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문화비평] 우리의 선택적 분노
[청년문화비평] 우리의 선택적 분노
  • 윤인혁(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4년 재학 한국문화콘텐츠비평협회 위원)
  • 승인 2022.11.08 18: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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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혐오와 분노 속에서 살아간다. 김여사, ○○충, ○○조무사, 짱개, 흑형 등 차별과 무지가 치덕거리는 단어들이 우리의 일상에 파고들었다. 대중문화나 문화산업을 소비하는 방법 역시 그러한 약자나 특정 집단을 향한 배제나 혐오, 분노로 점철되어 있다. 지난 9월 10일 공개된 디즈니의 실사영화 〈인어공주〉에 대한 반응이 대표적이다. 대부분 디즈니 애니메이션 〈인어공주〉의 ‘아리엘’을 떠올리면 원작파괴, 과도한 정치적 올바름 등을 공격거리로 삼고 있다. 하지만 같은 관점에서 사람들은 다른 작품의 미스캐스팅과 원작 파괴에도 이렇게 분노했었는가?

작년에 개봉한 디즈니의 MCU 〈이터널스〉는 배우 마동석을 캐스팅하여 눈길을 끌었다. 마동석이 맡은 역할은 ‘길가메시’이며, 메소포타미아 신화 속 동명 인물에서 모티브를 얻었다. 마블 코믹스 원작인 〈이터널스〉에서 ‘길가메시’는 백인이다. 그러나 이러한 ‘원작파괴’에 우리 국민들의 반응은 어땠나. 남초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근육질 몸매를 가진 마동석이 초인적인 힘을 가진 ‘길가메시’와 어울린다, MCU에 캐스팅되어서 자랑스럽다는 긍정이 줄을 이었다. 그밖에도 영화 〈닥터 스트레인지〉 ‘에이션트 원’의 화이트워싱 침묵, MCU 〈토르〉 시리즈의 헤임달 역할에 흑인이 캐스팅된 것에도 선택적인 분노를 보였다.

물론 어려서부터 환상과 희망을 품어준 〈인어공주〉와 원작이 덜 유명한 〈이터널스〉가 우리에게 지닌 의미가 다르다. 그럼에도 세상은 그 이전보다 훨씬 다원화 됐다. 디즈니의 OTT ‘디즈니+’는 여기에 맞춰 고전작품의 서두에 인종차별 등을 반성하는 문구를 삽입하고 “건설적 대화”를 통해 “포용적인 미래”로 나아가자고 말하고 있다.

디즈니 애니메이션 〈공주와 개구리〉의 주인공 ‘티아나’가 처음이자 마지막 흑인 공주였다. 2020년 기준 미국의 흑인 비율은 약 12%, 10명 중 한 명이 흑인인데 디즈니의 수많은 공주 가운데 공주 딱 한 명만 흑인이란 말이다. SBS의 유튜브 채널 ‘스브스뉴스’는 〈인어공주〉의 예고편을 본 흑인 아이들의 반응을 담았다. 얼굴이 어둡고 곱슬머리의 인어공주. 그것은 우리의 혐오·분노와는 상관없이 오랫동안 입으로 떠들던 ‘기회의 평등’을 실제로 보여주고 있었다.

 


 

* 《쿨투라》 2022년 11월호(통권 101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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