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분재] 남쪽 바다의 초밥 2
[소설분재] 남쪽 바다의 초밥 2
  • 김쿠만(소설가)
  • 승인 2022.09.01 00: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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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장이 뱃삯으로 초밥 스무 개를 요구하자 지갑을 꺼내 지폐를 세고 있던 제자는 손가락을 멈췄다.

— 제 초밥은 그 정도로 비싸지 않은데요.
— 상관없어.

두 사람이 물고기를 잡은 건 그로부터 한 시간 후의 일이었다. 처음에 선장은 유골을 뿌린 자리에서 바로 낚시를 하는 게 남도의 전통이라며 고집을 피웠지만, 제자는 전혀 탐탁지 않다고 말했다. 선장은 하는 수 없이 더 깊은 바다를 향해 배를 20분 정도 몬 다음, 선미에 낚싯대 두 대를 드리웠다. 제자는 낚싯대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 정말 해괴망측한 전통이군요.
— 전통이란 게 다 그렇지.

잔잔한 수면 아래로 드리워진 낚싯대의 찌는 고요히 움직였다. 두 사람은 조용히 고기를
기다리며 각자 할 일을 했다. 선장은 담배를 태웠고, 제자는 유골함을 닦았다. 유골함이 만
족스러울 만큼 깔끔해졌을 때, 제자는 선장에게 물었다.

— 이건 이제 어쩌죠?
— 나야 모르지. 땅에다 매장해드렸거든. 두 분 모두. 내가 이 마을에서 좀 진보적인 편이야.

제자가 어이없어하며 선장을 바라보자, 선장은 담배 연기를 제자 쪽으로 내뿜었다. 거센 담배 연기는 뭐, 하고 되묻는 모양처럼 보였다. 제자 쪽의 낚싯대에 입질이 온 건 바로 그때였다. 대단한 녀석이 물었는지, 낚싯대는 금세 팽팽해졌다. 제자는 유골함을 갑판에다 내려놓고 낚싯대로 달려들었고, 선장도 낚싯대에 달라붙어 거들었다. 그럼에도 수면 밑의 물고기는 순순히 끌려 나오지 않았다. 벌써 지쳤는지 제자가 헐떡였다.

— 참치 아닐까요?
— 아니야. 참치는 여기보다 더 먼 바다에 있다고.

선장의 말대로 발버둥 치는 물고기는 참치가 아니라 고등어였다. 갑판에 올라온 고등어는 지느러미를 마구 휘둘렀다. 탄력 있는 지느러미에 얻어맞은 유골함은 속절없이 변두리로 굴러갔다. 제자는 선장에게 식칼과 도마를 부탁했고, 선장은 잡동사니가 가득 있는 조종실에서 과도와 냄비 뚜껑을 꺼냈다. 제자가 이게 뭐냐고 묻자 선장은 배에서 쓰는 식칼과 도마라고 답했다. 제자는 또 어이없어하며 선장을 바라봤다.

— 바다 위에서 바라는 게 많군.

선장의 뻔한 변명에 수긍한 제자는 고등어를 구겨진 냄비 뚜껑에다 올린 다음, 고등어의 아가미에다 과도를 쑤셔 넣었다. 고등어의 아가미에서 피가 울컥, 하고 쏟아져 나왔다.

어째선지 모르겠지만, 배에는 식칼과 도마가 없었지만 식은 밥과 고추냉이가 있었다.

— 초밥의 밥알은 적당히 온기가 있어야 하는데.

