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개와 인간의 시간
[소설] 개와 인간의 시간
  • 은현희(소설가)
  • 승인 2022.11.03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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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와 인간의 시간

은현희(소설가)

 

처음 마주친 개는 사람의 눈빛으로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마치 금세라도 말을 걸어올 것 같은 중년 남자의 시선이었다. 몸집이 유난히 큰 검은 개였는데 로트바일러 종이라고 했다. 리트리버나 핏불테리어, 도베르만, 시베리안 허스키 같은 대형견 종류는 익히 알고 있었지만 로트바일러는 검비가 처음이었다. ‘검비’라는 이름은 털이 까맣고 행동이 날렵하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고 했다.

해 질 무렵 어둑한 시간이어서 검비는 얼핏보면 맹수 같았다. 게다가 목줄도 하지 않은 상태였다. 한적한 공원의 산책로에서 갑자기 큰 개와 마주친 나는 그 자리에서 꼼짝없이 얼어붙었다. 견주가 나타나기 전까지 나는 한동안 개와 마주친 시선을 뗄 수 없었다. 낯설고 모호한 응시 속에서 상대가 전혀 공격할 뜻이 없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순하고 맑은 눈이었다. 개는 말을 걸고 싶어하는 눈빛이었다. ‘왜 그렇게 우울해 보이는지 물어봐도 될까요?’ 나는 마치 질문이라도 받은 양 대답했다. “내가 쓴 글이 너무 재미가 없어서.”

잠시 후 가쁜 숨을 내쉬며 견주로 보이는 한 여자가 나타났다. 사십대 중반쯤으로 보이는 여자의 얼굴은 낯이 익었다. 어둑한 땅거미 너머였지만 나는 그녀가 티브이에서 자주 보았던 탤런트라는 것을 금세 알아차렸다. 오래전에 발생한 인상적인 실화 사건을 극화해 보여주는 프로그램이었는데 거기서 피해자가 되어 살해 당하는 배역을 주로 맡았던 재연배우였다. 마르고 왜소한 체구에 가녀린 이목구비를 지닌 여자는 실물이 훨씬 아름다웠다. 기시감 때문이었는지 나도 모르게 그만 여자를 보고는 꾸벅 목례를 건네고 말았다. 여자가 계면쩍은 표정으로 피식 미소를 띠며 답례의 인사를 보내왔다. 그리고 잠시 후 짧은 대화를 마무리한 후 개의 목줄을 채우고 유유히 사라졌다.

그 여자를 다시 본 것은 한 달이 지난 후였다. 오래 준비했던 미니시리즈의 대본 작업을 마친 선배가 미국으로 떠난 다음 날이었다. 선배는 일 년 동안 미국의 루이지애나에 사는 아들의 집에 머물며 다음 작품을 구상하겠다고 했다. 그동안 내가 자신의 집에 머물면서 집 관리를 맡아주면 좋겠다고 했다. 내심 반가운 제안이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뛸 듯이 기뻤지만 나는 내색하지 않고 신중히 생각해보겠다고 대답했다. 마침 주식 투자로 전셋집 보증금까지 다 날린 데다 통장은 텅 비어 있었다. 하지만 가진 게 없을수록 가난한 티를 내면 안 된다는 것을 나는 그간의 경험을 통해 뼈저리게 깨우치고 있었다.

아무튼 선배가 떠나자 나는 정식으로 부자들만 산다는 양평의 전원주택 마을에서 집주인이 되었다. 단 일 년 동안이라는 조건이 붙는 자격이었지만 제한적으로나마 놀라운 신분 상승이었다. 거기에 선배는 친절하게도 자신이 몰던 2018년형 벤츠 E클래스 세단의 키까지 내 손에 쥐어주고 갔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제일 먼저 한 일이 마당에 주차된 검은 벤츠 승용차를 세차하는 일이었다. 마치 오래전부터 그 차의 주인이었던 것처럼 정성스럽게 차체를 닦고 또 닦았다. 이 집을 사서 입주한 후로 선배는 거의 이 년 동안이나 대본 작업에 시달리느라 이웃과 거의 단절을 하고 살아왔으므로 주인 행세를 하는 것 또한 어렵지 않은 일이라 생각되었다. 단 일 년 동안이지만 온전하게 그럴듯한 전원주택의 주인 노릇을 해보고 싶었다.

구석구석 코팅 물왁스를 뿌리고 있을 때였다. 극세사 타월로 꼼꼼이 닦아내기만 하면 되었다. 세차를 마치면 곧장 양평 IC로 나아가 드라이브를 할 계획이었다. 그때 차의 보닛으로 소리도 없이 긴 그림자 하나가 스르르 밀려왔다. 화들짝 놀라 돌아보니 한 달 전 어스름 속에서 보았던 그 여배우다. 밝은 날 보니 여자의 얼굴이 한층 더 젊고 화사해 보였다.

“그때 산책로에서 우리 만난 적 있죠?”

나는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차효진이에요. 바로 옆집에 살아요. 삼 개월 전에 이사왔어요.”
“저는 김선영이에요. 반가워요.”

서로 인사가 끝나자 나는 내심 궁금한 눈으로 이웃집의 마당으로 시선을 옮겼다. 여자가 바로 알아차리고 답했다.

“검비요? 남편과 아침 산책 나갔어요. 오늘 주말이잖아요.”

차효진은 콤플렉스 없는 가지런한 치아를 내보이며 환하게 웃었다. 그러더니 뜻밖의 제안을 해왔다.

“근처에 분위기 좋은 디저트 카페가 있어요. 저랑 이따가 브런치 하실래요? 저 실례가 안 된다면 나이를 물어도 될까요? 저는 올해 마흔다섯이에요.”

급작스럽게 바짝 다가오는 낯선 여자로 인해 귀찮아질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예감이 스쳤다. 나는 그녀와 동갑임에도 나도 모르게 두 살 높여서 마흔 일곱이라고 말해버렸다.

“아이, 좋아라! 전 외동이라 평소에 언니가 있었으면 했거든요. 앞으로 언니라고 부를게요. 선영 언니, 그럼 이따 봬요.”

