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FF2022] 산과 함께, 영화와 함께 메스티아에서 피어난 산악영화축제: 메스티아국제단편·산악영화제 2022
[MFF2022] 산과 함께, 영화와 함께 메스티아에서 피어난 산악영화축제: 메스티아국제단편·산악영화제 2022
  • 설재원(본지 에디터)
  • 승인 2022.09.01 00:4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메스티아국제단편·산악영화제 2022
Mestia International Short & Mountain Film Festival

조지아 스바네티 지역의 메스티아 일대에서 펼쳐진 메스티아국제단편·산악영화제Mestia International Short & Mountain Film Festival(이하 메스티아영화제)가 지난 8월 21일(일)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메스티아영화제는 팬데믹이 한창이던 작년 첫 걸음을 뗀 영화제로 많은 영화제들이 취소되거나 온라인으로 축소 운영하던 시기에 오히려 당당히 출범했다. 8월 17일(수)부터 5일동안 치러진 올해의 영화제는 코로나의 영향이 어느정도 잠잠해진만큼 한층 단단해진 프로그램으로 구성되었으며, 다양한 해외 게스트가 메스티아를 찾았다. 지난 해에는 조지아 국내 게스트 위주의 행사였다면 올해 비로소 ‘국제’ 영화제의 모습을 갖춘 것이다. 또한, 작년까진 ‘산악’만을 테마로 진했다면 올해는 단편 부문을 신설하여 규모를 더욱 확장하였다.

칸영화제에서 시작된 메스티아영화제와의 인연

내게도 생소했던 메스티아영화제와 인연이 닿게 된 것은 지난 5월 칸영화제에서의 ‘한류기획취재’ 덕분이다. 설문을 진행하던 중에 김기덕 감독에 무한한 애정을 표현하던 조지아 기자를 만나 대화가 길어졌고, 그의 추천으로 이번 행사에 초청받았다.

16일 새벽 트빌리시국제공항에 도착하니 영화제의 스폰서인 조지아관광청Georgian National Tourism Administration에서 섭외한 전문 가이드가 맞아주었고, 숙소에서 잠시 피로를 푼 뒤 이번 영화제에 초청받은 외신기자들을 만나 식사와 간단한 올드타운 투어를 함께했다. 메스티아영화제는 새롭게 시작하는 영화제로서 저변을 넓히고 다양한 지역에 노출하기 위해 나를 포함한 다섯 명의 외신기자를 초청하였다. 인도에서 온 《필름페스티벌닷컴filmfestival.com》의 사이예드Siraj Syed, 프랑스에서 활동하는 《태블릿Tablet》의 우크라이나계 미국 유대인 데이비슨Vladislav Davidzon, 튀르키예에서 온 《가제테두바르Gazete Duvar》의 오일럼Riza Oylum, 그리고 영국에서 활동하는 《알쿠즈알아라비Al Quds Al Arabi》의 이집트인 알람Nesreen Allam이 그들이다.

국적도, 활동 지역도 다른 우리는 일정을 함께하며 다양한 영화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역시나 한국영화에 대한 관심이 가장 뜨거웠다. 올해 칸영화제에서 감독상을 받은 〈헤어질 결심〉에 대한 이야기부터 3년 전의 〈기생충〉의 황금종려상과 아카데미 작품상 수상, 작년 코로나로 세상을 떠난 김기덕 감독에 대한 이야기까지. 누가 뭐래도 한국영화는 요즈음 세계영화계에서 가장 핫한 주제였다.

해외에서 아트시네마로 구분하는 〈기생충〉이나 〈아가씨〉와 같은 영화가 국내에서는 대중적으로 흥행을 하기도 한다는 점을 한국영화와 한국관객의 독특한 문화적 특징으로 여기며, 이미 영화계에서 작품성으로는 유명했던 한국영화가 팬데믹 전후로 이제는 세계무대에서도 대중성을 획득하는 과정에 모두 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특히, 튀르키예의 오일럼은 자국에서 극동아시아 영화에 대한 책을 두 권이나 쓴 적 있었고, 급성장한 한국경제와 빈부격차, 남북한 관계에 주안점을 두고 한국영화를 연구하는 한국영화 전문가였다.

