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시] 방민호 시인의 「별들의 고향」
[이달의 시] 방민호 시인의 「별들의 고향」
  • 방민호(시인)
  • 승인 2022.09.01 0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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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들의 고향』

방민호

 

눈을 뜬다는 건
어렵군 아주 어려워
이렇게 시간이 오래 걸렸다니
그 사이에 나는 무슨 일을 벌인 걸까
헤매며 실컷 나다니기나 하다
이제야 겨우 눈 뜨다니
누가 그토록 무거운 어둠을
이 두 눈꺼풀 위에 얹어 놓았나
버렸어야 해 일찍 옳게만 보이면 굽신거리는 짓 비굴하게 서둘러 고개 숙였지 그 덕에 뭐 하나 제대로 못 봤지
〈인형의 집〉의 노라에
여자에게 자기만의 방을 주라는 울프에
별빛 같은 여인 테스까지 넣고도
그는 이상李箱도 잊지 않았네
스물여섯 나이에 쉽지 않은 일인데
그래서 그렇게 깊어질 수 있었겠지
경아가 그래서 그토록 처절하게 망가져
겨울밤에 그렇게 스러질 수 있었겠지
그녀는 지금쯤 고향에 닿았을까
별 세상은 머니까 아직 멀었겠지
힘들어도 보통 힘든 게 아냐
제 눈 맑게 씻어내서
옥을 알아보는 일
내가 옳은 데서
벗어나는 일

 


방민호 1965년 충남 예산에서 태어났으며, 서울대 국어국문학과 및 동대학원 박사과정을 졸업했다. 1994년 《창작과 비평》 제 1회 신인 평론상을 수상하면서 비평 활동을 시작했다. 문학 평론집으로 『문학사의 비평적 탐구』 『감각과 언어의 크레바스』 『행인의 독법』 『문명의 감각』 『납함 아래의 침묵』 『비평의 도그마를 넘어』가 있다. 2001년 《현대시》로 시창작 활동을 시작했고 시집으로 『숨은 벽』 『내 고통은 바닷속 한방울의 공기도 되지 못했네』 『나는 당신이 하고 싶은 말을 하고』가 있다. 2012년 《문학의 오늘》에 「짜장면이 맞다」를 발표하면서 소설창작 활동을 시작했다. 장편소설로 『대전스토리, 겨울』 『연인 심청』이 있으며 창작집으로 『무라카미 하루키에게 답함』이 있다. 산문집으로 『서울문학기행』 『명주』가 있다. 현재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 《쿨투라》 2022년 9월호(통권 99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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