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INTERVIEW] 월트 휘트먼 생가의 시인 조지 월러스를 만나다
[3월 INTERVIEW] 월트 휘트먼 생가의 시인 조지 월러스를 만나다
  • 김준철(시인, 본지 편집위원)
  • 승인 2019.03.27 11: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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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지 월러스 시인은 뉴욕을 중심으로 미국에서 잘 알려진 시인 중 한명이다. 현재 미국에서 시인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월트 휘트먼 생가의 시인이며 맨해튼 페이스대학 영문학 교수이기도 하 다. 또한 미주문단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으며 현 다작의 시를 쓰는 시인 중의 한명으로 34권의 시집을 출간하였다. 첫 뉴욕 Suffork의 계관시인이며 CW Post Poetry상, Blue Light Poetry상, Pushcart Prize를 2년 연속 수상하였다. 《Poetrybay》와 《great weather for the media》의 편집자이기도 한 그는 1970년대 평화 봉사단으로 2년 동안 한국에서 체류하였고, 아직도 한국을 그리워하고 한국에 관련한 여러 편의 시를 써서 발표하기도 했다. 

 그런 그가 이번에 단국대에서 한류 문화 콘텐츠의 일환으로 박덕규 교수가 강의하는 엘에이 창작 클래스에 타냐고 시인의 초청으로 강연을 오게된 것이다.

 그는 뉴욕에서 엘에이에 도착하자마자 바닷가를 찾았다. 눈부신 햇살의 모래밭이 그리웠다고 한다. 한참을 바닷가에서 노는 아이들을 지켜보다가 그가 한마디 던졌다.

 “언어는 저렇게 자유롭게 노는 것”이라고 “모래밭 에서 아이들이 놀 듯 언어를 배워야 한다”고… 그러면서 크고 단단한 덩치에 어울리지 않는 천진한 미소를 던진다.

 생각해보면 수긍되는 말이다. 아무런 제한이나 규칙도 없이 자유롭게 뛰노는 아이들의 움직임, 환성, 이 모든 것이 우리가 말하는 언어의 무한한 본질적 기능인 순수한 감정의 또 다른 표현일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월러스는 스스럼없이 영어와 한국어를 섞어서 이야기를 했다. 오래전, 짧은 시간 배운 그의 한국어 실력은 놀라웠다.

  요즘은 많은 예능프로그램에서 한국인보다 한국 말을 잘하는 외국인들이 넘쳐나지만 그가 있던 시기, 내가 느끼던 시기의 한국은 외국인이 외계인에 가까운 취급을 받았었다. 이런 어려움 속에서도 그는 한국어를 즐겁게 습득했고 급기야 우리 언어가 가진 행간의 의미를 충분히 파악하고 사용하는 수준에 다다른 것 같았다.

  그의 한국어 실력에 놀라자 그는 소리가 전하는 순수한 파장으로 뜻과 의미를 어느 때 보다 빨리 이해하고 배울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지친 기색도 없이 그는 엘에이 오후의 교통체증을 뚫고 한인타운에 위치한 강연장에 도착했다. 숨돌린 겨를도 없이 바로 시작된 그의 강연은 결론적 으로 말한다면 기대이상이었다.

  그가 전한 강연 내용은 어디에서도 들어보지 못한, 하지만 충분히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었다.

  거의 30여 년 전, 단 2년 동안 한국 방문을 했던 한 시인이 기억으로 가지고 있기에는 너무나도 정확하고 선명하고 또 깊고 예리했다.

 젊고 예민했던 외국 시인의 눈은 당시 다른 외국 참가자들의 시선과는 사뭇 달랐다. 그의 눈은 랭귀지의 연결고리를 찾게 되었고 그것을 통해 언어는 물론이고 예술적 문화까지도 이해하게 된 것이다.

 이제 몇 가지 그의 강연내용을 소개해 본다.

 우선 그가 가장 처음 충격적으로 느낀 랭귀지의 놀라움은 아주 작은 대화에서 찾게 된다.

 어느 날, 그가 거리를 나갔더니 한 소년이 기타를 치고 있었다. 호기심에 그가 다가가서 소년에 게 “그거 니 기타니?”하고 물었다. 그러자 소년은 “아니, 우리 기타에요.”라고 답했단다. 그때 그는 ‘우리’라는 말이 정말 신기하게 적용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즉, ‘우리’의 의미가 전혀 새롭게 들어온 것이다. 내 것도, 네 것도 아닌 우리 것이라는 의미. 비슷한 몇 가지 예가 더 있다면서 월러스는 “나이를 먹는다.”는 말이나 “언니”라는 말 등에서도 놀라운 한국어의 다양하고 깊은 의미를 이해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는 정확히 한국말로 위의 말들을 전하면서 그 문장의 모순성과 그럼에도 전달되어지고 수긍되어지는 긍정성에 대해 설명했다.

