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theme] ‘오늘의 영화’가 남긴 찬란한 궤적
[10월 theme] ‘오늘의 영화’가 남긴 찬란한 궤적
  • 전찬일(본지 기획편집위원, 영화평론가·중앙대 겸임교수)
  • 승인 2022.10.05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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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쿨투라 100호 100인’ 가운데 ‘오늘의 영화인’이 40명에 달한다는 것은 쿨투라의 어떤 궤적과 경향을 증거하기 모자람 없다. 한준희와 황동혁이 극장용 영화가 아니라 넷플릭스 OTT 드라마 〈D.P.〉와 〈오징어 게임〉 덕에 포함됐다곤 해도, 엄연히 영화감독의 길을 걸어왔고, 향후로도 계속 영화와 OTT 사이를 오가며 그 길을 걸어갈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한준희는 〈차이나타운〉(2015)과 〈뺑반〉(2019)의, 황동혁은 〈마이 파더〉(2007)와 〈도가니〉(2011), 〈수상한 그녀〉(2014), 〈남한산성〉(2017)의 감독들이다. 〈D.P.〉와 〈오징어 게임〉의 기록적 성공은 따라서 두 감독이 영화 작업을 통해 축적해온 수준급 연출력에 상당 정도 힘입었다고 평하지 않을 수 없다.

이정재도 마찬가지다. 에미상에서 비영어권 드라마로는 사상 처음 남우주연상과 감독상 등 6관왕에 등극한 〈오징어 게임〉으로 월드 스타 반열에 올랐으나, 정우성과 동반 주연 외에도 각본에 제작까지 맡은 〈헌트〉로 단연 주목할 만한 감독 데뷔전을 치르며, 2022년을 ‘이정재의 해’로 만들었다. 명실상부 세계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칸영화제 미드나이트 스크리닝 부문에 공식 초청된 것이 결정적 성취였다.

상기 궤적·경향의 증거들은 즐비하다. 《쿨투라cultura》를 발행하는 출판사(도서출판 작가/모아드림)가 태어난 때는, 제1회 부산국제영화제BIFF가 출범한 1996년 9월 그 한 달 뒤였다. 계간으로 《쿨투라》가 창간된 해는 BIFF 10주년인 2006년이었다. 그해 3월 탄생한 이래 줄곧, 영화를 향한 각별한 관심·애정을 쏟아왔다. 영화 중심 미디어의 역할까진 아니어도. 2018년 9월을 기해 월간으로 대변신을 하기 전이나 그 이후나 마찬가지였다. 시인이요 국문학 박사(손정순 대표)가 발행하는 종합 문화전문지로서, 그것은 결코 흔치 않은 선택이요 노선이었다.

그 대표적 사례 몇 개만 들어보자. BIFF 20회를 맞는 2015년 ‘부산국제영화제 20년’을 집중 조명했다. 2019년 7월호에는 한국영화 최초로 칸 황금종려상을 거머쥔 봉준호 특집, 한국영화 제작 100주년이었던 2019년 3월부터 10회에 걸친 필자의 연재 와중에 11월호에는 ‘한국영화 100년’을 짚은 특집, 2021년 7월호에는 〈미나리〉(정이삭 감독)로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안은 윤여정 특집, 올해 들어서는 5월의 K-무비 특집에 이어 6월호에는 박찬욱 감독과 송강호 배우가 감독상과 남우주연상이라는 쾌거를 일군 칸 특집 등, K-콘텐츠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리는 ‘한류’ 마중물 역할을 톡톡히 해왔다. 특히 올 칸에서 세계의 저널리스트 및 평론가 100인에게 받은 한류 관련 설문 조사는 《쿨투라》가 아니라면 감히 실행에 옮기기 불가능했을, 가히 기념비적 기획이었다.

실은 그 정도가 아니다. 필자가 함께 한 영화 특집도 수두룩하다. 가령 2014년 가을 35호에서는 ‘이순신 신드롬’ 특집을 다뤘으며, 그 일환으로 필자는 30여 쪽에 걸친 김한민 감독과의 인터뷰를 실었다. 그 다음 겨울호에서는 〈우아한 거짓말〉을 선보인 이한 감독과의 대담(「사람을 구할 수 있는 영화, 나를 만들어준 영화」)과 학생 평론과 리뷰까지 무려 90쪽에 근접하는 대대적 특집(「이한 감독, ‘학생 관객들’을 만나다」)을 꾸몄다. 계간으로서 마지막 호인 2018년 여름 제50호에서는 《쿨투라》 통권 50호 특집 좌담 「뉴미디어시대와 《쿨투라》의 방향」과 나란히 〈1987〉(2017)의 장준환 감독과의 대담(「이 세상을 좀 더 진실되게, 진솔한 이야기를 나누면서…살고 싶다」)을 게재했다…. 이쯤 되면 《쿨투라》가 ‘영화 중심 미디어’라 한들 과장만은 아니다. 올 27회 ‘BIFF와 함께하는 쿨투라 씨네콘서트’를 펼칠 수 있는것도 그래서 아닐까, 싶다.

