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월평] 드라마를 사랑하기 좋은 계절: 〈수리남〉, 〈작은 아씨들〉, 〈위기의 X〉, 〈개미가 타고 있어요〉
[드라마 월평] 드라마를 사랑하기 좋은 계절: 〈수리남〉, 〈작은 아씨들〉, 〈위기의 X〉, 〈개미가 타고 있어요〉
  • 김민정(드라마 평론가, 중앙대 교수)
  • 승인 2022.11.08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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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제공: 넷플릭스
사진 제공: 넷플릭스

코로나 팬데믹 이후 드라마 장르를 향한 사랑 고백이 여기저기 넘쳐나고 있다. 올해 에미상을 수상한 〈오징어 게임〉을 굳이 언급하지 않더라도 K-드라마 장르를 향한 국내외 관심과 애정은 가히 상상 이상이다. 이제 한국 드라마의 인기를 이야기할 때 한국에서 시청률이 어느 정도 나왔다는 말로는 부족하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였을까. 작년부터 부산국제영화제에 시리즈물을 상영하는 ‘온스크린’ 섹션이 신설되어 운영되고 있다. 올해 화제작 중 하나는 일본 장르영화의 대가 미이케 타카시가 연출한 디즈니 플러스 오리지널 시리즈 〈커넥트〉다. 영화제에서 왜 드라마를? 하고 의아해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OTT 영화도 아닌 OTT 드라마가 영화제에 맞는 건가’와 같은 복잡미묘한 문제는 잠시 미루어두자. 전 지구적으로 급부상한 드라마의 위상을 지금 이 순간 마음껏 즐겨보자. IMF 때 박찬호나 박세리가 그랬듯, 코로나 시대에는 K-드라마가 많은 사람에게 희망과 위안을 주고 있으니까 말이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수리남〉

올해 가을, 드라마를 향한 사랑 고백의 시작은 〈수리남〉이었다. 드라마 〈수리남〉은 남미의 작은 나라 수리남을 배경으로 한국인 마약상과 그를 잡기 위해 국정원 작전에 투입된 민간인 사업가의 이야기를 다룬 6부작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다. 영화 〈범죄와의 전쟁〉 〈공작〉으로 유명한 윤종빈 영화감독의 첫 드라마 연출작으로 또 한편의 영화감독이 만든 드라마로 관심을 모았다. 드라마를 향한 영화의 구애는 언제까지 계속될 것인가. 오호.

드라마 〈수리남〉은 넷플릭스에 공개 후 입소문을 타며 세계적인 성공 신화에 올라섰다. 넷플릭스 비영어권 부문 1위를 차지할 만큼 국내외에서 많은 사랑을 받았다. 미국 대중문화 전문 매체인 디사이더는 “‘오징어게임’ 이후 최고의 한국드라마”라 극찬을 했고, 미국의 평점 사이트 로튼토마토에서는 시청자 평점 93%이란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전 세계를 사로잡은 드라마 〈수리남〉의 매력은 과연 무엇일까. ‘이것이 진정 실화를 토대로 한 드라마인가?’ 하고 믿기 힘들 정도로 스토리가 굉장히 스펙타클하다. 대부분 실화 소재의 드라마와 영화를 보면 실화를 조금 더 극적으로 만들기 마련이다. 드라마니까. 영화니까. 그런데, 〈수리남〉은 실제 이야기가 너무 극적이라서 리얼리티가 떨어져 보일까 봐 오히려 극성을 줄였다고 한다. 배우 하정우가 연기한 강인구, 그러니까 국정원과 비밀작전을 수행한 일반인 K는 실제로 마약왕 조봉행 조직에 잠입하기 위해 차이나타운에 들어가서 중국 갱들과 일부러 싸우기도 했다는데… 아, 당신은 드라마 주인공이 되기 위해 태어난 사람!

