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문학도 프로와 아마추어의 경계가 명확히 서야: 창간 30주년 맞이한 《시와반시》 강현국 발행인
[INTERVIEW] 문학도 프로와 아마추어의 경계가 명확히 서야: 창간 30주년 맞이한 《시와반시》 강현국 발행인
  • 손희(본지 편집장)
  • 승인 2022.11.03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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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현국 발행인

대구 최초의 시 전문 계간지 《시와반시》

1992년 창간된 대구 최초의 시 전문 계간지 《시와반시》(발행인 강현국)가 올해 가을호(통권 121호)를 출간하며 창간 30주년을 맞았다. 문학적으로 척박한 지역에 터를 잡았음에도 한 번의 결호도 없이 높은 수준의 잡지를 꾸준히 발행해왔다는 사실은 놀랍다. 이것이 어쩌면 《시와반시》가 독자와 문단의 주목을 받는 이유가 아닐는지.

창간 당시 지역에서 시 계간지 발간은 사건이었다. 문예지는 서울에만 있었고, 전국의 문학 권력이 수도권에 집중돼 문인들이 중앙만 바라보던 시절 대구에서 《시와반시》를 전국 최초로 창간한 것이다. 이후 부산에서 《시와사상》이 창간됐고, 광주에서는《사와사람》, 제주는 《다층》 등의 창간을 이끌었다.

발행인 겸 주간인 강현국 시인은 30주년 특집호 발간사에서 “되돌아 보건데, 제 몸을 두드려 바람의 저항과 맞서온 짧지 않은 나날들의 푸닥거림이 스스로 대견하고 자랑스럽다”며 “애정과 질책의 눈으로 지켜준 문단 안팎의 따뜻한 손길들의 모아진 힘으로 여기까지 왔다”고 밝혔다.

창간 30주년을 맞은 《시와반시》 발행인 강현국 시인을 대구 수성구에 위치한 ‘카페 1997빠리’에서 만났다.

진영논리 없이 좋은 시면 조건 없이 지면 할애
문학도 프로와 아마추어의 경계가 명확히 서야 

“덤덤하면서도 감회가 깊죠. 좋은 시인을 배출하고, 문단에 활동하며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것을 고민하던 끝에 《시와반시》를 발행하게 되었습니다. 바람의 저항과 맞선 짧지 않은 나날들의 푸덕거림이 있었지요. 문예지를 발행한다고 해서 권력이 생기거나 연구업적, 명예가 쌓이는 것은 결코 아닌 사명감에서 시작했기에 앞으로를 더욱 생각하게 됩니다. 30년간 그래왔듯 앞으로 꾸준히 해나가는 것이 목표지요. 《시와반시》를 기다리는 독자들과 든든한 지원군 등 안팎의 따뜻한 손길로 여기까지 왔습니다. 도와준 모든 분에게 감사함을 전합니다. 그리고 지면의 한계가 있어 모든 문인들의 글을 수용할 수 없는 것에 매번 미안함을 느낍니다.”

《시와반시》는 제호가 암시하듯 서정시든, 실험시든, 리얼리즘시든 모더니즘시든 이념이나 진영논리에 얽매이지 않고 좋은 시면 조건 없이 지면을 할애했다. 창작 30주년을 맞이한 소감에 대해 묻자 강현국 발행인은 먼저 문인들에게 부족한 지면에 대한 미안함과 독자들과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준 손길에 대해 고마움을 전했다. 그리고. 《시와반시》를 30년간 이끌어오며 유의미한 역사를 썼다는 기쁨보다는, 현 문단에 대한 우려와 분노를 표했다.

“우후죽순 늘어난 문예지를 통해 수준 미달의 시인이 양산되는 게 현재 국내 문단의 가장 큰 문제라고 봅니다. 축구도 월드컵과 골목축구로 나눠지는 것처럼, 문학도 프로와 아마추어의 경계가 명확히 서야 합니다.”

어느 해 초여름, 후배시인들과 함께

 

창간 30주년 기념해 봄부터 ‘대구문학의 현장 점검’
엄격한 신인 발굴 기준 유지가 《시와반시》의 자산

《시와반시》는 창간 30주년을 기념해 올해 봄부터 ‘대구문학의 현장 점검’을 연재하고 있다. ‘대구의 동시’, ‘대구의 시조’에 이어 이번호 ‘대구의 시’ 편에서는 지역 시인 120여 명의 작품을 실었다. 창간 30주년 기념 기획으로 올해 발간된 4호는 모두 대구라는 지역성에 의미를 부여해 발간됐다. “대구거점 문학지로서 대구문학의 정체성과 현주소 등을 총정리하고자 했습니다. 부산에 비해 평론이 약한 대구에서 대구의 발전가능성을 모색하고, 대구 시를 중심으로 시의 역사, 시인 등의 작품을 살펴보려고 했습니다”

강 발행인은 “문학 권력이 수도권에 집중돼 있어 지역 시인들은 실력이 있어도 주목받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까워 창간한 게,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며 “처음엔 사명감으로 시작했지만, 지금은 잡지가 내 작품처럼 여겨져 즐거움도 함께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시와반시》는 등단의 문턱이 까다롭기로 소문난 문예지다. 매년 봄호와 가을호에 신인상을 발표하는데, 지난 30년 동안 등단한 시인이 단 68명에 불과하다. 산술적으로 보면 매년 2, 3명 정도를 데뷔시키는 셈이다. 심사위원들의 기준을 충족시킬만한 수작이 없다면 과감히 건너뛴 해도 많았다. 강 발행인은 신인 발굴을 위한 기준을 꿋꿋이 유지해온 것이 《시와반시》의 자산이라고 강조했다.

