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리뷰] 승무의 바탕에는 춤과 삶을 일치시킨 한성준 춤의 ‘생명의 역동성’이 있다: 이애주, 『승무의 미학』
[북리뷰] 승무의 바탕에는 춤과 삶을 일치시킨 한성준 춤의 ‘생명의 역동성’이 있다: 이애주, 『승무의 미학』
  • 채희완(춤비평가)
  • 승인 2022.09.01 00:5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우리에게는 승무가 공연될 때마다 한국춤계에, 한국예술계에 경사가 나듯이, 승무에 관한 책이 나왔으니, 한국 춤학계에, 한국예술학계에 경사가 아닐 수 없습니다.

더구나 이 ‘승무론’이 온 한살매를 두고, 온 몸과 온 핏줄기로 이애주 선생이 쓴 글들이라니 온갖 승무 논의를 압도하는 결정판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네의 승무 공연이 그러하듯이 수많은 갈래의 승무 공연 가운데서도 단연 뛰어나며 법통이 강력한 공연이었고, 이를 실천으로 체득한 바를 이론화한 작업이기에 더욱 그러한 것입니다.

‘스스로 엄격한 수련과정’에서 감지한, 또는 깨친 ‘온몸’의 산물이므로 그네의 춤처럼 승무춤 관련 저작은 그네의 처절한 삶의 한 자취이기도 합니다.

그네의 춤 공연과 춤 이론 책은 명절날 받는 상차림처럼 그득하고, 명절날 고이 준비한 선물처럼 우리를 설레게 합니다.

그러기에 명절날 하늘과 우주와 자연과 조상과 이웃께 올리는 상차림 같고, 마치 명절날 멀리 떠난 고향 찾아가는 이가 미리 준비한, 그윽하고 경건하고, 갖은 노고와 숨결이 어린 선물꾸러미 같은 것입니다.

도저히 빈손으로는 고향을 찾아갈 수 없는, 어쩌면 이걸 위해 그렇게 살았는가 싶은, 두 손에 들린 선물 보따리 같은 것이지요, 명절날은 새삼 살아온 지난날과 다가올 앞날을 얽어 매듭짓고 풀어 반성과 전망을 하는 날입니다. 그날이 그날인 삶은 한 차례 고갯길 마루턱에 올라 한시름 놓고, 명절날은 놀고, 삶을 출렁이게 합니다.

한성준. 1935년 부민관 〈한성준무용공연회〉를 마치고. 이애주문화재단 제공
한성준. 1935년 부민관 〈한성준무용공연회〉를 마치고. 이애주문화재단 제공

이애주의 승무 공연, 승무 책 발간이 왜 경사 난 건가 했더니 바로 명절날 소롯한 동네 잔치판 같아서 그런가 봅니다.

민족예술학계에서 보면 이 책은 우리춤의 진수인 승무 논의의 한 중간 결산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아마 이애주 선생님 살아계신다면 이런 책은 아직 나오지 못하고 있을 겝니다. 승무에 관해 수십 차례 되풀이 써 오신 것조차 아직 모자라니까, 더 있다가 책 내자고 하셨을 테니까요.

우리(이애주 선생의 춤을 사랑하고 존경하면서, 같이 배우고 이론도 실기도 공부도 하고 싶어하는 동사同事들)는 2012년 가을 이애주 교수 정년기념으로 이애주 춤 학예굿(학술과 연행의 합동잔치판)을 준비할 때에도 이애주 선생의 글을 모아 책을 내보자고 했고, 근래에는 2020년 한영숙 탄신 백주년 기념 행사(이때도 학예굿처럼 관련 공연과 학술발표회를 곁들여 했음) 때에도 절실하게 책 출판을 강구해 보았습니다. 이제 돌아가신 지 일주년 만에 아담한 크기로 『승무의 미학』, 『고구려춤 연구』, 『춤꾼은 자기 장단을 타고 태어난다』 등의 연속으로 한꺼번에 이애주 문화재단의 첫 사업으로 책이 나왔습니다. 우선 글 수집 정리와 편집 출판에 애쓰신 임진택 선생을 비롯한 문화재단 관계자분들과 제자분들의 학문적 노고에 동사로서 학문적 정을 느낍니다. 특히 여러 갈래로 쓰신 글들을 모두어 새로 뼈대를 곧추 잡아 소롯이 이애주 선생의 필체와 글 맛을 낸 유고집입니다. 또한 더욱 주목할 것은 ‘승무론’이 그것의 원줄기인 「한성준론」과 더불어 있음을 명철한 식견으로 드러낸 학문적 쾌거라는 점입니다.