작게 투덜거리던 제자는 혹시 식초나 간장도 없냐고 물으려다가 관뒀다. 제자는 자신의 스승처럼 초밥을 만들기 시작한다. 해풍을 맞고 차가워진 밥알을 움켜쥔 제자는 손바닥 안에서 밥알들을 굴리기 시작한다. 밥알들이 모양새를 어느 정도 갖추면, 제자는 엄지손가락에 고추냉이를 살짝 묻힌 다음 집게손가락으로 고등어회 한 점을 건지듯이 들어올린다. 엄지손가락은 자연주의 화가처럼 새빨간 고등어의 살에 녹색을 덧칠한다. 고추냉이가 골고루 발려진 고등어회는 그대로 뒤집어져 손바닥에 있는 밥알 위로 떨어진다. 만약 간장이 있었다면 가운뎃손가락을 이용해 마무리 작업으로 초밥의 등에 간장을 칠했을 것이다. 이 모든 건 스승의 방식이었다. 제자가 똑같은 방법으로 두 번째 초밥을 만들기 시작할 때, 선장이 의아한 목소리로 물었다.

— 왜 굳이 한 손만 써?

제자는 밥알을 굴리며 답했다.

— 이렇게 배웠으니까요.
— 멍청하군.

제자는 한 손으로 스무 개의 초밥을 만들어냈다. 지루해서 담배를 태우고 있던 주방장은 담배를 꼬나문 채 초밥을 집어삼켰다. 제자는 손바닥에 묻은 밥알들을 닦아내며 맛이 어떠냐고 물었다. 선장은 솔직하게 답했다.

— 형편없어.
— 형편없어도 어쩔 수 없어요. 그걸로 삯을 받겠다고 한 사람은 선장님이니까.
— 누가 뭐래?

선장은 담배를 태우며 초밥을 먹었다. 제자는 난간에 기댄 채 선장이 초밥을 먹는 모습을 조용히 바라봤다.

 

막 출소한 총사령관이 『寿司』의 미닫이문을 열고 있을 때, 주방장은 계란을 엉망진창으로 쪄버린 제자에게 양철 냄비를 휘두르는 중이었다. 총사령관은 자리에 앉으며 레드애플 담뱃갑을 주머니에서 꺼냈다. 주방장은 뒤늦게 재떨이를 꺼내주며 오랜만이라고 총사령관에게 인사했다.

— 여전히 성질이 대단하군.
— 성질이라도 대단해야지 않겠습니까. 천막을 쳐 드릴까요?

총사령관은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고개를 저었다.

— 상관없네. 시대가 바뀌었잖아.

주방장은 총사령관에게 고개를 꾸벅 숙였다. 제자는 총사령관이 못마땅했지만, 어쨌든 손님이었기에 손님 대접을 해줬다. 제자가 적당히 따뜻한 수건과 젓가락과 그릇을 총사령관 앞에 내밀었을 때, 총사령관은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질문을 하나 던졌다.

— 자넨 고향이 어디지?
— 북쪽 바다입니다.

제자는 침을 꿀꺽 삼키는 바람에 대답을 느리게 하고 말았다. 그에겐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고. 제자의 답을 들은 총사령관도 이맛살을 찌푸릴 이유가 있었다. 그날 밤 총사령관은 초밥을 아홉 점만 먹고 소주 한 잔으로 입가심을 한 채 『寿司』를 떠났다. 10년 전과 전혀 다른 식사량이었다. 총사령관이 사용한 그릇과 젓가락을 씻으며 제자가 스승에게 말했다.

— 저 양반. 생선은 많이 먹는다고 하지 않았나요? 교도소에서 위가 줄어들었나.

한 손으로 담배를 태우고 있던 주방장은 제자의 등을 향해 말했다.

— 북쪽 바다 사람을 봐서 체할 것 같았겠지. 아마 옛날에 저질렀던 일들이 떠올랐을 거야.
— 저런 인간도 체하나요?
— 인간은 누구나 체해.

설거지를 끝마친 제자가 등을 돌리자, 떠나는 총사령관을 바라보며 담배를 태우는 주방장의 뒷모습이 보였다. 제자는 말없이 스승의 곁으로 다가가 함께 담배를 태웠다. 총사령관이 군용 차량보다 더 두꺼워 보이던 독일제 차 뒷좌석에 타는 걸 바라보며. 제자는 그 차가 관짝이었으면 좋겠다고 내심 생각했다. 그로부터 20년 후, 주방장은 가게 앞에서 마지막 담배를 태우다 쓰러졌을 때, 제자는 울부짖으며 그의 가슴과 등을 힘껏 두들겼다.