거짓말을 하고 나니 마음이 불편했다.

집주인이 떠난, 비로소 온전히 내가 주인이 된 집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거실의 높은 천장에는 세 개의 날개를 갖고 있는 실링팬이 돌아가고 있었다. 흰 대리석 벽과 포인트 컬러로 사용된 블랙의 마감재들. 선배가 작업실로 사용하는 1층 서재는 가장 아늑한 방으로 넓은 ㄴ자형 맞춤 책상과 책꽂이가 있다. 겉으로 봐서는 특별할 게 없는 그 방의 비밀은 전면 벽의 커튼을 젖히면 통유리로 된 문이 나오는데 그곳을 지나면 바로 외부의 전망 좋은 데크로 이동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방의 면적보다 큰 테라스가 바깥에 존재하고 있었다. 자동 어닝 시공까지 되어 있어서 리모컨을 누르면 테라스에 아크릴 차양이 내려왔다. 그야말로 헤밍웨이가 무덤 속에서 벌떡 일어나 탄식할 환상적인 공간이 아닌가.

선배의 미니시리즈 〈그 여자〉 속에서 여주인공은 세 번을 죽었다 다시 극적으로 살아났다. 스토리만 보자면 막장 드라마도 그런 막장이 없다. 가문의 몰락을 주도한 연인의 배신 사실을 알고 권총 자살을 했는데 총알이 아슬아슬하게 여주인공의 뇌를 피해 가는 바람에 구사일생으로 살아남는가 하면 악녀로 설정된 아내에게 발각돼 생매장의 위기에 처했다가 갑작스런 하수인의 변심으로 목숨을 부지한다. 나중에는 성형수술로 완전히 딴사람이 된 여주인공이 DNA 감식에 의해 정체가 발각되지만 다른 복제 인간이 느닷없이 나타나 대신 죽음의 총탄을 맞는다. 마지막 반전에 대한 호불호가 갈렸지만 이야기의 충격적인 전개로 시청율은 그 계절 전 채널의 통산 최고점을 경신했다.

드라마의 내용 자체는 그닥 신선한 편이 아니었다. 다만 여주인공의 직업이 기존의 드라마에서 보던 일반적인 직업이 아닌 인터넷 포털 기업에 다니는 플랫폼 종사자였다는 것이 시청률을 끌어들인 성공 요인이었다. 나는 선배의 작업을 돕기 위해 국내 굴지의 인터넷 사업체들의 실무자들과 연락하며 자료를 수집하고 다녔다. 또한 그들의 콘텐츠 사업과 클라우드의 숨막히는 경쟁과 불꽃 튀는 정보전에 대해 탐문하고 다녔다. 관계자들은 협조를 아끼지 않았다. 드라마가 인기리에 방영 중이고 협찬사로 자막에 이름이 올라가고 있어서 브랜드의 광고 효과가 컸기 때문이다. 각 등장인물의 설정이 어느 클라우드 플랫폼을 암시하는 것인가 하는 것이 한때 네티즌의 사이의 화젯거리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 모든 아이디어의 제공자이며 자료수집을 한 내가 아무리 그 드라마의 흥행에 혁혁한 공을 세웠다 한들 그게 다 무슨 소용인가. 나는 그저 선배의 작가 사무실 필름2001에 소속된 일개 보조작가일 뿐이었다. 아직 일반 대중들이 알만한 정식 데뷔작이라 부를 이렇다 할 작품 한 편이 없는 무명 작가일 뿐이다. 화려한 수상 경력들도 단막극의 시대가 저물면서 모두 폐기처분 되었다. 그나마 비슷한 처지에 놓인 다른 작가들보다 여건이 나쁘지 않은 편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하며 버티는 중이었다.

선배는 이름이 김필룡이 아닌 사람으로 태어난 것만도 벌써 작가로서 반은 성공한 것이라면서 나를 다독였다.

“난 여성작가의 이름 중에 이보다 최악을 본 적이 없어.”

오랫동안 개명을 고민하던 선배는 작명소를 다녀온 후 얼굴색이 환하게 바뀌더니,

“용의 여의주를 모아 진주목걸이를 엮어도 될 팔자라는군!”

자기의 이름을 바꾸는 대신 ‘필름2001’이라는 작가 사무실을 법인 등록했다. 그후로 내내 작가 활동도 ‘필름2001’이라는 필명을 대신 사용하고 있었다. 필룡 선배는 ‘필름2001’이라는 이름은 김필룡 한 사람만의 것이 아니라고 했지만 저작권 문제에 있어서는 김필룡이었던 시절보다 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며 전문 변호사까지 고용해 관리했다. 필름2001의 보조작가 시스템을 거치면 여러모로 방송계에 진출하는 것이 수월했다. 하지만 이런 도제식 교육의 문제는 문하생과 스승과의 관계가 실제로는 고용주와 피고용주의 관계로 전락해버린다는 것이다. 그것도 합의된 불평등 계약을 지속하면서 카르텔의 침묵을 강요받는다. 그것이 이 세계의 보이지 않는 규칙이었다.

작업실에는 아직 퀘퀘한 체취가 가득 배여 있었다. 일을 시작하면 오랫동안 잘 씻지도 않고 자신의 책상에서만 식사를 하던 그녀였다. 이틀 걸러 하루 저녁은 폭식을 했고 밤을 꼬박 새며 글을 쓰느라 새벽까지 바나나와 우유 같은 간식만 먹었다. 그러다 지쳐서 잠이 들었다가 늦은 아침이 되어 일어나면 나는 죽을 쑤어서 갖다주거나 부드러운 순두부계란탕 같은 요리를 해서 책상 위에 조용히 올려두고 나오곤 했다. 오래 환기를 시켜두었는데도 아직 담배 냄새는 그대로였다. 나는 문을 닫았다. 휴대폰이 울린 것은 그때였다. 선호였다.

