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ICON] 이 시대 미술계, ‘RM’이라는 아이콘
[2022 ICON] 이 시대 미술계, ‘RM’이라는 아이콘
  • 강수미(미학. 미술비평. 동덕여자대학교 교수)
  • 승인 2022.12.06 17: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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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방탄소년단 공식 페이스북

영향력의 정체

2022년 올해의 미술계를 총 결산해보자. 여태까지는 이런 일에 한 해를 대표할 만한 작품 또는 전시를 선보이고 저명한 미술상을 수상한 미술가를 아이콘으로 선정하는 게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세계적인 미술품 경매사 크리스티Christie’s가 최근 기사화 한 것처럼, 가장 많은 인스타그램 팔로워를 거느리고, 업로드 하는 게시물마다 폭발적인 반응을 불러일으키는 미술계 네트워크의 ‘인플루언서’를 줄 세우는 것이 요즘의 방식이다.1 좀 더 넓은 범위에서 비엔날레 급 전시/프로젝트를 만든 예술 감독 및 큐레이터, 우세 담론이나 대중의 인기를 끈 미술 비평가 혹은 이론가, 관리자를 넘어 스타가 된 미술 기관장, 사업 수완을 발휘한 갤러리 대표가 포함될 수 있다. 어쩌면 천문학적 거래를 성사시킨 아트 딜러나 큰 손 컬렉터를 선정해도 놀랍지 않을 것이다. 나아가 굳이 사람에 한정하는 대신 코로나 방역의 해제로 방문객이 폭증한 유명 미술관, 비주얼 취향을 주도한 SNS 계정, 국내 미술시장을 쥐락펴락한 영국 발 프랜차이즈 아트 페어, 경이적인 낙찰가를 기록한 모더니즘 미술품과 옥션하우스, 인간 미술가를 뛰어넘었다는 평가를 받은 인공지능 알고리즘을 아이콘으로 꼽아도 된다. 이상 거명한 미술 직업군, 미술제도, 추세의 변화가 바로 지금 여기 미술계를 구성하고 있는 유무형의 주체들이기 때문이다.

“지금 즉시 팔로잉 할 100명의 미술계 인스타그램 계정: 취향제작자들”, 2022. 7. 28.출처: https://www.christies.com/features/Top-100-Art-World-Instagrams-Tastemakers-8485-1.aspx 캡처
“지금 즉시 팔로잉 할 100명의 미술계 인스타그램 계정: 취향제작자들”, 2022. 7. 28.출처: https://www.christies.com/features/Top-100-Art-World-Instagrams-Tastemakers-8485-1.aspx 캡처

그런데 그 모두를 제외하고, K-POP 아이돌 그룹 리더이자 래퍼, 싱어송라이터가 올해 국내외를 막론한 미술계의 아이콘으로 떠오른다면 이는 어떤 상황인 걸까? 그만큼 동시대 미술계 내부가, 구성원들이, 제도가 허약하다는 뜻일까? 그만큼 현재의 미술계와 연예계가 어지럽게 섞이며 변종을 낳고 있다는 반증인가? 그만큼 순수미술 분야는 대중오락과 문화산업에 잠식되고 있다는 의미일까? 이상의 질문은 분명 객관적 현상을 근거로 하지만, 논자의 특별한 의도 또한 담고 있다. 핵심은 기성의 미술계 구조와 미술 창작 및 향유의 폐쇄적 질서를 긴장시키는 상이한 힘, 그 독특한 작용을 인정하고 주목해야 한다는 것이다. 21세기 미술계에 생산적 긴장과 풍요로운 효과를 동시에 만들어내고 있는 이를 말이다. BTS의 RM, 본명 김남준이 그다.

뉴욕타임스에 실린 RM(한다솜 사진)과 rkive 인스타그램 계정.출처: https://www.instagram.com/p/ChwhupZvi6m/ 캡처
뉴욕타임스에 실린 RM(한다솜 사진)과 rkive 인스타그램 계정.출처: https://www.instagram.com/p/ChwhupZvi6m/ 캡처

