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Theme] 쿠바를 넘으면 북한이 보인다
[9월 Theme] 쿠바를 넘으면 북한이 보인다
  • 오동진(영화평론가)
  • 승인 2022.09.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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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를 오가며 살고 있는 한-쿠바 협회(부산 소재. 협회장 김이수)의 아바나 담당대표 김묘련 씨의 최근 소식들은 꽤나 우울하다. 쿠바가 하루에 4시간씩 단전을 하는 모양이다. 휘발유와 디젤의 절대적 부족때문이다. 이런 와중에 설상가상으로 지난 8월 6일에는 수도 아바나에서 동쪽으로 100㎞쯤 떨어져 있는 항구도시 마탄사스의 석유 저장 단지 내부에서 대형 폭발까지 발생했다. 아마도 벼락이 원인이었던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엎친 데 덮친 격이다. 쿠바의 단전 단수는 간격이 더 길어질 것이다. 6년 전 쿠바를 세 번째 방문했을 때, 호텔에서조차 오후 2시쯤 물이 나오지 않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란 적이 있다. 아바나 시내에는 오후 시간에 물탱크가 순회하며 필요한 식수를 급수하고 있었다. 마치 우리가 1970년대 중반에 그랬던 것처럼. 쿠바에서의 삶은 실로 녹록지 않다.

쿠바는 피델 카스트로가 1959년 혁명에 성공해서 집권한 이후 그가 살아 있었던 2016년까지 거의 80년 가까이 사회주의 종주국으로서의 자존심과 그 위상을 지켰다. 그가 체 게바라, 카밀로 시엔푸에고스, 라울 카스트로와 함께 친미 부패 정권이었던 바티스타 정부를 무너뜨린 것은 정당하고도 타당한 것이었다. 피델 카스트로가 국가평의회 의장 직을 수행하면서 4백 건이 넘는 테러 위협(그중 상당수는 미국 CIA가 획책한 것이었다.)에 시달리고 그래서 보안과 철권의 통치 행위가 이루어진 것도 일응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1962년의 미-쿠바 미사일 사태는 카스트로로 하여금 더욱 더 쇄국의 국가 운영 방식을 고집하게 했다. 당시 소비에트 연방의 총서기 흐루시초프는 대미 미사일 전진 기지를 쿠바 해변에 배치하려 했고 자신의 코 밑에 요격 기지가 설치되는 것에 아연실색했던 존 F. 케네디는 해안 봉쇄를 명령하며 쿠바를 압박했다. 미-소-쿠바는 핵 전쟁 위기 직전까지 몰렸었다. (그런데 최근 미국과 NATO가 우크라이나 서쪽에 미사일 기지를 옮겨 갈 것을 계획했고 젤렌스키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의 NATO 가입을 천명하며 이를 실현시키려 하자 러시아의 푸틴이 우크라이나 내 러시아 이주민들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전쟁을 일으켰다. 1962년 당시의 역사가 재현되고 있는 셈이다. 씁쓸한 일이다.) 카스트로는 카스트로대로 자국을 보호하려 했겠지만 미국은 미국대로 경제 제재와 교역 봉쇄로 쿠바를 고사枯死 시켜 왔다. 카스트로는 옥쇄玉碎의 결연한 심정으로 쿠바 내부의 자급자족 경제를 천명하며 80년을 버텼지만 실로 버거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현재 쿠바가 겪고 있는 심각한 경제난은 오랜 역사와 전쟁 위기의 산물, 자신의 턱밑에 공산 정권의 생존을 용인하지 않으려 했던 미국 매파, 우파 정치의 산물이다. 쿠바 아바나 해변에서 미국 플로리다 마이애미 해변까지 뱃길 40분 거리이다. 우리의 부산과 일본의 대마도 사이, 영국 도버와 프랑스 덩케르크 사이의 거리이다. 미국은 미국 나름의 논리로서 쿠바 사회주의 정부가 붕괴하기를 바랐던 것이 사실이다.