《쿨투라》를 넘어 2006년부터 2020년까지 15권을 세상에 내놓은 『‘작가’가 선정한 오늘의 영화』—2021년과 2022년에는 단행본은 나오진 않았어도 선정 작업은 예전대로 했다—에 시선을 던지면, 이번 ‘쿨투라 100호’ 특집의 함의는 더욱 크고 깊어진다. 2015년 열 번째 『오늘의 영화』를 펴내면서, “영화관의 호황과는 대조적으로 잘 팔리지도 않는다는 영화 단행본 시리즈를 10호까지 내왔으니, 어떤 문화적 사명감 내지 의무감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으리라!”라는 소회를 피력했는데, 그 이후로도 5차례나 더 냈으니 ‘대견’(혹은 무모?)했다는 찬사를 출판사에 보내지 않을 수 없을 성 싶다.

‘오늘의 영화’는 그 전년도 개봉된 한국영화와 외국영화를 대상으로 선정되는바, 한국영화 최고작 감독으로 선택된 11인이 영화인 40인에 포진돼 있다. 이준익(2006년 〈왕의 남자〉, 2017년 〈동주〉), 김태용(2007년 〈가족의 탄생〉), 이창동(2008년 〈밀양〉, 2011년 〈시〉, 2019년 〈버닝〉), 장훈(2009년 〈영화는 영화다〉), 봉준호(2010년 〈마더〉, 2014년 〈설국열차〉, 2020년 〈기생충〉), 이한(2012년 〈완득이〉), 윤종빈(2013년 〈범죄와의 전쟁: 나쁜 놈들의 전성시대〉), 김한민(2015년 〈명량〉), 류승완(2016년 〈베테랑〉, 2022년 〈모가디슈〉), 김현석(2018년 〈아이 캔 스피크〉), 우민호(2021년 〈남산의 부장들〉)가 그 주인공들이다. 굳이 상술할 필요 없이, 이들의 현재 상황은 크고 작은 차이를 보인다. 봉준호나 이준익, 김한민, 류승완, 윤종빈 등 특유의 왕성한 활동력을 과시하는 감독들도 있으나 차기작을 과연 언제 만날 수 있을지 기약할 수 없는 경우들도 적잖다. ‘작가’의 선정에 의구심이나 회의감을 보내는 눈길들도 없지 않을 성도 싶다. 세상에 그 어떤 선택이 그렇지 않을까, 싶으나 겸허하게 수용해야 할 시선들이라 여기련다.

‘오늘의 영화’를 통하지 않은 29인들의 선정 사유들은 앞서 제시된 바대로다. 그래도 몇 사람에 대해서는 특별히 언급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우선 강수연. 공동이든 단독이든 BIFF 집행위원장으로서의 공과를 떠나, 그녀는 한국영화사의 단연 빛나는 스타-배우였다. 연기력에서 그녀와 비견될 수 있는 유일한 여배우는 전도연 밖에 없으며, 배우로서의 카리스마에서 그녀를 능가한 이는 김지미밖에 없다(는 것이 비평가로서 내 평가다). 너무나도 이른 나이에 고인이 된 강수연은 그만큼 압도적 디바였다.

김동호 전 이사장과 임권택 감독, 한국영화사 두 최고스타였던 고 신성일이나 김지미 등 80대 노장들이 100인에 포함된 것도 무척 반갑다. 한국영화계에서 그들이 지녀온 어떤 상징성·대표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이 없(었)다면, 우리네 영화 역사와 현재, 그리고 미래는 그만큼 더 허전해질 게 틀림없다. 한국영화사의 두 전환점이자 가교 이장호와 배창호도 매한가지다. 필자가 집필한 『봉준호 장르가 된 감독』(2020)과 더불어 그들은, 이 땅의 감독군 중에서 작가 출판사가 단행본이라는 형식으로 최상의 존경을 표한 예외적 존재들이다. 『이장호 감독의 마스터클래스』(이장호 김홍준 지음, 2013)와 『배창호의 영화의 길』(배창호 안재석 대담, 2022)이 그것들이다.