“아버지가 또 사고를 쳤어. 이번엔 움직이지 못하는 옆 침상 환자를 죽이려고 했다는데 믿어져?”
“무슨 소리야? 누가 누굴 죽여?”
“아버지가 같은 방을 사용하는 옴짝달싹 못하는 노인네의 얼굴에 베개를 덮어 씌워 질식사를 시키려 했다는 거야.”
“말이 돼? 우리 아버지가 그런 사람이야?”
“아니지. 하지만 케어포(노인장기요양 앱) 간병일지에 그렇게 기록해 놨어. 그리고 또 엊그제 기록에는……. 이건 차마 너무 어이가 없어서.”
“뭐라고 적혀 있는데?”
“간병인이 들어갔을 때 옆 환자의 수액주사 줄을 빼놓아서 바닥에 피가 역류하고 있었다고.”
“절대 그럴 리 없어.”
“그래서 말인데……. 아버지를 빨리 퇴소시켰으면 한대. 당장. 치매 증상이 너무 심각해서 만일 같은 방을 사용하는 환자에게 해꼬지라도 해서 사고가 나면, 요양원 측에서 심각한 보상 문제에 직면한다고.”
“하지만 당장 어디로?”
“알다시피 누나, 난 직업군인이야. 아버질 모시고 싶지만 방법이 없어. 하지만 살인자 아들이 될 순 없잖아. 진급도 해야 하고. 누나, 나 좀 살려주면 안 될까? 잠시면 돼. 유나 엄마한테 얘기해서 다른 요양원 알아볼 때까지만.”
“난…….”

나는 집도 없는 빈털터리다, 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차마 입 밖으로 내보낼 수 없었다. 그것은 마지막 자존심이었다. 아마 아버지도 정신이 잠시나마 돌아온다면 ‘난 윤리 선생이었다, 내가 그럴 리 있냐’고 소크라테스처럼 항변했을 것이다. 이럴 때 어머니라도 살아계셨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나는 눈앞이 다시 아뜩해졌다. 보나마나 뻔한 일이었다. 아버지는 다시 버림받은 것이다. 당신은 거동도 불편해서 거의 누워있다시피 했고 얼마 전 면회 때 살펴본 바로는 몸 곳곳에 욕창 증상까지 보였다. 거기다 만일 그런 일이 있다면 다른 환자와 방을 교체하면 될 일이었다. 몸무게가 40킬로그램 대인 피골상접한 힘없는 노인이다. 아무리 치매기가 심해서 남을 해치려 한 대도 상대가 자기를 방어할 능력만 있다면 얼마든 물리칠 수도 있는 일이다. 게다가 당신은 그럴만한 위인도 못 되었다. 본성이 착하고 여린 사람이다. 오랫동안 중학교에서 평교사로 재직하며 윤리와 도덕 과목을 가르쳤던 반듯하고 강직한 분이셨다. 다만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일이 있다면 배변 문제였다. 내가 정기적으로 구매해 보내드리고 있는 독한 혈압약과 당뇨약을 매일 복용하는 탓에 소변과 대변에서 심한 악취가 풍기는 데다 자주 기저귀를 갈아줘야 하는데 그것이 화근이었을 것이다. 코로나19로 인한 외국인 노동자들의 입국이 제한되자 요양원은 간병인 구인난에 허덕이고 있었다.

그러나 간병일지에 적힌 모든 기록들과 요양원의 주장이 사실일 수도 있었다. 아버지는 우리가 알던 예전의 모습 그대로였지만 치매가 찾아오고 난 이후의 아버지는 분명 어딘지 모르게 낯설었다. 매사에 신중하던 성격은 나사가 풀린 듯 느슨해져서 그때그때 기분과 본능에만 충실할 때가 많았다. 아버지는 이제 예측 불가능한 날씨만 계속되는 자기만의 계절을 살고 있었다.

나는 거실의 새하얀 소파와 리넨 커튼, 그리고 아일랜드 식탁 위에 놓여 있는 투명한 와인잔들을 바라보았다. 이것들의 평화가 깨지는 것을 상상할 수가 없었다. 아버지와 함께 이 공간에서 생활한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잠자리 문제부터 우선 해결해야 했다. 그리고 수시로 갈아채워야 하는 기저귀와 냄새 문제가 시급했다. 일단 집에 들인 후에는 이전과 다른 삶을 각오해야 한다.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왔다. 밖에서 사람들의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온 것은 그때였다. 한 성인 남자 목소리가 고성을 내지르고 있었다. 살그머니 거실 창문 너머로 밖을 내다보았다. 옆집 현관 쪽으로 사람들이 몰려와 있었다. 무슨 일이 생긴 게 분명했다.

밖으로 나와 길 위에 서성이는 동네 사람인 듯 보이는 중년 여자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거냐고 물었다. 나는 아침에 보았던 옆집 여자가 내심 걱정 되었다.

“개물림 사고가 났어요. 저 집 개가 할머니를 물었는데 지금 위독하시대나 봐요.”
“그럴 리가요. 순한 개던데…….”
“순하긴, 다들 무서워했는데. 우린 언제 터져도 한번 터질 줄 알았어요. 그렇게 큰개를 입마개도 안 하고 산책시키면 어떡해요.”

믿을 수 없었다. 맑고 순한 눈의 검비가 사람을 공격했다니. 잠시 후 현관문을 열고 효진의 남편인 듯한 제법 덩치가 큰 한 남자가 밖으로 나왔다. 옆에 사색이 돼 있는 효진이 죄인처럼 벌벌 떨며 서 있었다. 고성을 지르던 남자가 그들에게 바짝 다가가 말했다.

“그 개 당장 안락사 시키세요! 사람을 공격한 개는 죽여야 합니다. 우리 어머니가 지금 사경을 헤매고 있다고요!”
“네. 일단 죄송하고요. 우리 검비가 댁의 어머니를 놀라게 한 건 사실이지만 솔직히 급소를 문 것도 아니고 먼저 어르신이 놀라 비탈 쪽으로 넘어지시니까 도움을 주려고 하다 보니……. 어르신이 워낙 연로하셔서 그런 측면도 있고 이건 재판을 신청해서 다뤄볼 사안인 것 같습니다. 이렇게 소란을 피울 일은 아닌 것 같으니 그만 돌아가시지요.”
“아니,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내, 내가 어이가 없어 말이 다 안 나오네. 이 사람 지금 뭐라는 겁니까? 당신 개가 사람을 덮쳐서 물었어. 우리 어머니를 말이야.”

