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제가 영화 일을 시작한 이래로, 한 가지 일에 100% 올인하는 건 처음이네요: 한국영상자료원 김홍준 원장
[INTERVIEW] 제가 영화 일을 시작한 이래로, 한 가지 일에 100% 올인하는 건 처음이네요: 한국영상자료원 김홍준 원장
  • 전찬일(영화평론가, 중앙대 겸임교수)
  • 승인 2022.11.02 16: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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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2022년 9월 14일 오후
장소 한국영상자료원 영상자료원장실
인터뷰어 전찬일(영화평론가, 중앙대 겸임교수)
한국영상자료원 김홍준 원장

김홍준은 1990년대 초 영화 마니아들의 필독서였던 『영화에 대하여 알고 싶은 두세 가지 것들』의 저자다. (구회영이라는 필명으로 발간되었다) 임권택 감독의 연출부로 들어가 〈장군의 아들〉 2, 3편과 〈서편제〉 연출부를 거쳐 1994년 〈장미빛 인생〉으로 장편 데뷔를 했다. 한예종 영상원 영화과 교수,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집행위원장·충무로뮤지컬영화제와 강릉국제영화제 예술감독 등을 지냈다. 2022년 2월 한국영상자료원장으로 임명되었다.


전찬일(이하 전)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김홍준(이하 김) 영상자료원장 된 후 처음 하는 인터뷰네요.

바쁘셔서 시간을 못 내신 건가요, 아니면 내키지 않아서 그런 건가요?

인터뷰를 요청한 곳이 두세 군데는 있었지만, 거절했어요. 자료원장을 맡았는데, 책임 있는 발언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업무 파악을 해야 하고 기관의 지향점을 찾아야 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등의 판단에서였죠. 일종의 학습 시간이 요청됐던 거죠. 기관장이라는 자리가 만만치 않잖아요?

먼저 30여 년 전에 구입한 『영화에 대하여 알고 싶은 두세 가지 것들』(도서출판 한울, 1992년 2월 초판 3쇄) 이야기를 하고 싶네요. 오늘 가져왔습니다만, 당사자 앞에서 이런말 하기 다소 쑥스럽긴 해도 우리나라에서 발간된 영화 관련 저서 중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책이고 지금도 참고하곤 하는데, 당시 어떻게 이런 책을 썼을까 싶어요.

저도 최근에 그 책을 제가 썼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고, “기특하다. 열심히 공부했구나” 싶더라고요. 그 당시의 구회영이…. 무엇보다 역사적인 타이밍이 참 좋았어요.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읽어줬죠. 월간 《로드쇼》에 연재할 때는, 세 사람의 이름으로 나왔어요. 구회영 말고도 오윤평과 김주현으로. 정성일 편집장이 ‘도시에’라는 코너를 만들어 원고를 써보지 않겠냐고 제안해 쓰기 시작한 건데, 그때 낭인 시절이라 그야말로 올인을 했죠. 사실 창피한 것도 있고 그래 이름을 밝히고 싶지 않아 필명을 쓴 건데, 필자가 세 명이나 된 것은 원고료와도 관련이 있어요. 한 달에 원고지 150매를 한 사람이 쓴다는 게 말이 안 되는 데다, 고료 150만 원이 한 사람에게 주어진다면 사장이 분명히 깎으려고 할 것이라고 해 세 명을 동원한 거죠. 한 달에 열흘은 아이디어를 생각해내고, 열흘은 자료들을 읽으며 공부하고, 열흘은 글을 쓰고, 쓰고 나면 뻗고…. 그걸 1년간 계속한 거죠. 그 결과물이 이 책인데, 책에는 구회영이라는 이름만 올렸어요. 그랬더니 혹자는 서울대생 3명으로 구성된 스터디 그룹이 쓴 거 아니냐, 는 오해를 하기도 했죠.

