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간 리뷰] 동요작곡가 정근, 55년 만에 귀향하다: 『정근 전집』 출판기념회
[출간 리뷰] 동요작곡가 정근, 55년 만에 귀향하다: 『정근 전집』 출판기념회
  • 이승철(시인·한국문학사 연구가)
  • 승인 2022.09.01 0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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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레비전에 내가 나왔으면 정말 좋겠네 정말 좋겠네~”(〈텔레비전〉), “아저씨 아저씨 우체부 아저씨 큰 가방 메고서 어디 가세요~”(〈우체부 아저씨〉) 등을 작사, 작곡하고 “둥글게 둥글게(손뼉) 둥글게 둥글게(손뼉) 빙글빙글 돌아가며 춤을 춥시다(손뼉)~”(이수인 작곡 〈둥글게 둥글게〉) “저 멀리 하늘에 구름이 간다 외양간 송아지 음메음메 울적에 어머니 얼굴 그리며 간다~”(이수인 작곡 〈구름〉) 등을 작사하는 등 수많은 동요 히트곡으로 ‘국민동요 작곡가’로 불리는 정근(1930~2015).

한국전쟁의 여파로 황폐해진 그 자신과 이 땅의 어린이들을 위해 정근은 세대를 뛰어넘어 누구에게나 친숙한 현대적 동요를 작사, 작곡했다. 광주와 서울에서 ‘새로나소녀합창단’ 창단 및 지휘자, ‘KBS어린이합창단’ 지휘자, ‘어머니동요합창단’ 창단 및 지휘자로 활동하면서 그가 노랫말을 쓰거나 작사, 작곡한 동요가 무려 270편에 이를 정도로 방대한 분량이다. 아울러 정근은 KBS 간판 어린이프로그램인 〈어린이 동산〉, 〈모이자 노래하자〉 등과 유아 프로그램인 〈딩동댕 유치원〉, 〈하나 둘 셋〉 등의 방송작가로 활약하면서 어린이 음악교육과 동요 보급에 힘썼다. 이러한 공로로 ‘전라남도문화상’, ‘윤극영아동문학상’ 등을 수상하기도 했다.

『정근 전집』(전 3권) 출판기념회가 지난 8월 18일(목) 오후 3시, 광주광역시 동구청 대강당에서 열렸다. 동요작곡가로서 전집이 출간된 것은 윤극영, 윤석중에 이어 세 번째로 의미가 깊다. 지난 2015년 1월, 향년 85세의 일기로 타계한 동요작곡가 정근이 1967년 고향을 떠난 지 55년 만에 ‘전집’으로 귀향한 셈이다.

정근 전집 출판기념회 행사후 임택 동구청장, 나종영 시인, 정철훈 작가 등 문학예술인들
정근 전집 출판기념회 행사후 임택 동구청장, 나종영 시인, 정철훈 작가 등 문학예술인들

이승철 시인의 사회로 열린 『정근 전집』 출판기념회는 임택 광주 동구청장, 나종영 시인(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문학위원), 박관서 시인(한국작가회의 사무총장), 채희윤 작가(오월문예연구소 소장), 조진태 시인(5·18기념재단 상임이사), 김수 시인(광주평화포럼 상임대표), 유가족 정철훈 작가와 시민들이 참석해 동요작곡가 정근의 삶을 기리고, 추모한 뜻 깊은 자리였다. 임택 동구청장은 축사에서 “오랜만에 가슴이 뜁니다. 정근 선생님의 동요로 젊어지는, 아니 어려지는 시간입니다. 자주자주 작품과 만나야겠습니다. 축하드립니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이날 바리톤 황성철(광주교대 성악과 교수), 소프라노 김은혜의 이중창으로 정근의 대표곡 〈텔레비전〉, 〈우체부 아저씨〉, 〈구름〉, 〈둥글게 둥글게〉 등이 불러질 때 객석에서 자연스럽게 합창되어 분위기가 고조되었다.

한국 동요사에 굵직한 발자취를 남긴 정근의 『정근 전집』은 현기영 소설가(전 한국작가회의 이사장), 이상국 시인(전 한국작가회의 이사장), 양정자 시인, 장철문 교수(순천대 문예창작과), 신이영 이사장(유라시아문화연대), 유족 정철훈 시인이 간행위원으로 참여해 ‘작가’ 출판사에서 최근 출간되었다. 『정근 전집』은 저자의 동시와 동요 악보, 파란만장한 삶의 역정을 기록한 회고록 및 일기, 전래동화와 이야기동화, 동화 화술 등을 망라한 책이다.

정근의 동요 이중창- 바리톤 황성철, 소프라노 김은혜
정근의 동요 이중창- 바리톤 황성철, 소프라노 김은혜

동요작곡가 정근은 1930년 11월 21일 광주광역시 양림동 210번지에서 4남 1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그의 부친은 한문교사이자 한시를 쓴 정순극이며, 모친은 정참이이다. 부친 정순극은 최초의 근대적 희곡작가 김우진과는 처남 매부 관계이다. 정근에게는 월북 영화감독 정준채(1917~1980), 카자흐스탄 망명 공훈작곡가 정추(1923~2013), 평양외대 출신의 번역가 정권(1925~1950), 그리고 누이 정경희(1921~2011)가 있다. 정근의 세분 형님이 해방정국 하에서 월북함으로써 가족사적 비극과 수난이 전개되었다. 정근의 가족사에는 식민지와 분단, 전쟁과 이산 그리고 연좌제의 상처가 배여 있으며, 한국 근현대사의 비극을 껴안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근은 형들이 월북하게 되자 상대적으로 이데올로기에서 자유로운 동요 창작에 매달렸다. 한국전쟁의 폐허 속에서 상처받은 어린이들의 동심을 회복하고, 미래의 희망을 위해 수많은 동요를 작곡했다. 특히 동요작곡가 중에서 가장 감수성이 예민한 6세 이하의 유아들을 위해 스스로 작사한 가사에 곡을 붙인 것은 ‘정근’이 유일하다.

 


 

 

* 《쿨투라》 2022년 9월호(통권 99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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