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Theme] Romance - 연애소설, 그 가성비 좋은 가상 로맨스
[4월 Theme] Romance - 연애소설, 그 가성비 좋은 가상 로맨스
  • 이종산(작가)
  • 승인 2019.03.27 10: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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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메이지야스와 생활복지연구소 조사에 의하면 일본 20대 남성 53.3%, 여성 34.4%가 ‘모태솔로’라고 한다. 일본의 20대 남성 절반, 여성은 삼분의 일이 모태솔로인 것이다.

 나는 올해 초에 ‘연애 안 하는 요즘 청춘들’을 다룬 기사에 실린 저 같은 내용의 통계를 보고 좀 놀 랐다. 20대는 인생의 어느 시기보다 짝을 찾기에 분주한 때가 아니었나? 더 놀라운 것은 우리나라의 2030 남녀 미혼율이 이미 일본을 앞질렀다는 거 다. 우리나라의 ‘국내 결혼 및 출산동향조사’에 따르 면 20-44세 미혼 남녀 중 연애하고 있는 사람의 비율은 남성 33%, 여성 37% 라고 한다. 연애를 하는 사람이 열 명 중 서너 명 밖에는 안 된다는 얘기다.

 이렇게 된 원인에 대해서는 여러 분석이 나왔지만, 그 분석의 결과들을 간단히 종합하자면 결국 한 가지로 귀결된다. 바로 ‘연애할 여유가 없다’는 것이다. 경제적으로도 시간적으로도 그리고 심적으로도 연애나 결혼(따위를 할) 여유가 없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내가 그런 기사를 읽었다는 기억이 새까맣게 지워졌을 때쯤(우리는 하루에 얼마나 많은 기사를 읽으며 살아가는지!) 또 다른 기사를 봤다. 웹소설 시장의 가능성에 대한 기사였는데 기사에 인용된 어느 웹소설 작가 에이전시 대표의 말에 따르면 “지난해 웹소설 시장 규모가 3500억원 이상으로 파악된다”고 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그 기사를 본 건 우연이 아니었다. 전날 잠 안 오는 새벽에 뒤척이다 종종 듣는 팟캐스트 방송을 켰는데, 그 방송에 게스트로 나온 웹소설 작가가 자신의 주변인 중 소위 ‘탑’에 속하는 작가는 지난 한 해 동안 10억을 벌었다는 얘기를 했다. 바로 그 말을 듣고 다음날 웹소설 시장의 규모를 검색해본 거 였다.

 10억이라니! 3500억이라니! 나는 지난 8년 동안 세 권의 연애소설을 출간했고, 세 권 다 잘 안 팔렸다. 내가 출간으로 번 수익은-상금을 제외하고- 총 500~600만원이었다. (잠시나마 이 바닥에서 이만 깨끗하게 손을 털고 웹소설 시장으로 진출해볼 까 하는 생각이 스쳤지만 춘추전국시대 못지 않게 치열한 웹시장의 현실을 떠올리니 그대로 스르륵 꿈이 녹아버렸다.)

 헛된 꿈이 스쳐 지나간 후 문득 올해 초에 본 기사가 떠오르며 이번에 본 웹소설 시장 기사와 맞물렸다. ‘혹시 미혼 남녀의 연애·결혼율과 웹소설 시장의 성장률 사이에는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 게 아닐까?’ 사회학자나 통계학자가 아니기에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는 없지만, 어릴 적부터 꾸준히 로맨스에 빠져 살았으며 현재는 2년 째 일주일에 한 편씩 연애소설리뷰를 연재하고 있는 나의 감은 저 두 가지 비율이 반비례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을 내놓았다. 자주 틀리지만, 또 가끔 소름 끼치게 잘 맞기도 하는 ‘감’의 가설은 이렇다.

 연애소설은 예로부터 ‘가상 연애’를 하는 가장 좋은 방법 중 하나였다. 연애소설의 어머니인 ‘로망스’의 기원은 귀부인들이 침실에서 몰래 읽던, 기사(knight)와의 감미롭고도 뜨거운 러브스토리였다. 그리고 또 오랜 시간이 지난 뒤 전 세계를 강타한 ‘ 할리퀸’ 로맨스 시리즈는 현실에서 남자 볼 일 없는 여학생들에게 꿈 같은 사랑에 빠진 기분을 느끼게 해주었다.

 연애하지 않는 시대에 로맨스 드라마나 소설이 꾸준히 팔리는 것도, 그 ‘가상 연애물’들이 ‘현실 연애’를 할 여유가 없는 사람들에게 잠시나마 연애를 하는 것 같은 기분을 느끼게 해주기 때문일 것이다. 적은 돈과 짧은 시간만 지불하면 사랑에 빠졌을 때의 설렘과 달콤한 기분을 한껏 느낄 수 있다니 가성비가 중요한 이 시대에 딱 알맞는 상품이다. 데이트를 하기 위해서 꾸미는 시간과 노력, 데이트에 나가서 쓰는 비용도 절감될 뿐 아니라 휴일을 반납할 필요도 없다. 그보다 더 편리한 것은 ‘진짜 감정’을 소모할 필요도, 상처를 받을 위험도 없다는 것이다.

 연애소설은 안전하다. 돈과 시간도 절약되고, 소모적인 말싸움을 하며 감정을 낭비하거나, ‘진짜 상처’를 받을 필요도 없다. 달콤하고도 치명적인 로맨스를 즐기면서도 일상을 안온하게 유지할 수 있다. 때로 우리는 키스 한 번을 위해 얼마나 피곤한 일들을 감수하는지(주말에 번화가에서 데이트를 해본 자라면 누구나 알 것이다. 특히 집을 좋아하는 사람 이라면). 그런데 나의 감은 아무리 시대가 변해 가상체험이 진짜처럼 생생해지고 번식도 과학을 통해 해결할 수 있게 되더라도 그 귀찮은 ‘현실 연애’가 세상에서 사라지지 않을 거라는 또 다른 추측을 내놓는다. 하지만 아무렴 어떠랴. 가성비 좋은 가상 연애와 좀 번거롭지만 그만큼 커다란 감정적 보상을 주는 현실 연애를 양자택일 할 필요는 없으니. 둘 다 즐기면서 살아갈 때 우리의 로맨스는 더욱 풍요로워질 것이다. 풍요로운 로맨스가 풍요로운 삶을 만든다. 나의 믿음이다. 이 거친 세상에서 의지 할 것은 (돈을 빼고는) 사랑 뿐이다.

 

 

* 《쿨투라》 2019년 4월호(통권 58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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