이 책의 중심 편집자인 제자 김연정 씨가 글머리에 밝혔듯이, 이애주 선생은 “우리 춤의 원류를 깊게 넓게 살펴보시면서 전통춤이 현재의 모습으로 집대성되기까지 그 중심에 조선 말에 활동한 한성준 선생님이 있음”을 강조하였습니다. 그래서 이 책의 부제로 ‘한성준 바탕-한영숙류-이애주맥’이라 붙인 것이지요. “스승 한영숙에게 물려받은 춤이 핵심적인 사상과 본성을 한성준이라는 인물의 총체적인 이해를 통해 밝히려고”했던 것입니다. 이는 한성준이라는 ‘춤 작가론’을 토대로 승무 ‘작품론’을 펼쳐낸다는 뜻이겠습니다.

한영숙의 승무. 이애주문화재단 제공
한영숙의 승무. 이애주문화재단 제공

이애주 선생은 “하나의 춤 종목으로서의 승무가 아니라 오랜 역사를 통해 형식을 갖추게 된 승무의 움직임의 원리와 밑바탕에 깔려있는 철학적 의미”에 천착하셨습니다. 또 이는 승무 ‘작품론’이라 하더라도 문화사적 배경 이해를 통해 ‘무형문화재론’으로서의 승무론임을 우선적으로 한다는 뜻이지요. 그리고 그것은 승무 논의를 통해 한국춤의 원류와 본원의 세계를 탐구한다는 뜻이고, 결국은 춤의 본질은 무엇인가, 춤은 무엇으로 추는가를 캐묻는 방식이 되고 있습니다.

춤은 역사적 삶의 축적물이므로, 이의 연구와 실천을 통해 춤꾼의 역사의식과 ‘삶의 태도’가 어떠해야 할지를 고취하는 것으로 전통춤의 현대적 의의를 재삼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 책은 그네의 제자인 김연정씨가 승무와 관련된 이애주 글들을 재구성, 요약하여 또다른 학문 대중적 교과서를 편찬해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애주 글의 다소 고전적인 필치는 안정감과 함께 때로 요지부동의 고착감을 주기도 합니다.

이 책은 크게 두 가지 논문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하나는 「우리 춤의 선구先柩 한성준韓成俊」에 실린 내용으로, 「한성준論」(1996), 「한성준 춤의 형성과 예술적 가치」(1996), 「한성준의 춤인식과 춤정립」(1997), 「한성준을 통해 본 한국춤 정신」(1998), 「한성준 춤의 정신과 현대적 의의」(1998), 「한성준 춤의 예술성과 보존방안에 관한 연구」(2004), 「한성준 춤의 가치와 정신」(2011) 등입니다.

또 하나는 「우리 춤의 정수精髓, 승무僧舞」에 실린 내용으로 「승무의 구조와 춤사위 연구」(1995), 「승무의 원류에 관한 연구」(1996), 「한영숙 승무의 전승과정」(1999), 「승무 춤사위에 나타난 정신사상」(2013), 「한성준-한영숙류 승무의 미적 실체」(2014), 「승무에 대한 철학적 접근」(2020) 등입니다.

