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ICON] 명명하는 레즈비언 작법 : 2022년 문학 아이콘 김멜라의 소설 쓰기
[2022 ICON] 명명하는 레즈비언 작법 : 2022년 문학 아이콘 김멜라의 소설 쓰기
  • 허희(문학평론가)
  • 승인 2022.12.06 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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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점

신뢰할 만한 출판문화 기획자와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소설을 주제로 한 독자 참여 프로그램에 대한 토론도 했다. 그때 그는 이렇게 말했다. “현재 본인 이름만으로 소설 독자들을 한꺼번에 많이 모이게 할 수 있는 소설가는 그리 많지 않아요. 하지만 그중에 김멜라 작가는 반드시 포함됩니다. 한국 소설 좀 읽는다는 사람 사이에서 김멜라 작품 안 본 사람은 거의 없을걸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요즘 소설 평론에서도 그녀의 소설을 거의 빼놓지 않고 다룬다. 작품에 대한 침묵, 혹은 배제가 결국 비판에 다름 아닌 시대. 이런 상황에서 활발한 비평적 대상이 된다는 사실만으로 김멜라 소설이 무언가 특별한 요소를 가지고 있음을 짐작해볼 수 있다.

2014년 소설가로 등단한 김멜라는 첫 번째 소설집 『적어도 두 번』(2020)과 두 번째 소설집 『제 꿈 꾸세요』(2022)를 출간했다. 첫 번째 소설집을 내는 데까지 6년의 세월이 필요했지만, 두 번째 소설집은 2년 만에 나왔다. 첫 번째 소설집을 묶기 전후 그녀가 문예지로부터 많은 단편 청탁을 받았다는 뜻이다. 김멜라는 첫 번째 소설집을 묶을 무렵부터 자기만의 존재감을 드러내었고, 이를 알아본 눈 밝은 문학 관계자들은 김멜라의 작품을 자기 지면에 계속 싣기를 바랐다. 야구로 비유하자면 그녀는 타석에 설 기회를 조금씩 얻어 안타 행진을 이어온 것이다. 문장의 상투성, 주제의 비시대성 등에 김멜라 소설은 아웃되지 않았다. 첫 번째 소설집의 추천사를 쓴 소설가 구병모는 다음과 같이 그녀의 작품을 평한다.

“당신은 이 소설들을 가볍고 즐거운 마음으로는 읽을 수 없다. 이 책과의 만남이 편안하고 유쾌한 경험을 보장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당신은 발견할 것이다. 한번 닿으면 뇌리에 들러붙어 떨어지지 않을 얼음의 문장과 마취제도 없이 몸속을 휘젓는 그로테스크의 칼날을. 사람이 살아 있는 한 어떻게든 풍기고야 마는 생의 질긴 악취를. 다정한 공감이나 한 방울의 위로 대신, 세상의 어둠 속에서 미량의 빛을 포집하기 위해 확장되는 예민한 동공을.” ‘얼음의 문장과 그로테스크의 칼날’은 김멜라가 감정의 과장과 낭비 없는 문체를 구사한다는 말이다. ‘생의 질긴 악취’는 그녀의 소설이 인생의 표피가 아니라 내장을 겨냥한다는 의미이다. ‘미량의 빛을 포집’한다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멜라가 세상을 마냥 비관적으로만 인식하지 않는다는 뉘앙스로 해석할 수 있다.

김멜라가 주목받는 또 다른 요건을 들 수 있다. 그녀의 소설이 성소수자를 전면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김멜라는 레즈비언 서사에 몰두한다. 성소수자 문학하면 올해 인터내셔널 부커상 후보에 올랐던 박상영을 떠올리는 사람이 적지 않을 것 같다. 그러나 게이 소설이 모든 성소수자 문학을 포괄하지는 못한다. 성소수자 문학의 갈래는 다기하고 층위도 제각각이다. 그렇다면 게이 소설 외 높은 문학적 수준을 담보한 여타의 성소수자 문학이 출현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 요구에 응답한 소설가 중 한 사람이 바로 김멜라이다. “레즈비언 포함해서 여자의 사랑 그리고 여자의 이야기를 쓸 때, 만약에 누군가 ‘왜 레즈비언의 얘기를 쓰냐’라고 질문을 해주신다면 저는 레즈비언이라는 관계에 대해서 특별하게 주목하는 것에 대해서 우리가 다시 한 번 생각해봤으면 좋겠다는 마음도 담고 있는 것 같아요.”(〈책읽아웃〉-황정은의 야심한 책 (284회) 김멜라, 『제 꿈 꾸세요』 중에서)