강 발행인은 “문예지에서는 대게 수필, 아동문학 등 여러 분야를 통해 등단자가 많았다면 《시와반시》에서는 시를 놓고만 뽑은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다”며 “문학의 수준을 높이고, 문단의 폐해를 막기 위해 오히려 소수로 엄정하게 신인들을 뽑으려고 노력한 결과다”고 자부했다.

“지난 30년간 신인들을 발굴하는데 엄격했던 것은 자부할 만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시와반시》를 통해 등단한 시인들 중에는 김개미, 유홍준, 신동옥 등 전국적으로 이름을 알린 시인도 많죠. 문예지에서는 대게 수필, 아동문학 등 여러 분야를 통해 등단자가 많았다면 《시와반시》에서는 시를 놓고만 뽑은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문학의 수준을 높이고, 문단의 폐해를 막기 위해 오히려 소수로 엄정하게 신인들을 뽑으려고 노력한 결과지요. 작품에 대한 엄정한 기준을 유지하는 게 문예지의 가치를 드높이는 겁니다.”

강현국 발행인은 “현재 문단의 가장 큰 문제는 등단을 돈벌이 수단으로 여기며, 신인들에게 무차별적으로 상을 주는 행태”라며 “문학은 계량화될 수 없기 때문에 객관적인 지표로 평가할 순 없지만, 최소한의 기준조차 세우지 못한다면 한국 문학계 전체에 독이 될 것이라 본다”고 지적했다. 이처럼 확고한 원칙을 지키면서 유지한 《시와반시》이기에 미래에 대한 걱정도 크다.

“감회가 뜻 깊지만 앞으로 놓인 문제에 걱정이 앞서죠. 후계자가 잘 없고, 디지털 시대에 종이책의 존립에 불안감이 큰 것도 사실입니다. 앞으로 폐간이 안 되고 쭉 이어갔으면 좋겠지만, 쉽지만은 않겠지요. 현재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지원과 후원을 통해 별다른 적자 없이 운영하고 있다고 해도 예전처럼 문예지가 귀한 시대가 아니기에 후계를 자처하는 사람이 없어요”

40대 초반 지역에서 뜻 깊은 시 계간지를 만들어야겠다는 작은 오기와 넘치는 열정에서 시와반시를 발행하기 시작한 강현국 주간은 30년간의 기나긴 역사에 대한 반가움보다도 앞으로의 걱정을 토로했지만 지역에서 30년을 뿌리내린 잡지인 만큼 잘 버텨내리라 생각한다.

대구문학관 기증식

30주년 맞아 《시와반시》 전 호 대구문학관 기증
이제는 창조적 변방성을 찾기 위해 노력

30주년을 맞이해 《시와반시》 전 호는 대구문학관에 기증, 비치되어 시민들의 열람이 가능하다. 강현국 대표는 “《시와반시》는 주로 모더니즘 시학의 정립과 주류에 함몰되지 않는 아웃사이더 정신을 추구한다”며 “도서 나눔 운동이 문학 나눔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노력을 아끼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마지막 인사 또한 독자들에게 전했다.

“30주년이 되기까지 《시와반시》는 독자시학과 좋은 시를 찾고, 빛나는 신인을 발굴하기 위해 꾸준하게 노력해왔지요. 이 잡지는 절대 나 혼자 꾸려나간 게 아니다. 좋은 글을 보내준 시인들과 독자들의 힘으로 만든 것이지요. 올 12월 중순쯤 송년문학제를 열어 고마움을 전하려고 합니다. 어려움이 있다면 이제는 종이책이 아닌 디지털 콘텐츠의 시대를 맞이한 것입니다. 그 길의 추동력을 우리는 변화되는 시간과 공간의 변화에서 창조적 변방성으로 찾으려고 합니다.”

시년교례회

“변화와 창조는 중심부가 아닌 변방에서 이루어진다”는 《시와반시》 강현국 발행인은 우리가 잘 아는 시인다. 그의 시사랑과 시에 대한 위의가 창간 30주년을 이끌어왔을 것이다. 1949년 경북 상주 출생인 그는 1976년 《현대문학》을 통해 시인으로 등단하였다. 1983년부터 2017년까지 대구교육대학교 교수 및 총장을 역임했으며. 1992년부터 현재까지 시전문 계간문예지 《시와반시》 발행인 겸 주간, 비영리 사단법인 녹색문화컨텐츠개발연구원(2011년-현재) 이사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시집 『노을이 쓰는 문장』, 시론집 『내 손발의 품삯이 얼마나 송구스럽던지』, 산문집 『고요의 남쪽』을 포함한 다수의 저서가 있다.

 


 

 

* 《쿨투라》 2022년 11월호(통권 101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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