이창동과 봉준호가 세 번, 이준익과 류승완이 두 번이나 ‘오늘의 영화’ 최고작으로 선택됐건만, 단 한 번도 그 영예를 차지하지 못했던 박찬욱, 홍상수 그리고 김기덕 세 명장이 100인 안에 든 것도 여간 반가운 게 아니다. 지면 관계상 상술할 순 없어도, 황금종려상을 받아 마땅했던 올 칸 감독상 수상작 〈헤어질 결심〉은 박찬욱 전작全作은 말할 것 없고 한국영화사, 나아가 세계영화사에서도 길이 빛날 역대급 걸작으로 손색없다. 내러티브, 성격화Characterization, 연기, 음악 등 영화의 (거의) 모든 층위에서 최상의 수준을 뽐낸다.

〈도망친 여자〉로 2020년 70회 베를린국제영화제 감독상(은곰상)에 이어 〈인트로덕션〉으로 2021년 각본상(은곰상), 〈소설가의 영화〉로 2022년 심사위원대상(은곰상)을 3년 연속 거머쥔 홍상수의 쾌거는 어떤가. 그것도 대중성과는 거리가 먼 지독한 저예산 독립·작가영화로 말이다. 봉준호는 필자와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홍상수식 영화 만들기’에 경외감을 품지 않을 수 없다”고. 한국영화가 소위 세계 3대 영화제인 베를린에서 ‘마침내’ 은곰상 아닌 황금곰상을 받는 것은 시간 문제일 공산이 크다. 그 주인공은 그 누구도 아닌 홍상수일 것이다. 그날을 기대한다면, 자조적 극우 인사들에게 ‘국뽕’이라고 힐난을 받을까?

성폭력 의혹 등 ‘미투’ 논란에 휩싸였던 고 김기덕 감독의 유작 〈콜 오브 갓〉이 올 베니스영화제에서 냉랭한 평가를 받았다는 등의 외신이 전해졌다. 영화를 보지 못한 상황에서 무슨 말은 더하겠는가. 다만 이 말만은 해야겠다. 한국영화의 국제적 위상을 드높이는데, 김기덕 그가 한 기여를 무無로 치부할 순 없다고. 〈피에타〉로 2012년 베니스 황금사자상을 안기 훨씬 이전인 2000년대 초반, 국제무대에서 그가 펼친 활약상은 가히 눈부셨다. 〈사마리아〉로 베를린 감독상을 수상한 2004년 그해 〈빈집〉으로 베니스 감독상을 받고는, 전 세계 최대 규모의 영화평론가 조직인 국제영화비평가연맹FIPRESCI상을 차지하는 파란을 일으켰다. 훗날 〈버닝〉(2018)이 받을 바로 그 상이었다. 〈기생충〉도 받지 못한 상이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2003)은 또 어떤가. 개인적 동의 여부를 떠나, 2004년 칸 심사위원대상에 빛나는 박찬욱의 〈올드 보이〉 이전에 이 영화가 있었다! 〈기생충〉이 출현하기 이전까지 해외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두 영화는 〈올드 보이〉와 다름 아닌 이 문제작이었다. 20회 부산국제영화제를 맞아 실시한 『아시아영화 100』에서 영화는 〈올드 보이〉, 에드워드 양의 〈하나 그리고 둘〉과 나란히 공동 12위였다. 한국영화로는 10위인 김기영 감독의 〈하녀〉에 이어 최고 순위였다. 놀라지 마시라. 감독 순위에서는 13위에 올랐는데, 한국 감독으로는 가장 높았다. 김기영 감독은 봉준호 등과 공동으로 26위였다. 임권택 감독이 15위, 이창동 감독이 공동 16위, 홍상수 감독이 공동 18위였다. 이러니 어찌 한국영화의 국제적 위상 제고에 그가 끼친 영향을 무시하고, 그 존재를 지워버릴 수 있겠는가.

《쿨투라》의 파격적 유의미한 행보에도 불구, 이 순간 아쉬운 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김동호라는 예외가 있긴 해도 39명의 영화인이 온통 감독과 배우로만 한정됐다는 것이다. 제작과 투자 등의 중요성 등을 감안할 때, 150호 나아가 200호 《쿨투라》에서는 그 외연과 내포가 한층 더 넓어지고 깊어지길 바란다면 과욕일까?

 


전찬일 영화평론가, 본지 편집기획위원, 중앙대학교 글로벌 예술학부 겸임교수, 인터넷신문 《한류역사문화TV》 편집인·대기자. 팟캐스트 매불쇼 ‘씨네마지옥’ 코너에 고정 출연 중이다. 저서로 『봉준호 장르가 된 감독』(2020) 등이 있다.

 

 

* 《쿨투라》 2022년 10월호(통권 100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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