 또한 한국인들이 지닌 열린 사고, 열린 문화에 대해 해학적으로 설명하기도 했다. 그것은 의료에 관련된 이야기였다.

 즉, 서양에서는 의료적인 수단은 거의 양약이라 고 이해하고 살았는데 한국에서 그가 본 의료적 수단은 참으로 여러 가지였다고 한다.

 우선 가장 쉽게 양약적인 방법, 그리고 침으로 고치는 방법, 한약으로 고치는 방법, 또 각각의 집마다 전해 내려오는 민간요법들, 거기에 무당을 불러 굿을 하여 고치는 방법까지… 하지만 그런 수많은 방법보다 더 놀랐던 것은 한국인들이 이 모든 방법을 다 사용하더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한국인은 그 어떤 선입견도 없이 열려진 사고를 가지고 생각하는 것 같다며 웃어 보였다.

 그는 휘트만 생가의 거주시인으로서 휘트먼 시인이 한국의 김선달과 비슷한 느낌이라도 말하며 올해로 200주년이 되는 그의 탄생을 기념하느라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고 전했다.

 이후, 그가 한국에서 있으며 읽을 책이 없어서 처음 접하게 된 게 한국 시집들이었다고 말하며 자신의 직접 번역한 박목월의 「나그네」를 낭송하기 도 했다.

 자연스럽게 시낭송시간으로 옮겨간 이날 강연회에는 미 주류 시인들과 활발하게 시작활동을 해오고 있는 타냐고 시인의 노력으로 많은 미국시인들도 자리에 함께하여 시낭송을 하였다. Peggy Dobreer, Mushroom Montoya 등이 자신의 시를 낭송하였으며 몇몇 미주한인작가들도 참석하여 시낭송의 자리가 더욱 풍성해졌다.

 생각보다 많은 미주류의 작가들이 한국에 대한 호의적인 호기심을 가지고 있으며 또한 우리 문화에 대한 깊은 이해를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앞으로 기회가 된다면 이런 작가들을 한명씩 ‘쿨투라’를 통해 한국 독자들에게 작품과 함께 소개하는 자리를 만들기로 하겠다.

 그의 강연과 만남을 통해 나는 한국의 문화적 힘이 상상 이상의 중독성을 가졌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을 수 있었다. 문화적 친숙성이나 예술적 감수성이 그 어느 나라보다 뛰어나며 또한 많은 조지 월러스와 같은 예술가들에게 한국의 문화, 예술을 경험케 한다면 그 깊은 인상이 얼마나 오랫동안 그들을 붙잡고 또 이끌지 기대되고 상상하게 되었다.

 그가 얼마나 한국의 이해가 깊은지를 알 수 있는 그의 시 한편을 소개하겠다. 이 시에서는 한국이 낯설지만 충분히 애정이 담겨진, 그리고 한국을 깊이 이해한 그의 묘사가 인상적이었다.

 

밤나무 숲과 감나무

시_조지 월러스 
번역_ 타냐고 홍

 토함산 경사의 사악한 영혼을 어떻게 막을 것인가
초가지붕 아래 춤추는 무당일까 
새끼줄로 엮어 문에 달아 놓은 검은 숯과 빨간 고추일까 
밤나무 숲과 감나무 사이에 흐르는 시냇물을 따라  
떠도는 돌일까
마음 평화로울 때 들리는 소리  
하늘 비추는 거울
배를 따뜻하게 하는 산채 나물
마을에 산더미같이 쌓여 있는 일과 근심을 잊게 해

 
부처님은 한국 성전에 사는 꽃 
가야금 달빛 아래서 내 마음을 잡아 주소서
황동의 종소리 울리는 에밀레 에밀레 엄마 때문에—
오래된 나라의 전설—용과 고리—술에 취한 남자가 부르는 
아름다운 향가, 하늘과 닿는 소리 우리가 닿는 소리 
소백산 아래 자유롭게 모이는 아침 회색 예복
1700년이나 입었던 겉옷을 쉽게 던져 버리고 