남주닝Namjooning과 다중

‘미술 전시는 RM이 다녀간 것과 다녀가지 않은 것으로 나뉜다.’ 이는 언제부턴가 미술계 내부 전문가들, 특히 작가와 큐레이터들 사이에서 회자되는 말이다. 그와 달리 BTS의 글로벌 팬덤인 아미Army는 “김남준처럼 사는 행위”2라는 뜻으로 ‘남주닝’이라는 동사를 만들어 그가 다녀간 곳을 조사하고 그가 본 전시와 작가/작품을 따른다. 표현은 다르지만, 그 말들에서 우리는 RM이 미술을 특별히 여기고 국내외의 많은 전시를 보고 다닌다는 사실을 읽는다. 나아가 더 강렬한 의미는 RM의 전시 관람 여부가 여타 미술 판단과 평가를 압도한다는 것, 그만큼 영향력 있는 요소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요컨대 올해 미술계를 움직인 중요한 예술 경향이나 미학, 반향을 일으킨 미술 작품, 전시, 프로젝트, 담론 등은 널리 회자되거나 큰 지지를 받기 힘들다. 반면 2018년 즈음부터 본격화된 RM의 미술 애호와 전시장 행보는 매번 이슈가 되어왔고, 날이 갈수록 비약적으로 사람들의 이목을 끌어 모으며 “선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2022년 7월 글로벌 미술 사이트인 아트뉴스 닷컴은 RM과의 인터뷰를 통해 국제 미술계가 환영하는 그의 미술관 방문 여정을 집중 조명했다.3 2022년 8월에는 뉴욕타임스가 “보이밴드의 슈퍼스타, 미술 후원자라는 새 역할을 품다”4라는 특집으로 RM의 컬렉션은 물론 앞으로 “아트 스페이스”를 열겠다는 계획까지 망라해 소개했다.

바이에르 재단 앞에 선 RM.출처: 방탄TV 유튜브, “[BTS VLOG] RM | 미술관 VLOG”, https://www.youtube.com/watch?v=nxUOxsimI8o 캡처
바이에르 재단 앞에 선 RM.출처: 방탄TV 유튜브, “[BTS VLOG] RM | 미술관 VLOG”, https://www.youtube.com/watch?v=nxUOxsimI8o 캡처

그런데 이런 유력 저널리즘조차 대단한 사건이 아니다. BTS의 리더 대신 김남준의 아카이브라는 의미로 ‘rkive’라 명명한 그의 인스타그램 계정 속 전시 작품과 그의 뒷모습 사진들이 오히려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이쾌대, 김환기, 유영국, 권진규, 윤형근, 백남준 등 한국 근현대미술의 거장부터 마크 로스코, 도널드 저드, 로니 혼, 펠릭스 곤잘레스-토레스 등 서구 현대미술가 작품까지 일반 대중에게는 낯설었던 하이아트가 3천900만 명(11월 20일 기준 rkive 팔로워) 대중에게 손쉽지만 지속적인 관계망을 통해 공유된다. 2018년 당시 RM은 미국 콘서트 투어 중 방문한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에서 모네와 쇠라의 그림을 보고 “스탕달 증후군”을 처음 느꼈다고 한다. 예술작품에 감동 받아 심장박동이 거세지며 쓰러질 것 같은 상태를 의미하는데, 약간 황홀경 같은 느낌이다. 그런 미적 경험 이후 RM은 모마나 메트로폴리탄 같은 세계 유수 미술관은 물론 국립현대미술관, 국제갤러리, PKM갤러리, 서울대학교 박물관, 아트바젤 등을 종횡무진하며 예술 문화를 만끽하고 있다. 그 자체가 멋진 일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RM을 이 시대 미술계의 아이콘으로 만드는 진정한 요인은 그의 예술 향유가 결코 독점적이거나 배타적이지 않다는 데 있다. 김남준은 미술에 대한 경험을 은밀한 취향으로 삼는 대신 미디어로 공유하고, 미술계를 위한 후원으로 용해하고, 작품 해설에 목소리를 기부하면서 다원화하고 있다. 그렇기에 미술계 아이콘 RM은 사적 주체 김남준을 넘어 다중multitude이 될 것이다.

 


1 Christie’s, “100 art-world Instagram accounts to follow right now: Tastemakers”, 2022. 7. 28. https://www.christies.com/features/Top-100-Art-World-Instagrams-Tastemakers-8485-1.aspx
2 RM이 자신의 이름을 동사화한 ‘남주닝’을 아미의 정의대로 읽은 내용이다. AskAnythingChat, “RM From BTS Explains ‘Namjooning’”, https://www.youtube.com/watch?v=9bzVx6hVxBg
3 Delia Harrington, “BTS’s RM Talks about His Growing Influence and Appreciation of Art”, ARTnews, 2022. 7. 26. https://www.artnews.com/art-news/news/btss-rm-interview-kpop-fine-art-1234635267/
4  Andrew Russeth, “RM, Boy Band Superstar, Embraces New Role: Art Patron”, NYTimes, 2022. 8. 24. https://www.nytimes.com/2022/08/24/arts/design/rm-bts-band-art-korea.html


강수미 미학. 미술평론. 동덕여자대학교 예술대학 회화과 부교수. 『다공예술』, 『아이스테시스: 발터 벤야민과 사유하는 미학』 등 다수의 저서와 논문 발표. 주요 연구 분야는 동시대 문화예술 분석, 현대미술 비평, 예술과 인공지능(Art+AI) 이론, 공공예술 프로젝트 기획 및 비평. 현재 한국연구재단 전문위원, 국립현대미술관 운영심의위원, 《한국미학예술학회》 편집위원, 《쿨투라》 편집위원.

 

* 《쿨투라》 2022년 12월호(통권 102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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