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월평] 선택을 대하는 자세: 〈인사이더〉
[드라마 월평] 선택을 대하는 자세: 〈인사이더〉
  • 김민정(드라마 작가, 중앙대 교수)
  • 승인 2022.09.01 00:5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JTBC 제공

만약 내게 1,000억이 있다면 무엇을 할까 생각해본 적이 있다. 지난봄, “청와대 집무실 이전으로 인해 연쇄적으로 발생하는 합동참모본부의 이전 비용이 약 1,000억 원 정도로 예상된다”는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관련 뉴스를 접하고 난 뒤였다. 공교롭게도 비슷한 시기 애플TV+는 드라마 〈파친코〉를 공개했다. 8부작 드라마 제작비가 자그마치 1,000억. 세계적인 기업이 아니라면, 한 나라의 지도자가 아니라면 절대 하지 못했을 엄청난 규모의 ‘베팅’이었다. 천억이 옆집 애 이름도 아니고.

그 선택‘들’의 결과가 어떠했는지 지금으로선 쉽게 단정 지을 수 없다. 다만, 그 결과가 어떠하든 우리는 계속 살아가리라는 건 분명하다. 우리에게 주어진 내일을 오롯이 감당해내고 있겠지. 음.

드라마 〈파친코〉(2022)의 주인공들은 저마다 이국땅에서 정착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하지만 끝내 그들의 꿈은 좌절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인들은 견뎠다.” 드라마 〈파친코〉 속 대사 한 줄에 기대어 우리 안에 남은 꿈과 희망을 ‘영끌’해보는 건 어떠할지. 드라마 제목이 왜 ‘파친코’겠는가. 삶은 운명을 알 수 없는 도박과 같다. 오늘 하루 그대에게 신의 선하심이 함께 하길.

JTBC 제공
JTBC 제공

인생의 길, 도박의 길

인생은 도박과 같다. 이 말은 말 그대로 비유적 표현이다. 그런데, 진짜 도박에 인생을 건 사람이 있다. 드라마 〈인사이더〉(2022)의 주인공 김요한 이야기다. 사법연수원생 김요한은 부패수사청 설립을 반대하는 홍상욱을 제거하기 위해 비밀리에 인사이더로 투입된다. 하지만 일이 연거푸 틀어지면서 진짜 신분이 지워진 채 범죄자로 교도소에 투옥된다. 하나의 거대한 도박장인 성주 교도소에서 그는 자신의 목숨을 건 진짜 도박을 하게 된다. 음, 사법연수원 수석을 한 좋은 머리로 도박 기술을 연마하게 될 줄 누가 알았으랴.

인생은 개별적인 선택들이 모여 완성된다. 사법연수원생 김요한은 잠입 수사하는 인사이더로 사찰 안 도박장에 투입되기를 ‘선택’하고, 인사이더로 또 한 번 교도소 안 도박장에 들어가기를 ‘선택’하고, 그 안에서 ‘선수’가 되어 최고의 도박 리그에 들어가기를 ‘선택’하고… 그때 그 순간의 선택이 모여 지금의 김요한이 만들어졌다. 하지만 그 선택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는 전혀 예측할 수 없다.

만약 그의 첫 잠입 수사가 성공했다면 적폐청산과 정의 구현은 물론이고, 김요한 역시 촉망받는 검사가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현재 김요한은 불법도박으로 교도소에 투옥된 범죄자일 뿐. 드라마는 인생이 하나의 거대한 도박이라는 설정 아래 김요한의 선택과 그에 따른 결과에 집요하게 파고든다.

