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친 미술가들] 현대미술의 미친 미술가
[미친 미술가들] 현대미술의 미친 미술가
  • 강수미(미학. 미술비평. 동덕여자대학교 교수)
  • 승인 2022.11.01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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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승리2 (The Triumph of Death2) 2016 acrylic & oil on linen 200x200cm A
죽음의 승리2 (The Triumph of Death2) 2016 acrylic & oil on linen 200x200cm A

은은한 광기

얼마 전 유튜브 인기 동영상으로 뜬 버라이어티 쇼프로그램에서 묘한 점을 발견했다. 아이돌 그룹 리더, 래퍼, 개그우먼 등 네 명의 여성 연예인이 출연해 PD가 내는 여러 퀴즈와 미션을 게임으로 풀어나가는 〈뿅뿅 지구오락실〉이었다. 여느 연예인보다 유명하고 인기 있는 나영석 PD도 평범하지는 않다. 하지만 출연자 중 맑고 순한 눈동자에서 외려 기묘한 에너지를 뿜어내며 뭐든지 미친 듯이 해내는 이가 있었다. 음악을 꺼도 굴하지 않고 춤추며 카메라 코앞까지 다가와 시청자와 눈 맞춤을 하고, 창피할 법한 상황에서도 화려하지만 순진한 매너를 잃지 않고, 정해진 답과는 거리가 멀지만 꽤나 설득력 있고 신선한 답변을 해내는 것이었다. 걸그룹 아이브의 안유진이 그 주인공이다. 워낙 아이돌이라 이전부터 팬층이 두텁고 많은 사랑을 받아왔을 것이다. 그런데 그 프로그램에서 얼핏 설핏 드러낸 독특한 광기에 대중이 열광하면서 현재 벼락같은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온라인에서는 안유진의 눈을 “은은한 광기”로 묘사하던데 고개가 끄덕거려지는 표현이다. 통상 우리가 ‘미쳤다’거나 ‘광기어리다’고 하면 떠올리는 양상과는 상이한 모습의 ‘미침’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부쩍 그런 성향에 관심을 보이고 그걸 인정하는 분위기다. 이를테면 외모든 행동이든, 생각이든 말이든 모범생에 버금가는 사람이 있다. 그런데 그 또는 그녀에게서 어딘지 건강한 광기가 느껴지고, 일상이 안정되었지만 약동하는 에너지로 사는 것 같고, 내면의 깊이와 함께 철저히 순간순간에 집중하는 모습이 눈에 잡힌다. 이처럼, 딱 집어서 말하기는 힘들지만 독특함과 신선함이 전문성과 안정감 속에서 꾸준히 느껴진다. “은은한 광기”라는 말은 그에 찰떡처럼 어울린다.

Edvard Munch, Self-portrait, 1895, 출처: G0192-59 - Google Art Project.jpg
Edvard Munch, Self-portrait, 1895, 출처: G0192-59 - Google Art Project

미친 미술가들

미술계에는 그런 유형으로 미친 미술가들이 꽤 많다. 그야말로 ‘미친 미술가들Crazy Artists’이다. 미술가 한 명 한 명과 그/녀들의 작품에 주목하면, 그들이 제각각 다른 양상과 의미로 ‘미쳤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광기’에 가까운 창작열을 내뿜으며 작업하는 아티스트부터 수십 년간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지적이고 논리적인 사유를 시각화해온 아티스트까지 실체를 알면 알수록 여러 디테일로, 다양하게 ‘미친 미술가들’이 포진한 것이다. 이제 그러한 미술가들의 ‘미침’에 대해 들여다볼 때가 됐다. 정신적 고통에 시달린 나머지 스스로 귀를 자르면서도 그림을 멈추지 않았던 고흐, 그는 심지어 잘린 귀를 붕대로 감싼 자신의 얼굴을 ‘나르시시즘에 빠졌나’ 오해할 정도로 멋지게 그렸다. 유년기에 어머니와 여동생의 황망한 죽음을 경험한 이후로 평생 불안과 공포에 시달리며 그리기에 집착했던 뭉크. 19세기 말에 그가 그린 자기 초상화에는 심리적 어둠이 어떻게 한 예술가의 광기 어린 창작에 뜨거운 연료 역할을 했는지가 보인다.

하지만 오늘 우리가 현대미술에서 미친 것 같다고 말하는 미술가는 그 같은 화가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사실 서구 근대의 그 미술가들만큼 명시적으로 광기를 드러낸 경우를 현대미술계에서는 쉽게 찾을 수 없다. 모더니즘 미술 시대에는 아티스트 개인의 주관성, 천재성, 낭만주의적 세계관을 극대화했다. 하지만 컨템포러리 아트에서는 그와 다른 미학을 탑재한 미술가가 우세한다. 현대미술의 ‘아티스트’는 전문직으로서 철저함과 성실함을 탁월하게 유지해가며 자신의 예술 경력을 관리해나가야 한다. 그렇게 해서 한편으로는 평범한 우리와 가깝게 느껴지고,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는 쉽사리 도달할 수 없는 전문적 창조성과 예술적 카리스마를 갖춘 미술가가 되는 것이다.