그렇지만 김멜라는 성소수자 문학임을 철저하게 의식하고 독자가 작품을 읽기보다는, “자연스럽게 (인물들의 감정선을) 따라갈 수 있을 정도의 서사가 더 많았으면 좋겠다는 개인적인 바람”을 피력한다. 그녀의 소설은 분명 성소수자 문학 범주에서 논의될 테지만, 성소수자에만 강조점을 찍는 독해에도 김멜라는 반대 의견을 표하는 것이다. 그녀는 일급 문학이 다 그러하듯, 성소수자를 주인공으로 삼되 그들을 피해(자)와 가해(자)라는 이분법적 극단에 서게 만들지 않는다. 이들은 저마다 (위)선과 (위)악을 내보이고 흔들리는 (성적) 주체로서의 면모를 결코 감추지 않는다. 근래에 젊은작가상, 문지문학상, 이효석문학상 등을 김멜라 소설이 석권한 이유도 거기 있다. 흑백논리를 반복하거나 자명한 이치를 설파하는 작품이었다면 불가능했을 수상이다.

이와 관련하여 김멜라 소설의 특징으로 꼽을 수 있는 것이 특유의 명명법이다. “실제로 저는 별명 짓는 걸 좋아해요. 사람도 그렇고 물건에도 애칭을 지어주곤 합니다. 세상에서 제일 많이 들어야 하는 단어가 자신의 이름일 텐데, 그 이름을 스스로 짓고 또 여러 뉘앙스로 변주하면 세상에 표현하는 자기의 언어가 다양해지는 거잖아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밝힌 바, 그녀는 필명을 비롯해 자기의 언어 세계를 확장하기 위한 독특한 이름 짓기를 시도한다. 「적어도 두 번」의 한 대목이 적절한 예시가 될 듯하다. “유파고, 혹시 자위란 말에 놀라셨나요. 그 단어가 불편하진 않으시겠죠. 만약 그렇다면 저는 자위를 지위라 쓰겠습니다. 앞으로 제가 쓰는 지위는 자위로 읽어주세요. 원래 뜻의 지위를 써야 할 땐 작은따옴표를 달아 ‘이 지위는 보이는 그대로의 지위’라 덧붙이겠습니다.”

자위를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것이 불편하다면 지위로 바꿔 말하겠다고 이 작품의 화자는 전한다. 여기에서 눈길을 사로잡는 부분은 금기어를 순화하는 주인공의 방식이 아니다. 이보다는 ‘유파고’라는 생소한 단어가 눈에 띈다. 그에 더하여 ‘줄파추’와 ‘루피쇼’라는 어디에서도 본 적 없는 명칭이 아무 설명 없이 지면에 등장한다. 맥락으로 유추하건대 유파고는 선생님, 줄파추와 루피쇼는 부모님을 가리키는 김멜라만의 용어이다. 처음에는 어색하게 느껴진다. 선생님과 부모님을 굳이 다른 단어로 대체할 연유가 없다고 여겨지기 때문이기도 하다. 고작 몇 개의 단어를 달리 명명했을 뿐이다. 그런데 기존의 강고했던 현실이 조금씩 무너져 낯선 현실이 도래하는 순간을 독자는 이내 체험하게 된다. 현실을 송두리째 붕괴시키기보다는, 현실에 다른 현실을 새겨넣는 작법이다. 지금 한국 소설 독자에게 김멜라 소설은 그렇게 어필한다.

 


허희 대학과 대학원에서 문학을 공부했다. 2012년 문학평론가로 활동을 시작해 글 쓰고 이와 관련한 말을 하며 살고 있다. 2019년 비평집 『시차의 영도』를 냈다.

 

 

 

* 《쿨투라》 2022년 12월호(통권 102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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