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회 나의 첫사랑이야기 공모전 심사평 및 수상작 발표] 대상 첫사랑의 기준, 박명서
[제5회 나의 첫사랑이야기 공모전 심사평 및 수상작 발표] 대상 첫사랑의 기준, 박명서
  • 쿨투라 cultura
  • 승인 2022.09.14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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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회 나의 첫사랑이야기 공모전

심사평

첫사랑 서사의 애틋한 추억들, 그 완미한 문장들

황순원 소나기마을이 주최하고 문화전문지 〈쿨투라〉가 주관한 ‘첫사랑 이야기’ 공모전에는 저마다의 기억과 경험을 아름답게 재현하여 들려주었습니다.

오랜 기억 속에서 첫사랑의 소년 소녀들은 젊은 날의 사랑과 열정을 선연하고 심미적으로 재구성하였고, 낱낱 작품마다 인생의 신비로움과 애틋함을 들려주었습니다. 심사위원들의 마음도 더불어 환해졌습니다.

대상작 〈첫사랑의 기준〉은 춘천을 배경으로 하여 기차에서 만난 그녀를 추억하는 아름다운 문장을 보여주었습니다. 잠시 빠져버린 추억의 순간이야말로 인생 전체와 맞먹는 감정의 깊이를 거느리고 있었습니다. 그 행간 속에서 속삭이는 이야기가 잘 짜인 구도로 재현된 작품입니다. 한참을 고민했을 시간이 아름답게 몸을 바꾸는 순간이 잘 전달되었습니다.

심사위원들은 상상만 해도 가슴이 설레고 행복한 꿈이 풍선처럼 부풀어 오르는 문장들을 따라 전해지는 행복감을 바라보면서 이 작품을 대상작으로 선정하는 데 아무런 이견이 없었습니다.

최우수상 〈노량진, 인연 그리고 첫사랑〉은 재수 시절 경험을 밀도 있는 문체로 들려주어 젊은 날의 실제적 경험을 잘 전달해주었습니다. 상경한 화자가 서울 여성을 사랑한 이야기가 재미있는 일화로 담겨 있었습니다.

우수상으로 뽑힌 〈다시 남해대교에서〉, 〈콩꽃〉, 〈꼭두각시 춤〉과 9편 가작들도 저마다의 사연과 사랑의 전율이 그대로 전해졌습니다.

아름다운 첫사랑의 나무를 한 그루 가꾸고 싶었던 여러 작품들은 그 추억만으로도 오늘을 살아가는 힘이 될 것입니다. 가슴에서 가장 반짝였던 기억 저편의 첫사랑 이야기를 보내주신 모든 응모자 분들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심사위원
유성호(문학평론가, 한양대학교 인문대학장)
손정순(시인, 월간 쿨투라 발행인)

당선작 발표

대상 1명 박명서(첫사랑의 기준)
최우수상 1명 김성준(노량진, 인연 그리고 첫사랑)
우수상 3명 김화순(꼭두각시 춤), 박성근(다시 남해대교에서), 박채린(콩 꽃)
가작 10명
김상민(편의점 그녀), 김서연(나의 첫사랑 이야기), 배현빈(가을), 이경석(무제 )
이경섭(늘 내 마음 한편을 차지할 사람), 양성자(도서관에서 만난 첫 사랑)
장윤정(무의미에서 너까지), 정승권(무명배우의 첫사랑), 최양수(내가 너의 곁을 지켜줄게)
한선아(Love You to the Moon and Back)

 


첫사랑이야기 공모전 대상

첫사랑의 기준

박영서

 

1986년 11월 초. 제대 후 고향인 춘천에서 교원임용고사 준비를 하던 저는 새로 나온 수험서를 사기 위해 종로서적에 들렀다가 경춘선 열차를 이용해 춘천으로 돌아가는 길이었습니다. 토요일이라 청량리역에서 출발하는 통일호 열차는 승객들로 엄청 붐볐지요. 하지만 저는 예매를 했기 때문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제 옆 자리엔 안경을 쓴 중년 신사분이었구요.

열차가 출발하기 직전 입석 손님들이 우루루 들어오더니 그 중 두 여자가 제 자리 옆에 서는 것이었습니다. 다정히 팔짱을 서로 꼭 끼고 있는 것으로 보아 모녀지간인 것 같았습니다.

열차가 얼마간 달리기 시작하자 그들은 제 좌석 등받이 모서리 부분을 잡고는 제 몸 가까이까지 고개를 숙이며 연신 창밖의 풍경을 내다봤습니다. 눈을 감고 있자니 그렇고, 어느 한 곳에 시선을 두기가 불편해 저 역시 고개를 돌려 창밖만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한 5분쯤 지났을까요. 저는 젊은 아가씨와 함께 서서 가는 것도 괜찮을 듯싶어 아주머니께 자리를 양보해드렸습니다.

“아이고, 고마워서 어떡하지?”