또한, 우크라이나영화와 전쟁 또한 대화를 이끌어 간 하나의 축이었다. 정치와 문화를 함께 담당하는 우크라이나계 데이비슨과 우크라이나인으로서 프랑스에서 영화제작자로 활동하는 그의 아내 마리아노프스카Regina Maryanovska-Davidzon는 전쟁 이후 우크라이나의 상황과 우크라이나 영화계 소식을 전하며 우크라이나에 대한 더 많은 관심과 지지를 부탁했다.

우크라이나전쟁을 두고 전 세계의 영화제들은 우크라이나를 향한 지지와 연대를 표하고 있는데, 이번 메스티아영화제에서도 특별 프로그램으로 ‘우크라이나 프로그램’을 두어 우크라이나에 대한 강한 지지를 표명하고 있다. 조지아는 우크라이나전쟁이 발발하기 전 러시아와 남오세티야전쟁을 치르며 반러 정서가 매우 강한 곳이기도 하다.

미하일 헤르기아니Mikhail Khergiani를 향한 헌사
개막식과 개막작 〈노 맨스 랜드No Man’s Land

다음 날 아침 미니버스를 타고 수도 트빌리시에서 500여 킬로미터 떨어진 메스티아로 향했다. 수도권을 벗어나 산악지형으로 들어가자 조지아가 자랑하는 아름다운 코카서스 산맥이 펼쳐졌다. 산악 지형이다보니 곳곳에 비포장도로도 있었고, 급경사가 많아 편안한 이동은 아니었지만, 장엄한 코카서스 산맥의 초록빛 푸르름은 몸의 고단함을 씻어내기 충분했다.

트빌리시를 떠난지 10여 시간이 지났을까? 구불대는 도로를 따라 마침내 영화제가 진행되는 메스티아에 도착했다. 개막식 시작 직전에 도착한 우리 일행은 간단하게 옷만 갈아입고 서둘러 개막식이 열리는 메스티아문화예술센터로 향했다. 행사장은 이미 개막식을 기다리는 인파로 가득 차 있었고, 우리가 도착하자 곧이어 축하공연으로 스바네티 전통음악과 무용이 펼쳐지면서 개막식이 시작됐다.

개막식 축하공연
개막식 축하공연

하투나 훈다제Khatuna Khundaze 집행위원장은 개회사에서 “이곳에 도착해서 모두 느꼈겠지만, 주변을 둘러보면 ‘산’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며 “영화제를 시작하면서 이 아름다운 산을 테마로 삼을 수밖에 없었다”는 말로 메스티아영화제가 지니고 있는 ‘산악영화제’로서의 정체성을 분명하게 밝혔다. 영화제의 부집행위원장인 게기 팔리아니Gegi Paliani는 “메스티아영화제를 찾아준 모든 이들에게 감사하다”며 “이곳에 참여한 여러분의 도움으로 언젠가 스바네티 지역에서도 영화가 뿌리내리고 메스티아가 메이저 영화도시로 거듭나길 바란다”는 염염원을 전했다.

이어 심사위원진과 국내외 게스트, 경쟁부문에 대한 소개가 이루어졌다. 올해의 심사위원은 총 다섯 명으로 감독, 편집 감독, 시나리오 작가, 배우, 기자 등 다양한 분야의 인사로 구성되었다. 할리우드외신기자협회HFPA의 이사이자 골든글로브시상식의 선거인단 멤버인 오스트리아 기자 바바라 가세르Barbara Gasser, 세계 최고의 영화 편집 감독 중 한 명으로 〈아멜리에〉, 〈유로파〉 등을 편집한 프랑스의 에르베 쉬니드Hervé Schnid, 국제영화텔레비전학교협회Cilect의 이사이자 불가리아의 시나리오 작가 스타니슬라프 세메르지예프Stanislav Semerdjiev, 파리에서 활동하는 우즈베키스탄 출신의 감독 빅토리아 야쿠보바Victoria Yakubova, 조지아에서 활동하는 압하지야 난민 출신 배우 릴리 후리티Lili Khuriti로 구성된 심사위원진은 엄정하고 공정한 심사를 약속했다.