제자는 잠잠한 바다를 향해 헛구역질하는 선장의 등을 두들기기 시작했다.

— 체한 거예요. 멀미예요?
— 둘 다야.

선장이 헐떡이며 답했다. 제자는 선상 생활을 오래 한 선원들이 육지에서 멀미한다는 얘기는 진즉 들어봤지만, 배를 모는 선장이 잔잔한 바다에서 멀미한다는 얘기는 처음 들어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 다행히도 선장은 베테랑답게 어찌할 바를 잘 알고 있었다.

— 조타실에 들어가면 방향키 아래에 럼이 한 병 있을 거야. 그걸 갖고 와.
— 럼이요?

제자가 머뭇거리자 선장은 입을 쓱 닦고 직접 조타실 쪽으로 비틀대며 걸어갔다. 금세 술병을 찾아낸 그는 럼주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상당히 독한 럼이었는지, 술 냄새가 멀리까지 풍겼다. 제자는 자신의 코앞을 떠도는 독한 냄새를 손으로 휘휘 저었다.

— 그게 효과 있나요?
— 내 아버지가 무려 30년 동안 애용한 약이지.

선장은 갑판 위에 주저앉아 술을 열심히 들이켰다. 멀미에 시달려서 그런 것인지, 전날과 달리 그의 얼굴은 금세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알딸딸하게 취한 그는 꼬인 혀로 제자에게 질문했다.

— 한잔할래?

선장의 침으로 흥건하게 젖은 술병을 바라보며 제자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대신 그는 조금 전에 썰어놓은 고등어회를 한 점 먹었다. 남은 럼을 마저 마신 선장은 제자가 고등어를 먹는 걸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 이상하게 다들 내가 권하는 술을 안 먹더라고.
— 알 것 같아요.

제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선장은 술병을 바다로 던진 후, 조타실로 들어갔다. 『역도산』은 해변을 향해 천천히 돌아갔다.

 

— 결국 세상에 남는 건 뼈뿐이라고요. 아시겠어요?

주방장은 술에 만취한 골상학자의 말에 미소를 보이며 고개를 끄덕여줬고, 제자는 묵묵히 기름이 가득 배어 있는 참치의 뱃살을 썰고 있었다.

— 생선도 마찬가지죠. 살을 전부 다 바르면 뭐가 남죠?

주방장은 한 손으로 초밥을 만들며 시시한 질문에 대답을 해줬다.

— 뼈만 남죠.
— 그렇죠. 그래서 제가 골이 아플 정도로 뼈를 연구하는 겁니다!

골상학자는 책상을 탁 치며 헤프게 웃더니 데운 술을 한 병 더 주문했다. 주방장은 제자에게 술을 한 병 데우라고 말했고, 제자는 고개를 끄덕인 후 조그만 병에다 술을 가득 부은 후, 펄펄 끓는 냄비에다 집어넣었다. 제자가 끓어오르는 물들을 멍하게 바라보고 있을 때, 주방장은 골상학자의 그릇에 초밥을 하나 놓아주며 말했다.

— 뼈 이야기하니까 생각나는 게 하나 있습니다.
— 뼈 이야기는 언제나 옳죠.


골상학자는 주방장이 내민 초밥을 입에 넣었다. 주방장은 자신의 초밥을 음미하는 골상학자를 바라보며 자신의 이야기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 아시다시피. 저는 다른 나라에서 태어났습니다. 저는 세 번째 전쟁이 끝난 후에야 이 나라에 들어왔습니다. 아마 열일곱, 아니면 열여덟이었던 것 같은데 그렇게 어렸던 제가 입국하면서 들고 온 짐은 하나뿐이었습니다. 뼛가루가 가득 들어있던 유골함이었죠.