그랬군요. 세 사람이 번갈아 가며 썼다는 것은 오늘에야 알았네요. 이제 자료원 이야기로 들어갈까요. 몇 개월간의 학습 시기를 거치셨는데, 그동안 자료원이 걸어온 길과 향후 나아갈 방향성이 어떻게 같고 다른지요?

총론과 각론으로 나눠 말할 수 있을 텐데, 총론으로 치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잘 하고 있는 것 같아요. 직원들의 전문성이나 하고 있는 다양한 사업들의 완성도나 충실도 그런 것들은 체계도 잘 잡혀 있고, 잘하고 있어요. 그런데 각론으로 들어가면, 손대고 싶은 게 되게 많은게 사실이에요. 저는 감독도 해봤고, 학교에도 있었고, 영화제에도 있었고 다양한 경험을 하며 살아왔는데, 전문가인 직원들과 대화·소통이 가능하다는 것이 저의 장점이자 단점일 거 같아요. 단점은, 자료원 사업이 90% 정도는 제가 알고 있는 거라 어느 정도 참견이 가능한데, 그것이 직원들에게는 피곤할 수도 있겠다 싶어요. 장점은 디테일에 강하다는 거겠죠? 특히 필름시대 영화를 찍어봤다는 것이 큰 도움이 되죠. 영화 유산의 대부분은 아직도 필름으로 돼 있기 때문에, 필름의 물성과 테크놀로지에 대한 이해가 없으면 많은 데서 애를 먹을 수밖에 없거든요. 와서 보니 제가 맡고 있는 일이 영상자료원장 외에도 네 가지나 더 있더군요. 국립영화박물관장, 영상도서관장, 출판사 사장, 그리고 영화관 대표죠. 그 업무들은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어, 그것들을 어떻게 잘 융합시키고 시너지를 낼 수 있느냐 하는 것이 제게 주어진 큰 과제에요. 한데 그러기에는 3년이란 임기가 너무 짧지 않나 싶어요.

이쯤에서 강릉국제영화제 이야기를 해볼까요. 그 영화제에서 예술감독을 하시다가 자료원장으로 자리를 옮기셨는데, 최근 4회를 앞두고 중단됐죠. 이직의 배경을 말씀해주실래요?

영상자료원장 제안을 받기 시작한 건 20년도 더 됐을 거예요. 전문성을 갖춘 후보군 중 한 명으로 차기원장을 뽑을 때마다 으레 물망에 오르곤 했죠. 저도 생각이 없었던 건 아니었으나, 제 본업이 교수였던 터라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던 것도 있어요. 영화제도 마찬가지에요. 영화제 집행위원장은 행정과 예술을 다 책임지는 자리라, 전업으로 해도 될까 말까 한데 본업이 있으면서 비상근으로 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고 생각해요. 강릉국제영화제도 그래서 집행위원장은 고사했고, 비상근 예술감독으로 일했던 거죠. 영화제는 1년 단위의 계약직인데, 교수직을 정년퇴임하면서, 집행위원장으로서 영화제에 올인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은 건 아니에요. 3회를 마친 후 강릉영화제에서 어떤 가능성을 봤거든요. 한데 영상자료원장 1차 공모에서 적임자가 나오질 않아 2차로 넘어갔고, 갈등이 생기더군요. 고민에 고민 끝에 자료원 공모에 응했고, 결국 임용됐죠. 물론 제 결정을 김동호 이사장님께 제일 먼저 전했고, 김 이사장님도 흔쾌히 받아들여 주셨죠. 만약 공모에서 떨어졌으면, 저는 오갈 데 없는 사람이 되는 거였죠. 강릉영화제에 대해서는 지금도 미안한 마음이 있어요. 영화제에 일정한 기여를 했습니다만….

강릉영화제가 이렇게 중단되리라고는 예상을 전혀 못하셨겠죠?