경쟁부문은 크게 단편부문과 산악부문으로 나뉘는데, 이중 산악부문의 경우 조지아의 전설적인 산악인 미하일 헤르기아니Mikhail Khergiani에 대한 존경을 담아 미하일헤르기아니상이라는 이름으로 시상한다. 올해 개막작으로 선정된 〈노 맨스 랜드〉는 이탈리아의 전설적인 전설적인 알피니스트 라인홀트 메스너Reinhold Messner와 그의 아들인 사이먼 메스너 감독이 만든 산악영화이다. 제1차 세계대전이라는 시대적 배경 속에서 베아트리체 토마슨Beatrice Tomasson의 돌로미테Dolomite의 최고봉 마르몰라다Marmolada 남향을 최초로 등정하며 성공과 아픔을 동시에 겪는 이야기를 다룬다. 바로 이 돌로미테는 미하일 헤르기아니가 마지막으로 오른 곳이고, 등정 도중 로프가 끊어져 사망한 곳이다. 이 작품은 메스너가 가장 존경하는 산악인 중 한명인 미하일 헤르기아니에게 바치는 헌사라고 할 수 있다.

개막작이 끝나고 리셉션 자리에서는 훌륭한 음식과 와인이 준비되어 있었다. 다른 외신기자들은 저마다 종교적 이유로 돼지고기나 소고기 등 못 먹는 음식이 있었는데, 가리는 음식이 없는 나는 풍성한 조지아 식탁을 오롯이 즐길 수 있었다. 코카서스 지역에 위치한 조지아는 동유럽과 서아시아의 특성이 오묘하게 어우러진 미식 강국이다. 소련시절 동구권에 널리 알려진 조지아 음식은 지금까지도 구소련권에서 인기있으며, 특히 와인의 최초 발생지답게 수준급 와인을 맛볼 수 있다.

이번 영화제의 메인 와인은 화이트보다는 묵직하면서도 레드보다는 부담없는 앰버 와인(오렌지 와인)이었다. 사바Saba Makharashvili 프로그래머는 “앰버 와인을 마셔야 영화제 내내 ‘많이’ 마실 수 있다”는 농담을 건네며 리셉션 분위기를 끌어올리기도 했다. 물론 취향에 따라 레드 와인이나 맥주를 마시는 이도 있었고, 조지아식 보드카인 차차chacha를 가져와 즐기는 이도 있었다. 분위기가 무르익어갈 무렵 심사위원인 빅토리아 야쿠보바의 깜짝 생일파티가 열리기도 했다. 다같이 흥에 겨워 노래하고 춤추는 모습은 그 옛날 부산영화제 초기의 남포동을 떠올리게 하는 모습이었다.

수준 높은 마스터클래스와 지역 특색을 살린 프로그램

개막 이틀째를 여는 첫 프로그램은 심사위원이기도 한 바바라 가세르의 ‘골든글로브 투표 자격–글로벌 환경의 다양성, 변화 및 복잡성’을 주제로 한 마스터클래스였다. 코카서스 산맥에 행사장을 마련해 메스티아의 자연을 한껏 느낄 수 있었고, 마스터클래스 전후로 건너편에서는 락클라이밍 체험 부스를 마련해 즐길 거리를 더했다.

골든글로브시상식을 주최하는 할리우드외신기자협회의 이사인 바바라 가세르는 마스터클래스를 통해 최근 할리우드에서 불어오는 개방 기조를 전 세계 영화인에게 알렸다. 기존의 골든글로브시상식은 영화부분 작품상 후보로 오르기 위해서는 영어 비중이 50%를 넘어야 했고, 작품 선정이나 선거인단 구성과 관련하여 인종차별 이슈도 제기된 바 있어 미국에서 가장 보수적인 시상식 중 하나로 꼽혀왔다. 올해 79회 시상식을 기점으로 규칙이 개정되며 비영어작품도 작품상을 받을 수 있도록 바뀌었고, 기존의 ‘외국어영화상’의 명칭을 ‘비영어영화상’으로 변경하였다. 지난해 미국영화로서 작품상 후보에서 제외되고, 외국어영화상을 받은 〈미나리〉가 초래한 논란을 의식한 모습으로 볼 수 있다.

바바라 가세르는 지금과 같은 개방 기조를 반기며 보수적인 골든글로브시상식이 더 다양하고 좋은 영화를 끌어안아야 한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그래서인지 강연 도중 그녀는 한국영화에 대한 감사를 표하기도 했다. 〈기생충〉이 아카데미에서 작품상을 받고, 골든글로브에서 〈기생충〉과 〈미나리〉로 한국영화가 2년 연속 외국어영화상을 받은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는 것이다. 미국 영화시상식에서 한국영화의 성공은 비영어작품의 좋은 성공사례이며 비영어권 영화계에 큰 자극이 되고 있음을 밝혔다.