제자가 데운 술병을 내밀었고, 골상학자는 그 술병을 받으며 말했다.

— 슬픈 뼈 이야기로군요.
— 그때 출입국 사무소에서 호적이란 걸 난생처음 봤는데. 거긴 제 고향이 남도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사무원한테 난 이 나라에서 안 태어났는데 왜 고향이 있냐고 물어보니, 이런 경우는 아버지 고향을 좇아서 기재한다 하더라군요.
— 쓸데없는 관습이죠.

골상학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조그만 잔에다 술을 따르기 시작했다.

— 저는 뭔가에 홀린 듯이 바로 남도로 향하는 기차에 올라탔습니다. 유골함을 들고. 역에 내려서 제일 가까운 식당에 들어가 허름한 몰골로 식사를 하고 있을 때 거기 주인장이 제게 알려줬습니다. 남쪽 바다식 장례법에 대해.
— 그 장례법은 저도 잘 알고 있죠.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 망자의 유골을 흩뿌린 다음, 그 자리에서 낚은 물고기로 요리를 해 먹는 거잖아요?
— 맞습니다. 잘 알고 계시네요. 주인은 장례를 치르러 온 거냐고 제게 물었습니다. 저는 뱃삯도 없는 처지여서 그냥 온 거라고 답했는데, 옆에서 식사하고 있던 뱃사람이 선뜻 자기 배에 태워준다고 말하더군요. 덕분에 저는 먼 바다까지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먼 바다는 초원처럼 고요했었답니다. 저는 그 풍경에 감탄하며 멍하니 있었죠. 뱃사람이 장례식을 언제 치를 거냐고 묻기 전까지. 그 말을 듣고 유골함을 열어봤죠. 유골함엔. 색깔이 전혀 다른 뼛가루들이 잔뜩 섞여 있었습니다. 어떤 건 백색이었고, 어떤 건 회색이었고, 또 어떤 건 상아색이었죠.
— 그럴 리가. 같은 곳에서 태웠으면 뼛가루 색이 다를 수가 없는데.
— 같은 곳에서 태우긴 했죠. 한 달 동안 활활 타오를 정도로 큰 구덩이었답니다. 불의 온도는, 날마다 다르더군요. 마치 남도의 파도처럼.

주방장의 말을 듣고 골상학자는 얼굴을 찌푸렸다. 주방장은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리듯 말했다.

— 제가 할 수 있는 거라곤 그 뼛가루들 중에 부모님의 뼈가 조금이라도 섞여 있길 비는 것뿐이었답니다. 그런 시절이었죠.

골상학자는 신음을 뱉으며 식기 옆에 놓아뒀던 레드애플 담뱃갑에서 담배를 한 개비 꺼내 물었다. 그의 입에서 흘러나온 연기는 장례식장 향로에서 피어오르는 냄새처럼 허공을 향해 기어오르다가 어느 순간 속절없이 흩어졌다.

 

항구에 도착한 제자는 선장이 『역도산』을 묶는 모습을 잠자코 지켜봤다. 계선주에 코가 꿰인 『역도산』은 파도를 따라 조용히 위아래로 움직였다. 이상이 없는 것을 확인한 선장은 제자에게 혹시 잊은 건 없냐고 물었다. 제자는 그제야 자기가 들고 있던 유골함이 사라졌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두 사람은 묶인 배에 올라타 갑판 위를 한참이나 뒤졌지만, 이미 유골함은 바다로 굴러떨어졌는지 선장과 제자의 눈에 들어오질 않았다. 먼저 포기한 쪽은, 당연하게도 선장이었다.

— 어차피 빈 유골함이잖아. 잊어버리라고.

제자는 영 찜찜했지만, 어쩔 수 없이 선장의 말에 수긍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선장은 담뱃불을 태우며 제자에게 물었다.