흥분한 남자는 급기야 주먹을 올려부칠 기세로 어깨를 들썩였다. 효진의 남편은 말을 마치자마자 거칠게 효진의 팔을 붙잡고 집 안으로 들어가 현관문을 쾅 닫아버렸다. 그 기세에 남자는 갑자기 다리에 힘이 풀렸는지 그 자리에서 무너지듯 주저앉았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이후 한동안 소란은 계속 되었다.

저녁이 되자 효진이 찾아왔다. 남편은 경찰서에 불려갔다고 했다. 효진은 어찌된 일인지 사시나무 떨듯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얼굴도 창백하고 안색이 좋지 않았다. 뭔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망설이는 기색이 역력했다. 나는 그녀를 거실로 안내했다. 티브이 화면에서 보던 연기자의 모습과 다르게 정돈되지 않은 효진의 모습은 마치 필로폰 같은 마약류를 투약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 정도로 불안정해 보였다. 나는 효진을 소파에 앉힌 후 따뜻한 우유 한 잔을 갖다 주었다. 유리컵을 말아쥔 두 손이 심하게 떨렸다.

“언니, 미안해요. 이, 이런 모습을 보여서. 실은 검비의 공격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예요. 전에 살던 곳에서도 종종 사람을 물었어요. 오늘처럼 노인을 물어서 크게 다치게 한 일도 있고, 어린아이를 죽일 뻔한 일도 있었어요. 로트바일러는 맹견猛犬이에요. 한번 공격하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어서 끝을 봐야 하죠. 검비는 위험해요. 그런데 남편은 자꾸 검비를 더 사나운 개로 키우고 있어요. 아침저녁으로 핏물이 흐르는 날고기를 주고, 살아있는 것을 사냥하도록 훈련시키죠. 남편은 정상이 아니에요. 한마디로 사이코에요.”

효진의 말이 끝나자마자 짐짓 구토가 치밀었다. 우유에서 비릿한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나는 효진에게 남편이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이냐고 물었다. 그녀의 대답은 의외였다.

“경찰이요. 강력계 형사.”

경찰서에 피의자로 불려간 경찰이 제대로 조사를 받고 나올 리가 없었다. 보나마나 그는 곧 무혐의로 풀려나 돌아올 것이다. 유난히 체격이 좋았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효진이 갑자기 옷소매를 들어올려 팔뚝에 선명하게 드러난 붉은 주사자국을 보여주었다.

“남편 짓이에요. 그 사람은 마약 거래도 서슴지 않는 부패한 경찰이라구요. 날 자신의 소유물로 생각해요. 자기를 배신하면 난 끝나는 거예요.”

효진이 돌아가고 난 후 한 시간쯤 지나서 옆집 현관의 센서등이 점멸하는 것을 보았다. 경찰관 남편이 귀가한 모양이다. 한 집에 선善과 악惡이 함께 산다. 그리고 그들이 키우는 짐승 한 마리. 심각한 상황인데도 효진의 직업 탓인지 모든 풍경이 낯설고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안개가 짙은 밤이었다. 기압의 영향 때문인지 대기가 점점 서늘해지고 있었다.

나는 2층 방으로 올라갔다. 천고가 높게 설계된 집은 2층 한쪽을 넓직한 주거용 방과 화장실로, 또 다른 한쪽은 루프탑 테라스로 사용하고 있었다. 나는 주로 2층에서 거주했는데 아버지를 모시고 오면 손님용 방을 내주고 나도 당분간 거실에서 생활을 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선배가 예정에 없던 귀국이라도 하는 날이면 문제가 심각해진다. 불안이 엄습해왔다.

자정쯤이 되어 나는 선배에게 전화를 했다. 뉴올리언스는 오전 10시쯤이므로 전화를 받기에 적당한 시간이었다. 마침 할인이 되는 제휴카드가 있어 좋은 조건으로 통화를 할 수 있었다.

“잘 도착했어요? 그토록 가고 싶어했던 버번 스트리트1에 이제 갈 수 있겠네요.”

선배는 평소 귀가 닳도록 가수 스팅Sting의 〈Moon Over Bourbon Street〉를 듣곤 했다. 아마도 낯선 거리 재즈카페에 대한 동경보다는 그 도시에서 은행원으로 살고 있는 아들에 대한 그리움 때문이었을 것이다.

“무슨 소리야? 아직 시차 적응도 되지 않아서 힘들어. 이곳은 다들 분주해. 나는 거들떠 보지도 않아. 음식도 입에 안 맞고.”
“간 지 얼마나 됐다고 투정이세요. 잠도 푹 주무시고 쉬엄쉬엄 관광도 하세요. 다음 작품 구상도 하시고요. 좋은 아이디어 생각나시면 알려주세요.”
“뉴올리언스 연쇄살인 사건 한번 조사해봐. 도끼 살인마 이야기.”
“괜한 얘길 꺼냈어요. 다음에 다시 연락드릴게요.”

선배의 머릿속에는 온통 드라마의 소재와 스토리텔링뿐이다. 본래 작가들은 타인이 만든 현실 세계가 아닌, 자신이 창조한 상상과 공상의 세계를 여행하길 원한다. 때로는 그 세계가 더 견고하게 의식을 지배할 때도 있다. 선배는 일상으로의 복귀가 쉽지 않아 보였다.

처음 앉아 보는 벤츠의 운전석은 안락했다. 시트와 등받이 기울기도 세심하게 조정이 가능하고 허리 쿠션도 편안하기 이를 데 없었다. 승차감부터 주행 속도까지 모든 것이 완벽했다. 차도에 나서니 다른 차들이 알아서 비켜주는 느낌이었다. 외제차를 타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약속한 시간에 요양원에 도착하니 아버지가 마당에 덩그러니 나와 짐 보따리와 함께 앉아 있었다. 간병인과 사무장이 서류에 몇 장의 사인을 받고 인계 절차를 마친 후 휴대폰으로 그것을 보내주었다. 몇 년 동안 머물렀던 공간인데 나와서 손을 흔들어주는 사람들도 작별인사를 건네는 이들도 없었다.