사람의 길, 돈의 길

드라마는 주인공 김요한이 사적 복수를 통해 공적 복수에 성공하는, 정의 구현을 위해 열일하는 선한 영웅의 모습에 초점을 맞춘다. 평소 ‘미담제조기’로 유명한 배우 강하늘을 주연으로 캐스팅한 것만 봐도 딱 견적이 나온다. 그런데 드라마 1화에서 목진형 검사가 김요한에게 인사이더를 제안하며 한 말이 마음에 짙은 여운을 남기는 건 왜일까. “돈 없고 빽없는 니는 20년 지방에서 뺑뺑이 치다가 끝나버리는 거다. (중) 인왕산 바람 타고 날아오르면 그냥 대검 입성이다.” 나만 찜찜한가.

드라마 〈인사이더〉의 주요 공간은 세 곳이다. 검찰, 사찰, 교도소. 이 세 군데의 공통점이 있다. 바로 선과 악을 논하는 곳이라는 점이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이 세 곳을 하나씩 거쳐 가면서 주인공 김요한은 선과 악 너머에 있는 또 다른 세계에 들어가게 된다. 바로, 돈의 세상이다.

‘언더커버’를 소재로 다룬 드라마는 믿음과 배신의 서사 패턴을 가진다. 의리에 살고 의리에 죽는, 뫼비우스의 띠처럼 죽고 죽이는 잔혹한 복수극. 그런데, 〈인사이더〉는 다르다. 교도소에는 김요한만 있는 게 아니다. ‘인사이더’ 김요한 때문에 교도소에 오게 된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그들이 김요한에게 요구하는 것은 목숨이 아니다. 돈이다. 그들의 말에 따르면 ‘손해배상 청구’.

돈의, 돈에 의한, 돈을 위한 세상. 인생이 정말 하나의 거대한 도박판인 것이다. 〈인사이더〉를 관통하는 하나의 명대사를 뽑으라면 나는 망설임 없이 사적 복수의 정점에 있는 오수연의 대사를 뽑겠다. 넌 선인이냐 악인이냐는 일본 야쿠자의 질문에 오수연이 이렇게 대답한다. 선인도 악인도 아니에요. 그냥 사업가예요.

김요한이 교도소 감금 상태로 악성 채무에 시달리긴 하지만 그는 사법연수원 수석을 할 정도로 명석한 두뇌의 소유자다. 정의 실현이든 자아 실현이든 자신의 선택을 책임질 만한 ‘사회적 자본’을 든든하게 갖춘 전직 사법연수원생이란 얘기다. 음, 제일 쓸데없는 게 정치인 걱정과 김요한 걱정이다.

개미의 길, 주식의 길

비슷한 시기에 방영된 드라마 〈클리닝 업〉(2022)의 주인공 ‘어용미’는 김요한에 비하면 가진 게 너무나도 없다. 삶이 너무나 각박하고 힘들어서 로또 당첨과 같은 기적이 없으면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없다고 생각하는, 그런 작은 사람이랄까.

증권회사 미화원 어용미는 우연히 내부자 거래 정보를 듣고 그게 돈이 된다는 걸 알게 된다. 그래서 불법임을 알면서도 인생 역전을 위한 운명적 ‘선택’을 한다. 그는 미화원 동료들을 포섭하여 큰 작전을 성사시킬 계획을 하는데, 함께 할 동료들을 설득하는 과정에서 요즘 말로 ‘뼈 때리는 대사’가 나온다. “평생 죄짓지 말고 착하게 구질구질하게 사세요.”

극 초반 어용미는 바람난 남편과 이혼하고 아이 둘을 혼자 키우며 어렵게 사는 싱글맘으로 그려지며 시청자들의 공감을 끌어냈다. 하지만 이혼 전 도박 빚과 이기적인 민폐 행동 때문에 점점 비호감 캐릭터로 전락했다. 물론, 시청률도 내림세였다. 그런데 마냥 어용미를 욕하기에는 마음 한구석이 또 찜찜하다. 아, 나는 프로 찜찜러인가.

