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리뷰] 손거울을 들여보듯 애틋하게 드라마와 마주하는 시간: 김민정 비평집, 『드라마에 내 얼굴이 있다』
[북리뷰] 손거울을 들여보듯 애틋하게 드라마와 마주하는 시간: 김민정 비평집, 『드라마에 내 얼굴이 있다』
  • 해나(본지 에디터)
  • 승인 2022.10.11 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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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얼굴로 그린 나와 너 그리고 우리의 자화상

드라마와 함께 살아가는 한국 유일의 드라마평론가 김민정 교수가 ‘드라마 캐릭터 비평집’ 『드라마에 내 얼굴이 있다』를 펴냈다. 이번 저서는 스스로를 드라마 평론가 겸 드라마애호가라고 칭하는 김민정 교수가 직접 선별한 165편의 드라마를 서로 다른 이름의 스물 두 가지 ‘드라마 얼굴’로 풀어내었다.

드라마의 ‘얼굴’에 심취해 있다가 화들짝 놀랄 때가 있다. 드라마에서 내 얼굴을 발견할 때다. 비유적인 표현이 아니다. 정말 드라마에 내 얼굴이 있다. 장면과 장면이 넘어가는 사이 정전이 된 듯 화면이 어두워지는 순간, 그래서 모든 등장인물이 잠시 움직임을 멈추는 순간, 그 찰나의 순간에 드라마 밖에 있던 내가 슬그머니 얼굴을 내민다.

모니터에 비친 나의 얼굴은 익숙하면서도 낯설다. 나이면서도 내가 아닌 것 같다.

나의 얼굴은 드라마 안에 있는 그들의 얼굴과 묘하게 닮았다. 어떨 때는 드라마 안에서 그들이 겪어낸 삶의 희로애락이 내 얼굴에 고스란히 새겨 있고, 어떨때는 나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이 다양한 얼굴과 다양한 표정으로 드라마에 담겨 있다.
-「손거울의 드라마」 중에서, 본문 10-11쪽

1부 ‘얼굴의 역사’, 2부 ‘오늘의 얼굴’, 3부 ‘얼굴의 표정’, 4부 ‘미래의 얼굴’ 등 총 4부로 구성된 이 책에는 ‘나’ 대신 나의 얼굴이 되어 내 이야기를 들려주던 드라마 속 얼굴들의 22편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다. ‘얼굴’을 찾는 과정에서 저자가 손거울 삼아 본 드라마가 수백 편이 넘고, 그중에는 하나의 얼굴로 강렬하게 기억되는 드라마도 있고, 여러 개의 얼굴을 풍요롭게 남긴 드라마도 있다. 저자와 인연이 닿지 않아 기록되지 못한 드라마도 있다고 고백한다. 또한, 저자는 “삶이란 매회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시트콤이 아니라 끝날 듯 끝나지 않는 긴 호흡의 시즌제 드라마와 같은 것”이라며 “내가 살아온 날들과 내가 살아갈 날들을 소중히 품는 마음”으로 선별한 이 드라마가 “부디 또 한 명의 ‘나’인 소중한 그대와 다양한 얼굴의 ‘우리’가 마주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말한다.

글로벌 신한류를 이끄는 K-드라마

〈오징어 게임〉 〈킹덤〉 〈이태원 클라쓰〉 〈보이스〉 〈D.P.〉… 저자는 글로벌 신한류를 이끄는 K-드라마에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다섯 가지 공식을 제시한다. 그 첫 번째는 갑과 을의 수직적 관계를 토대로 형성되는 세계관이며 두 번째는 이 세계가 영원불변의 시스템이라는 것이다. 세 번째는 갑은 부정부패의 온상이자 악의 축으로서 사이코패스이거나 소시오패스이며, 네 번째는 을은 언제나 동정과 연민을 자아내는 슬프고 굴곡진 사연의 사회적 소수자라는 점이다.

마지막 다섯 번째 공식은 드라마 주인공은 반드시 을이라는 점인데, 이 지점이 드라마와 실제 현실이 가장 갈라지는 지점이다. 현실에서는 갑이 갑이지만 드라마에서는 을이 현실의 을로서 드라마의 갑이 된다.

