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친 미술가들] 〈아니마투스Animatus〉: 이형구의 피그말리온적 열망
[미친 미술가들] 〈아니마투스Animatus〉: 이형구의 피그말리온적 열망
  • 최종철(이화여대 미술사학과 교수)
  • 승인 2022.11.01 0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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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as Df Animatus, 201585.5x88x42.5cmresin, aluminum sticks, stainless steel wires, springs, oil paint
Anas Df Animatus, 201585.5x88x42.5cmresin, aluminum sticks, stainless steel wires, springs, oil paint

이형구의 〈아니마투스〉 시리즈는 미국 월트 디즈니나 워너 브라더스의 유명한 캐릭터들(미키마우스, 벅스 버니, 도널드 덕, 구피 등)에 인간의 골상학을 대입하여 캐릭터 특유의 과장된 몸짓 내부에 숨겨진 골격의 (비)논리적 구조를 생경하게 드러내 보인다. ‘아니마투스Animatus’라는 말은 ‘생명을 불어넣다’, ‘활기를 띄게 하다’라는 뜻의 라틴어로서, 의인화된 동물들이 만들어내는 애니메이션의 활기를 지칭하고, 고고학에서 종을 분류하는 학명의 관습(가령 ‘Homo Erectus’와 같이)을 상기시킴으로써 대중적이고 현대적인 도상에 고고학적 계보를 부여하며, 무엇보다 ‘생명을 불어넣는다’는 어원대로 단순한 만화 캐릭터를 살아 숨 쉬는 존재로 만들려는 피그말리온적 열망을 담아낸다.

피그말리온은 로마의 시인 오비디우스의 『변신이야기』에 등장하는 조각가로서 자신이 만든 조각이 살아나 그녀(갈라테이아)와 사랑에 빠지는 인물이다. 피그말리온 신화의 수많은 버전들 중 장 자크 루소Jean-Jacques Rousseau(1712-1778)가 쓴 동명의 희곡은 매우 흥미로운 관점을 전한다. 루소의 희곡에서 사람이 된 갈라테이아는 자신의 살을 만지며 ‘나로구나C’est moi’라고 말하고, 돌아서서 근처의 대리석 조각들을 가리켜 ‘더 이상 내가 아니야Ce n’est plus moi”라고 말한다. 그리고 놀랍게도 자기를 만든 피그말리온을 가리키며 ‘오! 또 나로구나Ah! encore moi”라고 경탄한다.1 갈라테이아의 이 갸웃한 행동(조각과 조각가를 동일시하는)은 다음과 같은 가능성, 즉 무엇을 만들고자 하는 조각가의 욕망이 무엇이 되기를 원하는 조각의 욕망으로 전치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조각은 무엇이 되기를 원하는가? 상아조각의 단단한 표피를 벗고 사람이 된 갈라테이아처럼, 조각은 항상 다른 무엇이 되기를 원한다. 그리고 현실에서는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그 열망 때문에, 다시 말해 다른 무엇이 되려는 열망의 투사와 그것의 즉각적인 좌절 속에서, 모든 위대한 조각의 모순적 본질이 드러나는 것이다. 이형구의 조각이 흥미로운 것은 그것이 바로 무엇이 되고자 하는 조각적 열망을 자신의 결핍으로부터 길어내고, 모종의 좌절을 통해 열망의 본질을 드러내기 때문이다.2 〈아니마투스〉 시리즈의 디즈니 캐릭터들은 (인간의) 뼈대를 가짐으로써 사람이 되려는 그들의 본질적인 열망을 드러낸다. 그러나 이 열망은 그들이 결코 사람이 아니라는 객관적인 사실에 의해 좌절되는데, 이 좌절은 작업의 실패가 아니라 오히려 성취다. 결코 그리될 수 없는 것이 그리되었다는 ‘환상을 가로질러la traverse du fantasme’ 이형구의 조각은 자기 욕망의 본원인 실재와 만나는 것이다.3

Homo Animatus, 200769x92x48cmresin, aluminum sticks, stainless steel wires, springs, oil paint
Homo Animatus, 200769x92x48cmresin, aluminum sticks, stainless steel wires, springs, oil paint

