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 탐방] 시시각각 변하는 빛의 향연: 파주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
[미술관 탐방] 시시각각 변하는 빛의 향연: 파주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
  • 김명해(화가, 본지 객원기자)
  • 승인 2022.10.05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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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Fernando Guerra © The Open Books Co.

문학과 예술, 출판사와 미술관, 서점과 아트숍이 공존하고, 아름답고 세련된 건축물에서 다채로운 매력을 발견할 수 있는 복합문화예술공간이 있다. 바로 2010년 경기도 파주시 문발로 253번지에 개관한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MIMESIS ART MUSEUM”이다.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은 해외문학을 소개하는 출판사 〈열린책들〉이 파주 출판도시에 세운 미술관으로, 이 출판사의 자회사이자 예술서적 전문브랜드 〈미메시스Mimesis〉에서 그 이름을 따왔다고 한다.

대지 1,400평에 지상 3층과 지하 1층으로 이루어져 있는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은 다양한 크기의 여러 전시 공간이 하나의 덩어리에 담긴 설계로 유명하다. 뒤편 주차장에서 보면 사각건물, 정문 출입구에서 보면 부드러운 곡면으로 이루어진 이 미술관은 아무도 예상치 못한 휘날리는 곡선 건물로 출판단지 내에서도 가장 기묘한 형태의 건축물로 통한다.

미메시스는 고양이이다. 잔뜩 웅크려 있으면서 동시에 열려 있는, 기지개를 켜고 하품하는 고양이. 여기에는 고양이의 모든 것이 담겨 있다. 보면 볼수록 그 면모가 드러난다. 처음에는 설계팀 멤버들도 그 고양이 그림을 어떻게 건물로 구현할지 몰라 난감해했다. 지금껏 나는 수많은 고양이 그림을 봤지만 여전히 늘 매료되고, 질리는 법이 없다.
- 카를루스 카스타녜이라, 『알바루 시자: 미의 기능』 중에서

뮤지엄 외부 전경
뮤지엄 외부 전경

기지개를 켜고 하품하는 흰 고양이 형상의 미메시스 건물은 푸른 잔디밭 위에 놓여 있는 하나의 조각품 같은 미술관으로, ‘모더니즘 건축의 마지막 거장’이자 ‘건축의 시인’으로 알려진 포르투갈의 건축가 알바루 시자Álvaro Siza(1933- )가 설계하고 그의 동료인 카를루스 카스타녜이라(포르투갈의 건축가)와 김준성(건국대 건축대학원 교수)의 협업을 통해 지어졌다.

필자가 지금껏 보아 온 우리의 미술관 설립 배경을 보면, 미술사에 이름을 남긴 유명화가의 출생과 관련된 지역의 시·군·구에서 설립한 국공립미술관과 개인재단에서 만든 사립미술관이나 경제적으로 성공한 기업인이 수집한 예술작품을 전시하기 위해 미술관을 설립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출판사가 미술관을 지은 경우는 보기 드물다. 이곳 미술관 설립자는 바로 〈열린책들〉 홍지웅 대표로. 이미 수집한 미술품을 보관하고 전시할 목적으로 지은 미술관이 아니라 한국의 젊은 작가들을 초대전시하고 이들의 작품을 수집하는 의도에서 미술관을 지었다고 한다. 미술관 설립 의도부터가 남다르며 홍대표의 이러한 신념과 안목은 젊은 작가들에게 예술 활동을 함에 있어 창작의욕을 불러일으키며 활력소가 될 것이다.

나는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의 설계자로 알바루 시자를 염두에 두고 있었다. 2005년 9월, 나는 알바루 시자가 설계한 건축물을 답사하기 위해 포르투갈의 포르투, 카나베제스, 리스본, 그리고 영국의 런던을 방문했다. 거기서 킨타 수영장, 보아노바 레스토랑, 산타마리아 성당, 세할베스 현대미술관, 포르투 건축예술대학, 엑스포 파빌리온, 서펜타인 갤러리 파빌리온 등을 보았다. 그리고 … 나는 알바루 시자의 디자인에 반했다.
-홍지웅, 『미술관이 된 시자의 고양이』 중에서

3층 전시실 내부
3층 전시실 내부

홍지웅 대표가 쓴 책 『미술관이 된 시자의 고양이』을 보면, 2005년부터 2013년까지 미술관 설립을 위한 부지매입, 설계 계약, 건축설계 및 디자인 조율, 협의, 마감, 완공, 개관까지 미술관 설립과정을 일기형식의 다채로운 이야기로 기록하여 담아놓았다.