휠체어에 앉아있는 아버지는 난민 구호기관에서 한달에 만원의 온정을 호소할 때 보여주는 비쩍 마른 아프리카 아이처럼 뼈만 앙상하게 남아 있었다. 퀭한 눈에 볼은 푹 패이고 두 팔은 앙상한 나뭇가지를 걸쳐놓은 듯했다. 나는 아버지를 안아 올려 차의 뒷좌석에 태웠다. 간병인과 사무장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아버지는 앞뒤를 알 수 없는 말을 수시로 중얼거렸다. “부러진 안경 다리도 틀니도 모두 변기에 넣어버리고 내 어금니 금이빨도 훔쳐 갔어. 옥희네 소행이 분명해. 내가 두 눈으로 똑똑히 봤어.”

차의 시동을 걸었다. 나는 장난기 어린 목소리로 아버지에게 물었다.

“손님, 어디로 모실까요?”

그러자, 아버지의 눈이 반짝 빛났다.

“해남군 삼산면 320번지로 가십시다. 거기 담장 따라 동백꽃이 빨갛게 피어 찾기 쉬워요.”

가슴이 먹먹했다. 그곳은 마지막으로 아버지가 오랜 임기를 마치고 평교사로 퇴직을 한 학교 주소였다. 당신의 성실한 아내가 그 담장을 따라 걸어가 매일 따뜻한 점심 도시락을 가져다주기도 했던 곳이다. 이후로 한참 동안 나는 말 없이 운전만 했다. 양평 IC에 진입했을 즈음, 아버지에게 다시 말을 걸었다.

“내가 누구예요?”
“누구긴, 내 딸 선영이지. 여긴 네가 사는 곳이냐? 남편이랑 시댁 어르신들은 무고하시고?”
“결혼도 안 한 딸이 남편이 어딨어.”

아버지를 차에서 부축해 내리는데 효진이 현관에 나와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여느 때 같으면 다가와서 상냥하게 인사도 하고 알은 체도 할 텐데 멀찌감치 서서 보고만 있었다. 왠지 못마땅한 시선처럼 느껴져서 불편했다.

아버지는 워커(노인 보행보조기) 없이도 집 안에서 동선이 짧은 곳은 이곳저곳을 붙잡고 천천히 이동이 가능했다. 일단 치매 증상이 생기면 파킨슨병도 함께 발병하는데 행동이 느려지고 걷는 것부터 어려움이 생겼다. 악몽은 함께 살기 시작한 첫날부터 다시 시작되었다. 간병인 역할을 해본 적이 없는 나는 내가 아버지의 기저귀를 갈아줘야 한다는 것을 깜빡 잊고 있었다.

거실 곳곳에 벌써 누런 배설의 흔적들이 얼룩져 있었다. 난감한 것은 그것의 분포도가 꽤 광범위하다는 것이다. 온통 일감 천지였다. 아일랜드 탁자 위의 와인잔은 바닥에 떨어져 이미 산산조각이 나 있었다. 아버지의 바지는 묵직하게 처져서 반쯤 엉덩이에 걸쳐져 내려와 있었다. 2층에서 내려오는 나를 보더니 아버지가 생판 모르는 사람을 보듯 물었다.

“우리 어머니는 어디 가셨나요?”

마치 전쟁에 참전한 기분이었다. 이쯤 되고보면 무서울 것이 없었다.

“어머니는 마늘밭에 가셨어요. 이제 밥 먹으려면 빨리 씻어야죠.”

나는 다섯 살배기를 다루듯 아버지의 바지를 벗긴 후 목욕탕으로 데려갔다. 일단 몸부터 씻기고 기저귀를 채워놔야 안심이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막상 아무리 아버지라고 해도 처음 보는 늙은 남자의 성기는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차마 그쪽으로 내 손을 집어 넣을 용기가 나지 않았다. 참담한 순간이었다. 만일 그때 아버지가 해맑게 웃으며 ‘어머니’를 호출하지 않았다면 끝내 나는 고개를 돌리고 말았을 것이다.

“어머니, 만식이 고뿔 나요. 빨리 씻고 밥 주세요.”

문득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맞물리며 돌아가던 번뇌의 톱니바퀴가 딱 멈춰섰다. ‘지금 아버지의 시간은 거꾸로 흐르는 중이다.’ 그 절묘한 시간의 간극이 내게 다시 용기를 주었다.

아무런 저항도 없이 아버지는 순순히 몸을 맡겼다. 식사와 약을 챙겨 주고 집안 청소를 하는 데 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를 정도로 일이 많았다. 노동의 대부분은 배설물과의 전쟁을 치르는 것이었다. 인터넷 쇼핑몰에서 대량의 락스와 탈취제를 구매했다. 아버지는 당뇨가 있는 탓에 끊임없이 음식을 갈구했다. 우유 한 잔, 감자 한 개도 바로 배설물로 이어졌다. 기저귀를 갈고 또 갈아주어도 끝이 없었다. 잠시 정신이 돌아와 민망했는지 자기가 기저귀를 갈다가 벗어놓고 또 그것을 착용하는데 한동안 낑낑대다가 뭘 하는지 잊어버리고 바지도 입지 않은 채 거실을 돌아다니기도 했다. 여기저기에 누런 똥을 묻히고 소변을 줄줄 흘리고 기어 다녔다. 하필이면 세탁이 까다로운 소파나 리넨 커튼, 카페트, 실크 벽지에까지 손자국이 나 있었다.

스트레스는 그뿐이 아니었다. 아버지와 대화를 하다 보면 나까지 정신이 혼미해지는 느낌이었다. 마치 늘 같은 코스를 가는 마을버스를 탔는데 갑자기 낯선 동네로 버스가 이탈을 해버리는 혼란 같은 것이다. 보이지 않는 사람이 같은 공간 안에 있다고 우긴다거나, 감정기복이 심해져서 혼자 울고 있거나 버럭 화를 내기도 일쑤였다. 하루하루 시간이 지나며 나는 급속히 지쳐가고 있었다.

