창호 감독은 자본의 영향을 받아 천편일률적으로 만들어지는 작금의 한국영화에 대한 우려를 내비치기도 했다. 자본에 의해 중심을 잃고 흔들릴 경우 영화인들만 타격을 잃고 쓰러지기 때문이다. 배창호 감독이 전하는 말이 현실이 되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다.

 


양경미 영화평론가, 연세대 경제대학원 영상콘텐츠전공 겸임교수, 한국영상콘텐츠학회장, 전)한국영화평론가협회 회장직무대행, 전)영상물등급위원회 등급분류심의위원, 전)영화진흥위원회 예술영화인정소위원회 위원

 

* 《쿨투라》 2022년 9월호(통권 99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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