— 그래서. 이젠 어디로 갈 거야?
— 돌아가야죠. 수도로. 가게 정리도 마저 해야 하고.

선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제자에게 손을 내밀었다. 제자는 선장의 투박한 손을 한참이나 쳐다봤다. 제자가 그 손을 잡아준 건, 선장이 슬슬 무안함을 느끼고 있을 때였다. 선장은 남도식 작별 인사를 건넸다.

— 남쪽 바다를 너무 그리워하지 마.

뭐라고 답하고 싶었지만, 그 인사말에 달리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던 제자는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손을 놓았다. 『역도산』에 먼저 올라탔던 옛날의 스승이 그랬던 것처럼.

 

간이역의 스피커에서는 전국에서 다섯 명 정도만 들을 것 같은 오래된 라디오 프로그램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디제이와 게스트가 주고받는 시답잖은 농담이 끝나고 누군가의 신청곡이 재생됐다.

나는 내가 과열로 신음하는 열차의 제동수였길 빌었지….

플랫폼까지 그 오래된 노래가 들렸는지, 열차를 기다리고 있던 역장도 가수를 따라 흥얼거리고 있었다. 제자는 역장을 바라보며 매표소로 걸어갔다. 창구 너머 역무원은 시큰둥한 표정을 지으며 제자에게 물었다.

— 어디로 가시나요?

제자도 시큰둥한 표정을 지으며 역무원에게 답했다.

— 수도. 한 장요.

제자의 답을 듣고 역무원은 볼펜으로 표 위에다 출발지와 행선지를 끼적였다. 역무원이 내민 표를 살펴보며 제자가 물었다.

— 이런 표도 되나요?
— 안 될 거 없죠. 한 시간만 기다리세요.

제자는 표를 들고 플랫폼으로 갔다. 그 사이, 노래가 끝났는지 라디오는 돌침대 광고를 들려주고 있었다. 역장은 퍽 지루했는지 광고마저 따라하며 흥얼댔다. 제자가 곁에 서기 전까지. 그는 무안한 듯 헛기침을 하며 빗질을 연신 했는데, 바닥에 쓸릴 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 모습을 보니 덩달아 무안해진 제자는 역장에게 뭐라도 물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 여기. 하루에 열차가 얼마나 지나가죠?

역장은 빗자루질을 멈추고 제자를 쳐다보며 답해줬다.

— 정차하는 건 하루에 4대 정도고, 지나가는 건 40대 정도입니다.
— 그렇군요.
— 옛날엔 20대나 정차했었죠. 나중엔 여기 멈추는 열차가 사라질 때가 올 겁니다. 여기

멈추는 열차는 사람이 모는 낡은 열차뿐이거든요.

— 지금 남쪽 바다 위에 배가 한 대도 없는 것처럼 말이죠?

역장은 그제야 제자가 어제 자신한테 역도산인지 역발산인지 하는 배를 아냐고 물은 승객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역장은 장례는 잘 치렀냐고 제자에게 물었고, 제자는 그럭저럭 치렀다고 답했다. 그는 제자를 단단히 오해하고 있었는데, 제자는 그 오해를 풀어주진 않았다. 딱히 그에게 해가 되는 오해는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 요즘엔 그런 식으로 부모님을 보내는 젊은이가 별로 없죠. 다들 옛날을 이해 못 하니까.

제자 또한 이해를 못 했지만,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더 할 말이 없었는지, 역장은 제자를 따라 고개를 끄덕인 후 다시 바닥을 쓸기 시작했고, 제자는 기차가 올 때까지 역장이 바닥을 쓰는 걸 감상했다. 아무래도 현대의 역장이 할 수 있는 일은 그것뿐인 모양이었다. 제자가 탈 기차는 역장이 빗질을 582번 한 후에야 간이역에 느릿느릿 들어섰다.