할리우드 영화감독 올리버 스톤과 피델 카스트로는 절친 사이였던 것으로 유명하다. 올리버 스톤은 2004년 〈피델 카스트로를 찾아서〉란 다큐멘터리를 찍는다. 거기서 피델은 이렇게 말한다. “나는 사회주의 종주국의 지도자로서 신념을 지켰다. 그러나 나는 많은 젊은이들의 소비 욕망을 잘 알고 있으며 그 욕구를 지켜 주지 못한 것에 대해 매우 미안하게 생각한다.” 쿠바 사람들의 평균 임금은 한달 30달러이고 청바지 한벌에 13달러 정도다. 카스트로가 느꼈을 자괴감이 심각했을 것이다.

쿠바는 사회주의 종주국이기 때문에 북한과 맹방이기도 하다. 쿠바는 중남미 사회주의 혁명에 매우 큰 영향을 미쳤으며 또 미쳐왔다. 한때 브라질의 실바 대통령이 권력을 잡았을 때, 볼리비아에서 모랄레스가 대통령이 됐을 때, 무엇보다 베네수엘라의 우고 차베스가 실권을 잡았을 때 쿠바는 중남미 사회주의 블록의 기수가 됐다. 워낙 교육 의료 수준이 높은 쿠바는 주변 국가에 교사와 의사들을 파견하고 대신 석유와 식량 자원을 공수받았다. 우고 차베스의 석유 지원은 쿠바의 경제난에 숨을 트이게 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깐의 일이었고 차베스 실각 이후 석유 공급이 막히면서 다시 불행이 시작됐다.

쿠바와 쿠바 민중이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관광 밖에 없다. 쿠바는 비교적 한반도와 같아서 다른 아무런 자원이 거의 없다. 오로지 사람과 환경 뿐이다. 사람은 똑똑하고 환경은 청정하다. 쿠바에 관광객들이 몰려 가려는 이유다. 피델 카스트로에 이어 잠깐 정권을 잡았던 라울 카스트로(피델의 친 동생이자 혁명 동지)는 그 점을 잘 알았다. 관광을 하려면 개방을 해야 한다. 쿠바가 다원화되고 다양한 정치 외교 체제를 도입할 때가 됐고 그것도 훨씬 지났다고 그는 판단했다. 라울은 혁명 이후 세대인 미겔 디아스카넬에게 권력을 이양했다. 라울은 당시 미국 대통령이었던 버락 오바마를 아바나에 초청했고 미국과의 수교를 단행하기까지 했다. 이제 미국과의 적대 정책을 폐기할 때가 왔다고 그는 판단했다. 그런데 미국에서 도널드 트럼프가 집권을 하면서 미국은 다시 철벽 봉쇄정책으로 돌아섰다. 그럼에도 현 미겔 디아스카넬 대통령은 2018년 집권 이후 꾸준하게 쿠바를 외부에 열 준비를 해 왔다. 불행하게도 코로나19로 인한 팬데믹 사태가 쿠바의 국경을 또 다시 잠그게 만들었다. 관광의 축소로 쿠바의 경제난은 현재 최고조에 이르고 있다. 쿠바 국민들이 들썩이고 있으며 지난 해에는 최초로 반정부 시위가 일어나기까지 했다.

그러나 쿠바는 열릴 것이다. 내부에서의 경제적 욕구가 한계에 다다르고 있기 때문이다. 이 얘기는 역설적으로 쿠바야 말로 신천지이자 블루 오션이라는 얘기다. 누가 쿠바와 먼저 손을 잡느냐에 따라 그 정치적 경제적 과실을 나누어 먹게 될 것이다. 문화 역시 마찬가지다. 음악 미술에 있어 쿠바는 압도적인 천재성을 발휘하고 있다. 쿠바 문화와 누가 손을 잡느냐에 따라 문화산업의 열매를 누가 따게 될 것이냐가 결정된다. 속된 말로 해서 쿠바를 뚫으면 그 밑의 중미, 더 밑의 남미까지의 진출이 가능해진다. 문화는 특히 중남미가 불모지이다. 쿠바가 매우 중요하다고 하는 이유는 바로 거기에 있다. 무엇보다 쿠바와 손을 잡으면 남북관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정치와 비즈니스에 앞서 영화와 음악, 미술이 먼저 손을 잡아야 한다고 하는 얘기가 나오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오동진 영화평론가. 현 들꽃영화상 운영위원장. 제천국제음악영화제 집행위원장, 부산국제영화제 아시아필름콘텐츠마켓 운영위원장 역임.

 

 

* 《쿨투라》 2022년 9월호(통권 99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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