강연을 마친 후 그녀와 더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는 “영화는 언어가 아닌 작품 자체로 평가받아야 한다”는 생각을 명확히 밝혔다. 또한 지난해 골든글로브 선거인단에 흑인이 한 명도 포함되어있지 않아 발생한 논란에 대해 “여느 지역과 마찬가지로 아프리카 출신의 선거인은 있었지만 그럼에도 선거인단에 흑인이 없었던 것은 사실”이라며 “올해 골든글로브에서는 여섯 명의 흑인 기자가 선거인단에 포함되었고 더 다양한 배경의 인물들을 품는 방향을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화 말미에는 이제 골든글로브에서 할리우드에 거주하지 않는 비회원에게도 일부 투표권을 주는 점을 활용해 선거인으로 다시 만나자는 덕담도 건넸다.

다음 날에는 역시 심사위원이기도 한 에르베 쉬니드의 ‘첫 씬’을 주제로 영화 편집 마스터클래스가 진행되었다. 그는 자신이 편집한 다섯 영화(장피에르 주네 감독의 〈아멜리에〉, 라스 폰트리에 감독의 〈유로파〉, 지그프리트Siegfried의 〈산사Sansa〉, 장프랑수와 리세의 〈퍼블릭 에네미 넘버원〉, 빅토리아 야쿠보바의 〈러브 애플Olma Djon〉)의 첫 씬을 보여주며 첫 장면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톱클래스 편집감독답게 그의 마스터클래스는 엄청난 인기가 있었다. 그가 특히 강조한 점은 “언제나 깨어있으며, 더 좋은 결과를 위해 고민하고 대화하라”는 것이다. 프리프로덕션과 콘티작업을 매우 세밀하게 하는 감독도 있고, 조금은 느슨하게 다양한 그림을 촬영해서 좋은 것을 골라내는 감독도 있듯이, 작업을 하다보면 다양한 스타일의 감독을 만나게 되는데, 누굴 만나 어떻게 작업하든 항상 능동적으로 더 나은 방향을 추구해야 한다고 말한다.

세 번째 마스터클래스는 카자흐스탄 출신의 스턴트 감독 자이다르벡 쿤구지노프Zhaidarbek Kunguzhinov가 ‘스턴트의 미학’을 주제로 진행했다. 스턴트 배우 예르덴 텔레미소프Erden Telemisov와 함께 메스티아를 찾은 자이다르벡 쿤구지노프는 스턴트팀 ‘노마드 스턴트Nomad Stunts’의 창립자이자, 할리우드에서 손꼽히는 스턴트, 무술, 승마 전문가로 다양한 수상 경력을 지니고 있는 스턴트 분야 최고의 베테랑이다.

스턴트, 무술, 승마가 철저하게 분업화되어있던 2000년대 초 할리우드에 뛰어든 그는 살아남기위한 길로 남들과 달리 세 가지 모두를 준비해 다재다능함을 어필하는 전략을 세웠고, 기회가 생길 때마다 자신의 강점을 보여주며 차츰 자신만의 영역을 넓혔다고 한다. 그렇게 자신의 입지를 다져나간 그는 승마로 시작해서 무술까지도 인정받았고 이제 할리우드 최고의 스턴트 감독의 지위를 차지하였다.

그는 “할리우드는 모든 것이 시스템화 되어있고 예상 밖 변수를 허용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며, “그게 분명 맞는 말이지만, 그럼에도 자신만의 강점을 만들고 항상 준비가 되어있다면 변화무쌍한 현장에서 유연하게 자신의 강점을 살릴 기회가 있을 것”이라는 애정 어린 조언을 남겼다.

마지막 마스터클래스는 1958년 제11회 칸영화제에서 〈학이 난다Letyat Zhuravli〉로 황금종려상을 받은 미하일 칼라토조프Mikhail Kalatozov의 단편 〈솔트 오브 스바네티아Jim Shvante〉를 바탕으로 스바네티 전통 소금을 만들어보는 시간이었다.