그 외에도 〈수리남〉에는 하정우·황정민·박해수·유연석 등 초호화 캐스팅으로 많은 관심을 끈 만큼 매력적인 캐릭터가 많이 나온다. 그중 나의 원픽은 변기태다. 나만 그렇게 생각한 것이 아니었는지 변기태, 그리고 변기태를 연기한 배우 조우진에 대한 호평이 온라인에 넘쳐난다. ‘신의 한 수’라는 극찬과 함께. 변기태를 주인공으로 한 스핀오프 고고!

tvN 드라마 〈작은 아씨들〉

이번에는 스타 영화감독이 아니라 스타 시나리오 작가다. 영화 〈헤어질 결심〉과 〈친절한 금자씨〉를 집필한 시나리오 작가로 유명한 그분. 〈작은 아씨들〉은 방영되기 전부터 정서경 작가의 작품이라는 것 덕분에 주목을 받았다. 영화 〈헤어질 결심〉이 칸영화제에서 수상을 하고 나서 한국에서 영화 대본집 열풍이 불었다. 그만큼 대본이 매력적이란 말인데 그 대본의 공동 저자가 정서경 바로 ‘그분’이다. 〈작은 아씨들〉은 tvN 주말극이지만 넷플릭스에 업로드된 덕분에 방영 내내 해외 반응도 뜨거웠다. 넷플리스 TV 부문 TOP10에 들었다나 뭐라나.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일본에서 1위를 기록했다나 뭐라나.

드라마 〈작은 아씨들〉은 미국 작가 루이자 메이 올컷이 쓴 소설 『작은 아씨들』의 주요 테마인 ‘가난’을 2022년 대한민국으로 옮겨온다. 소설에서는 네 자매가 나오지만 드라마에서는 3명이다. 너무 가난해서 넷째가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해 태어나자마자 죽었기 때문이다. 전체적으로 드라마 분위기가 대단히 무겁다. 극 중 등장인물들이 하나둘씩 죽어가는데, 물론 모두 살해당하는 것이고, 모든 죽음은 돈과 가난, 그리고 욕망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 정서경 작가의 말에 따르면 폭력이 없는 이야기는 쓰고 싶지 않았다고 한다. “행복만 가득한 이야기는 우리를 변화시키지 않으니까요.”

사진 제공: tvN

영화 〈헤어질 결심〉처럼 드라마에도 인상적인 대사가 많다. 극중 방송국 기자로 일하는 작은 언니 인경한테 직장 선배가 묻는다. “가난하게 컸어?” 인경은 이게 무슨 말인가 하고 깜짝 놀라서 쳐다보니까 선배가 답한다. “하도 잘 참아서.” 음. 이 외에도 강렬한 여운을 남기는 대사들이 구석구석 포진되어 있다. “가난은 겨울옷으로 티가 나요.”가 대표적. 이 한 문장으로 가난이 무엇인지 이미지적으로 확 와닿는다. 추운 겨울도 아닌데 몸에 소름이 돋는다랄까.

참고로 정서경 작가의 드라마 데뷔작은 2018년도 드라마 〈마더〉다. 동명의 일본 드라마를 리메이크한 작품인데 방영 당시 높은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드라마평론가이자 드라마애호가 김민정의 인생 드라마 목록에 상위 랭크된 작품이기도 하다. 개인적으로 〈작은 아씨들〉보다 훨씬 더 애정한다. 안 보신 분들에게 추천, 아니 강권한다. (귀요미 시절 배우 손석구를 볼 수 있다.)

사진 제공: 웨이브
사진 제공: 웨이브

웨이브 오리지널 시리즈 〈위기의 X〉

이번에는 원플러스원이다. 영화에 ‘예능’이 하나 더 붙었다. 드라마의 사랑을 갈구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았던가. 〈위기의 X〉는 영화 〈탐정: 더 비기닝〉의 김정훈 영화감독이 연출을 맡고, 영화 〈탐정: 더 비기닝〉에서 코믹 연기를 선보인 배우 권상우가 출연한다. 그리고 코미디 예능 〈SNL 코리아〉 시리즈 곽경윤 작가가 대본을 집필했다. 모든 드라마가 그렇지만 제작진의 이력을 보면 드라마를 직접 보지 않아도 어떤 스타일일지 느낌이 딱 온다. 참 재밌다.