한성준이 살아온 삶은 그대로 장단이고 춤이었다고 할 수 있다. 예컨대 그에 의해 일상적 걸음이 춤 걸음이 되고, 그것이 다시 춤 기본으로 풀어지며 예술춤으로 완결되었듯이, 모든 일상적 몸짓이 춤으로 형상화되었고, 예술춤으로 승화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 본문 60쪽

이애주 선생은 한성준 춤을 위와 같이 요약합니다. ‘사람은 태어나면서 춤이 있었다’, ‘삶의 일거수일투족이 춤 아닌 것이 없다. 일상동작에 장단을 타면 그게 춤’이라고 설파한 한성준 옹이었습니다. ‘중도의 춤’이란 큰 법도 가운데 자연스러움의 표출을 그의 춤의 핵심적 가치로 총괄하면서, ‘담백하고 근엄해서 줏대가 있고 솔직한 성품에 부지런함’이 더한 것(본문 38~39쪽)으로 보았습니다, ‘춤과 삶의 일치’, ‘민족의식에 바탕한 춤의 중심’, ‘실천체득의 연구 정신,’ ‘악과 춤의 조화’, ‘탁월한 재구성에 의한 춤의 정립’ 등으로 그의 춤의 정신적 바탕을 모아냈습니다. 그것은 곧바로 승무의 정신적 바탕이기도 한 것이지요.

신무용 창작춤의 모체가 되면서 뿌리가 된 것이 한성준이 정립한 춤
- 본문 38쪽

한성준의 춤은 지역적으로 전승되어 온 춤을 전국적으로 활동 하에 터득하여 ‘재구성’ ‘재창조’된 것이고, 지금도 창작춤의 ‘창작’이라는 어휘는 이와는 전혀 다른 서구 예술 가치관 사고에서 출발한 발상이다.
따라서 한성준 춤을 창작으로 보는 것은 잘못이라 생각한다. 즉 한성준의 탁월한 재구성, 재창조에 의해서 묻혀졌던 춤이나 볼 수 없었던 춤들이 사람들에게 알려지고 빛을 보게 된 것과 다름 없다. 다만 그의 예술적 천재성으로 인해 그 춤들이 체계적으로 거의 완벽하게 정리되었기 때문에 지금 기준의 참작으로 보더라도, 최고의 춤들로 꼽히며 그의 위대한 업적은 급기야 그가 정리한 춤들이 몇 가지나 국보로 지정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 본문 58쪽

이는 이애주 선생의 확고한 역사의식에서 비롯된 발언임에 분명합니다. 그러나 한 편 한성준춤을 ‘전통춤’의 범주 속에 넣음으로써 창작행위로서의 한국 근대춤에 포함되지 않아 근대춤 시기의 전통춤 집대성일 뿐이라는 관념을 심어주기에 이르렀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한성준 춤의 근대성과 관련된 논의는 무형문화재로서의 승무론에서 얼마나 벗어나는가에서 출발할 수 있다고 우리는 보는 것이지요.

이 책이 지니는 전승 승무에 관한 정본으로서의 가치는 한영숙 춤사위의 무보화 작업에도 있습니다. 1983년 12월 5일, 한영숙 스승이 직접 수행한 시연 동작을 400여 장의 사진(사진 작가 임성규)으로 담아 무보화 작업을 해놓은 원고가 발굴되어 제자 권효진이 재정리하여 이 책에 실린 것입니다. 이애주 선생은 우리춤의 맥과 뿌리, 법도를 그대로 동작 해설에 적용함으로써 춤사위 동작 구조 분석의 성취를 거두어내었습니다. 좀더 치밀한 무보법 작성이 요청된다고 하나, 춤사위해설만으로도 춤 교본으로서 실용적 가치가 지극히 높은 소중한 자료가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 춤 동작의 움직임의 이동에서 삼진삼퇴三進三退는 오고감의 원리이다. 주로 삼진할 때는 큰 걸음, 평걸음, 잦은 걸음의 순으로 앞으로 나아가 맺게 되고, 삼퇴할 때는 잦은 걸음으로 물러나며 푸는 의미를 갖는다.
거기에 구체적인 춤사위는 손놀림, 발놀림, 몸놀림이 합쳐지고 조화되어 ‘수족상응手足相應’의 굽히고 펴기, 맺고 돌기, 대삼소삼의 원리가 만들어지는데, 그 내면에는 음양오행 법칙이 있다
- 본문 119쪽

거기에 ‘답지저앙踏地低昂’으로 무릎굴신활동이 몸놀림의 원천이라는 우리춤 움직임 원리의 요체를 껴안은 안목이 돋보입니다.

