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ICON] 간극의 배우, 손석구.
[2022 ICON] 간극의 배우, 손석구.
  • 강유정(영화평론가, 강남대 교수)
  • 승인 2022.12.06 17:1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배우가 발견되는 건 언제일까? 흔히 데뷔작을 통해 새롭게 주목받는다 여기지만 그런 행운을 누리는 자는 드물다. 데뷔작 신인으로 세상에 각인되는 경우는 배우의 연기력, 감독의 연출력, 시대적 요행을 비롯한 세상과의 복잡한 교호작용을 통해 다층적으로 얻어진 결과이다. 결과를 읽을 수는 있지만 예측하긴 어렵단 뜻이다.

대개 배우는 특정한 시기, 구체적 작품을 통해 대중에게 인지된다. 늘 있던 사람인데, 갑자기 그 존재감이 도드라지게 각인되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름을 불러 꽃이 되듯이 같은 배우가 특정한 작품 속 캐릭터를 만나 다시 배우로 호명된다. 2022년의 손석구가 그렇다.

숫자와 기록으로 따져 보자면 손석구는 2014년 영화 〈마담 뺑덕〉이 첫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대중에게 손석구가 인상적으로 등장한 첫 작품은 〈센스8〉(2017)이거나 드라마 〈마더〉(2018)의 악역 혹은 드라마 〈슈츠〉(2018)의 머리 검은 미국계 변호사이다. 각자의 취향 혹은 기준에 따라, 손석구라는 배우는 다른 맥락, 다른 캐릭터로 기억된 것이다. 아직 손석구가 아닌 드라마 속 캐릭터로.

손석구라는 배우에 논의가 집중되기 시작한 것은 2019년 이병헌 감독의 드라마 〈멜로가 체질〉부터라고 할 수 있다. 영화 〈스물〉의 이병헌 감독이 시나리오와 연출을 맡았던 드라마 〈멜로가 체질〉에서 엉뚱하고도 매력적인 연출자 배역을 맡은 손석구는 배우 전여빈과의 호흡을 통해 손석구 만의 차별적 연기 호흡을 기억케했다.

이 차별성은 2022년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와 영화 〈범죄도시2〉를 통해 대체불가능한, 손석구만의 개성으로 자리매김했다. 이제 손석구는 각자의 주관에 의해 다르게 기억되거나 호불호가 나뉘는 신인 배우가 아니라 명실상부하게 우리 영화계에 있어 매우 중요한 배우 중 한 명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손석구의 가장 큰 특징이라면 바로 배우로서의 간극이 매우 넓다는 것이다. 2021년 영화 〈연애 빠진 로맨스〉의 잡지 편집자 ‘우리’만 해도 그렇다. 〈연애 빠진 로맨스〉의 우리는 잡지사에서 피처 기사를 쓰는 기자로 등장한다. 이를테면 문창과를 졸업한 문과 출신의 에세이스트로 등장하는 셈인데, 대중적으로 알려져있는 남성적이거나 마초적인 혹은 세련된 유학파 이미지와는 완전히 다른 이미지라고 할 수 있다.

〈연애 빠진 로맨스〉는 여성 감독인 정가영 감독의 시나리오로 남성인 우리 보다는 여성 캐릭터인 자영(전종서 분)에게 좀 더 초점화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상 손석구의 우리 캐릭터가 자영의 상대역으로서의 한계와 범주가 명확한 것이다. 그러나 손석구는 오히려 그 범주와 한계를 십분 활용해, 지금껏 로맨스 영화에서 본 적 없었던 개성적이면서도 자유롭고, 분방하면서도 난삽하지 않은 로맨스 장르의 남성 캐릭터를 보여주는 데 성공한다.

