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미상 리뷰] K-콘텐츠 이정표 새로 쓴 배우 이정재와 황동혁 감독
[에미상 리뷰] K-콘텐츠 이정표 새로 쓴 배우 이정재와 황동혁 감독
  • 이은주(서울신문 기자)
  • 승인 2022.10.11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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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

배우 이정재, 무엇이 그를 월드스타 반열에 올렸나

〈오징어 게임〉이 비영어권 드라마 최초로 미국 방송계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에미상 6관왕을 휩쓸며 K-콘텐츠의 이정표를 새로 썼다.

지난해 9월 17일 넷플릭스에 처음 공개된 〈오징어 게임〉은 방송된 지 한 달 만에 전 세계 1억 4,200만 가구가 시청하며 글로벌 히트를 기록했다. 1년 동안 각종 국내외 시상식을 휩쓸더니 마침내 ‘방송계의 아카데미상’인 에미상까지 거머쥐며 화려한 피날레를 장식했다. K-팝, 한국영화에 이어 한국드라마가 전 세계 주류 문화에 당당하게 입성한 것이다.

K-콘텐츠는 한국영화와 음악, 드라마 등 한국 대중문화의 자양분에서 탄생한 독창적인 K-크리에이티브가 빚어낸 결과물이다. 〈오징어 게임〉은 대내외에 이를 입증하는 계기가 됐다.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이정재는 “이야기를 전달하는 방법보다 메시지나 주제가 훨씬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오징어 게임〉이 그런 부분에서 호평받아 기쁘다”고 말했다. 〈기생충〉에 이어 1인치의 언어 장벽을 넘은 또 하나의 쾌거를 이룬 것이다.

한국 배우 최초로 에미상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배우 이정재는 이 작품으로 확고부동한 월드스타 반열에 올라섰다. 그의 남우주연상 수상은 미국배우조합상, 스피릿어워즈, 크리틱스초이스에 이어 네 번째다. 올해 영화 〈헌트〉로 성공적인 감독 데뷔한 이정재는 제2의 전성기를 맞고 있다. 영화계에서 ‘2022년은 이정재의 해’라는 말까지 나왔다.

1990년대 대표적인 청춘스타였던 그는 40대에 접어들어 다양한 도전을 계속한 끝에 ‘대기만성형’ 배우로 거듭났다. 모델 출신으로 1993년 SBS 드라마 〈공룡선생〉으로 데뷔한 그는 드라마 〈모래시계〉에서 윤혜린(고현정 분)의 곁을 묵묵히 지키는 보디가드 백재희 역을 맡아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배창호 감독의 영화 〈젊은 남자〉로 스크린에 데뷔한 그는 평생지기 배우 정우성과 함께한 〈태양은 없다〉(1999)로 27살의 나이에 청룡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수상하며 90년대 영화계의 ‘젊은 피’로 각광받았다.

30~40대의 이정재는 〈시월애〉, 〈태풍〉, 〈흑수선〉 등 멜로부터 액션까지 다양한 장르의 영화에 출연하며 자신만의 연기 세계를 넓혀나갔다. 영화 〈정사〉에서는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하는 청년, 〈선물〉에서는 시한부 통보를 받은 아내를 위해 무대를 준비하는 무명 개그맨, 〈태풍〉에서는 강인한 해군 장교 등 현실에 매몰되지 않고 새로운 도전을 선택했다.

그러던 그는 칸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에 진출작인 임상수 감독의 〈하녀〉(2010) 이후 연기자로서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했다. 이 작품에서 그는 욕망에 충실한 주인집 남자 훈 역을 맡아 강렬한 인상을 남기며 호평을 얻었다. 연기적인 면에서 자신감을 얻은 그는 〈도둑들〉의 비열한 뽀빠이, 영화 〈관상〉의 카리스마 넘치는 ‘수양대군’, 〈암살〉에서 변절자 염석진 등 악역도 마다하지 않으며 연기 스펙트럼을 확장했다. 〈신과 함께〉, 〈도둑들〉 등 천만 관객을 넘어선 출연작도 4개나 된다.

멀티 캐스팅 영화에 출연하던 그는 2020년 영화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2020)에서는 형제를 죽인 청부살인업자에 대한 복수를 꿈꾸는 ‘인간 백정’ 레이 역을 맡아 호쾌한 액션은 물론 그의 깊어진 연기력까지 보여줬다. 이 작품은 엄혹한 코로나 팬데믹 시기에 435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력을 입증했다.

이처럼 주로 선 굵고 남성적인 역할이 두드러졌던 그이지만, 황동혁 감독은 영화 〈오! 브라더스〉(2003)에서 선보였던 따뜻하고 코믹한 얼굴에 주목하고 그를 〈오징어 게임〉에 캐스팅했다. 그는 몰락한 가장 성기훈 역을 맡은 그는 찌질한 중년 남성의 생활 연기를 선보이며 기존의 이미지를 완전히 벗어던졌다.

후줄근한 초록색 트레이닝복을 입고 운동장 바닥에 쭈그려 앉아 달고나를 핥는 모습은 기훈의 사회안전망 없이 벼랑 끝에 몰린 이 시대의 평범한 소시민을 대변했다. 그는 몰락한 가장의 애환뿐만 아니라 절박한 순간에 오일남(오영수 분)과 ‘깐부’를 맺는 등 끝까지 휴머니즘을 잃지 않는 인간미 넘치는 캐릭터로 전 세계 시청자들에게 큰 감동을 안겼다. 30년 가까이 포기하지 않고 묵묵하게 자기만의 연기 세계를 키워온 그의 내공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이 작품으로 세계적인 인기를 얻은 그는 스타워즈 시리즈 〈어콜라이트〉 주인공에 캐스팅되며 월드스타를 예약해 둔 상태다.