건물의 면면마다 나타났다 사라지는 직선과 곡선의 흐름은 알바루 시자의 상징적 스타일로, 기하학적 엄격함과 유기적 부드러움이 만들어 내는 대조를 이용한 설계는 알바루 시자의 수많은 전작全作중에서도 고유한 특징을 만들어 낸다.1 그의 건축물은 외형적 화려함보다는 사용자를 배려하는 기능을 추구하며. 국내 그의 작품은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 외에 안양 파빌리온과 아모레 퍼시픽 용인기술연구원, 경북 사유원의 소요헌과 내심낙원 등을 설계했다.

그곳은 마치 한 권의 읽기 좋은 책처럼 끝없는 매력을 뿜어냈다. 반복적인 문과 창, 조명이 있는 구조가 아니었다. 마치 하나의 공허한 세계와 같았다. 재미있는 것은 가장 단순한 방법의 점, 선, 면이 모여 입체적인 ‘장소’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일종의 고요하고 깨끗한 의미의 ‘선’이 함축적으로 녹아있었다. 비어있는 듯하지만 가득 차 있다.
-뤼징런 중국 칭화대학교 예술대학 교수

고낙범 COLOR CODE전
고낙범 COLOR CODE전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은 개관 전부터 각종 해외 매체에 소개되었고 국내외에서 큰 주목을 받았다. 국내외 건축가와 예술가들에게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필자가 방문한 날도 날씨가 흐린 오전임에도 불구하고, 미술관은 방문객이 많았다.

내부로 들어서면 건물의 진가가 더욱 도드라진다. 넓은 카페와 함께 〈열린책들〉과 〈미메시스〉에서 출판한 책과 아트상품을 전시 판매하는 이곳은 전시실로 진입하는 통로이자 넓은 통유리창 너머 야외 초록정원 풍경을 보면서 책도 읽고 커피도 마실 수 있는 핫 플레이스hot place이다.

일정한 형식에 맞춰 곡선과 직선이 자연스레 리듬을 타고 이어지는 1층 전시실은 단절되지 않고 원점으로 돌아 나오는 구조로 되어있다.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자연광과 돌출된 천정 안쪽에서 비치는 반사광만으로 작품을 조명하고 있어 전반적으로 은은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2층은 1층 카페의 천고가 트여있어 2층 로비에서 아래층을 내려다 볼 수 있는 구조로 되어있다. 3층은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 건축의 예술미가 최고로 돋보이는 곳이자 전체가 개방된 전시공간으로 건물 천창에서 들어오는 자연광이 빛을 발하는 공간이다. 즉 가급적 인위적인 빛을 배제하고 자연광을 끌어들여 백색의 내부 벽과 어우러져 차분하고 편안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무엇보다 빛의 효과를 존중했는데, 천창을 통해서 실내로 유입되는 채광은 1층과 전시관으로 전달된다. 단순하고 효율적으로 구성된 내부 공간은 절제된 느낌의 노출 콘크리트 외부로 마감을 했다. 일정한 형식에 맞추어 곡선과 직선이 자연스레 리듬을 타고 이어지는 공간은 ‘건축의 산책길’로 우리를 안내하고 있다. …(중략)… 파주 출판도시의 ‘사막’안에서, 시자는 자신이 쓴 글에서 예고한 ‘가깝거나 무의식만큼이나 먼 기억을 실은 배 한 척’과 같은 창작물을 완성하였다.
- 마르코 물라차니2, 「건축가의 지도책」 《카사벨라Casabella》 2010년 12월호

이세현, Between Red-015FEB, Oil on Linene, 200cm x 200cm
이세현, Between Red-015FEB, Oil on Linene, 200cm x 200cm

천정, 벽면, 계단, 로비 등 어느 것 하나 각진 부분은 찾아볼 수 없고 모든 것이 유연하게 물 흐르듯 구성되어 있고, 각 층마다 새로운 형태의 공간이 나타나서 궁금증을 자아낸다. 마치 “미술관이 어떻게 지어졌는지 알아맞혀봐!”라고 질문하고, 방문객에게 계속 고민하여 추론하게 만들어 약 올리는 것 같다.

