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 에세이] 박은용의 굴곡진 삶과 예술
[갤러리 에세이] 박은용의 굴곡진 삶과 예술
  • 서종택(소설가, 고려대 명예교수)
  • 승인 2019.03.27 10:4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지금 광주에서는 10년 전에 스스로 세상과 결별했던 한 화가의 추모전이 열리고 있다. 광주시립미술관의 「석현 박은용-검은 고독 푸른 영혼」전. 지난해 12월 6일부터 2월 10일까지의 전시에 이어 다시 3월 10일까지 연장 전시로 이어지고 있다.

 박은용(1944-2008)은 남종화의 본향인 진도에서 출생, 일찍이 독창적인 적묵법과 세련된 구도로 화면을 가득 채우는 기법을 선보이며 화단을 압도할 발군으로 인정받았다. 가령 첫 개인전(1983)에서의 「청옥동 풍경」이나 「어머니의 땅」시리즈나 일련의 「농가의 풍경」들은 단연 한국 동양화의 전통과 창조의 두 모습을 함께 보여준 사례로 꼽힌다. 붓에 먹물을 스치듯 지나가는 청전의 방식이나 밭이나 산, 땅을 묘사할 때 점으로 찍어대는 소정의 방식을 혼합하여 먹물의 농담에 따라 층을 쌓아가는 자신만의 독특한 방식의 묘사법을 선보여 관람객을 놀라게 했다. 산천풍경을 펼쳐보이는 청전의 사실성과 산 너머로 내려다보는 소정의 산수풍경을 융합한 기법은 서양화적 발상과 사실주의적 이념이 결합된 박은용만의 미적 성취로 지적되고 있다(이일영,「천 재화가 석현 박은용과 잃어버린 꿈」). 요컨대 안개처럼 아슴프레한 산수풍경이나 서정성 넘치는 들판의 모습을 보다 구체적인 토지의 모습, 우리가 깃들어야 할 삶의 품으로 현재화하였다는 점에서 선배 작가들과의 차이를 드러내준 조형미였다. 필법이나 이념 모두에서 기왕의 동양화의 관습을 벗어난 것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성취에도 불구하고 그의 일상적 삶은 수차례의 정신병원 수감 치료와 극도의 가난과 병고로 이어진다. 박은용의 굴곡진 삶은 그의 가족사의 참극과 동기적 관련을 맺고 있었다. 일곱살 유년에게 부모 형제가 위해 되는 참극을 현장에서 목도케한 전쟁이 있었고, 돈 덜 드는 붓과 먹에 의존하는 동양화로 전향할 정도의 극한의 궁핍이 있었고, 정신병동과 작업실을 오가면서 맞이한 이혼이 있었다. 마침내 정상인과 실성인의 경계마저 무너져버릴 때까지의 그가 맞이한 수난은 비탄과 상실의 연속이었다.

 첫 여인과 결별하고 제자이자 동업의 촉망받는 화가였던 두 번째 아내와의 만남은 그의 또다른 출발을 예고하였지만 고통의 시간은 계속되고 있었다. 젊은 아내의 재능과 야망은 훗날을 기약할 수밖에 없었고 당장 가난과 싸워야 했다. 그들은 교외에 작업실을 만드는데 오래 몰두했다. 이 시기의 박은용의 그림이 변했다. 굵은 먹선으로 농가와 동네의 일상들을 사실적으로 그렸다. 적묵의 필법에 따르는 엄청난 시간과 세밀성에 그의 육신은 더 이상 견디기 어려운 때문이었을까. 그러나 그보다는 디테일에서 벗어나 대담한 생략과 채색을 개입시킴으로써 화면의 서사 동력이 살아나고 작가의 본래적 심상과 민중적 사고가 분출되기 시작한 때문일 것이다. 