이애주 선생의 승무 춤구조 분석 논법의 독특함은 한영숙 선생의 가르침대로 ‘마루’와 ‘과장’이라는 개념을 동원하여 춤거리(내용)와 춤새(형식)를 해석해낸 점입니다. 승무를 과장(이는 교향곡에서 악장에 해당됨) 별로 보면, 염불 과장은 무극無極에서 태극太極인 우주가 생겨나는 과정이고, 타령 과장은 사방의 범위가 생기고 울타리가 쳐지며 일의 몸짓이 시작된다. 굿거리 과장은 인간사의 희로애락이 펼쳐지며 만물의 꽃이 피어나 만발하고 아름다운 삶자취를 형상화한다.

법고 과장은 북을 계속 두드리며 올곧게 열매가 맺고, 당악 춤에서는 장삼을 휘날리며 세차게 바람이 일고 꽃잎과 열매가 후두둑 떨어지며 무無의 세계로 돌아가는 의미이다. 그리고 마지막 굿거리에서 전체 한 판을 순리대로 정리하여 본래의 상태로 되돌아가는 회귀의 장이 된다.
- 본문 119~120쪽

그리하여 “승무에 내재된 사상·철학의 면모를 살펴보면, 생명으로는 생장수장生長收藏, 계절로는 춘하추동春夏秋冬, 인간사로는 희로애락喜怒哀樂, 생로병사生老病死, 사람의 덕성으로는 인의예지仁義禮智, 철학적으로는 원형이정元亨利貞의 우주생명철학을 내포하고 있다.”(본문 120쪽)고 하였습니다.

춤을 ‘움직임의 도’라고 한 것도 그런 뜻일 것입니다.

삶의 온갖 몸짓이 함축적으로 표현된 것이기에 춤에는 과거와 현재뿐만 아니라 미래까지 담겨있다.
- 본문 120쪽

이처럼 “자연의 창조적 진리를 본성으로 하고 있는 승무”이므로 “형식적 과거지향적 고정된 틀로 인식할 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오늘의 틀로, 더 나아가 오늘을 끌고 가는 하나의 근원적인 제시물로 보아야할 것이다. 승무는 ‘전통예술인들의 나가야 할 방향과 역할에 미완의 과제’를 던져주고 있다.”(본문 121쪽)고 간곡하게 호소하고 있습니다.

“여러 유형의 전승 승무에 관통하는 승무의 본질은 ‘생명의 역동성’으로 춤사위의 자연스런 역동적인 맺고 끊음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생명이 태어나 그 생명핵이 제대로 중심을 잡아가며 바르게 서서 바르게 나아가는 그를 가리키고 있는 것이다”(본문 132쪽)라는 겁니다.

그러하기에 이 책은 승무의 해석을 통해 인간 삶이 정도正道로 나아가야 함을 제시하는 춤도덕률 책이기도 합니다.

 


채희완 춤비평가. 부산대학교 명예교수. 사)민족미학연구소 소장. 저서로 『춤, 탈, 마당, 몸, 미학 공부집』 『한국춤의 정신은 무엇인가』 『탈춤』 『지극한 기운이 이곳에 이르렀으니』 등이 있으며, 1970년대 및 80년대 초 마당굿 대본을 모아 『한국의 민중극』을 엮어냈다.

 

 

* 《쿨투라》 2022년 9월호(통권 99호) *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