한편 그는 올해 첩보 영화 〈헌트〉에서 각본부터 연출, 연기, 제작까지 1인 4역을 맡았고 이 작품은 지난 5월 칸국제영화제에서 처음 공개돼 기립박수를 받았다. 국내에서 8월 개봉한 이 작품은 420만 관객을 돌파하며 손익 분기점을 넘기며 흥행에도 성공했다.

영화 개봉을 앞두고 만난 그는 “영화는 감독의 예술이라는 고정 관념을 깨고 많은 사람과 소통하고 대화하며 작품을 만들어 나갔다”면서 “매사에 책임감을 갖고 임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꾸준히 연기라는 한 우물을 파는 특유의 근성과 여러 사람의 의견을 받아들이고 조율하는 유연함이 오늘날의 월드스타 이정재를 만든 것이다.

〈오징어 게임〉 산파 황동혁 감독, 에미상 받기까지

〈오징어 게임〉으로 미국 에미상 감독상을 수상한 황동혁 감독은 뚜렷한 주제 의식을 바탕으로 짜임새 있게 풀어가는 능력이 가장 큰 장점으로 꼽힌다.
사회 고발 장르부터 블록버스터 사극, 휴먼 코미디 등 다양한 영화에 도전한 그는 “한번 한 장르는 다음에 하지 않는다”는 철칙이 있을 정도로 현실에 안주하기보다 새로운 모험을 통해 동기부여를 받은 스타일이다.

영화계 관계자들은 “황 감독은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양한 장르와 방식으로 영리하게 풀어내는 데 일가견을 갖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그는 자신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장르를 선택하는 쪽에 가깝다.

황 감독은 해외 입양아 문제를 다룬 데뷔작인 〈마이 파더〉(2007)를 비롯해 장애 아동 학대를 소재로 한 〈도가니〉(2011) 등 초기에는 실화를 기반으로 한국 사회의 문제점을 정면으로 고발하는 영화들을 주로 만들었다. 특히 466만 관객을 동원한 〈도가니〉는 아동 성폭력 범죄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일명 ‘도가니법’ 제정으로 이어지는 등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다소 무겁고 어두운 작품을 주로 만들던 그는 영화 〈수상한 그녀〉(2014)를 통해 위트 있는 휴먼 코미디 장르로 변신을 꾀했다. 누구나 전성기의 젊은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는 욕망을 친근한 방식으로 판타지로 그린 이 작품은 866만 관객을 동원하며 해외 8개국에서 리메이크 됐다. 그는 〈도굴〉의 각색과 제작을 맡으며 속도감 있고 경쾌한 있는 케이퍼 무비에도 두각을 나타냈다. 사극 〈남한산성〉은 당시 시대적 고증을 철저히 해 의상과 미술 면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다.

〈오징어 게임〉은 이처럼 그동안 황 감독이 다양한 장르에서 갈고닦은 장기를 한 번에 펼쳐 보인 작품이다. 이야기 골자는 데스 게임이지만 극한의 상황 속에 휴먼 드라마가 등장하기도 하고, 자본주의 계층 간 벌어지는 부조리한 상황이 블랙 코미디로 변주되다가 456명이 데스 게임을 펼치는 장면에서는 액션 스릴러로 전환된다.

그 속에는 극한으로 치닫는 황금만능주의와 승자 독식 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풍자도 담겨있다. 각본 대부분을 직접 쓰는 그는 군더더기 없는 촌철살인 대사로 몰입도를 높인다.

영화계에서 ‘엘리트 감독’ 중 한 명으로 꼽히는 황 감독은 서울대학교 신문학과(현 언론정보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서던 캘리포니아 대학교에서 영화 제작학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황 감독은 현장에서 완벽주의를 지향하면서 다양한 소통력과 포용력을 지닌 감독으로 통한다. 특히 분장, 세트 의상 등 미술에도 공을 많이 들이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전작들에서 리얼리티를 강조한 연출을 해왔는데 일각에서는 〈도가니〉부터 〈오징어 게임〉까지 다소 폭력적이고 적나라한 표현에 대해 불편함을 호소하는 의견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시대 의식을 가지고 사회의 부조리를 사실적으로 표현하고 날카롭게 고발하는 그의 작가 정신은 모든 작품을 관통한다. 〈오징어 게임〉에서도 사회 안전망과 관용이 부족한 냉엄한 사회 현실 속에서 약자에 대한 배려와 패자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켰다.

스토리텔링은 충분히 개연성이 있고 납득할 만한 상황 속에서 전개된다. 한 영화사 대표는 “황 감독은 완벽주의를 지향하기 때문에 불필요한 장면이 촬영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면서 “스토리 면에서는 사회적 메시지를 다루지만, 영화적 아름다움과 비주얼적인 면에서도 퀄리티를 놓치지 않기 때문에 전반적인 완성도가 상당히 높은 편”이라고 말했다.

 


이은주 서울신문 기자 겸 유튜브 크리에이터. 연세대학교 불문과·동대학원 영상학 석사. 한국 방송대상 심사위원 역임. 유튜브 채널 〈은기자의 왜 떴을까TV〉 진행. 저서 『왜 떴을까: ‘K-크리에이티브’ 끌리는 것들의 비밀』가 있음.

 


* 《쿨투라》 2022년 10월호(통권 100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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