 

새로운 세기를 맞아—우리는 송학사에 가서 노래 부르네 
맑고 깨끗한 물 값없이 마실 수 있는 
소나무 향내 퍼지는 신선한 그 곳
우리는 아무에게도 속하지 않고 아무도 구속하지 않네  
할머니 밤나무 숲으로 가라고 우리의 등을 떠미네 
고독히 서 있는 감나무—주먹처럼 단단한 비밀의 과일 
땅속에 묻힌 빈 김치 항아리에 떨 감을 넣어놓고  
우리는 감이 달콤함 차가움이 완전 조화를 이루는  
4월에 꺼내 먹네


Q 이번에 엘에이를 방문하게 된 목적은 무엇인가요?

A 나의 이번 방문 목적은 북투어이며, 나의 최근에 발간된 ‘데이지 꽃 속에 100년’(출간일 2018년 10월 Stubborn Mulle Press) 출판을 축하하는 행사에 참석하기 위함입니다. 북투어는 미국의 1950~1960년 대에 대륙횡단의 아이콘인 루트 66행로를 따라 여러 곳에서 열릴 것입니다. 거치게 될 도시는 Santa monica, Albuquerque와 Saint Louis 등이며 엘에 이에서는 산타모니카 작가 클럽에서 작가들과 함께 워크숍을 가지고 West wood에서 Soiree를 하게 됩니다. 또 당신이 아시다시피 단국대학교 관련 그룹과 나의 2년간 한국 순천생활이 나의 시세계에 미친 영향에 대한 강연도 하게 될 것입니다.

Q 당신의 한국 방문은 사실상 오래 전이고 체류 기간도 짧았다고 할 수 있는데 어떻게 그렇게 선명하고 깊은 한국 문화에 대한 기억과 이해를 가질 수 있었을까요? 거기에는 특별한 방법이 있는 것 같은데요?

A 사실 당신도 동의하시겠지만 우리가 한 사람의 개인적인 생과 주관적으로 바라보는 관점 속에서 느끼는 경험의 영향을 단순히 경험이 일어난 곳에서의 시간만으로 균등하게 나눌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현 시점에서 십여 년의 기억들은 흐릿해지고 살다보면 1~2분 만에 나의 기억 속에 지울 수 없는 기억들이 새겨질 수도 있다고 봅니다. 그런것들이 내 정체성과 세계를 마주하는 성향을 만들었습니다.

나는 1977~1979년까지 2년 동안 한국 시골 양로원에 완전히 빠져 있었습니다. 나의 생애는 문화에 대한 탐구로 열정적이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타문화 경험에 열중이었습니다. 요즘 사람들은 안락의자에서 구글링을 통하거나 흔한 관광 이야기를 찾아보며 타문화를 간접 경험할 수 있겠지만 말이죠. 미국 정부의 평화봉사단으로 그렇게 흠뻑 몰두할 수 있는 경험 체득의 기회가 주어졌고 그것의 이점을 갖고 특별한 경험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체득은 각 개인의 자세와 의지에 달려 있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어떤 지원자들은 문화 교류에 약간 거부감을 가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나는 내 자신을 바다에 빠진 선원이 바다로부터 새로운 해안도시에 환영을 받으며 도착한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Q 그럼 그 이후에 다시 한국에 방문한 적이 있었습 니까? 기회가 된다면 한국 방문을 하고 싶으신지?

A 아직 다시 가본 적은 없습니다. 유감이지만 어떤 면에서 깊고 완벽한 경험들이 나에게 다시 가고픈 향수로 존재하는 것 이상이었고 내가 옛날에 경험한 것들이 퇴색되는 것이 아닐까 우려도 됐습니다.

 옛 고대인들이 말한 것처럼 “모든 나무는 그들만의 그늘이 있다.” 나는 이 말에 더 부치고 싶은 문구가 있습니다. 그것은 “당신은 작년에 있었던 그 나무 그늘 속에 다시 앉을 수 없습니다.”입니다. 물론 나는 미래지향적 사람입니다. 비록 제한적이지만 누군가 왕복 비행기 표를 사주고, 여인숙에 찾아 준다면, 시 한두 편을 떠 올릴 수 있다면, 즐겁게 여행용 가방을 들고 비행기에 오를 것입니다.

Q 한국에 가게 된다면 무엇을 하고 싶으신가요?

