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월평] 〈자백〉, 진실과 정의에 관한 질문을 던지다
[영화 월평] 〈자백〉, 진실과 정의에 관한 질문을 던지다
  • 이은주(서울신문 기자)
  • 승인 2022.11.08 17:4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자백〉은 마지막까지 관객과 치열한 두뇌 싸움을 벌이는 서스펜스 스릴러 영화다. 예상을 뒤엎는 반전 카드를 활용해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하면서 마치 스무고개처럼 범인이 누구인지 끝까지 추리하게 만든다.

이 작품은 도입부부터 강력한 밀실 살인 사건으로 궁금증을 불러일으킨다. 전도 유망한 IT 사업가 유민호(소지섭 분)가 한 호텔방에서 둔기에 맞아 정신을 차려보니 옆에는 내연녀 김세희(나나 분)가 피를 흘리며 죽어있다. 하지만 누군가 호텔 내부로 침입한 흔적을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호텔 방문은 안에서 문을 걸어잠그는 걸쇠마저 걸려진 상황. 현장에서 발견된 유민호는 이 사건의 유일한 용의자로 지목된다. 유민호는 누명을 벗기 위해 승률 100%의 변호사 양신애(김윤진 분)를 찾아간다.

영화에는 이 사건과 얽힌 또하나의 사건이 등장한다. 불륜 관계에 있던 유민호와 김세희가 산길에서 교통사고를 내지만, 이를 계획적으로 은폐한다. 이 사건으로 인해 운전을 하던 한 청년이 실종되고 사고를 낸 김세희는 도망자 신분이 된다. 영화 〈자백〉은 이 두 가지 사건을 오가면서 스토리를 직조해 나간다.

세상에는 은폐된 채로 알려지지 않고 수면 아래로 가라앉은 수많은 진실이 존재한다. 사건을 숨기기 위해 했던 거짓말은 또다른 거짓을 낳기 마련이다. 속고 속이는 상황 속에서 유민호의 ‘자백’만이 사건의 실체를 밝힐 수 있는 유일한 단서다.

〈자백〉은 여러가지면에서 일본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영화 〈라쇼몽羅生門〉(1950)을 떠올리게 하는 영화다. 〈라쇼몽〉은 한 사무라이의 죽음을 둘러싼 네 명의 진술이 모두 엇갈리는 상황 속에 인간의 이기심과 욕망에 의해 진실이 얼마나 쉽게 왜곡될 수 있는 것인지를 보여준다. 이후 똑같은 사건이라도 관점의 차이에 따라 서로 해석이 달라지면서 본질을 다르게 인식하는 ‘라쇼몽 효과’라는 말까지 생겨났다.

〈자백〉에서도 각자 인물들의 입장에서 세 가지 이야기가 교차한다. 유민호는 억울한 누명을 쓴 피해자라고 주장하고, 변호사 양신애는 유민호의 진술에서 허점을 발견하고 이를 파고들어 강하게 압박한다. 유민호와 김세희를 쫓는 제3의 인물 한영석(최광일 분)이 이 사건을 바라보는 시각은 전혀 다르다.

이 작품은 유민호와 양신애의 대화에 따라 각자의 입장에서 사건이 재구성되면서 반전에 반전을 거듭한다. 사건이 재구성될 때마다 과연 무엇이 진실인지 관객들을 미궁 속에 빠뜨린다. 마치 ‘고도의 방탈출 게임 같다’는 김윤진의 표현처럼 밀실 살인사건으로 시작한 영화는 퍼즐의 한 조각을 맞추면 또다른 단계로 넘어간다. 조각들을 모아 퍼즐을 맞춰가면서 거대한 사건의 전모가 점점 실체를 드러낸다.

영화의 중반부에 접어들면서 관객은 유민호의 자백에 의문을 갖게된다. 누군가 자신을 살인자로 만들었다는 유민호의 주장에 균열이 생겨난다. 양신애는 그에게 “고통 없는 구원은 없다”고 압박하면서 진실을 이야기할 것을 종용하지만 변호사와 사건 의뢰인으로 만난 두 사람은 서로를 완벽하게 믿지 못한다.

인적이 드문 외딴 별장이라는 폐쇄된 공간에서 유민호와 양신애의 긴장간 넘치는 팽팽한 심리전은 이 영화의 가장 큰 관전 포인트 중 하나다. 숨 막히는 대화 중 플래시백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며 몰입도를 높인다. 두 사람의 날선 공방이 전개되면서 그 속에 숨겨진 사건의 반전은 관객의 허를 찌른다. 모든 증거가 유민호를 향하는 상황. 유민호의 결백을 입증하려고 했던 양신애는 충격적인 진실과 마주하게 된다.