잘 알려진 바와 같이 디즈니의 애니메이터들은 인간에게 친숙한 동물들에게 인간성을 부여하고 각각의 동물들이 지니는 성격적 유형(영민하고, 까탈스러우며, 귀엽고 바보스러운)들을 통해 흥미롭고 교훈적인 드라마를 각색해 냄으로써 세대와 국경을 초월하여 오랫동안 사랑받는 애니메이션의 주인공들을 탄생시켰다. 특히 디즈니 애니메니션의 본 고장인 미국에서 이 캐릭터들은 단지 만화 주인공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이들이 역사가 짧은 미국인들에게 중요한 역사적 유산이며, 미국 대중문화가 지향하는 가족적 가치관의 표상이고, 온갖 인종적, 언어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이상이 행복하게 실현되리라는 환상의 전령사들이기 때문이다. 이 캐릭터들이 디즈니 숭배자들에게 얼마나 중요한 의미가 있는지는 디즈니랜드와 같은 테마파크에서 이 만화캐릭터들을 연기하는 연기자들의 진지한 규율에서도 엿볼 수 있다. 가령 미키마우스를 연기하는 연기자는 미키처럼 말하고 행동할 뿐만 아니라, 캐릭터에 대한 믿음을 깨는 그 어떤 불필요한 행위들 — 담배를 피운다거나 화장실에 간다거나 욕을 한다거나 하는 — 도 금지된다고 한다. 아이들은 그들과 만나고 껴안고 대화하면서 자신들의 세계가 미키마우스와 도널드덕이 사는 꿈의 세계와 동일하다는 환상을 갖는 것이다.

이형구의 〈아니마투스〉에 서구인들이 더욱 열광하는 것은 이 작업이 희미해져 가는 그들의 환상에 단단한 실재성을 부여해 주기 때문이다. 무릇 모든 열망은 현실의 보충이다. 매춘부로 전락한 키프로스의 여인들에 탄식하며 자신만의 순결하고 아름다운 여인을 만들고자 했던 피그말리온처럼, 미국인들도 자본에 타락한 자신들의 어두운 현실을 보충하고자 디즈니의 그처럼 순수하고 발랄한 캐릭터에 열광했는지 모른다. 이형구는 피그말리온이 자신의 환상에 뼈와 살을 붙였던 것처럼, 디즈니의 편평한 만화적 몸에 인간의 두개골과 갈비뼈를 선물함으로써 그들을 살아 숨 쉬는 대상으로 만들었다. 벅스 버니는 이형구의 〈Lepus Animatus〉(2006)를 통해 골격과 내부를 갖는 진짜 친구가 된다. 뼈를 통해 구피(〈Ridicularis〉(2008))의 우스꽝스럽고 어처구니없는 동작들은 모두 합리적이고 납득 가능한 행동이 된다. 특히 이미 너무 자라버린 관객들에게 이 환상은 다시 동일한 만화적 형식으로 반복되지 않고 고고학적 유물처럼 전시됨으로써, 마치 멸종한 공룡의 화석처럼, 부재에 대한 ‘지표적indexical’ 확신을 준다. 이형구는 사람이 아닌 것을 사람으로 만들고자 했던 디즈니의 꿈, 그 아름답지만 불가능한 피그말리온적 환상을 시연함으로써 조각가로서 자신의 위상을 증명하고 멸종해 가는 미국 대중문화에 고고학적 구체성을 부여하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실재가 아니라 환상이다. 그런데 이 환상의 유별난 특징은 그러한 동물들이 동물 본연의 태도로부터 벗어나 인간의 속성을 가지고 인간처럼 존재한다는 점에 있다. 다시 말해 우리는 한 마리의 쥐(미키 마우스)에 열광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된 쥐, 인간의 골격을 가진 쥐, ‘타자(동물)의 몸 안에서 솟아나는 주체(인간)의 흔적’에 열광한다는 것이다. 이 열광의 본질을 이해하기 위해 그 반대를 생각해 보라. 즉 쥐가된 인간, 혹은 인간의 몸을 하고 있지만, 자신이 쥐라고 믿으며 쥐처럼 행동하는 인간 말이다. 프로이트적인 관점에서 이러한 인간은 치료를 요하는 미친 사람에 불과하다. ‘아버지의 질서’에 안착하지 못한 채 여전히 불안정한 외상 이미지에 구속된 불행한 ‘쥐인간’처럼 말이다.4

Felis Animatus & Leiothrix Lutea Animatus, 2009130×73×50cm, 15.5×15×21cmresin, aluminium sticks, stainless steel wires, springs, oil paint
Felis Animatus & Leiothrix Lutea Animatus, 2009130×73×50cm, 15.5×15×21cmresin, aluminium sticks, stainless steel wires, springs, oil paint