가장 큰 문제는 불면증이었다. 하루는 새벽에 거실에서 주무시던 아버지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집 안 어디에도 당신의 작은 몸뚱어리는 흔적조차 보이지 않았다. 나는 손전등을 들고 밖으로 나갔다. 그런데 어떻게 거기까지 걸어갔는지 옆집으로 이어지는 작은 이차선 도로 옆의 경계석에 아버지가 앉아 있었다. 놀랍게도 그 옆에는 목줄도 채워지지 않은 검비가 마치 아버지와 대화라도 나누듯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목을 세우고 비스듬히 누워 있었다. 은은한 달빛 아래 말도 통하지 않는 두 존재의 묘한 조화는 나를 사뭇 당황스럽게 했다. 아버지는 검비에게 우주 먼 곳 별자리들의 이름을 가르쳐주고 있었는지 모른다.

처음 해보는 중증 치매환자의 간병으로 매일 하루가 어떻게 지나는지도 모를 정도였다. 고단한 시간 탓에 달력을 넘기는 것조차 잊고 있을 때였다. 효진이 저녁 무렵 레드와인 한 병을 들고 찾아왔다.

“검비는 뒷마당에 있어요. 우리집과 언니네 집의 뒷마당이 연결돼 있는데 저녁에만 그곳에 검비를 풀어놔요. 뒤채로 나오지만 않으면 안전하니까 안심해도 돼요. 남편은 거기서 종종 검비의 훈련을 시켜요. 산짐승들을 풀어놓기도 하죠. 제정신이 아니에요. 내가 쓸모없어지면 날 검비의 먹잇감으로 던져놓을 수도 있는 사람이죠.”
“설마요. 어떻게 그런 생각까지.”
“그리곤 단순한 개물림 사고로 위장하겠죠. 요새 맹견에 물려 죽는 사람이 꽤 많아졌거든요. 오늘은 언니 스트레스도 풀어줄 겸 아껴뒀던 부르고뉴 와인 한 병 가져왔어요. 함께 마시고 싶어서요.”

나는 진심으로 효진의 상상력이 끔찍하다고 여겨졌다. 재연배우를 하면서 우울증에 시달리는 출연자들이 의외로 많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아마도 대역 배우라는 한계가 갖고 있는 정체성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효진이 가져온 레드와인의 맛은 그야말로 일품이었다. 부르고뉴 지역의 원조 진품이 확실했다. 몇 잔을 마시지도 않았는데 가보지도 않은 프랑스의 드넓은 포도밭이 눈앞에 펼쳐졌기 때문이다. 어쩌면 나는 그날 전혀 알지도 못하는 프랑스어를 멋대로 구사하며 그녀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넸는지도 모른다.

다음 날, 점심때는 잠시 아버지를 휠체어에 태우고 산책을 시켜드렸다. 전날 초저녁부터 아버지를 방치한 죄책감 때문이었다. 그날 밤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오랜만에 깊은 잠에 곯아떨어진 딸에 대한 배려였는지도 모른다. 마당에 나와 쏟아지는 햇빛 세례를 받자 아버지는 소리 내어 웃고 또 웃었다. 그러더니 불현듯 생각난 듯 당신이 오랫동안 땅끝마을에서 평교사로 재직했던 중학교의 교가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약주를 하지 않았던 당신은 평소에 노래 부르기를 좋아했었다. “남해바다 지켜준 유서 깊은 만호에……. 우리의 요람은 아름다운 곳…….” 두어 소절이 끝나자 힘에 부치는지 당신은 노래를 멈추고 가만히 은행잎이 떨어지는 허공을 말없이 올려다보았다.

한 달여의 시간이 지나는 동안에도 선호에게서는 별다른 연락이 없었다. 옆집은 며칠 동안 연달아 심한 부부 싸움을 하는 중이었다. 뭔가 날아가 깨지고 박살나는 소리가 쉴 새 없이 들렸다. 여자의 비명과 남자의 고함이 뒤섞이더니 어느 날부터는 개 짖는 소리까지 들렸다. 사람들은 결국 그 집에서 다시 총소리가 날 거라고 불길한 예언을 했다. 개물림 사고가 났을 때 마지막까지 남아있던 마을 사람들을 해산시킨 것은 총소리였다. 효진은 나중에 그것이 사냥용 총이라고 해명했지만 그날 이후로 사람들은 옆집 부부를 수상한 외지인 상대하듯 피했다.

효진은 두문불출 집안에만 있는 모양이었다. 그것은 검비도 마찬가지였다. 동네 사람들은 아침저녁으로 개를 산책시키던 부부가 갑자기 주말이 되어도 바깥 출입을 일절 하지 않자 그 이유를 몹시 궁금해했다. 남편이 아침에 출근을 한 후에도 도통 효진은 집 밖에 얼굴을 내밀지 않았다. 티브이 출연도 뜸해서 자주 등장하던 프로그램에서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신문 사회면에 효진이 출연하는 프로그램의 출연자가 마약 투약 혐의로 입건되었으나 초범인 점과 도주 우려가 없다는 점이 고려되어 조사 후 바로 석방되었다고 한다. 이로 인해 강력한 처벌을 해야 한다는 사회단체의 성명이 잇따르고 있었다. 방송국과 법원 앞에서 피켓 시위를 하는 사람들의 사진과 기사가 올라와 있었다.

가을이 깊어지면서 양평에는 찾아오는 사람들이 제법 많아졌다. 들꽃수목원, 두물머리 같은 곳은 관광객들로 북적였다. 지역 케이블 채널에서도 근교의 관광지나 위락시설 등을 홍보하는 방송이 자주 흘러나왔다. 아버지는 케이블 채널에서 방영되는 오후의 어린이 프로그램을 보고 있었다. 주로 미취학 아동을 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이었다. 멜빵바지에 야구모자를 쓴 우스꽝스런 분장의 진행자가 나와서 율동과 노래도 하고 복화술도 하면서 혼자 모노드라마를 펼치는 프로그램이었다. 아버지는 멍한 표정으로 앉아서 프로그램에 몰두하고 있었다. 나는 문득 인터넷 쇼핑몰에서 기저귀 주문하는 것을 잊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엑셀을 아무리 세게 밟아도 근처 대형마트까지 왕복 30분은 소요될 것이다. 아버지와 티브이 화면을 번갈아 바라보던 나는 마음에 결단을 내리고 살금살금 뒷걸음질 쳐 현관문을 빠져나왔다.