A 산길을 걸어 절에 가고 싶습니다. 그리고 운행버스를 타고 시골 농촌의 개울을 건너고 논길을 따라 시골 마을에 들어가서 시골 농부들을 만나고 싶습 니다. 새로운 시골 친구를 사귀고 다방에서 차를 마시고 막걸리 집에서 막걸리를 마시며 옛 노래를 부르고 새로운 것도 배우고 싶습니다.

Q 한국어 책을 가지고 계시나요? 혹은 한국에서 처음 읽은 작품이나 책은? 그리고 그 느낌은 어땠었나요?

A 하태흥의 ‘삿갓 쓴 시인의 일생’은 나에게 지극히 중요한 처음 읽은 한국 작품이었습니다. 이 책 이 문화교류의 고리가 되었고 방랑자, 사기꾼, 혼외자 같은 취급을 받는 시인이 미국(Woody Guthrie, the Beats)이나 유럽(troubadour/poet maudit) 외의 세상에도 존재한다는 사실을 아는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Q 당신은 월트 휘트먼 생가의 Residence Poet인데 주활동은 어떤 게 있습니까?

A 월트 휘트먼 생가의 Residence Poet으로 2011년 선택되었습니다. 그 덕분에 고맙게도 미국 각 지역을 비롯하여 유럽을 여행하며 휘트먼의 이야기와 모든 문화와 사람들에 대한 그의 초월적인 사상을 나눌 수 있었습니다.

또한 John Steinbeck, Carl Sandburg, Jackson Pollock, William Carlos Williams and Gordon Parks를 만나고 많은 연구소와 기념관을 방문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유럽의 현대조각이나 골동품까지도 접할 수 있었습니다. Robert Burns, John Ruskin, Naim Fresheri, 프 로방스의 troubadour 시인들,Euripides 동굴 그리 고 Thrace에 Ebrus 강을 따라 Orpheus의 자취를 찾으러 가기도 했습니다.

Q 월트 휘트먼의 잘 안 알려진 일화가 있을까요?

A 젊은 휘트먼은 그린포트(뉴욕 롱아일랜드) 해안 에 사는 누이 집에 방문하는 것을 좋아했고 그 당시 1840년에 처음으로 뉴욕시에서 이 해안도시까지 기 차가 운항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는 이 기차여행 동안 고전서적과 힌두의 Upshanids까지 읽곤 했습니다. 그리고 깨끗하고 값싸고 풍부한 농산물과 느긋한 농촌의 생활습관까 지도 그는 즐겼습니다. 일설에 의하면 그는 가끔 오 후에 부둣가에서 도시의 젊은이들과 어울려서 아주 극도의 즐거움이라고 할 수 있는 폭주, 뱃놀이 고성 방가를 했었다고 합니다. 그 당시 그는 20대 초중반 이었다고 합니다.

Q 제가 처음 당신을 만나기 전, 상상했을 때는 학자에 가깝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문학적 놀이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A 놀이문화(Homo Luden)란 인간이 경험으로 얻는 가장 근원적인 태도라고 봅니다. 나는 언제나 즐거움에 대하여 애기하기를 그 즐거움은 그 밑바탕에는 반드시 배움의 자극이 깔려 있다고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놀이꾼입니다. 그것에 대해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놀이는 배움의 원천이니까요. 나쁜 학자도 놀이꾼이지만 그는 어떻게 웃는지를 잊어버렸을 것입니다.

Q 저는 예술가로서의 가장 위대한 업적은 자신의 신념으로 살고 살아내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당신이 믿는 예술과 문학에 대해 말해주십시오.

A 간단히 말하겠습니다. 나의 신념은 나의 행동과 나의 예술에서 다 드러납니다.

Q 한국의 문학작품이 어떻게 세계 속에 효과적으로 소개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A 새로운 번역이 필요하고 그것은 문학적 해석보다는 시혼의 내부를 나타낼 수 있는 진실하고 정확한 시의 톤으로 번역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외설, 냉소 그리고 전통문화의 존귀한 것 까지도 포함되어야 합니다.

Q 끝으로, 한국에서 이 글을 읽을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A 나는 이 아름다운 작은 위성의 여행을 함께하는 동반자로서 당신들에게 인사를 전합니다. 우리의 문화는 다문화이기에 다양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한 가족인 것입니다. 휘트먼의 말로 마칩니 다. “각자 모두가 지구를 모든 사람들과 나누고 있습니다.”

 

 

* 《쿨투라》 2019년 4월호(통권 58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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