 

일주일 동안 닫혔던 『寿司』의 대문 앞엔 일주일 치의 신문지와 먼지가 쌓여 있었다. 제자가 분주히 좁은 가게 안을 누비며 일주일 동안 쌓인 흔적들을 치우고 있을 때, 누군가가 가게 안으로 슬쩍 들어오며 혹시 지금 영업을 하냐고 제자에게 물었다. 제자는 그가 누구인지 알고 있다. 그는 『寿司』의 오래된 단골이었고, 직업은 소설가였다. 소설가는 『寿司』에 처음 들어왔던 제자가 참치 초밥을 주문했던 날에도 자리를 차지한 채 뭔가를 끼적이고 있었다. 어쩌면 그도 제자를 비웃는 손님 중 한 사람이었는지도 모른다. 정리를 얼추 끝낸 제자는 소설가에게 자리에 앉으라고 권했다. 멀리서부터 걸어왔는지, 그는 이마에서 땀을 연신 훔쳐내고 있었다. 제자는 그에게 차가운 매실차를 한 잔 내밀었고, 소설가는 매실차를 반정도 들이켰다.

— 소식은 들었습니다. 장례식장에 찾아갔어야 했는데, 제가 조금 바빠서.
— 그럴 수도 있죠.

제자의 시큰둥한 대답이 무안한 듯, 소설가는 헛웃음을 지으며 라디오를 틀어도 되냐 물었다. 『寿司』에는 TV가 없었는데, 그 또한 주방장의 미신 같은 유사 과학 덕분이었다. 제자는 참치 뱃살을 썰면서 얼마든지요, 라고 답했다. 소설가가 라디오를 틀었다. 원래대로라면 늙은 가수가 틀어준 올드 팝이 들려야 할 시간이었지만, 라디오는 전혀 엉뚱한 소리를 내뱉고 있었다. 총사령관이 죽었다는 소식이었는데, 앵커는 총사령관이 병으로 죽은 것인지 아니면 자살을 한 것인지 그것도 아니면 타살을 당한 것인지 알려주진 않았다. 다만, 총사령관의 고향인 남도에서 장례식이 진행될 거란 사실은 알려줬다. 소식을 다 전달한 앵커는 어떤 정치 평론가와 전화 인터뷰를 시작했는데, 정치 평론가는 노이즈가 잔뜩 낀 목소리로 군사 정부의 망령이 사라졌으니 진정한 국민의 시대가 찾아온 것이라며 이제 과거는 완연히 끝났으니 미래를 바라보자는 자평을 내렸다 .

— 헛소리.

초밥을 기다리고 있던 소설가가 혼자 조용히 투덜거렸다. 뱃살을 다 썬 제자는 소설가를 슬쩍 쳐다봤는데, 눈이 마주치자 소설가는 또다시 무안한 표정을 지으며 노트에다 짧은 문장을 끼적였다. 그는 항상 뭔가를 끼적였지만 『寿司』의 손님 중 그의 작품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제자는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초밥을 만들기 시작했다. 노트를 덮은 소설가는 남은 매실차를 홀짝이며 제자가 초밥을 빚는 모습을 감상했다. 그가 위화감을 느낀 건 제자가 두 번째 초밥을 빚기 시작했을 때였다. 그는 빈 컵을 내려놓으며 제자에게 말했다.

— 원래 두 손으로 초밥을 만드셨나요?

제자는 접시 위로 두 번째 초밥을 내려놓으며 답했다.

— 이제 그럴 때가 된 것 같아서요.

소설가는 어리둥절해 하며 제자의 초밥을 맛봤다. 제자는 손님이 초밥을 맛있게 먹는 모습을 바라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내일은 저 오래된 편백 간판을 새까맣게 태워버려야겠군.

 


김쿠만
2020년 웹진 《던전》에 입장. 2021년 문예지 《에픽》에 입장. 2022년 제16회 《쿨투라》 신인상, 제5회 한국과학문학상 가작 수상. 2022년 소설집 『레트로마니아』 출간.

 

* 《쿨투라》 2022년 9월호(통권 99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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