해가 점점 짧아지고 있어서 벌써 사위가 어둑어둑 했다. 그런데 웬일로 효진이 검비를 이끌고 산책을 나오고 있었다. 얼굴에 밝은 미소를 띠면서 효진이 다가왔다.

“언니, 어디 가세요? 아버님은 주무세요?”
“응, 아버지 늘상 사용하시는 기저귀가 떨어져서. 얼른 마트에 다녀오려고. 주문하는 걸 깜빡했어. 지금 티브이 보느라 정신없으셔. 검비 짖지 않게, 부탁해!”
“아, 거기 하나마트 말이죠? 그래도 꽤 걸릴 텐데…. 조심히 다녀오세요. 검비 걱정 마시고요.”

어쩌다 백미러를 보았는데 효진이 한참 동안이나 손을 흔들고 있었다. 알다가도 모를 여자였다. 어느 날은 끔찍하게 불행해서 시멘트 벽처럼 거칠었다가 다시 한없이 행복하고 부드러운, 지독하게 우울해서 얼음장처럼 차가웠다가도 갑자기 상냥한 천사로 돌변해 따뜻한 수프를 권하는 여자. 시시각각 다른 사람의 모습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이내 나는 비밀이 많은 불행한 여자일 뿐이라고 효진에 대한 생각을 수습했다.

내비게이션에서 표시한 위치보다 더 떨어진 곳에 상점이 있었다. 대형마트라고 하기에는 물건이 그닥 다양하게 구비돼 있지 않았다. 그럴 바에야 약국으로 가야 했던 게 아닌가 하는 뒤늦은 후회가 밀려왔다. 하지만 일 초라도 빨리 집으로 돌아가야 했기에 더 이상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급히 차를 몰아 상가 밀집 지역의 교차로를 빠져오는데 웬일로 교통 경찰이 차를 막아세웠다. 초저녁부터 음주단속을 하는 모양이다. 가을 관광객들 탓이었다. 앞 유리창을 내리자 경찰이 얼굴을 바짝 들이밀었다. 순간 그 낯익은 경찰관은 당황해 측정기를 바닥에 떨어트리더니 곧바로 유심히 차 안을 둘러보았다. 그리고는 진지하게 물었다.

“지금 혼자 나오신 겁니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익숙한 음성이었다. 왠지 모르게 목소리는 상대방을 단숨에 제압하는 힘이 있었다. 그런데 효진이 말했던 그는 강력계 형사라 하지 않았던가. 뭔가 이상함을 느낄 새도 없이 경찰이 순식간에 차의 조수석에 올라탔다.

“빨리 집으로 가세요! 아버지 초상 치르기 전에.”

집으로 돌아오는 15분간 경찰이 들려준 이야기는 그야말로 경악할 만한 엽기적인 내용 그 자체였다. 인간에 대한 신뢰이라는 것이 얼마나 눈송이처럼 가볍고 허무한 것인지, 천사와 악마는 언제든 서로 얼굴을 바꾸고 우리 곁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여실히 깨닫게 된 순간이었다.

“뒷문은 언제나 열어 놓습니까? 그러니까 뒷마당으로 통하는 문이요.”
“아니요. 하지만 뒷마당을 통해서 집에 들어가려고 하면 방법이 없지는 않을 거예요. 목욕탕 창문이 열려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아내가 그런 방법을 사용하지는 않을 겁니다. 현관 비밀번호를 알고 있을지도 모르죠. 처음 이 집으로 이사를 오자고 한 것도 작가님 주소를 알아내고 일부러 접근한 거니까요. 어떻게든 잘 보여서 제대로 된 드라마에 배역을 따보고 싶었던 거죠. 이 여잔 제정신이 아니예요. 자기밖에 몰라요. 작가님한테 잘 보여서 환심을 사려고 했는데 갑자기 아버님이 나타나 온통 생활을 장악해버리니까 자기가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다고 생각한 거죠. 그러니까 저더러 아버님을 제거해 달래요. 매일 밤 달달 볶아댔죠. 병든 노인네 하나 어떻게 못 하냐고.”

그날, 레드와인을 갖고 효진이 찾아왔던 저녁이 떠올랐다. 뒷마당에 항시 맹견을 풀어놓고 있다고 했다. 남편이 언제 자신을 사나운 개의 먹잇감으로 던져 놓을지 모른다고 했던가. 개물림 사고로 위장하면 아무도 모를 거라고. 그것은 자기의 이야기가 아니었을 것이다. 말하자면 내게 아버지를 처리하는 방법을 알려준 것이다. 내가 그날 들었던 것은 악마의 속삭임이 분명했다. 그날의 죽음 같은 잠도, 포도주에 탄 묘약의 효과 때문이었을까.

“검비에게도 위험한 먹이를 주었죠. 집에 사료가 있는데도 일부러 주지 않고 며칠을 쫄쫄 굶겼다가 먹잇감이 될 만한 살아있는 것들을 하나씩 넣어주는 거예요. 잠재된 야생성을 극대치까지 끌어올리려는 수작이었죠. 검비는 훈련이 잘된 충실한 경비견이었어요. 은퇴하신 전임 서장님이 키우던 개였죠. 누굴 물거나 다치게 하는 개가 아니었는데…….”
“효진 씨는 남편분이 강력계 형사라고 했어요. 팔에 주사 자국을 보여주면서 남편이 부패한 경찰관이라고 하더군요. 자신을 소유물로 생각한다고.”
“모두 새빨간 거짓말입니다. 저는 교통계에서만 십 년이 넘게 일했습니다. 그리고 그 여잔 약쟁이 맞고요. 얼마 전 검거 됐다가 구사일생으로 석방됐죠. 환상과 현실의 경계에서 오락가락하고 있습니다. 이상은 지나치게 높고 현실은 그것을 따라가지 못하는 거죠. 괴리가 심각한 여자입니다.”