어쩌면 〈아니마투스〉의 진정한 가치는 인간-쥐와 쥐-인간 사이의 차이와 연관 속에서 파악될 수 있을지 모른다. 즉 타자의 낯선 몸 안에 안착된 주체의 익숙하고 정상적인 모습을 보는 쾌와 주체의 익숙한 행동을 구현하는 타자의 기괴하고 비정상적인 몸을 보는 불쾌 사이에 〈아니마투스〉의 미학적 본질이 자리 잡는다는 것이다. 그것은 예쁘고 귀여운 미키마우스 인형이 살아서 우리에게 말을 걸었으면 하는 소망과 그러한 소망이 정말 실현되었을 때 발생하는 당혹스럽고 소름 끼치는 느낌, 프로이트가 ‘언캐니uncanny’라고 불렀던 친숙하면서 동시에 낯선 중복의 경험과 연관된다.5

스위스의 한 자연사 박물관에서 마치 새로 발굴된 원시 동물의 화석처럼 전시된 이형구의 작업을 보고 생경한 느낌을 받았다는 관객들의 일화는 바로 이러한 낯선 중복의 경험을 예시한다. 〈아니마투스〉의 기발한 상상과 숙련된 조각적 마감이 주는 즐거움 이면에는 타자에 의해 드러나는 주체의 모순적 열망에 대한 은밀한 암호가 숨겨져 있는 것이다.

피그말리온 신화는 두 가지 상이한 효과를 남긴다. 하나는 간절히 원하면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긍정적인 신념이고 다른 하나는 현실과 무관한 가상의 존재에 탐닉하는 도착적이고 부정적인 믿음이다. 〈아니마투스〉는 우리에게 어떤 효과로 다가올까? 어떤 이들에게 〈아니마투스〉는 캐릭터들이 갖는 인간적 매력에 대한 확증으로서, 다른 이들에게 그것은 캐릭터들의 동물적 순수성을 오염시키는 인간성의 불순한 침투로 여겨질 것이다. 그것이 어떻게 여겨지든, 〈아니마투스〉가 전하는 주체와 타자의 아스라한 중복의 경험은 조각과 실재, 인간과 비인간, 결핍과 보충 사이에 자리 잡은 이형구 작업의 열망을 잘 요약한다. 사람이 되고 싶지만, 결코 사람이 될 수 없는 조각의 단단한 열망, 오직 ‘환상을 가로질러’ 충족될 뿐인 피그말리온적 열망, 이형구의 〈아니마투스〉는 결코 원할 수 없는 것을 원함으로써 조각의 모순적 열망에 대한 낯선 지표를 남긴다.6

Felis Catus Animatus & Mus Animatus
Felis Catus Animatus & Mus Animatus

1 Jean-Jacques Rousseau, Pygmalion, London: printed for J. Kearby, No. 2, Stafford-Street, Old Bond-Street; Fielding and Walker, Paternoster-Row; and Richardson and Urquhart, Royal Exchange, 1779, pp. 31-33

2 이러한 관점은 이형구의 초기작인 〈오브젝츄얼스(The Objectuals)〉의 보철들에서 보다 분명히 드러난다. 보다 자세한 논의는 다음의 글을 참조 – 최종철, “조각은 무엇을 원하는가? 이형구 조각의 포스트휴먼적 신화,” 『한국현대미술작가조명 Ⅳ- 이형구』, 부산시립미술관, 2022

3 Jacques Lacan, “In You More than You,” in The Four Fundamental Concepts of Psychoanalysis - The Seminar of Jacques Lacan Book XI, ed. Jacques-Alain Miller, trans. Alan Sheridan, New York: Norton, 1998, pp. 273-274 참조령사들이기

4 지그문트 프로이트, 「쥐인간」, 『프로이트 전집 11』, 김명희 역, 서울: 열린책들, 1996 참조

5 지그문트 프로이트, 「낯선 친숙함(Uncanny)」, 『프로이트 전집 14』, 김명희 역, 서울: 열린책들, 1996 참조

6 본 에세이는 2022년 이형구 개인전(2022. 03.29 – 08.07, 부산시립미술관)의 도록에 실린 글의 일부를 개작한 것이다.


최종철 이화여대 미술사학과에 부교수로 재직중인 교육자이자 미술 비평가이다. 2012년 미국 플로리다 대학(University of Florida)에서 미술사학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이후 미국과 일본, 그리고 한국에서 다양한 강의, 연구 경력을 쌓았다. 필자의 전문 연구 분야는 현대미술 이론과 미술 비평이며, 국내외 저명 학술지와 미술 잡지에 다수의 논문을 게재하였다. 최근 미디어 아트(디지털 사진, 포스트-미디어 예술, 포스트 미디엄 이론 등) 연구에 집중하고 있으며, 특히 디지털 매체의 미학적, 정치적, 기술적 문제들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 《쿨투라》 2022년 11월호(통권 101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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