Gogh-Starry Starry Night 281.8 x 227.8cm acrylic&oil on linen 2020-2022
Gogh-Starry Starry Night 281.8 x 227.8cm acrylic&oil on linen 2020-2022

홍경택과 자기 조율의 그림

거대한 캔버스에 꽉 차게, 각양각색의 플라스틱 필기구가 찬란히 분출하는 스펙터클한 장면을 묘사한 〈연필〉 시리즈 그림으로 유명한 홍경택 작가. 그는 지난 이십여 년 간 비단 〈연필〉 시리즈만이 아니라 〈서재〉, 〈훵케스트라〉 등의 연작을 통해 한국 현대미술 스펙트럼에서 자신만의 회화 구간을 착실하고 명확하게 구획해냈다. 홍경택의 미술이 알려진 것은 〈연필 1〉이 2007년 홍콩 크리스티 ‘아시아 현대미술경매’에서 약 7억 8천만 원의 최고가에 낙찰되면서다. 당시 크리스티가 책정한 예상가의 10배가 넘는 작품가를 기록하며 그야말로 국내 미술계에 파란을 일으켰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할 점이 두 가지 있다. 첫째, 홍경택이 그때까지 대중은 물론 미술계 내에서도 완전히 ‘무명씨’였다는 사실이다. 둘째, 〈연필 1〉의 제작 기간은 1995~1998년인데, 그 말인즉슨 홍경택이 미술대학을 졸업한 직후 무명의 화가이자 백수 상태에서 그린 작품이라는 뜻이다. 시간을 따져보면 홍경택 작가가 익명을 벗어나 일약 스타 화가가 되기까지 짧게 잡아도 십년이 훌쩍 넘는다. 누군가는 그 정도는 성공의 과정에서 대수롭지 않은 기간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홍경택이 그 그림을 그리고 있었을 때, 국내외 미술계의 주류 경향은 설치미술과 미디어아트였다. 게다가 그는 거의 모든 미술계 공모에서 탈락을 거듭하는 상태였다. 아마도 미쳐버릴 만큼 불안했을 것이고, 외로웠을 것이며, 마음이 쓰라렸을 것이다. 그러나 홍경택은 매일 플라스틱 펜과 연필 다발을 가로 6미터, 세로 3미터에 달하는 화폭에 건조한 붓질로 정교하게 묘사하고 다듬어 〈연필 1〉을 3년 만에 완성해냈다. 요컨대 변방에서 홀로 그렸고, 실패의 연속 속에서 변함없이 그렸다. 〈연필〉, 〈서재〉 연작들이 그렇게 해서 세상에 존재할 수 있게 되었다.

홍경택의 회화가 팝아트 스타일이나 하이퍼리얼리즘 계열의 구상회화 범주에 묶이지 않고 그만의 독특한 광기를 품은 기묘한 미술이 된 힘이 그 익명성과 지속성에 있다. 그것은 천재성을 분출하는 광기나 순간에 폭발력을 발휘하는 열정과는 대극에 있는 속성들이다.

2021년 국립현대미술관 《MMCA 작가와의 대화》에서 홍경택은 ‘무명씨’와 ‘익명’을 말했다. 동시대가 “익명의 시대”이며 “무명씨들이 빵 하고” 스타가 되는 때라면서 공장에서 대량 생산되는 플라스틱 필기구를 주제로 한 자신의 그림이 잠재한 미학적 의미를 짚었다. 아닌 게 아니라 홍경택의 그림을 ‘모티프’와 ‘화면 구성’이라는 형식주의 요소로 따지면 펜, 책, 서가, 기하학 도형, 디자인 패턴 등이 모두 ‘대량 생산’과 ‘반복적 운동’에 속한다. 예컨대 펑크음악funk과 클래식 교향악단orchestra을 합성한 홍경택의 〈훵케스트라〉 시리즈를 보라. 화면 중앙을 차지한 유명인들(바흐에서 BTS까지, 존 레논에서 교황까지, 고흐에서 박찬욱까지)조차 화면 구성방식으로만 보면 독창성 대신 몰개성의 규칙을 준수한다. 때문에 공산품시장의 볼펜이든, 엔터계의 아이돌이든, 성스러운 인물이든 홍경택의 작품에서는 화폭의 중앙을 독점하지만 화면 전체로 보면 균질하고 동등하다. 나는 이를 2009년 출간한 미술비평서 『한국미술의 원더풀 리얼리티』에서 다음과 같이 해석했다. 마치 신이 한 번에 ‘모든 곳에 존재하고omni-presence,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것omni-potence’처럼 홍경택은 화면을 다룬다고 말이다. 그의 조용하고 성실한 광기가 그러한 화면을 만들어냈다고 확신한다. 요컨대 홍경택의 그림들은 익명적 대상들을 화면에 총집결시키되 각각이 거의 완벽히 동등하고 균질한 형상들로 출현하도록 묘사할 수 있는 작가의 정신적, 신체적 자기 통제 및 조율에 힘입은 결과다. 그 안정된 광기가 오늘도 꾸준하게, 홍경택만의 찬란하게 분출하는 독창적 화면을 완성해내고 있다.

 


강수미 미학. 미술평론. 동덕여자대학교 예술대학 회화과 부교수. 『다공예술』, 『아이스테시스: 발터 벤야민과 사유하는 미학』 등 다수의 저서와 논문 발표. 주요 연구 분야는 동시대 문화예술 분석, 현대미술 비평, 예술과 인공지능(Art+AI) 이론, 공공예술 프로젝트 기획 및 비평. 현재 한국연구재단 전문위원, 국립현대미술관 운영심의위원, 《한국미학예술학회》 편집위원, 《쿨투라》 편집위원.

 

* 《쿨투라》 2022년 11월호(통권 101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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