드라마 〈위기의 X〉는 희망퇴직, 주식떡락, 집값폭락 등 인생 최악의 3종 세트 비극을 맞은 중년 남자가 인생 반등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야기를 코믹하게 다룬다. 배우 권상우가 연기하는 대기업 차장 ‘아저씨’는 수려한 외모와 좋은 학벌, 안정된 직장, 다정한 아내, 성공의 트로피 외제차까지 남부러울 게 없는 남자다. 그렇게 엘리트 인생이라 자부했건만 희망퇴직 이후에 온갖 불행이 도미노게임처럼 그를 찾아온다. 그래서 있는 돈 없는 돈 다 모아 주식을 했는데... 딱 느낌이 오지 않는가. 내려간다. 쭉쭉. 사람의 자존감도, 남성의 자신감도 같이 쭉쭉 내려간다.

원래 슬플 때 웃는 자가 진정한 승자다. 〈위기의 X〉의 매력은 이렇게 힘들어도 되나 싶을 정도로 고된 삶을 사는 한 중년 남자의 인생을 굉장히 유머러스하게 다룬다는 점이다. ‘웃으면 복이 와요’ 2022년 버전이랄까. 삶 자체가 고통인 사람들에게 잠시나마 현실을 잊고 웃을 수 있는 삶의 빈틈을 주는 것, 그게 바로 드라마의 시대적 소명이 아닐까 싶다. 그 어려운 일을 〈위기의 X〉가 2022년 가을 우리에게 해준다. 권상우가 이렇게 웃길 줄이야. 오.

사진 제공: 티빙

티빙 오리지널 시리즈 〈개미가 타고 있어요〉

한때 김은숙 작가와 함께 일했던 보조 작가들이 대거 메인 작가로서 드라마를 선보이며 화제를 모았다. 〈어느날 우리집으로 멸망이 들어왔다〉의 임메아리 작가와 〈스물다섯 스물하나〉의 권도은 작가 등등 ‘김은숙 키즈’라고 불리는 작가군단. 하지만 최근 주목받는 작가들은 출신이 좀 다르다. 바로 〈SNL 코리아〉다. 〈개미가 타고 있어요〉도 ‘SNL 코리아’ 출신 윤수민 작가가 집필했다. 〈SNL 코리아〉 시즌 4부터 6까지 세 시즌을 함께하며 쌓은 코미디 내공이 어마어마한 작가다. 사람 웃기는 걸 특장점으로 삼은 작가들이 대거 드라마로 옮겨와 코미디 장르물을 만들고 있는데, 적극 환영한다. 오, 웰컴!

윤수민 작가는 2020년 tvN 드라마 〈산후조리원〉 대본 집필에도 참여했다. 한국 드라마 역사에 출산과 육아 현실을 이렇게 사실적으로 다룬 작품은 없었다. 근데 그 리얼함이 불편하고 불쾌한 것이 아니라 굉장히 유쾌하고 재미있다. 극 중 아기 낳는 5단계 과정을 보고 혼자 엄청나게 웃었다. 그리고 결심했다. 나는 절대로 아기를 낳지 않으리라. 모순된 나의 감상만큼이나 리얼하고 재밌다. 〈개미가 타고 있어요〉와 비교하면 〈산후조리원〉이 조금 ‘많이’ 재밌긴 하다.

 

 


김민정 중앙대 문예창작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연둣빛 캠퍼스물과 회색빛 오피스물 사이를 분주히 오가고 있다. 언젠가는 내 인생의 장르가 판타지로맨스코미디홈드라마가 될 거라고 굳게 믿는다. 저서로 드라마 캐릭터 비평집 『드라마에 내 얼굴이 있다』 드라마 에세이 『언니가 있다는 건 좀 부러운 걸』 드라마 비평집 『당신의 밤을 위한 드라마사용법』 드라마 이론서 『당신의 삶은 어떤 드라마인가요』 등이 있다.

 

* 《쿨투라》 2022년 11월호(통권 101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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