그럼요. 비문화적인 관점의 결정이 내려졌다는 것이 예상 밖이었어요. 예산 등 문제점들이 있다면, 조정할 수 있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었을 테니까요. 3회를 치르고 나서, 제 나름대로는 어떻게 하면 그 영화제가 강릉 시민들의 축제로 있을 것인지 그걸 위해서 많은 분들을 만났고 영화제 안에서도 많은 노력을 했는데, 그런 노력들이 기대한 것만큼의 성과가 나오지 않았다면 할 말은 없지만, 마치 그런 노력을 전혀 하지 않은 것처럼 보는 것은 지나친 왜곡이라고 봅니다. 그럼에도 저는 강릉영화제가 중단된 것이지, 결코 소멸된 것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전 가급적 낙관적으로 생각하려고 합니다.

다시 자료원으로 돌아가서, 잘하는 것도 있고 부족 한 것도 있을 텐데 제일 부족한 게 있다면 어떤 게 있을까요? 저는 정확하면서도 신속한 자료 업데이트가 필요하다고 보고 있거든요. 가령 올해 데뷔 40주년을 맞이한 배창호 감독 자료가 너무 빈약해 아쉽더군요.

이미 말씀드렸듯, 자료원 직원들은 다들 전문가들이에요. 그 전문성은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는 훨씬 더 깊고 뛰어나죠. 문제가 있다면, 해결책도 다 알아요. 안 해본 게 아니라 다 해봤거든요. 문제는 항상 예산과 인력이 모자라다는 거죠. 결국 구조적인 문제인 거죠. 특히 정책의 문제….
구체적으로 문제를 들어보면, 과거에 귀중한 필름들을 수집 못해 잃어버렸듯이 자료들이 마구 없어지고 있다는 거예요. 가령 극장용 영화의 경우 우리가 납본을 받는데, 디지털 파일 원본을 받아야 하거든요. 한데 복사본인 DCPDigital Cinema Package을 받고 있어요. DCP는 복원의 소스로 쓴다거나 활용을 할 수가 없어요. 오리지널 네거티브 필름에 해당하는 디지털 원본까지 소장을 해야 비로소 그 디지털 영화를 제대로 소장하는 것인데, 그에 대한 보상도 없고 하다 보니 잘 안 되는 거죠. 이렇게 되면 활용할 수 없는 한국영화 DCP들만 잔뜩 남고 정작 원본들은 없어져 버리는 거죠. OTT 영화나 드라마 시리즈들도 큰 문제예요. 넷플릭스 경우는 자본이 있고 여력이되니 원자료들을 다 보관한다는데, 토종 OTT 회사들은 원본들을 다 지워버리고 파기시키고 있다고 하네요. 원본을 보관하는 데 큰 비용이 들어가기 때문이죠. 결국 원본은 없고 당장 돈이 되는 방영본만 잔뜩 쌓여가는 거죠. 그런 문제는 법률을 통해 제도적으로 풀지 않으면 해결책이 없어요. 그런 문제들을 풀기 위해서는 예산을 좌지우지하는 기재부 관리나 그런 사람들을 이해, 설득시킬 수 있는 논리를 개발해야 됩니다.

사실 저도 오래전부터 그런 생각을 해왔는데, 그게 잘 마음 먹은 대로 되진 않더군요.

제가 기수별로 직원들과 면담 비슷한 걸 시작했는데, 그러다 자문을 하게 됐어요. 훗날 나는 과연 어떤 원장으로 기억되고 싶은가, 라는? 제 바람은 그 원장이 와서 자료원이 사업이 잘되고, 그래서 인지도가 높아지고, 자료원이 엄청 잘 나가던 시기였다고 인정받는 게 아닙니다. 그보다는, 그때는 잘 몰랐는데 지나고 보니, 그때 그렇게 뭔가 틀을 잡아놓은 것들이 지금 자료원이 잘굴러가는 데 밑거름이 되었던 것 같다, 고 기억되고 싶습니다. 저는 무슨 흥행이나 비평문화 그런 것들에 가장 높은 가치를 뒀던 것 같지는 않아요. 오히려 좀 더 근본적인 고민을 하고 싶어 했고, 기본을 충분히 해 그 토대 위에서 차곡차곡 뭔가 쌓여 올려 졌으면 하는 걸 바랐고, 긴 길을 돌아서 자료원까지 왔는데, 사실 지금까지 영화에 관련돼서 제가 살아오면서 했던 모든 것들을 다 쏟아붓지 않을 수 없게 됐잖아요? 제가 영화 일을 시작한 이래로, 한가지 일에 100% 올인하는 건 처음이네요.