아주머니께서 저의 호의에 감사를 표하더니 곧 제자리에 앉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딸이 대신해서 또다시 나에게 목례를 했을 때 저는 처음 얼굴을 쳐다봤습니다. 생머리에 살결이 흰 그녀는 나와 같은 또래일 것 같았습니다.

“춘천까지 가세요?”
“네.”

저는 먼저 말을 걸어준 그녀가 너무 고마웠습니다.

“춘천에 사시는가 봐요?”
“네.”

내성적인 저는 단답형의 대답만 할 뿐이었습니다.

“혹시, 군대 다녀오셨어요?”
“네. 지난 여름에 제대했습니다.”

오붓한 둘의 대화를 끊은 건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아주머니였습니다.

“그럼, 쌍용부대라고 아시겠네.”
“네. 춘천에 있는 2군단 사령부를 쌍용부대라고 합니다.”

저의 답변에 무슨 정보라도 얻은 듯 특히 아주머니는 흡족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그리고 딸과 함께 얼마전 쌍용부대에 배치받은 아들을 면회가는 길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저는 부대까지 가는 길을 내비처럼 상세하게 설명해 주었지요.

“거기 훈련 심하게 하나요?”
“군대는 다 똑같습니다.”

그녀가 다소 어두운 표정으로 진지하게 물었지만 저는 대충 응대했습니다.

“막냇동생이 몸이 약해 큰일이예요."
“군대 갔다오면 모두 강해집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씩씩한 제 말에 모녀의 표정이 도로 환해졌습니다.

그렇게 군대 얘기를 화제로 몇 분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축구 이야기에서부터 포상휴가에 대한 이야기, 짬밥과 PX 이야기까지 그녀는 제 말을 잘 들어주었고, 재미있어 했습니다. 병사들 연애편지 검열과 관련한 에피소드를 꺼낼 때였습니다.

“오우, 애인 있으신가보다. 호호홋”

그녀가 장난삼아 이야기하듯 웃었습니다.

“아닙니다. 연애편지는 제 얘긴 아니고 제 동기들 얘깁니다.”

제 입에서는 다소 과장된 제스처와 함께 거짓말이 튀어 나왔습니다. 사실 저는 깊게 사귀지는 않지만 군대 있을 때 한 여친으로부터 편지를 주고받았었거든요.

이참에 저도, “댁은 남자친구 있으신가요?”라고 묻고 싶었지만 제 목소리는 입안에서만 맴돌 뿐이었습니다.

또 얼마쯤 시간이 흘렀습니다. 객차 문이 덜커덩 열리는 소리와 함께 이동판매원의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따끈한 계란 있어요, 달콤한 귤 있어요.~”

판매원이 손수레를 밀면서 우리 자리 쪽으로 비집고 지나가려는 찰나였습니다.

“저기요.~”

아주머니께서 손수레를 정지시켰습니다.

“총각, 뭐 좋아하시나? 사드릴게.”

사양한다는 제 손짓도 무시한 채 아주머니께서는 세 개 묶음의 주황색 귤 망태와 역시 세 개 들이 삶은 계란 한 봉지를 샀습니다. 그리고는 계란 껍질을 손수 까서 제게 건네시는 것이었습니다.

“이거 드시우. 소금은 여기 있어.”

제가 황송해하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이번엔 그녀가 귤까지 들어 보였습니다.

“드시고, 이 귤도 드세요.”

저는 평소 때처럼 소금을 살짝 찍은 후 한 입에 한 알을 털어넣었습니다. 그런 제 모습을 보고 그녀가 말했습니다.

“천천히 드세요. 체하시면 어떻게 하려고…”

인상을 쓰면서 걱정하는 투가 꼭 저의 엄마 같았습니다.

“괜찮습니다. 원래 계란을 좋아해서요.”

입안의 음식물을 씹으면서도 저는 그녀를 안심시키기에 바빴습니다.

“그럼, 한 개 더 드실래요? 사실 저는 소화가 좀 안 돼서요.”
“네. 감사합니다.”

저는 다시 넙죽 받아먹으며 목례를 했습니다.

기차가 간이역에서 정차할 때 중심을 잡기 어려웠는지 좌석 등받이를 잡고 있던 그녀는 제 어깨를 살짝 짚기도 하였습니다. 저는 기차가 자주 급정거를 했으면, 하고 바랬습니다. 그래서 그녀의 손이 자주 제 몸을 터치해주길 기대했습니다.

어느덧 기차는 대성리역에 도착했습니다. 청춘 남녀들의 시끌벅적한 목소리가 들리더니 그들 중 몇몇은 긴 통기타를 들고 올라타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기차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하자 객차와 객차 사이 연결 통로에서 기타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비바람이 치던 바다 잔잔해져 오면~”

기타 연주에 맞추어 청춘들의 노랫소리도 들려왔습니다. 소리가 들려오는 쪽을 쳐다보다가 웃으며 그녀가 물었습니다.

“기타 치실 줄 아세요?”
“아뇨. 근데 배우고싶습니다.”

당시 기타 연주는 우리들의 로망이었고 저 역시 친구네 자취방에 갈 때마다 배우기를 시도하던 때였습니다.