현재 전시는 고낙범의 《COLOR CODE》전과 《2022 MIMESIS COLLECTION》전이 진행 중이다. 고낙범은 색채와 이미지의 관계를 고찰하는 극사실주의적 모노크롬 회화 작업을 선보여 온 화가로, 그는 무의식을 개척한 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의 정신세계를 다양한 색채프리즘으로 드러낸 〈프로이트 표지화〉 연작을 탄생시킨 작가이다. 또한 그의 회화는 대상에서 추출한 색채를 재현된 형상에 다시 환원하고, 그 환원을 통해 형태에서 독립한 색 자체의 표현력을 탐구한다.

정직성 201001, 300x200cm Oil on canvas, 2010
정직성 201001, 300x200cm Oil on canvas, 2010

3층 《2022 MIMESIS COLLECTION》전은 2013년 개관이후 지금까지 소개해 온 작품들을 선별하여 아홉 명의 작가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군복무시절 야간 투시경으로 보았던 휴전선 너머의 아름다우면서도 두려운 풍경을 붉은색으로 표현한 〈붉은산수〉로 유명한 이세현, 붓 대신 스퀴지로 마티에르의 생생한 움직임을 담고 있는 제여란, 자신만의 인상으로 새롭게 구현된 감각공간을 표현하는 이혜승, 몇 겹의 물감 층을 두껍게 쌓아올려 단색조로 표현한 김태호, 시간의 흐름에 따른 기계의 생성과 소멸을 인간관계의 흐름에 비유한 정직성, 한국의 대표적인 민중미술가인 박진화, 인물의 얼굴보다는 옷의 질감이나 색상, 형태 그리고 제스처를 부각시키는 강석호, 다양한 매체와 장르의 실험적이고 독창적인 작품세계로 포스터모던의 선두주자로 활동하는 홍순명 등 크고 작은 작품들이 전시실을 가득 채우고 있으며, 동물과 인간의 욕망과 본성을 조각으로 표현한 박찬용의 작품은 3층 중정과 발코니에 전시되어 있다.

이렇듯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은 자신만의 깊이 있는 예술세계를 구축한 중견미술가들의 작품을 통해 원숙한 예술의 기운을 전하고, 다채로운 실험으로 자신의 세계를 모색하는 청년작가들의 작품을 통해 젊고 역동적인 예술에너지를 발산하는 장이 되고 있다.

제여란, usquam nusquam, 182x227cm Oil on canvas, 2016
제여란, usquam nusquam, 182x227cm Oil on canvas, 2016

나는 파주 출판도시 프로젝트가 의미를 가지는 것은 출판도시가 완성된 현재의 모습이 아니라 처음 도시의 구상에서 완성에 이르는 17년 동안의 과정 그 자체라고 생각한다. 출판도시를 처음 구상하면서 출판사들의 생각을 모으고, 건축가를 비롯한 행정가, 군 당국 등 수많은 이해 집단과 대화를 나누면서 건물을 짓고…. 출판도시는 다양한 집단과 문화가 서로 충돌하고 조응하는 과정을 거치며 오늘의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이다. 이러한 과정이 결과보다 훨씬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자체가 문화culture다.
- 홍지웅, 『미술관이 된 시자의 고양이』 중에서

비슷한 듯 다른 선과 면으로 이뤄진 공간에 전시된 멋진 예술 작품과의 조화, 여러 각도에서 들어오는 자연광과 은은한 반사광으로 다채롭게 변하는 빛의 향연, 독서와 작품 감상을 한 공간에서 향유할 수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 “나는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 건물 자체만으로도 사람들에게 그런 영감을 주기를 바라고 있다.”는 홍대표의 바램처럼 미술관은 출판도시의 대표 랜드마크landmark로, 많은 건축가와 예술가 및 방문객에게 소소하고 확실한 영감과 행복을 두루 충족시켜주고 있다.

 

 


1 타데이 글라슈르(슬로베니아 류블라냐대학교 건축대학학과장), 「책의 도시에 대한 모사」의 글 인용.
2 이탈리아 페라라대학교 건축학부 교수.


참고자료

미멤시스 아트 뮤지엄 https://mimesisartmuseum.co.kr
홍지웅, 『미술관이 된 시자의 고양이』
 

 

* 《쿨투라》 2022년 10월호(통권 100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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