〈자백〉은 2016년 전 세계적으로 흥행했던 스페인 영화 〈인비저블 게스트〉를 리메이크한 작품이다. 이듬해 국내에서 개봉한 이 영화는 ‘뒤통수를 치는 반전이 매력적’이라는 입소문을 타고 9만 5천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하며 깜짝 흥행했다. 특히 이탈리아와 인도 등의 다른 나라에서도 리메이크될 만큼 탄탄하고 치밀한 시나리오가 압권이다.

〈자백〉은 원작에서 검증된 시나리오의 이야기와 캐릭터는 그대로 살리고, 일부 장면에서 한국적 정서와 상황을 접목시켜 이질감을 없앴다. 연출을 맡은 윤종석 감독은 “원작 영화가 완성도가 높고 해외에서도 리메이크가 된 작품이라 부담이 컸지만, 결말은 물론 원작에서 보여주지 않았던 모습이 있다”고 말했다. 국내에서는 천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 〈신과 함께〉 시리즈와 〈광해, 왕이 된 남자〉를 제작한 리얼라이즈픽쳐스가 원작 판권을 사들여 시나리오 작업을 했다.

원동연 리얼라이즈픽쳐스 대표는 신선한 내러티브를 이 작품의 가장 큰 장점으로 꼽았다. 그는 “원작의 이야기가 신선한 것도 있지만, 감정적으로 흔히 말하는 신파 등 한국적 정서를 더하면, 인간의 근원적인 감정을 건드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리메이크를 결정했다”고 밝혔다. 실제로 원작에서는 범인을 밝히는데서 끝이 나지만 〈자백〉에서는 권선징악의 메시지를 더욱 부각시키고, 가족을 잃은 슬픔과 간절함 등 감정선을 강조했다.

영화는 밀실이나 호텔 등 한정된 공간에서 진행되지만 배우들의 팽팽한 연기 대결 구도를 강조해 집중도를 높이는 전략을 썼다. 윤종석 감독은 “같은 공간에서 제한된 인물이 등장하는 장면이 많아 자칫 단조롭고 답답해 보일 수도 있지만, 인물들의 아주 작은 움직임이나 표정이 큰 임팩트를 줄 수 있기 때문에 이에 집중했다”고 말했다.

때문에 그만큼 배우들의 연기와 호흡이 중요할 수 밖에 없다. 이 작품을 통해 처음 스릴러 장르에 도전한 배우 소지섭은 벼랑 끝에 내몰려 자신의 무죄를 입증하려는 유민호의 절박한 심리를 설득력 있게 소화해냈다. 그는 “(대본을) 덮을 때까지 긴장감을 놓을 수 없는 게 굉장히 매력적이었다”며 “유민호의 예민함을 표현하려다 보니 촬영 중 계속 악몽을 꿨다”고 회상했다.

다수의 스릴러 작품에 출연한 경험을 갖고 있는 배우 김윤진은 반전을 거듭하는 작품의 핵심적인 축을 이끌면서 극의 무게감을 더한다. 그는 “쫄깃쫄깃한 대본의 느낌을 잘 전달하고 싶은 욕심이 생겨서 끊임없이 고민하고 수도 없이 연습했다”면서 “밀실 안에서 육체적으로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지 않아서 좀 더 디테일하게 연기해야 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자백〉은 궁극적으로 진실에 관한 이야기다. 가짜 뉴스가 판치고 디지털 미디어가 확증 편향을 부추기는 사회 분위기 속에 누구나 자신의 입장에서 ‘진실’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이제 진실인지 파악하는 것조차 각자의 몫이 됐다. 영화 〈자백〉은 인간의 욕심과 이기심에 의해 진실이 얼마나 달라질 수 있는지, 진실과 정의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과연 어떤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봐야 할 것인가. 강한 반전과 함께 막을 내리는 영화는 관객들에게 선택에 관한 질문을 남긴다.

 


이은주 서울신문 기자 겸 유튜브 크리에이터. 연세대학교 불문과·동대학원 영상학 석사. 한국 방송대상 심사위원 역임. 유튜브 채널 〈은기자의 왜 떴을까TV〉 진행. 저서 『왜 떴을까: ‘K-크리에이티브’ 끌리는 것들의 비밀』.

 

 

* 《쿨투라》 2022년 11월호(통권 101호) *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