‘크리에이티브 에인절스’ 전시
‘크리에이티브 에인절스’ 전시

이외에도 다양한 프로그램이 준비되어 있었다. 조지아를 알리는 책을 만드는 ‘크리에이티브 에인절스’의 전시와 어린이를 위한 영화 프로그램 ‘시네라마Cinerama’, 그리고 올해의 특별프로그램인 ‘우크라이나 프로그램’까지 흥미로운 이벤트가 가득했다. 특히 스바네티박물관에서 진행한 시네라마는 관객들의 큰 호응을 얻었다. 어린이들이 만든 작품답게 그 나이대에서만 느낄 수 있는 풋풋함과 귀여운 발상이 매력적이었다. 시네라마를 담당하며 어린이영화제를 운영하는 즈비아드 돌리제Zviad Dolidze는 팬데믹을 겪으며 단절된 세계 네트워크를 복구하기위해 영화제 내내 애쓰기도 했다.

‘우크라이나 프로그램’에서는 〈Loser’s Club〉, 〈Immigrant Hold’em〉, 〈The Corner Store〉, 〈Man〉 네 작품을 상영했다. 세 편의 코미디와 한 편의 애국영화로 구성된 이 프로그램은 조지아내 우크라이나 영화인들이 선정하여 출품하였고, 가장 최근의 우크라이나 단편영화들을 볼 수 있는 나로서는 흔치 않은 기회였다.

메스티아영화제의 가장 큰 특징 중의 하나는, 이 모든 프로그램들을 어느 하나 놓치지 않고 다 참여할 수 있다는 점이다. 짜여진 일정대로 영화제에 몸을 맡기면, 마스터클래스와 부대행사, 그리고 식사까지 영화제에서 준비한 모든 프로그램을 즐길 수 있다. 산속에서 진행하는 프로그램이 많다보니 때로는 약간의 시간지연이 발생하기도 하지만, 이 또한 영화를 사랑하는 이들과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며 친분을 쌓는 즐거운 시간이었다.

폐막식을 빛낸 올해의 수상작

‘우크라이나 프로그램’을 끝으로 5일간의 영화제는 폐막작과 폐막식만을 남겨두었다. 폐막작은 자자 할바시Zaza Khalvashi 감독의 〈나메Namme〉로, 마을의 호수에서 물로 병든 이를 치유하는 가업을 잇는 주인공의 이야기이다. 마을에 수력발전소가 들어오며 수질이 악화되고 그녀가 치유 능력을 점차 잃게 되는 모습을 아주 느린 카메라로 담아냈다. 〈나메〉는 전통적인 내러티브 구조를 따르지 않고 슬로우 시네마의 신비로운 영화적 경험을 선사한다는 점에서 벨라 타르와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를 연상시키는 작품이었다.

이어지는 폐막식에서는 경쟁부문의 수상작이 발표되었다. 개막일과 폐막일을 제외한 3일 동안 매일 오후 5시에는 단편부문이, 7시에는 산악부문의 작품이 상영되었는데, 그 결과로 단편부문 특별 언급상Special Mention에는 멕시코 감독 사만다 오로스코 카르발로Samantha Orozco Carvallo의 〈ESMERALDA〉가, 특별상Special Prize에는 조지아 감독 일리아 아시타슈빌리Ilia Asitashvili의 〈Preparation〉이, 대상Best Film은 조지아 감독 미하일 크비리카제Mikheil Kvirikadze의 〈Jesus Bird〉가 수상의 영예를 안았으며, 산악 부문에서는 네팔 감독 아닐 부다 마가르Anil Budha Magar의 〈The Iron Digger〉가 특별상을, 슬로바키아 감독 파블로 바라바스Pavol Barabáš의 〈Dhaulagiri Is My Everest〉가 대상을, 네덜란드 감독 요크 올타르Joke Olthaar의 〈산Berg〉이 그랑프리Grand Prix를 차지했다.

단편부문 대상을 수상한 미하일 크비리카제〈Dhaulagiri
단편부문 대상을 수상한 미하일 크비리카제

단편부문 특별언급상을 받은 〈ESMERALDA〉는 1980년 멕시코 북부 도시 에르모시요Hermosillo를 배경으로 한 남자가 웨딩샵의 마네킹을 바라보며 비극적인 사랑을 떠올리는 이야기이다. 창문을 기준으로 바라보는 쪽에 따라 현실이 좌우되는 신비로운 경험을 선사하며, 인터뷰와 애니메이션을 통해 이야기를 전달하는 독특한 방식을 사용하고 있다. 특별상의 〈Preparation〉은 생일날 가족 사진을 찍는 모습과 선물로 옷을 사러 가는 아버지와 아들을 통해 부자간의 긴장감 넘치는 관계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아버지가 다가가면 다가가려 할수록 아들과는 멀어지는 모습을 절제된 묘사만으로 공감가게 표현하였다.