“어떤 거 배우고 싶으세요?”
“무슨 말씀인지…?”
“클래식기타를 좋아하세요? 아니면 통기타…?”
“저는 초보라서요. 아무 기타면 다 좋아요.”
“그러시구나.”

우리의 대화를 듣고 계셨는지 환한 표정으로 아주머니께서 끼어들었습니다.

“우리 학원에 놀러 오셔. 기타도 배우고…”

그리곤 명함을 꺼내 제게 건네셨습니다.

“다음에 서울 올 일 있으면 들러요. 괜찮은 기타도 하나 선물할 테니…”

피아노와 기타, 색소폰 모양이 앙증맞게 디자인 되어 있는 명함엔 전화번호와 함께 〈00음악학원장 金00〉이란 글씨가 새겨져 있었습니다. 제가 감사표시로 머리를 조아리며 명함을 받아들자 아주머니가 자랑하듯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딸이 거기서 피아노를 가르친다우.”

엄마의 갑작스런 소개에 딸이 살짝 웃어보였습니다.

‘아, 피아노 선생님이시구나. 어쩐지 손가락이 이쁘더라.’ 저는 속으로 생각하며 그녀의 피아노 실력을 가늠해봤습니다.

“근데, 총각은 복학생이우? 아니면 어떤 일을 하시나?”

아주머니께서 저의 직업을 여쭤보셨을 때 저는 살짝 당황했습니다.

“저, 저는 취준생이예요. 다음 달에 시험을 봐요.”
“어떤 시험?”
“교원임용고삽니다.”

그녀가 끼어들어 궁금한 듯 여쭈었습니다.

“무슨 과목이세요? 요즘 경쟁률이 장난이 아니던데…”
“국업니다.”
“아, 예비 국어선생님이시네요. 저도 예전부터 애들을 좋아해서 선생님이 되고 싶었어요..”
“얘는, 피아노 선생님은 선생님이 아니니?”

엄마의 말에 대꾸도 않고 그녀는 말을 이었습니다.

“고등학교 때 국어를 젤 좋아했어요. 왜 그런지 아세요? 국어 선생님이 총각이셨거든요. 호호홋~”

기차가 청평을 지나 가평역에 정차하기 전까지 그녀는 내게 좋아하는 시는 무엇이며 또 어떤 영화를 좋아하는지에 대해 물었습니다.

차창밖 가까이에서 푸른 소양강 풍경이 펼쳐지자 그녀가 다시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춘천에 사신다니 정말 좋으시겠어요.”
“네?”
“춘천은 낭만의 도시라고 하잖아요.”

저는 수긍한다는 뜻으로 미소를 지어 보였습니다.

“춘천엔 소양강도 있고, 안개 낀 공지천도 멋있고, 닭갈비도 맛있고…, 강촌으로 엠티를 갔던 때가 생각나네요.”

차창밖을 이윽히 응시하면서 그녀는 잠시 무슨 상념에 잠기는 듯했습니다. 코트 속 목에 두른 은빛 목걸이가 반짝거렸습니다. 그 모습을 슬쩍 훔쳐보며 나는 그녀와 공지천에서 데이트를 하다가 명동에서(닭갈비로 유명한 곳이 춘천 명동임) 닭갈비를 같이 먹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상상을 해봤습니다.

용기를 내서 고백을 할까 말까 하는데 종착지인 춘천역을 알리는 안내방송이 흘러나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기차에서 내려 개찰구를 빠져나오며 우린 작별인사를 나눴습니다. 저는 모녀에게 쌍용부대를 잘 찾아 가라고 일러주었고, 아주머니는 서울에 오면 꼭 한번 자신의 학원에 들르라고 당부하셨습니다.

마지막으로 그녀가 내게 인사를 건넸습니다.

“안녕히 가세요. 그리고 시험 잘 보시구, 담에 놀러오세요.”

그것이 그녀와 마지막이 될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제 주머니 속의 명함을 굳게 믿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12월 1일. 시험이 끝나고 며칠 후 친구들과 시내에 외출을 하는데 곳곳에서 캐럴 송이 들려오는 것이었습니다. 아, 곧 크리스마스구나! 저는 그때 문득 그녀가 생각났습니다. 귀가하자마자 명함을 찾았습니다. 책상 속이나 옷장이나 샅샅이 다 뒤져봤지만 허사였습니다. 어머니께서 며칠 전 제 옷을 빨래하셨는데 그때 웬 종잇조각을 꺼내 버린 것 같다는, 흐릿한 기억 이야기를 듣고는 절망할 뿐이었습니다.

첫사랑의 기준은 무엇일까요. 처음 한 사랑일까요? 아니면 잠시라도 좋아한 감정을 느낀 사랑일까요? 후자가 답이라면 그때 기차에서 만난 그녀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제가 훗날 음악학원을 찾아갔더라면 어땠을까요? 상상만 해도 가슴이 설레고 행복한 꿈은 풍선처럼 부풀어 오릅니다.

 


 

 

* 《쿨투라》 2022년 9월호(통권 99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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