〈장미빛 인생〉(1994)과 〈정글 스토리〉(1996)

이제 감독으로서 김홍준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 마무리짓겠습니다. 두 편의 연출한 영화를 선보이셨잖아요? 〈장미빛 인생〉(1994)과 〈정글 스토리〉(1996)인데, 개인적으로 굉장히 좋아하는 영화죠. 상을 받아서가 아니라 최명길의 연기는 발군이었고 최재성도 그 영화에서만은 훌륭했죠. 윤도현 밴드도 영화에 선한 영향을 받은 것 같고요. 그 두 영화는 흥행에서 좋은 성적을 내지 못했어도 나름 비평적 성과도 괜찮았고요. 그런데 그 이후에 감독의 길을 걷지 않은 건 왜일까요?

자기 합리화로 들릴 수 있어 조금은 부담스러운데 분명하게 말하면, 제가 두 편의 영화를 찍은 영화감독이긴 하나 다른 영화감독들과는 달랐던 것 같아요. 영화감독이 아니었다고 할까요. 저는 한 번도 영화감독이었던 적이 없었던 거예요. 무슨 말이냐면 제게는 내가 영화에 대한 뭔가를 한다는 게 중요한 것이지 감독이 목표가 아니었다는 거예요. 좀 건방지게 들리겠지만, 영화를 하기 위해서 영화감독을 한 것이지 영화감독이 되려고 영화를 한 게 아니었어요. 그러다 보니 〈정글 스토리〉가 망했을 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프로그래머를 제안을 받게 됐고, 뭔지도 모르면서 그걸 맡아서 또 그 일을 재미있게 하게 되고, 그러다가 학교에 나가게 되고, 그러면서 그렇게 흘러가니까 겉으로는 “저도 영화 연출을 좀 해야죠”라고 했지만, 솔직히 속마음으로는 “내가 지금 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해”,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아요. 한데 제가 존경하고 사랑해 마지않는 제 주변의 동시대 감독들을 보면 하나 같이 공통점이 있는데, 그들은 영화감독을 하지 않으면 못사는 사람들이라는 거예요. 저는 그런 점을 제 동시대의 뛰어난 감독들에게도 똑같이 느껴요 솔직히. 홍상수, 이창동, 임상수, 이명세, 박찬욱 등등. 저는 그들과 다르기 때문에 이런 삶을 살 수밖에 없었구나, 싶어요. 지금도 솔직히 아쉬움은 없어요. 그러나 만약에 영화에 관련된 일을 아무 것도 못 하고 있다면, 그러면은 저는 굉장히 힘들었겠죠. 제가 영화를 하는 유일한 수단이, 지금 주어진 게 감독밖에 없었다면 아마 거기에 매달렸겠죠.

그렇군요. 시간 내주셔서 고맙습니다.

 


전찬일 영화평론가, 본지 기획위원, 중앙대학교 글로벌 예술학부 겸임교수, 인터넷신문 《한류역사문화TV》 편집인·대기자. 팟캐스트 매불쇼 ‘씨네마지옥’ 코너에 고정 출연 중이다. 저서로 『봉준호 장르가 된 감독』(2020) 등이 있다.

 

* 《쿨투라》 2022년 11월호(통권 101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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