나는 엑셀을 힘껏 밟았다. 속도계의 바늘이 220을 넘어섰다 .

“조심하세요. 이러다 도착하기 전에 우리가 먼저 황천 가겠습니다.”
“혹시 집에 총이 있나요? 동네 사람들 말이 총 얘기를 하던데요?”

경찰은 갑자기 말이 없었다. 잠시 후 그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네. 산탄총이 하나 있긴 합니다. 아내가 다룰 수 있습니다.”

나는 클랙션을 울리며 밤의 고속도로를 질주했다. 얼마 안 가 집에 도착했다. 사위는 서늘한 정적 속에 잠겨 있었다. 거실의 티브이도 그대로 켜져 있었고 어린이 프로그램도 계속되고 있었다. 아버지만 보이지 않았다. 바로 뒤뜰로 연결된 문을 열고 바깥으로 나갔다. 마당도 텅 비어 있었다.

“어디 계세요? 아버지?”

그때였다. 어디선가 탕! 하는 총소리가 들린 것은. 옆집이었다. 아주 가까운 곳 그러니까 내가 서있는 곳에서 20미터 쯤만 더 나아가면 되는 향나무 담장 너머의 옆집 마당에서 들려오는 소리였다. 나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그곳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나무담장 사이를 헤치고 흘깃 너머를 엿보았다. 멀리 효진이 총을 들고 서 있고 그 옆으로 아버지가 피 흘리는 검비의 목을 안고 땅바닥에 주저 앉아 있었다. 맞은 편에 경찰이 있었다. 부부는 대치 중이었다. 효진의 총구는 이제 아버지의 머리를 향하고 있었다. 지금이라도 112에 신고를 해야 하는 걸까? 대체 신고를 한다한들 이 상황에서 아버지를 어떻게 구할 수 있단 말인가. 스산한 바람이 불어오자 향나무 잎사귀의 예리한 침이 얼굴과 목을 마구 찔러댔다. 눈을 감았다. 순간 나는 귀를 의심했다. 밤공기를 뚫고 난데없이 아버지의 목소리가 엠프의 볼륨을 켠 듯 점점 크게 들려왔다. 주파수를 잘 못 맞춘 고장난 라디오처럼 어둠 너머 누아르극의 공포가 갑자기 로컬방송의 트로트 곡으로 바뀌었다. 그 긴박한 와중에 당신은 이미자의 가요 〈동백아가씨〉를 부르기 시작한 것이다.

‘헤일 수 없이 수 많은 밤을
내 가슴 도려내는 아픔에 겨워
얼마나 울었던가 동백 아가씨
그리움에 지쳐서 울다 지쳐서…….’

효진은 말없이 아버지를 내려다보았다. 모두가 놀라고 황당한 순간이었다. 하지만 구성진 아버지의 노랫가락을 멈추게 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한번 들으면 반드시 끝까지 듣게 되는, 한때 날리던 엘레지의 왕 김만식의 〈동백아가씨〉였기 때문이다. 노래의 효과는 놀라운 것이었다. 비록 그것을 부른 사람의 정신이 온전치 않더라도 음악이 지닌 힘은 분명 예상치 못한 기적을 불러온다. 그 순간 그녀는 치매인 아버지와 마약중독인 자신의 처지가 별반 다르지 않다고 여겼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갑자기 소주 한 잔이 생각난 것인지도. 도무지 아무리 재주를 넘어도 자신은 ‘오페라의 유령’은커녕 결국 ‘동백 아가씨’의 보조출연자 급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을 테니까. 모든 게 재미없어졌다는 듯 효진은 총을 바닥에 내동댕이치고 집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경찰관 남편이 아버지를 업고 우리 집 마당 쪽으로 건너왔다. 사건은 그렇게 종료됐다. 검비는 뒤뜰에서 감나무 아래 수목장을 치러 주었다. 가족장으로 조용히 치러서 동네 사람들은 검비가 죽었다는 사실을 몰랐다. 일주일 가량이 지나서 선호가 아버지를 새로운 요양원으로 모셔갔다.

그리고 그달 옆집 가족이 이사를 했다. 나는 이삿짐 차가 떠나고 부부와 마지막으로 작별하기 전 미니시리즈 〈그 여자〉의 작가 즉 ‘필름2001’은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고 그분은 지금 휴식을 위해 미국을 여행 중이라고 했다. 나는 보조작가이면서 단지 집을 지키는 관리인일 뿐 이라고. 그랬더니 효진이 무척 관심 있어 하는 표정으로 물었다 .

“미국, 어느 지역이라고 하셨어요?”

문득 무료한 김필룡 씨의 여행에 스릴과 서스펜스가 생긴다면 어떨까, 다음 작품 구상에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스쳤다. 그러면 이곳에서 잠시 반납되었던 나의 평화롭고 우아한 나날을 되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 여자’는 이제 공항으로 가서 다시 화려한 휴가의 새로운 노선을 개척할 것이다. 바로 아메리칸 에어라인이 미국 남부 항구도시로 그녀를 데려다 줄 테니까. 나는 상냥한 미소를 띠며 대답했다.

“뉴올리언스요. 연락처, 드릴까요?”

 


1 버번 스트리트(Bourbon Street) _ 미국 남부 루이지애나(Louisiana) 주의 뉴올리언스는 재즈의 고향으로 불린다. 그 중에서도 프렌치 쿼터의 중심가 버번 스트리트에는 유명한 재즈 클럽, 카페들이 모여 있었다.


은현희 1997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이 당선되어 등단했다. 출판계에서 기획편집자로 오래 일했으며 다종의 정기간행물 편집기획 및 뉴스 프로그램의 자막, 전기 집필 작가 등으로 활동했다. sgmoonhack@naver.com
 

 

* 《쿨투라》 2022년 11월호(통권 101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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