 원경으로 처리되곤 하였던 농가의 풍경 속 인물들이 일상적 삶의 현장으로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었지만, 그의 영혼은 이미 생활고, 병고, 착란에 지쳐 있었다. 2008년 9월, 그는 오래 작업해 오던 화순의 두강화실에서 문을 잠근 채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박은용과 오래 교유했던 후배 작가 박종석은 그의 평전에서 「비탄, 처절, 창조」라는 단어로 불행했던 선배 작가의 삶을 요약했고 진정한 남종화의 창조적 계승자로 그를 지목했다, 박은용은 우리에게 고단한 삶과 예술적 성취의 존엄을 함께 보여주었다. 우리가 타인의 상처에 관심을 갖는 것은 그것을 치유하기 위해서보다는 아마도 함께 아파하기 위함일 것이다. 상처는 한 예술가의 창조의 원천이자 존재의 근거일 수 있지만 거기에서 해석적 근거를 찾는 관람자와의 관계는 슬픈 역설이다,  

 

 

 

<농원> 이대원(1921~2005) 

〈농원〉은 이대원 회화 특유의 기법인 점묘법으로 처리된 자연 풍경이다. 하늘과 들판에 미세한 색점들이 꽃눈처럼 뿌려지고 나무와 산에는 꽃눈이 꽃으로 변한 듯 굵은 색점이 찬란하게 내려 앉았다. 밝고 화사한 색채의 점묘는 평면적이고 장식적인 화면 효과를 강화시키며, 농원 풍경은 자연의 서정성을 넘어서 시각적인 희열로 전환된다.

 

<나무가 있는 풍경> 장욱진(1917~1990) 

1965년작 <나무가 있는 풍경>은 나무와 사람과 소와 개, 그리고 해와 산과 새를 그린 그림이다. 땅 위의 존재와 하늘의 존재로 나뉘어지는 물상들은 중앙에서 화면 전체를 장악하는 거대한 나무에 의해 맞닿아 있다. 번잡하고 삭막한 도시를 떠나 산 속에서 생활하며 작품을 제작했던 장욱진의 인생관, 즉 크고 강하며 화려하고 무거운 것과 대비되는 작고 여리며 소박하고 가벼움을 지향하며 자유롭 게 유영하는 삶의 철학이 스며있다.

 

<복숭아> 박수근(1914~1965) 

〈복숭아〉는 박수근의 많지 않은 정물화 중에서 단연 걸작에 속한다. 그림은 보통 회백색과 암갈색을 주색으로 하여 좀처럼 밝은 색이 쓰이지 않았으나, 이 그림에서는 복숭아에 분홍과 연두색이 가해져 화사한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오래 사용해서 모서리가 닳은 목반, 끝이 뾰족하고 중간에 줄이 간 복숭아의 재미있는 형태, 느슨하게 풀어놓은 복숭아의 배열 등에서 소박하고 편안한 느낌 이 전해진다.

 

<자각상> 권진규(1922~1973) 

일명 〈가사를 걸친 자각상〉으로도 불리는 이 작품은 1969~70년에 제작된 것으로, 권진규의 자소상 중에서도 후기 작품이다. 권진규는 일본에서 유학할 때부터 말년까지 자신의 모습을 여러 점 조각했는데, 조각가가 자신의 모습을 반복적으로 제작한 경우는 동서양을 불문하고 흔하지 않다. 권진규는 처음에는 얼굴에 집중하는 표현으로 마스크처럼 표현하다가 점차 〈곤스케〉라는 작품에서처럼 목부분까지 표현하는 두상 으로 표현했고, <가사를 걸친 자각상>은 그가 흔히 다른 인물의 초상조각을 제작하듯 흉상으로 제작했다. 머리를 삭발하고 가사를 걸친 승려의 모습으로 표현하는 점이나 엄숙하면서도 명상에 잠긴 표정은 권진규의 말년의 의식을 대변하고 있는 듯하다. 이번 전시에는 이 자각상 외에도 드로잉이 같이 전시된다.

 

<월광月光> 김환기(1913~1974) 

1959년작 <월광>은 파리 시절의 연장선에 있는 작품으로 김환기 특유의 푸른색이 기하학적으로 단순화된 달과 산의 형상과 어울려 시적 감성을 불러 일으킨다. 산 허리의 빨갛고 파란 두 개의 직사각형은 화면에 생동감과 리듬감을 부여하는 요소로 작용한다.
 

 

* 《쿨투라》 2019년 4월호(통권 58호) *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