이렇듯 K-드라마는 절망적인 현실 인식을 토대로 갑과 을의 위계 서열이 중심축을 이루는 지극히 한국적인 세계관을 구축한다. 그리고 부의 불평등과 불공정이라는 전 세계인의 공통된 이슈를 통해 폭넓은 공감대를 형성한다. 이것이 K-드라마가 현실을 전복하는 상상력을 토대로 공감을 넘어 전폭적인 지지와 열띤 호응을 끌어내는 데 성공한 ‘공식’이다.

〈오징어 게임〉은 K-드라마가 구축한 한국적 세계관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작품이다. 우선, 456억원의 상금이 걸린 의문의 서바이벌 게임에 참가한 사람들이 최후의 승자가 되기 위해 목숨을 걸고 도전한다는 설정 자체가 코로나19 이후 더욱 심화된 빈부 격차와 불평등한 사회구조, 그리고 절망과 패배 의식에 잠식된 지금 우리가 사는 현실과 매우 닮았다. 이 극악무도한 데스 게임이 시한부 선고를 받은 한 부자 노인의 심심함을 달래기 위해 계획되었다는 것, 그래서 가진 자가 분노유발자로 맹활약한다는 것 또한 그동안 우리가 자주 보아왔던 K-드라마 속 현실 세계와 매우 흡사하다. (중략) 대중예술로서 〈오징어 게임〉의 차별점은 한국적 세계관 구축에 있지 않다. 오히려 그것은 K-드라마의 자가복제란 측면에서 얼마 지나지 않아 흠이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열광적인 해외 반응과 달리, 한국적 세계관에 대한 누적 시청 경험이 압도적으로 높은 한국에서 클리셰적인 부분이 많다는 이유로 〈오징어 게임〉의 호불호가 갈리는 것이 바로 그 증거다. 다시 말해, 〈오징어 게임〉의 가치는 세계관을 재현하는 것에 안주하지 않고 그것의 근원을 되짚어갔다는 점에 있다. 그냥 드라마를 볼 뿐인데, 삶과 사회구조에 관한 깊은 성찰의 순간을 만들어냈다고 해야 할까. 갑과 을, 선과 악의 이분법적인 구분으로 납작해진 평면적 세계가 본래의 부피감을 되찾고 입체적인 세계로 한 걸음 나아갔다고 해야 할까.
-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중에서, 본문 73-75쪽

그렇기 때문에 드라마에서 나는 그냥 나가 아니고 너는 그냥 너가 아니다. 나는 을이고 너는 갑이다. 〈오징어 게임〉의 주인공 ‘성기훈’은 〈킹덤: 아신전〉의 ‘아신’과 〈이태원 클라쓰〉의 ‘박새로이’의 또 다른 이름일 뿐이다. 이처럼 K-드라마에는 수많은 ‘성기훈’들이 살고 있다.

이에 저자는 ‘유리천장’이라 불리던 미국시장에서 일궈낸 K-드라마의 커다란 성공에 대해 축하하고 함께 기쁨을 만끽하면서도, K-드라마가 공식에 치중한 나머지 형식화 되고 지금에 안주하는 것에 대한 경계 또한 늦추지 않는다. 저자는 “한국적 세계관이 처음에는 사이다 맛으로 통쾌한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타자 인식도 단순하고 문제 해결 방식도 폭력적”이라며 “서사전개와 캐릭터의 단순함이 드라마의 대중성과 연결되는 의도된 서사 전략일 수도 있지만, 이게 누적되어 일종의 패러다임으로 굳어지면 그건 또 별개의 문제”임을 밝히기도 했다.

한국드라마뿐만 아니라 드라마 자체의 위상이 올라간 지금, 김민정 교수의 드라마 캐릭터 비평집 『드라마에 내 얼굴이 있다』는 한국드라마의 과거부터 현재까지의 다양한 캐릭터를 ‘얼굴’을 통해 읽어내고 있다. 또한, 『드라마에 내 얼굴이 있다』는 독자들이 드라마의 얼굴 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찾아보며 우리의 주변을 더 둘러보고 생각해보게 해줄 것이다.

 


 

 

* 《쿨투라》 2022년 10월호(통권 100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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