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Theme] Romance - 로맨스 참고문헌
[4월 Theme] Romance - 로맨스 참고문헌
  • 쿨투라 cultura
  • 승인 2019.03.27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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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맨스만큼 다채로운 생각과 느낌을 떠올리게 하는 말이 있을까. 영화로 한정하든 책으로 한정하든 시대와 상황에 따라 그리고 이 조건이 같다 해도 사람과 경우에 따라 각기 다른 작품과 장면을 이야기할테고, 현실로 한정해도 과거의 로맨스와 현재의 로맨스 혹은 나의 로맨스와 (대체로 친구나 지인으로 불리는) 다른 이의 로맨스 가운데 어느 쪽이 먼저 떠오를지 짐작하기 어려울 테니 말이다. 상상은 자유이니 무엇을 떠올리든 간섭할 일은 아니고 이런 상황이 문제라고 말하려는 의도는 더욱 아니다. 그저 로맨스의 참고문헌이 왜 현실에서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는지 살펴보고 싶을 따름이다.

 우선 출처의 문제가 심각하다. 앞서 언급했듯 많은 이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주변의 이야기인 양 늘어놓다 보니 이야기를 하는 이도 어느 순간부터는 주어를 혼동하기 시작하다가 결국에는 친구의 고민에 눈물까지 흘리며 고통스러워하는데, 듣는 이는 어디서부터 네 이야기냐며 되물을 수도 없이 친구의 어깨를 토닥이며 그 친구의 친구의 어깨까지 다독이는 셈이 되고 만다. 누가 누구를 위로하는 것인지 결국 누구의 문제가 해결되는 것인지 알 수 없는 와중에, 그럼에도 둘의 우정은 깊어졌으니 다행이 라 여기면 될까.

 다음 문제는 상호교차 점검의 불가능성이다. 지나간 로맨스를 뒤적이며 오늘의 로맨스가 처한 곤란을 해결하려 할 때마다 부딪히는 문제다. 나의 기억 또는 기록이 확실하다 해도 상대가 같은 상황을 어떻게 이해하고 기억하는지는 전혀 다른 문제인 데, 상대의 기록이 전혀 없는 반쪽짜리 참고문헌을 바탕으로 그간의 변화까지 짐작하여 오늘에 대처하고 내일을 예측하는 일은 무리수다. 그럼에도 오늘의 로맨스 상대에게 어제의 로맨스를 낭만처럼 웅얼거린다면, 이번 로맨스 역시 반쪽짜리 참고문헌으로 남을 가능성이 높으니 주의가 필요하다.

 세 번째 문제는 변수의 적용이다. 사람은 고쳐 쓰는 게 아니라는 주장과 사람은 변하기 마련이라는 주장이 첨예하게 맞서는 주제인데, 문제는 자기 편의에 따라 두 가지를 한꺼번에 적용하는 데서 생긴다. 다시 말해 참고문헌에서 명백한 잘못으로 밝혀 진 내용에 대해서는 “그래도 이 부분은 내가 이번에 신경을 썼지.”라며 반복했을 가능성을 낮게 잡고, 운 좋게 대처를 잘했던 일에 대해서는 스스로 흡족해하는 데 정신이 팔려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잘했는지를 깊게 생각하지 않고 대강 넘어가기 일쑤이 니, 애당초 상수와 변수를 제대로 정해두지 않고 제 멋대로  인용한다면 참고문헌이 아무리 정확하고 믿을 만하다 해도 작성자의 오염이 자료의 가치를 깎아내리고 마는 것이다.

 그런데 참고문헌조차 남지 않은 로맨스가 있으니, 바로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사랑이다. 역사로 남지 않았다고 그 사랑이 존재하지 않았다 할 수 없고, 서로가 까맣게 잊었다고 해서 함께 나눈 이야기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겠으나, 오늘의 로맨스를 점 검하고 진전시키려 뒤적이는 참고문헌에서조차 찾아볼 수 없는 로맨스라면, 이를 의미 있는 로맨스라 부를 수 있을지 의문이다.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다는 노랫말은 노랫말일 뿐이고, 현실에서는 아플수록 오래 남기 마련이니, 비록 숱한 문제가 담긴 ‘로맨스의 참고문헌’이라 해도, 여기에 담기지 않은 로맨스는 별다른 힘이 없을 게 분명하다.

 그렇다면 로맨스의 참고문헌을 제대로 작성하는 원칙과 방법은 무엇일까. 앞서 지적한 문제점을 해결하는 방식으로 생각하면 될 테니, 우선 작성의 주체를 명확히 하고, 로맨스를 지속하는 동안에는 주기적인 상호교차 점검을 거쳐 합의된 기록을 남기 고, 인용을 할 때는 전후맥락을 충분히 살필 수 있을 정도의 분량을 옮겨와 임의적인 해석을 최소화 하려는 노력이 필요하겠다. 이렇게 번거로운 방식은 로맨스와 어울리지 않는다고 반문하는 이들에게는 이렇게 되묻고 싶다. 지금의 로맨스가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사랑으로 남아도 좋겠느냐고. 물론 지금 당신이 어떠한 참고문헌도 작성할 필요가 없는 비非로맨스 상황이라 쉽게 말하는 게 아니냐고 반박한다면, 앞선 모든 이야기가 로맨스의 참고문헌을 제대로 작성하지 못해 지금 비로맨스 상황에 처한 나의 고백이었다고 전하고 싶다. 심금을 울리는, 아니 (내) 심금이 울리는 이야기다.

 

 

* 《쿨투라》 2019년 4월호(통권 58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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