대상을 받은 〈Jesus Bird〉는 트럼프사기꾼 주인공이 기차로 도망쳐 성직자로 변장하며 발생하는 이야기이다. 특이한 캐릭터가 만들어가는 독특한 상황들을 유머러스하게 풀어냈으며, 주인공을 제외한 주변 인물을 모두 일반인을 섭외한 점이 눈에 띄었다. 특히 촬영감독 출신인 미하일 크비리카제가 연출과 촬영, 편집까지 맡은 이번 작품은 아름다운 화면 구성이 특징이며, 로케이션과 세트, 기차와 터널을 효과적으로 활용해 영화적 재미를 배가시켰다.

산악부문에서 특별상을 받은 〈The Iron Digger〉는 정치적인 이유로 폐광이 되어버린 철광도시 젤방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네팔의 아름다운 산맥과 압도적인 촬영인 돋보이는 작품이다. 대상을 받은 〈Dhaulagiri Is My Everest〉는 인간과 자연의 영적인 결합을 은유하는 강렬한 작품이다. 음과 양이라는 동양적인 개념을 받아들인 주인공의 마지막 대사 “우리는 그저 방문객이고, 잠시 발자국만 남길 뿐”이라는 말이 인상적이었다. 그랑프리를 차지한 〈산〉은 올해 울주세계산악영화제에서도 소개된 작품으로 한 폭의 동양 산수화 같은 느낌을 주는 실험적인 영화이다. 극장 스크린과 사운드로 만나야 제대로 즐길 수 있는 작품으로, 안개의 움직임은 숭고하기 그지 없으며 모든 것을 품는 산은 강렬하고도 무결한 에너지를 발산한다.

폐막식이 끝난 후 영화제 집행부와 심사위원진의 기념촬영
폐막식이 끝난 후 영화제 집행부와 심사위원진의 기념촬영

심사위원인 스타니슬라프 세메르지예프는 “〈Preparation〉과 〈Jesus Bird〉은 이곳이 조지아의 영화제여서 상을 받은 것이 아니고 뛰어난 독창성과 조지아영화 고유의 전통을 보인다는 점에서 심사위원진 모두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다”며 “조지아영화 전통을 이어가며 오늘의 두 감독을 배출한 쇼타루스타벨리연극영화학교의 즈비아드 돌리제와 고기 돌리제Gogi Dolidze에게도 박수를 보낸다”는 뜻을 전하기도 했다.

에터 파추키제Eter Parchukidze 프로그래머는 “팬데믹의 영향으로 작품 수급에 어려움을 겪다 보니 작년보다 적은 편수가 영화제에 이름을 올렸지만, 영화 면면을 살펴보면 영화제의 아이덴티티인 ‘산악’ 테마가 더욱 강화되었고 질적인 측면에서도 우수한 작품을 가져왔다고 자부한다”며 “산을 주제로 한 메스티아영화제만의 자체 브랜드를 형성해가는 점”에 만족감을 표했다. 또한 “영화제는 결국 전 세계 영화계의 재능을 축하하며 함께 따뜻한 추억을 만드는 것”이라며 “조지아식 환대와 사랑으로 가득한 메스티아영화제는 ‘페스티벌 패밀리’를 만들어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고 내년에 있을 더욱 흥미롭고 따뜻한 영화제를 지켜봐 달라”고 관심을 촉구했다.

모든 행사가 끝난 폐막 리셉션은 모두가 하나되어 먹고 마시고 노래하고 춤추는 말 그대로 축제의 장이었다. 파추키제 프로그래머의 말한 ‘페스티벌 패밀리’라는 게 이런 것일까? 영화라는 이름으로 코카서스 산맥의 대자연 아래 모인 우리는 그렇게 가족이 되었다. 확실한 컨셉과 특색있는 부대행사로 무장한, 그리고 사랑과 정이 넘치는 메스티아영화제의 앞날을 주목해보자.

 


 

 

* 《쿨투라》 2022년 9월호(통권 99호) *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