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리뷰] 영화와 시와 비평의 크로스오버, 그 횡단과 융합의 실험적 시도: 이찬 문화비평집 『신성한 잉여』
[북리뷰] 영화와 시와 비평의 크로스오버, 그 횡단과 융합의 실험적 시도: 이찬 문화비평집 『신성한 잉여』
  • 이정훈(본지 객원기자)
  • 승인 2022.11.08 18: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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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스오버와 다른 미래의 예감”을 노래한 이찬 교수의 첫 문화비평집 『신성한 잉여』가 도서출판 작가에서 출간되었다. 다양한 철학적 사유와 예술 이미지의 횡단과 융합을 통해 새로운 글쓰기 스타일을 실험하고 있는 저자는 임화의 『작가와 문학과 잉여의 세계』에서 처음 등장한 “신성한 잉여”를 이번 문화비평집의 제목으로 삼았다. 이렇게 제목을 따온 이유를 “1935년 8월 카프 해체 이후 한 치열한 비평적 영혼이 내딛어간 사유의 진통과 고뇌, 그리고 ‘다른 미래’를 향한 역사의 잠재력을 끝내 포기할 수 없었던 진보주의자의 필사적인 모색이 휘감겨 있었기 때문”이라고 밝힌다. 더불어 “비평은 창작과 더불어 한가지로 가치 있는 창조적 예술이며, 작품의 단순한 판단자가 아닌 산 증거다.”라는 문장에서 이 책은 움텄을뿐더러, ‘숭고’에 가까운 ‘비극적 환희’와 더불어 어떤 가슴 벅찬 미래를 예감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임화의 “신성한 잉여”란 기성의 현실 체계를 공고하게 구축하고 있는 안정성의 질서를 벗어나는 쓸모없는 것이 아니라 그것의 불완전성과 역사적 한계를 드러내면서 새롭게 나타난 ‘여분의 요소’, 곧 다른 미래로 도래하게 될 ‘돌발 상태’를 가리킨다는 점에서, 프랑스의 철학자 알랭 바디우가 말하는 ‘공백으로서의 진리-사건’에 육박하는 사유의 공분모를 거느리고 있는 것이 틀림없기 때문이리라
- 「책머리에」, 6쪽

임화의 “신성한 잉여”가 결국 “창조적 비평”이라는 비평 담론의 그물코에서 비롯하는 작은 무늬이듯, 그것을 제목으로 삼은 이 책의 욕망 역시 영화와 시와 비평의 크로스오버, 그 횡단과 융합의 실험적 시도가 불러일으킬 수 있을 감응 효과의 최대치를 겨냥한다. 즉임화의 “신성한 잉여’는 김수영의 예술론을 집약하고있는 “미학적 사상”의 가치를 새롭게 발견하도록 강제했으며, 나아가 21세기 벽두의 한국문학을 화려한 ‘카오스모스’의 세계로 인도했던 “미래파”와 “정치시”에 대해서도 좀 더 근본적인 원리론原理論의 차원에서 숙고하게 했으며, ‘역사적 패러다임의 교체’라는 말로 운위되는 미셸 푸코의 ‘에피스테메’ 사유를 오랫동안 되짚어보게 한다.

중반으로 가는 지금-여기, 세계 전체를 움직이는 혁신의 벡터를 집약하고 있는 언표는 결국 ‘메타버스’와 ‘제4차산업혁명’이다. 이 두 가지 언표는 디지털 혁명에 따른 원격감응의 증폭 현상과 더불어 근·현대 자본주의 세계체제의 중핵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었던, 이른바 ‘포드 시스템’의 분업적 대량생산 방식이나 일반화된 사회분과 체제의 해체-재구성이 필연적인 미래일 수밖에 없단 사실을 암시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기성 예술 장르로서 이미 안정성의 장을 공고하게 구축하고 있는, 영화와 시와 비평이라는 서로 다른 영토들을 횡단하고 융합하려는 ‘크로스오버 기획’이 생성과 창조와 변이의 분기선들을 촉발할 수 있는, 그야말로 ‘감응의 빛살’을 내뿜을 수 있는가에 있기 때문일 것이다.

“박사장 가족”과 “기택” 가족이 맺는 상호 관계를 자본과 임노동의 교환관계나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으로 얼룩진 인정투쟁의 관계로만 환원하지 않는 자리에서 확보된다. 그것은 또한 두 가족을 더불어 존재하고 상호 공생할 수밖에 없는 관계, 즉 동아시아 사상사에서 오랫동안 대대對待라는 말로 일컬어져 온 상호의존성, 또는 상보성complementarity의 관계로 바라보도록 강제한다. “냄새”라는 미장센이 상징하는 것처럼, 모든 존재는 제 바탕에 사회체제의 상징적 질서를 넘어서 상호 공생할 수밖에 없는 의존성을 지니고 있을 뿐만 아니라, 자본과 임노동의 교환관계를 넘어서는 상호 의존적인 대순환의 관계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또한 〈기생충〉이 “냄새”와 “모르스부호”를 통해 암시적 문법으로 강조하려 한 것은 결국 부자와 빈자, 자본과 임노동, 상류층과 하류층이 맺을 수 밖에 없는 상호의존성의 필연적 구조이며, 양자의 계급투쟁과 적대감을 넘어설 수 있는 공생의 사유이자 공존의 윤리학이기 때문이다.
- 「우리의 비애, 우리만의 비애」 중에서, 본문 38-39쪽

이 책의 앞부분에 수록된 「우리의 비애, 우리만의 비애」, 또는 「“긍지의 날”, 자존의 빛과 그늘」 같은 글에서 봉준호의 영화와 김수영의 시, 왕가위의 영화와 김종삼, 김지하, 김수영의 시와 김현의 비평 텍스트를 한자리로 불러들여 상호 공명의 암시적 글쓰기로 갈피 지었던 까닭 역시, 2019년 늦봄 저자에게 불현듯 휘날려 온 ‘동·서 사유의 크로스오버’에 대한 열망에서 비롯되었다. 『주역』으로 시작된 저자의 동아시아 고전 공부는 자사의 『중용』과 노자의 『도덕경』에 천착하게 했으며, 불교 공부로도 그 관심 범주를 확장케 했다. 이른바 ‘장르 크로스오버’라는 또 다른 모험적 시도를 감행하도록 추동한 것도 이와 같다 .

200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문학평론가로 등단한 저자는 『현대 한국문학의 지도와 성좌들』 『20세기 후반 한국 현대시론의 계보』 『김동리 문학의 반근대주의』 『한국 현대시론의 담론과 계보학』 등의 저서를 출간했으며, 문학평론집 『헤르메스의 문장들』 『시/몸의 향연』 『감응의 빛살』을 출간하며 왕성한 비평 활동을 해왔다. 제7회 김달진문학상 젊은평론가상을 수상했으며, 영화와 시와 비평이 더불어 감응할 수 있는 크로스오버 공간을 모색하고 있다. 이찬 교수의 문화비평집 『신성한 잉여』가 ‘다른 미래를 위하여’라는 스승의 말씀처럼, 우리 모두의 삶과 미래를 바꿀 수 있는 모험의 용기를 북돋우면서 저 ‘감응의 빛살’을 오랫동안 은은하게 비출 수 있기를 소망한다.

 


 

 

* 《쿨투라》 2022년 11월호(통권 101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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