드라마를 보며 정말 깜짝 놀랐다. 미화원은 회사의 모든 곳에 갈 수 있고 회사에서 하는 모든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그들은 정말이지 건물 곳곳을 누비며 직원들의 커피 취향과 신발 크기, 그리고 은밀한 사생활까지 꿰고 있었다. 아무도 그들을 경계하지 않기 때문이다. ‘누가 미화원을 의심해?”라는 대사가 드라마에 나오는데, 그동안 우리가 얼마나 미화원을 투명 인간 취급하며 무시해왔는지 깨닫고 깊게 반성하게 된다. 한때 인터넷을 떠들썩하게 했던 ‘남자 화장실의 여자 미화원’ 기사를 기억한다면 고개로 절로 끄덕여질 것이다. 이쯤 되면 ‘싹쓸이 작전’이 아니라 존재가 지워진 묵음들의 ‘인정 투쟁’이라고 해야 하지 않나. 음.

도전의 길, 선택의 길

운명을 건 뜨거운 ‘선택’으로 주목을 받은 사람이 또 있다. 이번에는 드라마 안이 아니라 그 밖이다. 가스라이팅 논란으로 활동 중단에 들어갔던 배우 서예지의 복귀작 〈이브〉는 인생을 걸고 펼치는 한 여자의 강렬하고 치명적인 격정 멜로 복수극으로 방영 내내 파격적인 노출과 정사신으로 노이즈 마케팅을 한다는 혹평을 받았다. 가스라이팅으로 인한 팜므파탈 이미지를 드라마 안으로 그대로 가져와 정면 돌파를 시도했는데, 그걸 두고 온라인상에서 뜨거운 갑론을박이 이어졌다. 드라마 〈이브〉를 배우 서예지의 전지적 ‘선택’ 시점에서 본다면 어떨까. 나는 2022년 한여름, 논란의 중심에 있는 배우 서예지와 신드롬의 중심에 있는 배우 박은빈이 비슷하지 않나 싶다. 음. 음.

2021년 퓨전 사극 〈연모〉로 세계를 제패한 다음 배우 박은빈이 선택한 작품이 바로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다. 한국에서는 보기 드문 낯선 장애인 드라마, 그것도 보통 연기 내공으로는 소화하기 어려워 칭찬은커녕 욕먹기 쉬운 자폐 스펙트럼 역할, 그것도 인지도 낮은 신생 채널 ENA에서 방영하는 드라마. 첩첩산중도 이보다는 덜 험난했을 것이다. 〈이브〉의 서예지처럼 박은빈에게도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그때 그 순간에는 배우 인생을 건 위험한 베팅, 아니 남다른 선택이지 않았을까. 선택 그 자체로만 보면 남들이 예상하는 경로에서 벗어났다는 점에서 크게 다르지 않으니까 말이다.

음, 신기한 일 아닌가. 서예지의 길과 박은빈의 길이 다른 듯 이렇게 비슷하다니. 그래서 하는 말인데, 인생은 도박과 같지만, 그래서 ‘복불복’이지만, 의외로 살 만하다. “똑바로 읽어도 거꾸로 읽어도” 복불복이니까. 기러기 토마토 스위스 별똥별 역삼역 그리고 복불복! 2022년 여름을 뜨겁게 살아낸 모든 이들에게 다시 한번 격려의 말을 전하고 싶다. 오늘 하루 그대에게 신의 선하심이 함께 하길.

 


김민정 중앙대 문예창작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연둣빛 캠퍼스물과 회색빛 오피스물 사이를 분주히 오가고 있다. 언젠가는 내 인생의 장르가 판타지로맨스코미디홈드라마가 될 거라고 굳게 믿는다. 저서로 드라마 캐릭터 비평집 『드라마에 내 얼굴이 있다』 드라마 에세이 『언니가 있다는 건 좀 부러운 걸』 드라마 비평집 『당신의 밤을 위한 드라마사용법』 드라마 이론서 『당신의 삶은 어떤 드라마인가요』 등이 있다.

 

 

* 《쿨투라》 2022년 9월호(통권 99호) *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