같은 해 출연한 드라마 〈D.P.〉의 ‘임지섭’은 ‘우리’와는 완전히 다른 캐릭터이다. 장교로서 늘 존대말을 쓰고 아랫 사람을 존중하는 듯 하면서도 묘하게 사람을 낮잡아 보는 임지섭의 캐릭터는 자유로운지, 관대한지, 까칠한 사람인지 뒤틀린 사람인지 쉽게 판단할 수 없는 애매모호한 면이 강조된다. 그 애매모호함을 임지섭을 연기한 손석구가 극대화해 준다. 이분법과 명령의 단순함이 지배하는 군에서 애매모호함이야말로 자칫하면 폭력의 자양분이 되기 쉽다. 어쩌면 임지섭이라는 캐릭터는 분명히 드러나는 악보다 더 나쁘게 작용하는 힘일 지도 모르는데, 손석구의 임지섭은 명령 체계의 방향성을 흐리는 모호한 혼돈의 유인자로 극 속의 긴장감을 높이는 역할을 충분히 해낸다.

이 애매모호함이 서사적으로 가장 잘 활용된 인물이 바로 〈나의 해방일지〉의 ‘구씨’다. 시종일관 ‘구씨’로 불리며, 정확한 이름도, 나이도, 출신 지역도, 직업도 밝혀지지 않은 채, 모호한 고통을 호소하며 살아가는 구씨는 〈나의 해방일지〉의 서사적 긴장감을 인물의 미스테리로 변주해 낸다. 그의 생애적 비밀이 벗겨져 하나씩 드러날 때 기대했던 것만큼 멋진 인생이 아니라 오히려 추악하고 지저분한 생애였음에도 연민과 공감이 빚어지는 것은 어쩌면 손석구라는 배우가 만들어 낸 해석의 여분때문일 지도 모르겠다. 〈나의 해방일지〉의 문어체적 대사들은 손석구라는 배우의 물리적 질감을 통해 구체적 생활의 세계로 체화된다. 활자가 언어로 바뀌는 마술에 배우의 육성과 음성, 눈빛과 움직임이 작용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오히려 〈범죄도시2〉의 악한 강해상은 지금껏 손석구가 보여주었던 다양한 층위의 캐릭터에 비해 훨씬 더 일차원적인 인물이라서 의외이다. 강해상은 범죄자가 보여줄 수 있는 매우 전형적인 성격과 움직임, 분노와 파괴력을 보여준다. 〈범죄도시〉 자체가 마동석의 다채로움에 기댄 장르물이기에 상대역인 강해상은 일차원적이며 평면적이어야만 하는 것이다. 의외인 것은 손석구의 연기 스펙트럼 안에 강해상과 같은 단면적 면모의 폭력적 악인이 자리잡고 있다는 사실이다.

지금껏 손석구가 드라마 서사와 영화 서사 안에서 보여준 강점은 정확히 어떤 생각을 하는지 모르는 듯한 미지수의 매력이었다. 하지만 강해상은 장르적 문법 안에서 관습이 정해준 방식을 고스란히 재현하고 있다는 점에서 손석구에 대해 기대했던 연기의 맥락과는 다르다.

그러나 한편, 손석구의 필모그래피 전반에서 이러한 선택은 오히려 손석구라는 배우의 선택이 그려내는 간극의 지표, 그 지표가 보여주는 넓은 지형도가 되어 준다. 관객에게는 강해상이라는 평면적 악역 자체가 의외의 선택으로 여겨지는 것이다.

2023년 손석구는 드라마 〈D.P.〉 두 번째 시즌과 디즈니 플러스의 드라마 〈카지노〉를 통해 관객을 만날 예정이다. 그의 여정이 이번엔 어떤 간극으로 넓어지게 될지 기대해 본다.

 


강유정 고려대 국어국문학과 대학원 졸업. 2005년 《조선일보》 《경향신문》 《동아일보》 신춘문예 동시 당선으로 등단, 저서로는 『영화 글쓰기 강의』 『타인을 앓다』 등이 있다. 현재 강남대학교 한영문화콘텐츠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 《쿨투라》 2022년 12월호(통권 102호) *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